100. 의문
자신을 찾아온 친구들과 이야기 할 새도 없이 곧바로 골아 떨어져버린 제롬을 보고 클로아
는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슨 집나간 남편 찾으러 다니는 지극정성의 가련한
아내도 아니고 아침 일찍 눈뜨면 밖으로 나가 해가 어둑어둑 해지면 슬금슬금 여관으로 돌
아오니, 얼굴 마주칠 새도 없이 침대로 쓰러져 죽은 듯이 누워있는 제롬의 뒤통수를 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클로아는 제롬 옆에 서서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씨근덕거리고(씩씩거린다는 뜻)있었다. 기
사도 함부로 펼쳐내지 못할 무시무시한 살기를 담은 눈초리에 제롬을 찾아왔던 친구들은 찍
소리도 못한 채 방에서 물러나와 여관과 겸업을 하고 있는 퍼브의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녀석 재주도 좋지...."
"그게 무슨 소리야?"
닐의 술잔의 내용물이 한번 출렁-하고 넘칠 듯이 흔들렸다. 그것에 눈길을 주고 있던 닐은
브라이언의 물음에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헤르나 왕실 최고의 에이스로 공인받은데다, 저런 애인까지 데리고 여행을 다닐 정도라
니... 얌전한 놈이 더하다니까. 이 몸께서도 아직 애인하나 없는데..."
입을 내밀고 궁시렁대는 닐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못하던 브라이언은 누군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제롬은 아직 안 왔대?"
가슴부위에서 찰랑이는 금빛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매만지며 시원스런 초록빛 눈동자로 옅
은 미소를 짓고 있는 미남자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브라이언에게 눈을 맞추고 있었
다.
"아, 라젤로 어서와. 제롬은 피곤해서 눈 좀 부치고 있어."
"쳇, 그것도 아름다운 소녀의 관심 속에서 말이지."
심술 맞은 표정인 닐의 모습을 바라보던 라젤로는 궁금증이 인 표정으로 브라이언에게 바라
보았다.
"아름다운 소녀? 정말? 제롬이??"
라젤로는 네 어절만으로 충분히 자신의 놀라움을 드러내었다.
"믿지 못하겠지? 하지만 정말이라구. 쳇, 하늘도 불공평하시지."
남자답지 못하게 집요하게 이어지는 닐의 투덜거림을 참다못한 브라이언은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너야말로 한 여자에게 정착을 못하니까 애인이 없는 것 아니야. 만인(萬人)이 애인이라던
너의 신조는 물 건너 간 거냐? 남자답지 못하게..."
"그건 그거구. 부러운 건 부러운 거라구"
"에휴, 그래 그래."
닐의 말에 한숨을 쉬던 브라이언은 끝내 포기를 하고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건 그렇고... 시간을 내서 얼굴 좀 볼까 했더니 타이밍이 맞질 않는군...."
라젤로는 고운 눈썹을 찌푸리며 아쉬워하는 소리를 했다. 라젤로가 닐의 곁에 자리하자, 브
라이언은 주위를 둘러보며 물음을 던졌다.
"매튜는?"
"아, 지금 감사를 받고 있어서 바쁘거든. 나도 제롬이 왔다는 소리에 간신히 틈을 내서 나온
거야. 매튜는 시간이 나는 대로 나올거야. 하지만 그렇게 오래 있지는 못해. 나도 곧 들어가
봐야 하거든..."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의 귓가에 남녀의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건 얼마 시간이 지
나지 않아서였다. 왠지 쩔쩔매는 남성의 음성이 제롬과 닮은 것 같아 무심코 고개를 돌려
소리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던 브라이언은, 클로아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녀가 제롬을 문책하
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클로아에게 혼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역시 제롬은 여성에게는 약하다는 것을 깨닫자, 몇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제롬에게 반가
운 마음이 들었다. 제롬을 보며 미소를 짓던 브라이언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인 닐과 라젤로
를 중단시키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제롬을 불렀다.
"그래서 잘했다는 거야? 내가 얼마나 그 녀석(쥬아렌)의 구박 때문에 못살겠는데. 무엇하나
물어도 입은 열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녀석하고 같이 있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 받
는 일 인줄 알아? 거기다 그 녀석 나에게 함부로 군다구, 내가 얼마나 구박받고 사는지 모
르지?"
"저, 그건.... 클로아님.... 그리고 여긴 사람들이 있으니까 언성은 낮추시는 게."
"뭐야, 지금 그 녀석 편을 드는 거야? 솔직히 말해. 내 말을 듣기 싫으니까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거잖아?"
"...그게 아니라. 제 친구들도 와 있는데..."
"맞아. 요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돌아다녔잖아. 그리고 지금 와서도 30분도 채우
지도 못한 선잠이었을 텐데, 피곤하지도 않아? 저 사람들 친구들이잖아. 부탁하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줄거라구, 그런 몸으로..."
클로아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제롬을 바라보았다. 제롬은 난처해하며 슬쩍 고개를 돌려 친
구들이 있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마침 브라이언이 제롬의 이름을 호명하여 그에게 구명의
길을 열어주었다.
"제롬!"
제롬은 자신을 보고 반가워하는 친구들을 보고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고 고개를 돌려 클로
아에게 부탁했다.
"제가 그들에게 부탁한일이 있어서요. 그리고 제 몸이라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클
로아님을 지켜드릴 힘이라면 충분히 비축하고 있으니까요. 쥬아렌에게도 잘 말할 테니, 그만
들어가서 쉬세요."
내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 날 지켜달라는게 아니라 남을 생각할 겨를이 있으면 자신을
돌보라고 말하는 거야, 이 바보야.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 클로아는, 다만 제롬을 향해 눈을 흘기고 자리를 떴다. 그녀의 반응에
뭔가 자신이 잘못한 점이 있는지 고민하던 제롬은 친구들의 음성이 들려오자 그들에게로 걸
음을 옮겼다.
"아, 라젤로. 오랜만이야."
"그래. 이렇게 만나니까 정말 반가운걸. 매튜도 왔으면 좋았을걸...."
"그러고 보니 매튜는? 아, 그러고 보니 켈른도 보이지 안잖아?"
제롬의 물음에 닐은 종업원을 손짓으로 불러 음료수를 주문하며 제롬의 궁긍즘을 해결하였
다.
"매튜는 시간이 나는데로 곧 온다고 했고, 켈른은 바쁜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전해달라고
했어."
"흠... 그래?"
잠시 고개를 끄덕이던 제롬은 친구들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급했는지 자신이 먼저 그들에게
용건을 꺼내었다.
"그래서, 내가 부탁한 건 어떻게 되었어?"
"그건...."
말끝을 흐리던 닐은 브라이언에게 눈짓을 하며 대신 말하길 종용했다.
"..알았다니까. 저 제롬, 그게 말이지... 우리가 탐문하기론 네가 말한 소년과 같은 사람은 찾
을 수 없었어. 꽤나 비슷한 사람도 몇 명 있었지만... 그들의 신분은 확실하니까. 해당사항이
아니었지... 그렇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아. 겨우 며칠의 탐문만으로 포기하는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니까 말이야."
"...그래..."
제롬은 브라이언의 마음씀씀이에 고마워하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 이건 필요해서 그러는 건데... 카필로아 가의 파티에 몇 명이나 동행할거야? 뭐, 이
번엔 대대적으로 열리는 파티여서 그런지 확실한 신분을 가지거나 그런 동행자가 있으면 무
사 통과거든. 대신 파티장에 들어선 모든 사람들은 무기를 압수 당하고 엄중한 감시를 받아.
엘 공작은 노리는 사람이 많아서 황족들보다도 위험한 경우에 처해있거든."
"우선 나만 이라고 하고는 싶지만...."
제롬은 말끝을 흐리며 잠시 생각해 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3명의 초대장을 부탁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 일행들도 같이 가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럼 그러지 뭐."
브라이언은 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행이라면 아까 그 아가씨도 포함되는 거지? 그런데, 정말 어떤 사이야? 예전에 너라면
여성에게 관심도 없었잖아. 정말 닐의 말마따나 네 애인이야?"
라젤로의 말을 들은 제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런 말하지마, 괜한 짐작으로 사람잡겠구나. 단지, 높은 신분인 아가씨일 뿐이야. 난 단지
그 경호를 맞은 것뿐이고."
제롬의 말을 듣자 피식 웃어버린 브라이언은 닐의 푸른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트리며 그를
탓했다.
"그것봐라, 닐. 네 주책 맞은 생각 때문에 라젤로가 오해했잖아."
"그럼 그녀는 아직 혼자라는 말이잖아. 그렇게 아름다운데 남자들이 가만히 내버려뒀단 말
이야? 남자들이 보는 눈이 없군. 나라도 대시(dash)해 볼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롬의 손이 음료수를 들이키던 닐의 손을 거칠게 잡아챘다. 닐
을 바라보는 제롬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행여나 그럴 생각이 있다면 빨리 버리도록 해.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니까."
한순간에 몸이 굳을 정도로 차가운 그의 어조 때문에 움찔했던 닐은 굳어진 목을 끄덕였다.
얼어있는 닐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빛이 반짝였다.
곧 닐은 농담이었다면서 사과를 했고 분위기를 바꾸기위해 화제를 바꾸어 계속 얘기 해나갔다.
그러자 제롬 또한 자신의 행동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미안해 하며 본래의 온화한
얼굴이 돌아와 친구들의 이야기에 동참을 하였다.
이야기의 화자를 브라이언에게 넘겨주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제롬을 바라보고 있던
닐은 마음속으로 제롬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애인이 아니라면 그 지나칠 정도의 관심은 무얼 뜻하는 거지?
걱정이 묻어나는 눈빛은 조용히 제롬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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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를 수정하려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서 이것먼저 올립니다.
100화에 무조건 제롬과 얀을 만나게 하려고 억지로 앞의 내용을 늘렸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는군요.
그들이 만나려면 좀 기다리셔야...
제글을 읽을 때 모자르는 부분은 알아서 상상해 주셔야 하는 것 알죠?
저는 이것만으로도...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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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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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16-01-2002 20:30 Line : 225 Read :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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