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음모(3)
간단한 점식 식사 이후, 컴백홈(comeback home) 여행에 대해 서로 의논하고 있
던 얀의 일행은 이야기 도중 파엘에 의해 갑자기 불려나갔던 세스가 힘없이 문을
열고 나타나자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에 세스는 약한 웃음을 지으며 씁쓸히 말했다.
"미안, 아무래도 계획을 미뤄야만 할 것 같아."
부연설명을 대신하려는 듯 그들의 눈앞에 금테가 둘러진 단아한 상아빛 카드가
불쑥 내밀어졌다.
"뭐야 이건??"
얀은 종이를 받아 들었고, 그것이 초대장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덧붙여 안
을 열어보곤 중차대한 사실 한가지를 깨달았다.
"패스."
그렇다 글을 모른다는 것이다. 얀은 뻔뻔스러울 정도의 자연스러움으로 은근슬
쩍 제롬에게 초대장을 넘겼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초대에 응해주시길 바랍니다. 클라우드 B. 아르세닌...?
누구죠? 클라우드란 사람은...?"
궁금함이 묻어 나오는 음성으로 제롬이 물음을 던졌다.
"거참, 행동력 하난 칭찬할만하네. 어제 만나놓고, 벌써 초대장을 보낸 거야? 파
엘의 말로는 적통 왕자라나 뭐라나..."
얀은 찔끔하는 표정이 되어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는 제롬의 눈길을 피하며 세
스를 끌어들였다.
"어떻게 할거야?"
"글세, 이렇게 정중히 초대장을 보냈으니 응할 수밖에 없겠지... 그를 싫어하지
만, 그의 의견엔 찬성이거든. 선대의 싸움 때문에... 물론 그도 직접적인 피해자
지만, 이 이상 불필요한 적대관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사양이니까.."
"에, 말은 그렇게 하면서 역력하게 싫은 표정을 하는 건 뭐야."
"흠...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겠지."
불만스러운 듯 세스는 제롬에게서 건네 받은 초대장을 노려보며 드문드문 말을
했다.
"초대 한 날짜는 이틀 뒤야. 우리 둘을 초대했는데..."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가 맞다면..."
말을 흐리며 생각에 잠긴 제롬은 곧 시선을 돌려 얀을 바라보았다.
"얀 님의 개입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딱 잘라 반대를 하는 제롬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 단호한 표정이 서려있었다.
이 이상 얀의 존재를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듯 결연한 표정이 된 제
롬을 얀은 답답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나도 찬성이야. 왠지 그가 얀을 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 우리
가문에 대한 적대감인지, 유희적인 기분이 빗어낸 일시적인 감정의 산물인지는
구분이 가지 않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사실이겠지. 얀은 이번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계획대로 내일 출발하도록 해."
세스의 말을 듣고 울상이 된 얀은 궁지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정
체를 클라우드가 이미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고, 그것 때문에 자신을
초대했으리라 믿고있었다. 어쩌면 이런 일이 발생할거란 예감을 하고 있었을 지
도 모른다. 연회장에서 그와 나누었던 대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암시적
인 단어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답답해져 왔다. 세스에게 말을 해선 안 된다. 가
뜩이나 이런저런 일로 골치가 아플 텐데,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그를 더한
곤경에 처하게 하고싶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의 선에서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가서 그와 단판을 짓는 거다.
머리가 아파온다. 얀은 한숨을 쉬며 지끈거리는 이마를 매만졌다. 다소 아픔이
가시는 듯 하자, 얀은 고개를 들었다. 염려가 담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롬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걱정스런 표정이 떠오른 그,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예전 꿈에서 가끔이나마 볼
수 있었던 긍지가 담긴 기사의 눈빛이 아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가슴 조리
며 바라보는 그가 있다. 제롬이 한 이야기를 종합해 본다면... 그는 자신이 세헤
르나에서 사라진 뒤, 오직 자신을 찾기 위해 기약 없는 여행에 선뜻 나선 것이
다. 예전 꿈에서 그를 보았을 때보다 약해진 듯한 모습이 눈에 띈다. 그를 그렇
게 만든 것은 자신이겠지...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져 오며 미안한 감정에 휩싸여 갔다. 오늘따라 왠지 감상
적인 되어가는 기분을 떨쳐내려 얀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다만..."
기운이 없는 듯 고개를 흔드는 얀을, 세스는 인상을 찌푸리고 바라보았다. 자신
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는 세스의 차분한 갈색 눈동자가 얀의 시선에 아프게 들
어왔다. 미안함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몸둘 바를 모르겠다. 얀은 한숨을 자신의
결심을 내뱉었다.
"...제롬은 내가 하는 부탁을 따라주겠지?"
갑작스런 그의 말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제롬은 입을 다물었다. 제롬의 표정을
본 얀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리광부린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곳 구경을 잘하지 못했거든... 그래서
추억할만한게 별로 없어. 그러니까 집으로 가기 전에 추억한가지쯤은 가지고 싶
어. 그래서 말인데, 나도 초대에 응하면 안될까? 가고 싶거든... 폐가 안되도록
노력할테니까..."
얀이 얼굴을 붉히며 제롬의 눈치를 보고 있자, 난감한 표정이 된 제롬은 시선을
돌려 세스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제롬의 시선을 받고 곤란한 듯 미간을 좁히던
세스는 기대가 잔뜩 담긴 얀의 눈빛이 더해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복을
했다.
"네가 내 곁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전제라면 허락할게. 내가 옆에서 지켜본다면
그도 별다른 짓은 하지 않겠지. 물론, 제르미스 경의 승낙이 있어야 하겠지만..."
화살을 제롬에게 돌리자,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민을 하던 제롬은 종용하는 얀의
눈빛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의아한 듯 얀이 되묻자 제롬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제가 호위를 맡게 해주십시오."
"따라가겠다는 얘기야?"
"파나인 가의 사람을 일개 호위기사로 쓰다니... 저도 많이 출세했군요."
농담조로 말한 세스의 어조에는 찬성의 기운이 배여있었다.
"좋아, 그럼 나도 따라간다."
"그럼 나도 가야겠군."
클로아의 외침에 뒤이어 가만히 있던 쥬아렌이 담담히 말을 뱉어내자, 클로아는
기분나쁜 눈빛이 되어 쥬아렌을 으르렁대듯 쏘아보았다.
"말투가 꼭 나 때문에 가야한다는 듯 들리는데...?"
"제롬은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에게 온 신경을 다할테니, 당연히 네가 그 발목
을 잡지 않도록 내가 보조해주는 수밖에 없지."
"..........!"
클로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쥬아렌의 지적을 받고서야, 제롬의 우선순위가 이제
는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파혼을 했다해도 제롬은 자신을 세헤
르나의 왕자와 동급으로 대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충성을 해야할 실제 주인을
만난 이상, 그의 마음을 누가 차지하고 있는지는 그의 태도에 두드러지게 나타
난다. 제롬이 부정을 할지라도 말이다.
클로아는 넋이 나간 듯 멍해진 얼굴로 제롬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제롬은 당황하여 쥬아렌을 바라보았다.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내가 신경써야 할 일이니, 자네의 도움은 바라지 않아. 클
로아 님에게 그런 말은 삼가주도록 하게."
그는 고개를 돌려 어색하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제게는 얀님과 마찬가지로 클로아님 또한 소중한 분이십니다. 당연히 두 분은
항상 같이 계셔야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얀님의 말씀대로, 두 분에게 추억을 만
들기엔 이번 기회가 충분할 겁니다."
시원한 웃음을 짓고 있는 눈동자가 따뜻한 위로를 한다. 더할 나위 없이 확고부
동한 기사의 자세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그래... 당신의 눈에 비치는 나는 겨우 그 정도겠지... 덤으로 붙어 있는 존재...
나의 존재는 왕자와 '더불어'가 아니면 가치가 없는 건가...?'
클로아는 입을 꾹 다물고 애써 눈물을 참으며 밝게 말하려 노력했다. 그 어디에
도 그녀의 고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나와야지, 각오해두라고. 여태 못 논 것까지 실컷 놀 테니까. 어지간한
배짱으론 버티지 못할걸."
클로아는, 지금은 왕자의 존재감 보다 낮은 위치지만, 언젠가 그를 뛰어넘어 제
롬의 눈에 들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결심으로 가득찬 눈동자가 자신
만만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없이, 웬만한 것은 제롬과 세스의 대화로 모든 것이 결정지어
졌고, 난로가에 웅크린 고양이마냥 꾸벅거리며 졸던 키리아는, 좀이 쑤시는지
꼼지락거리던 얀의 이끌림에 위해 회의가 끝나자 마자, 서재밖으로 끌려나갔다.
보여줄 것이 있다며 즐거워하는 얀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짓던 제롬은 문밖을
나서는 순간, 집사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가볍게 물음을 던졌다.
"제게 무슨 용건이 있으십니까?"
"왕성에서 제르미스 경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관에 갔다가 이곳으로
온 거라더군요. 어쩌시겠습니까? 이리로 불러올까요?"
몇 십년의 집사 경력을 가진 사람답게 그는 감정이 배제된 채로 의향을 물어보
았다.
'친구들인가...?'
대충 누구일거라 짐작이 가자 제롬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그들을 이곳으로
불러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정작 집사가 대리고 온 사람들은 제롬이 기대하
고 있던 이들이 아니었다.
처음보는 남성과 여성이었다. 낯선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의 행동거지는 정중하
고 품위가 있었다. 조금의 꿀림 없이 제롬을 바라보던 남성은 제롬의 앞에 도착
하자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제르미스 파나인경입니까?"
확인조로 묻고 있지만, 이미 짐작을 하고 있었는지, 제롬의 대답을 듣자마자 용
건을 꺼내고 있었다.
"저희는 왕비전하를 모시는 직속 기사입니다. 그분의 명령으로 이것을 당신에게
전합니다."
단도직입적인 문장, 제롬은 혀를 차고는 그의 손에서 건네진 것을 받아들였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그분의 눈에 뜨이리라 생각지 않았다. 언젠
가 알게 되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건 너무 빠르다. 곤혹스러움에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은밀하게 진행하려 했지만, 잘못하다간 불같은 화를 받아드릴 수도 있다. 그분
의 성격을 생각하며 어이없는 웃음을 짓던 제롬은 붉은 인주로 봉해져있는 편
지지를 뜯었다.
우아한 필체로 장식된 크림빛 고급양피지로 된 편지지를 내려다보는 동안 임무
를 마친 기사 일행은 자리를 떴고 제롬은 편지를 마지막까지 읽고 곤란스런운
듯 체념의 빛을 띄우며 편지를 접었다.
하는 수 없군.
체류가 더욱 길어질 예감에 제롬은 쓴웃음을 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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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글을 읽고, 터지기 일보직전인 호빵이 생각나지 않나요?
앙꼬가 가득들어서 모양도 이상하고....;;]
에잇, 몰르겠다. 무책임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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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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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27-02-2002 00:06 Line : 267 Read :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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