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연결자-117화 (117/127)

118. 음모 (6)

노크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침대 곁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바다빛의 푸른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리는 답답한 외모의 소유자

의 모습이 보인다.

키리아를 안고 있는 얀의 팔이 굳어져 갔다. 그의 팔 안에서 행복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끼고 있던 키리아는 얀의 상태를 이상하게 여기며 그의 팔을 걷어내

고 이불을 밖으로 기어 나왔다. 얀의 멍한 시선이 침대 곁의 상대에게 닿아있었

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무표정의 소년이 보였다.

"몸은 괜찮은 건가?"

평탄한 어조로 물어보는 쥬아렌, 그의 어디에서도 별다른 점이 없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얀의 눈동자는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는 갑자기 떠오른 사실을 로딩(loading)하며 혼란해 하고 있었다.

이내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여 의사표시를 하는 상대에게서 시선을 돌린 쥬아렌

은 제롬을 바라보며 뭔가를 전했고, 제롬은 얀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대로 고개를 돌려 쥬아렌이 침대 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오자 움찔했던 얀

은 그의 동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얀은 깜짝 놀라고 말았

다. 처음으로 그의 표정에 미소라고 할만한 것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가식이

나 위선 따위가 섞이지 않는 순도 100%의 청아함이 담겨있었다.

'아. 아니, 뭐야, 이 눈부신 미소는?! 나에 대한 마지막 배려인가? 설마 지금 기

억해 낸 게 사실이란 말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 사람이 저런 웃음을 지어줄

리 없잖아. 내가 봤던 것이 사실이었다고? 분명 죽여서 입막음을 하려는 속셈이야.'

쥬아렌의 이질적인 행동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던 얀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보

았다는 후회가 가슴속으로 마구마구 흘러 들어왔다.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예상치 못한 그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얀은 어리둥절했지만, 그것은 얀에게 묻

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얀의 팔에 무게가 실리며 그 질문에 상응하는 귀여운

소년의 음성이 흘러나갔다.

"응. 내거니까. 넘볼 생각말아."

의아해하는 얀의 시선을 느낀 소년은 약간 화가 난 눈초리로 쥬아렌을 바라보

았다.

"그리구, 얀을 겁주지 말라구. 계속 그러면 혼내줄거야."

예의 덤덤한 표정으로 돌아간 쥬아렌은 고개를 가볍게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겁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가 저의 몸을 보았기에..."

"그런데 왜 얀이 무서워하는 거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은 쥬아렌은 시선을 얀에게 돌리며 대답했다.

"어쨌거나... 저의 몸상태가 일반인들과는 다르니까요..."

"아, 그런가?"

손바닥을 치며 고개를 끄덕인 키리아는 침대에서 내려와 쥬아렌의 곁에 섰다.

"얀, 이건 원래 그런 종족이니까. 그렇게 놀랄필요없어."

제롬이 앉아있던 의자에 대신 앉아있는 쥬아렌의 머리를 두어번 '탁탁' 두드리

며 키리아는 설명했다. 약간은 우스꽝스런 그들의 모습에 긴장이 풀린 얀은 조

심스럽게 쥬아렌을 향해 말했다.

"저... 화난 게 아니었어요?"

얀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해 보는 듯 했던 쥬아렌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

웃했다.

"왜 화가 났다고 생각한거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듯 거리낌없이 좀 전 상황을 술회(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말하는 것)한다. 저런 상대에게 괜한 겁을 먹었다고

억울해하던 얀은 그가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자 의아해하며 마주 바라보았다.

"비밀로 해주겠어?"

"..그, 그거 말이에요?!"

쥬아렌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인간들은 괜한 사실에도 겁을 먹고 두려운 눈으로 바

라보는 습성을 지녔으니 말이야. 귀찮아 지는 건 싫거든. 그리고 다른 의미로도

성가시지. 말하자면... 전설 속에나 남아있는 종족이 아직도 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도 꽤나 흥미있는 소재니까 말이야. 실험용으로 마법사들이 좋아한다고 하

더군. 해부용이나, 인체실험용으로."

담담하게 이유를 어필하는 그에게 질려버린 얀은 빠른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명심할게요."

**

숲이 들썩인다. 뿔 호각 소리가 들리며 사냥개들의 스피디한 경쟁에 불을 붙였

다. 힘찬 말발굽 소리가 사냥개들의 뒤를 이어 달려갔다. 선진 그룹과 간격이

벌어진 채 달려오던 흑마가 작은 덤불을 뛰어넘으며 깨끗한 포물선을 그렸다.

"기, 기다려주십시오."

중년 남성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흑마에 타고 있던 청년은 말의 고삐를 능숙하게 잡아당기며 자리에 멈춰 섰다.

부드럽게 말을 유도하면서 뒤를 돌아보자, 그를 쫓아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그

림자가 보였다. 뒤늦게 덤불을 타넘은 적색 말의 사내는 숨을 헐떡이며 말을 내

뱉었다.

"명령을 철회해 주십시오."

혀를 차며 사내를 바라보던 청년은 말을 몰아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자네도 어지간하군... 샤우트, 내가 한번이라도 명령을 철회한 적이 있던가?"

"...아니요. 없었습니다..."

사내는 아랫입술을 깨 물으며 어렵사리 대답했다. 일순, 청년의 붉은 입술이 서

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안됩니다. 철회가 안 된다면, 쥬아렌님에게만은 피해가 가

지 않도록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사워 크라우트 후작! 당신이 내게 기어오를 수 있는 위치던가? 내가 미처 몰랐

구만...그리고 그 녀석에게 피해가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내 소관이 아니야. 녀

석의 운에 달려있지. 난 분명, 관련된 자들을 처리하라고 했지, 녀석을 지정해서

가리키지 않았어."

싸늘하게 빈정대던 청년은 뒤돌아 말을 몰았다. 당황하는 눈빛이 된 샤우트는

재빨리 뒤를 따랐다.

"하지만, 태자님이 명령을 내리신 것은 쥬아렌님이 그들과 행동하고 있다는 보

고를 받은 후가 아닙니까? 그곳에는 태자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라크람의 공

주도 있습니다. 공주가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하얗게 질린 이마위로 식은땀이 흘렀다. 어떡해서든 황태자의 명령을 반납하기

위해 샤우트는 마음에 들지 않아 하던 라크람의 왕녀 이야기까지 꺼내었다. 꿈

쩍도 않는 상대 때문에 애간장이 타 들어갔다. 앞을 보며 천천히 말을 몰고 있

던 청년의 입술이 보기 좋은 호선을 그렸다.

"아, 그랬구만..."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청년이 말끝을 흐렸다. 반격의 여지가 보이자, 샤우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던 듯 뒤이어 말

해진 황태자의 언어에 몸이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걱정할 것 없네. 쥬아렌에게 명을 했지 않나? 위기가 닥쳐오면 목숨을 버려서

라도 그녀를 지키라고... 이런, 자네의 바램이 허무하게도 녀석을 더욱 확실한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겠구만..."

황태자는 즐거운 듯 웃으며 경악으론 일그러진 사내를 내버려두고 길을 재촉했다.

"운동부족인 자네 때문에 여우 모피가 다른 놈들에게 다 돌아가겠어."

느긋한 어조로, 남의 일이라도 말하는 듯 별 관심 없어 하는 청년을 보자 치가

떨리는 듯, 이를 악물은 샤우트는 소리쳤다.

"그분은 섀도우 엠프리스입니다. 태자님의 반신(半身)이라구요. 깨닫지 못하시는

겁니까? 지금 태자님은 자신의 반신을 죽음으로 내몰고 계신 겁니다."

"뭐, 어때? 녀석의 능력이라면 능히 어떻게든 하겠지. 그렇지 않다면 선대로부

터 이어온 아르파넨 제국의 최후의 보루라는 직함이 울게 될 거야. 다른 국가들

이 공포에 떨어마지 않는 전설적인 무기의 실제란 말이다. 만만히 죽을 녀석이

아니라구. 하지만, 기대는 해볼만 하군. 이번 일로 죽는다면 조상님들이 통곡

하시겠지만 말이야."

자기가 한 말에 재미있다는 듯 웃어버린 그는 후작을 흘끔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난... 태어나기 전부터 맺어진 반려 따윈 하나도 고맙지가 않아. 한데...

자네가 녀석의 능력을 믿지 못하다니 녀석이 통곡할 노릇이로군."

"비꼬지 말아주십시오.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시는군요. 아십니까? 황태자님이

이번 명령을 수행하도록 시킨 상대는 타국에서도 으뜸으로 쳐주는 귀중한 인재

들의 집합인 '로얄가드'들입니다."

"흠... 그렇군. 녀석이 어려워하겠는걸. 내가 보낸 '로얄가드'인걸 알면 손을 제대

로 쓰지 못할테니 말이야... 뭐, 녀석이 내 곁에서 심심해하고 있던 것은 잘 알

고 있었지 않아? 죽음에 이를 정도의 권태로움보다는 낫겠지. 선물을 보냈다고

치라구. 로얄가드라면 품격에 딱 맞는 상대겠군."

"선물이라니... 자신의 반려에게 암살자를 선물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초

대 국왕으로부터 이어온 전통이 태자님의 대에 이르러 끊기겠군요!"

어이가 없어, 샤우트는 발끈하여 소리쳤다.

귓가에 차가운 코웃음이 울려왔다. 주변이 서늘해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곤 샤우

트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입밖으로 낸 것은 주워 다물 수 없

는 법. 고개를 돌려 시선만으로 샤우트를 겁먹게 만든 상대는 낮고 싸늘한 어투

로 빈정거렸다.

"꽤나 생각해 주시는 군, 크라우트 후작각하. 하지만, 건망증은 심한가보군, 내

가 예전에 했던 말은 하나도 기억 못하니 말이야. 난 분명히 그때 말했네. 내게

는 모든 것이 소용없다고 말이야. 제국의 전통? 흥, 그까짓 것 개한테나 던져주라고 해.

내가 그런 것들에 겁먹는 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해두지..."

살기마저도 묻어 나오는 가라앉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상대를 눈빛만으로 전의

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샤우트는 경직되어진 채 그가 자신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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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넨--- 아르파넨으로 고침;;

몰라요, 어쩔수 없어요~~~

미안하게 되는군요. 양심이 흘러흘러~~ (의미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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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in dreams(차원연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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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제너시스   Date : 28-02-2002 17:49  Line : 306  Read :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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