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연결자-116화 (116/127)

117. 음모 (5)

이틀 뒤의 일정을 위해 여관에서 카필로아 저택으로 짐을 옮긴 세 사람은 각자

손님방으로 안내되었다. 서편 익면에 머물게 된 쥬아렌은 제롬의 바로 옆방을

배정 받게 되었다. 시녀들의 안내에 따라 개인의 방으로 들어선 그는 단색의 안

정감을 주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몇 분간 얼어붙은 듯 자리에 멈춰 서서 방에

이상 없음을 확인한 그는 자신의 짐을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고 샤워할 준비를

했다.

욕실로 들어선 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 단정하게 갠 다음 한 옆에 마

련된 선반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편리하게 설계되어진 시설을 잠시 바라보던 그

는 아무런 위화감 없이 긴 관의 구멍을 막고 있던 마개를 빼어 그것을 이용했

다. 관을 타고 흐른, 곡선을 그린 물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 부드럽게 아

래로 떨어졌다. 마치 분수처럼 보이는 그것을 바라보던 그는 물을 퍼서 자신의

얼굴로 떨어뜨렸다. 얼굴을 타고 흐른 물방울들은 그의 머리카락을 충분히 적시

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부유함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소량에도 엄청난 가격이 매

겨져 있는,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 오색의 호화찬란한 투명함을 내뿜는, 각가지

향료가 첨가된 여러 액체에 눈길을 주던 그는 한가지를 골라 머리를 감은데 사

용한 후 알맞게 데워진 탕안에 몸을 밀어 넣었다.

하얀색 도자기 욕조에 몸을 맡기고 있던 쥬아렌의 몸이 움찔했다. 편히 욕조의

양옆으로 걸쳐있던 팔의 근육이 긴장한 듯 수축되어있었다. 투명한 흰 손가락이

욕조의 양옆을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천천히 일어선 그는 욕조에서 발을 떼어

선반의 옷가지 사이의 청록색 단검을 꺼내들었다. 옆에 걸려있던 긴 흰 타월로

몸을 가린 그는 조심스럽게 욕실 문을 열어 그 틈새로 밖을 내다보았다.

기척이 들렸다. 자신의 짐을 뒤지는 듯했다. 방안에 침입한 인물은 그것에만 정

신을 쏟고 있었다. 소리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곁눈질하자, 드레스 자락의 끝이

눈에 들어왔다. 쥬아렌은 단검을 바로 쥐고 숨을 가다듬는 동시에 문을 벌컥 열

고 뛰쳐나갔다. 그는 침입자를 침대위로 쓰러트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짓누른 다

음 목에 단검을 들이대었다.

예상외로 쉽게 잡히자, 쥬아렌은 의아해 하면서 침입자의 얼굴을 돌렸다. 놀란

듯 굳어져 있는 침입자의 얼굴은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제롬의 주인이라

고 할 수 있는 자, 얀이라고 불리는 소년이었다. 이미 안면은 익혔지만, 그렇다

고 경계심을 늦출 수는 없었다. 탐색하듯 쥬아렌의 하늘색 눈동자가 얀의 파란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말없는 두 사람은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처 닦지 못한 물방울들이 바다

빛의 푸른 머리카락과 유려한 곡선의 턱을 천천히 타고 내려와 한 방울씩 얀의

얼굴로 떨어졌다. 차가운 듯 미간을 찡그리던 얀은 난처한 듯 미소지으며 대화

를 시도했다.

"저... 아무래도 방을 잘못 찾아온 것 같거든요?"

허나, 쥬아렌은 무표정으로 얀의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롬의 방인 줄 알았어요."

단검은 치워졌지만 아직 의심의 기색은 없애지 못했는지, 아무 것도 담지 않는

눈동자가 뚫어져라 얀을 바라보았다. 덮쳐 누르듯, 자신 위에 타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쥬아렌을 보며 감당하기 어려운 듯 형언하기 힘든 표정을 지어 보

인 얀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요."

지금의 포즈가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던 얀은 우물쭈물 말했다.

"...제가 잘못한 것을 알지만, 저... 조금도 제 말을 믿지 못하나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대답없는 상대를 보며 딴청을 부리던 그는 난처해하

며 말했다.

"...얼굴만이라도 들어주시던가...?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 아, 아니, 불쾌하시

면 말구요."

감정표정이 없는 상대가 극도로 화를 내고 있다 여겼음인지 금새 기가 죽어서

눈을 내리깔았다. 쥬아렌은 몸을 반쯤 일으켜 얀을 내려보다 주위를 둘러보았

다.

"방금 목욕하셨나봐요? 향기가 좋네요."

어깨를 누르고 있는 그를 난감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던 얀은 대답 없는 쥬아렌

의 음성을 듣기 위해 힘썼다.

"...왜... 내 짐을 뒤진 거지...?"

듣기 좋은 음성이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그제야, 쥬아렌이 무엇 때문에 화

를 내고 있는지 직감한 얀은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변명했다.

"제롬것인줄 알고... 정리해주려고..."

창피한 듯 얀의 양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쥬아렌은 열려있는 서랍장을 보

고 그의 말에서 진실을 발견했는지, 몸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얀은 몸이 가벼

워지자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갑작스러웠다고 할 수 있는, 목숨에 위협을 받다

풀려난 사건이, 예상외로 충격이 컸었는지 몸에 힘이 빠져 있었다. 얀은 겨우

몸을 일으켜 눈앞의 쥬아렌을 바라보았다. 쥬아렌은 침대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얀을 살피고 있었다. 얀의

드레스는 쥬아렌에 위해, 구겨지고 물기로 인해 젖어있었다. 그것을 보고 눈살

을 찌푸린 쥬아렌은 입술을 열었다.

"미안하게 됐군."

"아니요. 저야말로.... 이런 실수를 하다니..."

자신의 실수 때문에 어색한 상황에 놓이자, 부끄러워하며 얀은 자리에서 일어섰

다. 열을 내서인지 앞이 어질어질 거렸다. 쥬아렌을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은

그는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순간, 눈앞이 어두컴컴해졌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

얀은 걸음을 멈추고 몸의 중심을 잡으며 비틀거렸다.

"어디가 안 좋은가?"

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지금 자리에서, 한시라도 피하고 싶은 심정인지라 얀은 필사적으로 괜찮다는 웃

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몸은 이미 한계였었는지 발을 내딛은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며 땅이 꺼지는 듯 느껴졌다. 얀의 몸이 바닥을 향해

천천히 기울어 졌다.

얀의 앞에 서있던 쥬아렌은 재빠르게 손을 뻗쳐 얀을 잡으려 했지만 그의 손은

찰나의 시간으로 엇비켜지나갔다. 얀은 온몸으로 바닥과 조우를 하게 되었다.

당황하고 있어서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지, 아님 둔함의 극치를

이루는 인간이기 때문인지, 얀의 몸은 그가 인식하지 못한사이에 이미 심한 열에

들떠있었다.

가쁜 숨이 몰아 쉬어졌다. 가까스로 일어서려 손에 힘을 주던 얀은 바닥에 깔려

있는 카펫트 의외에 자신의 손에 걸려드는 뭔가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열로 인

해 희미해지는 시선을 들어올렸다.

하얗고 부드러운....?

땅을 짚으며 몸을 반쯤 일으킨 얀은 그것을 확인할 요량으로 끌어당겼다. 하지

만 예상외로 뭐에 걸렸는지 끌려오던 그것은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았다.

"손을... 놔줬으면 싶은데..."

부탁하는 어투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그것이 쥬아렌의 음성임을 알

아차린 얀은 무겁게만 여겨지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휘둥

그레졌다.

예상치 못한 것을 보고 말았다. 이상한 것을 보고 말았다.

지금 열로 인해 머리가 이상해 진 건가? 아니면 자신의 눈이 특별 서비스로 환

각을 보여주고 있는 건가?

얀은 여러 의문을 던지며 망연자실하여 손에 힘을 빼었다. 그의 손에서 힘이 풀

리자, 자유롭게 된 그 흰 것은 펄럭이며 원주인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이미 모

든 것은 얀에게 보여지고만 후였다.

위를 올려다보며 멍해져있던 얀의 눈꺼풀이 스르륵 내리 닫쳐지며 정신을 잃은

상태로, 그대로 앞으로 스러져 버렸다.

**

차가운 물수건이 이마에 대어졌다. 이불 아래에서 꿈틀거리며 악몽에 시달리는

듯 괴로워하던 얀은 부어있는 듯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올렸

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시야에 적갈색의 것이 들어왔다. 손을 뻗어 그것을 잡

으려 하자, 그것보다 먼저 따뜻하고 커다란 손길이 얀의 손을 잡았다.

"정신이 드십니까?"

걱정스런 어조로 묻는 제롬을 향해 피식 웃어버린 얀은 눈을 깜빡여 초점을 맞

추려 노력했다.

"...아, 응... 왠지 목이 아프네..."

얀의 등을 받쳐주며 물컵을 대어준 제롬은 얀의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다시 침대에 뉘여 주었다.

"내가 왜 누워있던 거지...?"

"생각이 나지 않으십니까?"

"응...뭔가 비현실적인 것을 보았다고 생각되어지지만 그게 뭔지는..."

말하고 있는 사이, 얀의 시야를 뭔가가 가로질러 가더니, 자그맣고 온기를 지닌

그것은 얀의 이마에 대어졌다.

"열이 많이 내렸네. 사람 걱정이나 시키구 말이야."

투덜거리는 키리아는 자신의 이마의 온도와 비교해 보며 안심하고 있었다. 그 모

습이 귀여워서 웃어버린 얀은 키리아를 괴롭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애들의 체온은 높아서,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 걸..."

굳어져 가는 키리아의 표정을 보자, 아차 싶었다.

"저... 키리아..."

"내 마법은 네 몸엔 소용이 없었어. 능력 밖이야. 그나마 비교대상마저도 되지

않는구나..."

씁쓸히 웃는 모습이 눈에 밟혀서 얀은 꽥하고 소리지르고 말았다.

"소용이 없긴 왜 없어!"

대뜸 부정을 한 얀은 몸을 일으켜, 의아해하는 키리아의 손을 잡고 이불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몸으로 꼭 끌어안으며 키리아의 효용가치를 설명한다.

"봐, 따뜻하고 부드럽고 좋은 향기 나니까, 안기에 얼마나 좋은데... 잠이 잘 온

다구. 아~~, 아기 우유냄새가 나는 것 같아~~."

금새 방금전 상황을 잊고 즐거워하는 얀의 말에, 한숨을 쉰 키리아는 나지막하

게 혼잣말했다.

"그래서 내 효용가치가 고작, 인형이나 수면제 대용이냐?"

익히, 키리아의 본래 모습이 드래곤이라 설명 받고도, 담담하게 엽기적인 모습

을 지켜보던 강심장의 청년은 자신의 의문을 풀어놓았다.

"그나저나 어째서 일까요? 키리아님은 4서클의 마법사라고 들었습니다. 웬만한

중상의 상처까지 치료할 수 있는 고능력인데... 어째서..."

"몰라. 특이체질인가보지, 뭐."

얀은 별 관심없어하는 투로, 키리아의 머리에 턱을 부비거리며 즐거워하였다.

하지만 내심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까

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자신의 정신상태를 믿을 수 없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난 대단한 것 같아'를 연발하며 키리아의 붉은 고수머리사이에 모든

것을 잊고 마는 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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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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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27-02-2002 00:08  Line : 245  Read :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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