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음모 (4)
예의 2층에 다다르자, 이제나저제나 제롬을 기다리고 있는 얀이 있었다. 자랑하
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지, 잔뜩 들뜬 모양새로 흥분해 있던 얀은 제롬의 몸이 2
층에 올라서기가 무섭게 손목을 잡아채서, 현재 자신이 묵고 있는 방안으로 끌
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침대에 앉아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키리아란 소년과 무덤덤한
표정의 쥬아렌,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는 클로아가 있었다.
제롬은 클로아의 표정을 보며 잔뜩 의아해 했지만, 곧 자신을 이끄는 얀의 손길
에 그런 생각마저 지워버리고, 미소를 지으며 터덜터덜 그의 뒤를 따라 목적하
던 것에 다다랐다. 방 정중앙에 당연하다는 듯 놓여있는 호화스러보이는 아기침
대가 제롬의 눈에 크게 다가왔다.
"귀엽지?"
동의를 구하고 있는 얀은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제롬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생물의 아기때 모습은 귀엽다. 얀의 기대의 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가
리키고 있는 아기는 발그레한 분홍빛 볼과 새털 같은 부드러워 보이는 연한 초
록빛 머리카락이 한데 어울려 첫눈에 반할 정도로 마음이 끌렸다.
"...그렇군요..."
제롬은 긍정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아기는 무척 귀여웠다. 하지만, 웬 아기...? 얀 님이 보
여주겠다던 것이 이것이었나...? 제롬은 인상을 찌푸리고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이들은 암묵적으로 아기의 출현을 묵인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아기가 보
통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제롬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이
리저리 가능성을 모색해보았다. 하지만, 타당한 결론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제롬은 얀의 의도를 몰라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제롬의 옆에서 여성의 하
이톤으로 떨리고 있는 음성이 들려왔다.
"우---, 소, 소름끼쳐."
클로아는 혐오스런 얼굴로 양팔을 문지르고 있었다. 뜻밖의 말에 제롬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정신이야? 그 세스라는 사람도 이상하지. 이런 상태를 용납하는 거야?"
괴로운 듯 찡그리는 그녀의 표정이 묘한 불안감을 가져와 주었다.
"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단 말씀."
하긴 그것보다 어떨 결에 그렇게 되었지만 말이야.
얀은 속으로는 땀을 흘리면서도, 겉으론 당당하게 웃어 보인다. 그의 옆에서 잠
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취한 쥬아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표현에 긍정을
표했다.
"...그렇군... 터무니없는 방법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나
행동의 규제를 없애기 위해선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어. 친인들에게서
친밀함을 얻는 동시에 둘만의 성역으로 타인들의 시선을 차단할 수 있으니 말
이야. 거기다 아기를 이용해서 경계를 풀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유리해. 효율적
이야. 대단하군...."
담담히 감탄사를 연발하는 쥬아렌과 어느새 얀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클
로아의 모습을 보며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던 제롬은 마지막으로 키득
거리며 악마적인 웃음을 날리는 얀의 표정을 스치듯 지나쳐 그나마 정상으로
보이는 키리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강하게 내리누르는 그의 시선을 느끼고 한숨
을 쉬다 고개를 든 키리아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기를 손가락으로 가
리키며 요약 정리하여 설명했다.
"에...그러니까, 얀과 세스의 부산물."
그의 설명이 너무도 간단한 나머지, 의미추론에 열을 올리던 제롬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나직한 얀의 음성에 시선을 들었다.
"제롬이 지켜 줘."
"..........!"
놀란 표정을 된 제롬을 바라보던 얀은 조금 고민하던 눈치더니, 자신의 말을 정
정했다.
"아니, 지켜달라기 보단, 키워달라는 건가? 키리아는 보기 보단 소질이 없고...
세스는 바쁘고, 유모에게 맡겨도 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어서 말
이야. 적임자를 생각하니까 제롬이 떠오르지 뭐야. 난 집중이 부족해서... 애보기
엔 맞지 않는 것 같아."
"자, 잠깐만...왜...저한테..."
"말이 잘못됐잖아, 얀. 보살펴달라고 해야지."
뒤늦게 방안에 들어서던 세스는 그들의 대화에 끼여들어, 당황해하는 제롬이 이
해하기 쉽게 얀의 말을 바로잡아 주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제가...?!"
패닉 상태 직전인 제롬을 잠시 살펴보던 세스는 부연설명을 했다.
"비밀보장을 위해서입니다, 그밖에 기타 등등을 포함해서. 유감스럽게도 뜻밖의
상황으로 인해 대외적으로 저와 얀의 아기가 되어버렸습니다만..."
놀리는 듯 미소를 지은 그는 경악하는 제롬의 표정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 동안 제가 보살피고 있었지만... 외부로부터 유모에게 맡기라고 압력이 들어
오고 있어서, 저도 곤란했습니다. 얀과 깊은 연관이 있을뿐더러, 저도 애정이 생
겼으니 타인에게 맡기기가 어려웠거든요. 남에게 말못할 사정도 있고요. 당신의
따스한 면은 얀으로부터 저의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될 정도로 들었던지라 당신
을 본 순간 바로 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전 기사이지 유모대역이 아닙니다. 혹시, 저를 놀
리는 것에 재미를 붙이신 것 아닙니까?"
"이런... 알고 계셨던 겁니까?"
세스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난감한 듯 말했다. 자신의 말이 진담인지 고민하는
제롬을 보며 피식 웃어버린 그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장난감을 빼앗겨 버린 어린아이의 심정이랄까요. 괜히 심술이 나는군요. 조심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쉽게 알아차리다니 수행이 부족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는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하도록 하죠. 어차피 승자는 당신이니 이
정도 심술은 양해해 주시겠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은, 내용을 빼고 말한다면, 참으로 성실
한 청년의 본보기였다. 말문이 막힌 제롬은 굳어진 채 세스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세스는 다렌(아기)을 들어올려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안겨주려 하였다.
"어. 아. 아니. 잠깐만... 저는 어린애를 안는 방법도 모르…어, 어라."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제롬은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 발버둥을 쳤다.
"쉿. 다렌이 놀라겠습니다."
"하, 하지만..."
제롬은 세스가 안겨준 아기를 얼결에 받아들이고 억울한 눈빛이 되었다. 제롬의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트린 세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호위를 맡고 싶다고 하셨지요? 제르미스 경 정도 되는 기사가 갑자기 저희 가
문의 호위를 맡는다면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그에 어울리는 직책이 필
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얀의 곁에 더욱 자연스럽게 있기 위해서 입니다. 이후
에 얀과 당신에게 관련되어 퍼질 소문을 잠재울 수도 있을 것이구요. 일석이조
아닙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악마성 짙은 웃음에 발끈했던 제롬은 곧 이상한 느낌에 자신의 팔안을 들여다
보았다.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경직되어 버린 제롬은 굳어진 목을 움직여 얀을
바라본다.
"왜 그래?"
"이.... 아기..."
"응??"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듯, 혀로 마른 입술을 살짝 핥은 제롬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얀을 바라보았다.
"얀님과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는 겁니까?"
"뭐야, 세스가 설명했잖아. 대외적으로 세스와 나의 아기라니까. 우---, 말하고
나니 왠지 부끄러운 느낌!!"
얀은 안색을 붉히며 양볼을 감쌌다. 호모틱한 그의 모습에, 클로아는 미식거리
는 가슴을 움켜쥐며 비통하게 소리쳤다.
"그만~~~ 나 좀 살려줘. 제발 이 변태적인 남자가 내 약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줘. 아까부터 하는 짓을 눈뜨고 못 봐주겠어."
"힝 너무해, 클로아. 우리의 관계를 부정하려 하다니~~~~"
점점 창백해져 가는 클로아의 얼굴이 안쓰럽게 보였다. 딱한 마음이 들어 세스
는 손을 들어 얀을 말렸다.
"얀, 그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좋겠어. "
"어, 혹시 샘내고 있는 거야? 걱정하지 말아, 지금의 난, 오직 일편단심 세스뿐
이야. 고백제때 이미 내 마음을 확인했잖아."
"후후후, 그래. 머리에 열이 날 정도로 확실히 알게 되었지. 내가 어찌 네 마음
을 의심할 수 있겠어, 우린 이미 영혼으로 맺어진(친구의 맹세)사이인데. 하늘이
라 할지라도 우리 사이를 방해할 수 없어. 네가 주는 사랑(?)만큼 나도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는걸."
세스는 음침하게 웃어넘기고는, 이마에 혈관마크를 새기며 얀의 장난스런 대사
를 태연하게 맞받아쳤다.
"어머, 기뻐. 역시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었구나."
닭살 돋는 대사를 태연히 내뱉던 얀은 이쯤에서 터져야 할 제롬의 외침이 없자
의아해 하며 고개를 돌렸다. 세스와 마찬가지로 제롬을 놀리는 것에 재미를 붙
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의 반응은 전혀 없었다.
"....제롬....?"
창백한 안색으로 멍하니 팔을 내려다보는 제롬은 넋이 나간 듯 했다. 조심스러
운 어조로 얀의 부름을 받고, 제롬은 혼란스러워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앗, 알았어. 그렇게 삶을 포기한 사람 흉내는 내지 말라구. 단지 재미 붙였을
뿐이니까. 이제부터라도 조심할게."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이 느낌... 도대체, 뭐라 설명해야 하죠. 이건 무엇입니
까? 얀 님과 같은 느낌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롬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분명, 손안에 안겨 있는 다렌이었다.
"넌 느낄 수 있는 건가?"
키리아는 흥미 있다는 듯 시선을 들어 미소지었다.
"분명 얀과 같은 느낌을 그. 것. 에서 받고 있다는 거겠지? 놀랍군. 한낱 인간이
알 수 있는 게 아닐텐데..."
키리아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우고, 종족을 초월한 연장자의 표정으로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발했다.
"느낄 수 있어요. 분명 느낍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자신이 키리아에게 존대하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제롬은 혼란스
러워했다. 오직 키리아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던 클로아만이 이상하게 돌아가
는 사태에 의아해 하며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를 느낀다는 거지? 다렌에게서 나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당연한 것 아니
야? 키워주는 사람의 분위기가 배는 것은 어찌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
냐?"
"네 말도 옳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 이 녀석이 하는 말은 그것을 초월한 의미
라구. 뭐, 생물에게서 나타나는 고유의 파장...이랄까? 그게 너와 똑같아. 아니
조금 이형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근본은 바로 네 것이야."
"뭐?"
"놀라할 것 없잖아. 난 분명 말했어, 이 녀석이 태어나기 전에. 너와 같은 기운
이 배여나온다고 말이야."
"하, 하지만... 고유한 파장이 같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키리아는 침대에서 내려서서 놀란 기색의 얀을 무시하고 제롬의 곁으로 다가왔
다. 손을 들어 그의 팔에 자신의 자그마한 손을 올려놓은 키리아는 부드럽게 말
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그건 다만, 네 주인의 부분을 가지고 있을 뿐이야. 넌 똑같
이 그를 대하면 돼. 얀의 부록이라고 생각하라구. 그럼 맘이 편해 질거야."
힘을 담고 울려 퍼지는 맑은 음성이 조용하게 제롬의 몸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혼돈을 짊어지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던 제롬의 눈동자가 점차 평온하게 가라
앉아 갔다. 그의 순한 빛으로 젖어있는 눈동자가 키리아의 파멸의 기운을 담고
있는 눈동자에 맞부딪쳤다.
붉은 눈동자가 웃음을 보였다.
키리아는 순수하게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발견된 적 없었던 생물보
다, 한 인간의 출현을 더욱 재미있어 했다. 더한 호기심으로 이끌렸다.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이형의 존재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인간을 키리아는 즐거운 낯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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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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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27-02-2002 00:07 Line : 249 Read :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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