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쫓는 자, 쫓기는 자 (1)
수도의 교외, 숲길을 따라 빠져나가는 고풍스런 마차가 있었다. 화창한 날
씨였기에 어디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보일 만도 했지만 유심히 살펴보
다면 금방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놀이 종류와는 다른 나들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차의 앞뒤로 말을 탄 기사들이 호위를 하고 있었다. 마차의 곁에서 말
을 몰고 있던 두 명의 청년 중 한 명이 마차에 신경이 쓰이는지 마차를
되돌아보다가 결국 마차로 접근해 갔다. 문 가까이 말을 몰며 창가 밑을
가볍게 두드리자, 휘장이 거치며 차분한 인상의 성년이 되어 가는 소년이
얼굴을 드러냈다.
"얀 님은 괜찮으십니까?"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 약간 걱정스러운 듯 물어보자 질문을 받은 금발의
미소년은 재미있어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글세, 많이 나아진 것 같긴 한데..."
말끝을 흐리며 힐끔 뒤를 돌아본 그는 무언가를 확인하고 웃음을 터트리
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대신에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할까... 제르미스 경이 들어와서
보면 재미있어할걸..."
휘장을 내리고 시선을 돌리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소녀가 눈에 들어왔
다. 소녀는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퉁해 있는 얼굴로 불편을 호소했
다. 그러나 소년은 그녀의 소원을 이뤄줄 힘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다는
미소만을 보이며 불편을 만들어내는 당사자를 바라보았다.
소년의 시선이 닿자, 클로아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있던 얀은 한없이 늘
어지는 눈빛으로 세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왜? 부럽냐?"
대답치 않는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던 얀은 피식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이게 다 환자의 특권 아니겠냐? 부러우면 너도 아파 보던가...?"
능글맞은 태도로 대하는 상대를 향해, 세스는 두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설령 아플 일도 없을뿐더러, 그런 일은 죽어도 사양한다."
하긴, 저 녀석이 달리 여성 혐오증이겠어.
진심어린 질린 눈빛을 보자 얀은 한숨을 쉬며 세스의 처지를 동정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무릎을 빌려주는 거니까, 고맙게 생각하라구. 아프지
만 않았다면 평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기횔 테니까"
클로아는 투덜거리며 얀을 내려다보았다.
"네, 네. 그럼요, 은혜로우신 클로아님의 은총에 이 몸 충분히 감사드리고
있습니다요."
얀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꾸하자 클로아는 그렇구, 말구 하는 콧대높이는
포즈를 취했다. 처음엔 얀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클로아였지만, 요 며칠간
비실비실 상태의 그를 보자 아픈 동물에게는 마음이 풀리는 것이 인지상
정인지 조금씩 편의를 봐주게 되었다.
약혼자로서는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이지만, 붙임성좋게 대하는 태도에는
어쩔 수 없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클로아는 왜인
지 심술이 나서, 죄없이 방긋이 웃고 있는 얀의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으...응....?"
그녀의 손길의 의미를 확인하려했던 얀은, 살벌한 눈빛이 전해져 오자 시
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앞만 바라보았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던 키리아
가 팔짱을 낀 여유로운 태도로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나저나, 얌전히 집에나 있을 것이지, 왜 고집을 부려서 따라가는거야?
아프기까지 하면서."
"미열만 있지 별로 아픈 데도 없는 데다가, 기분전환 하러 나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돼서. 난 한번 맘먹은 것은 하겠다는 주의거든...
초대받은 곳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구."
얄밉게 대답하는 그를 바라보던 세스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품에서 잠들
어 있는 다렌을 내려다보며 조용하게 말했다.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지, 도착한 후에는 오래 머물 생각이 없
으니 구경할 시간은 없을 걸. 곧 집으로 돌아갈 테니까."
"에-엣, 정말? 난 별장이라는 곳을 구경해본적 없어서 한번보고 싶었단
말이야."
"별 다를 것도 없어. 그냥 집일뿐."
"어...? 그러고 보니... 왜 저택이 아니라 별장이지...? 일부러 교외로 나오
게 만들고..."
문득 이상한걸 발견해내곤 얀은 이상한 듯 미간을 좁혔다. 엷은 미소를
지은 세스는 그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있으니까, 밖으로 돌리기 위해 서지. 신경전을
버리고 있는 두 정점이 있는 수도는 왠지 위험해 보이잖아. 제 2세대의
만남이 외곽지역에서 열린다. 왠지 비밀스럽지 않아? 아마 곧바로 아르세
닌 가를 향해 갔다면 다른 사람들은 전쟁선포라도 하러 가는 줄 알걸. 그
만큼 사이가 안 좋은 세력가의 형색을 띄고 있으니까."
"그런가...?"
납득하는 모양새로 고개를 끄덕이던 얀은 밖에서 제롬의 부름이 들려오자
몸을 일으켰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청은발이 어깨위로 미끄러져내려 부드
럽게 몸을 감쌌다. 얀은 흐트러진 앞머리를 한손으로 쓸어 올리곤 휘장을
걷어올려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마차는 멈춰서 있었다. 얀이 얼굴을 드러내자 앞을 바라보고 있던
제롬은 고개를 돌려 보고를 했다.
"접근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짐작으론, 아르세닌 가에서 마중을 나
온 사람들인 것 같군요."
"그래?"
얀은 제롬의 설명을 들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모아 쥐고 가볍게 땋은 머
리를 만들어 끈으로 매듭을 지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세스가 얀에게 다렌을 살포시 안겨주었다.
"응?"
"그럼 이쪽에서도 접견해야 할 것 같군. 그런데 응? 이라니... 설마 나보고
다렌을 안은 채로 그들을 만나라는 것은 아니겠지, 얀?"
"그건 아니지..."
얀은 찔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였다. 그의 미소를 보고 의미심장
하게 마주 웃어 보인 세스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대략 10여기의 기사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선두에 있는 자를
확인한 세스의 얼굴 근육이 움찔했다. 뒤늦게 마차에서 내린 얀이 세스의
심정에 확인사살을 시도했다.
"어라, 저 사람 클라우드 아니야?"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얀이 의아한 눈길로 옆을 바라보았으나 한숨을 쉬
었던 장본인의 얼굴에는 미소만이 떠올라 있을 뿐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
지 않았다. 세스는 앞으로 걸어나가며 나직이 말했다.
"연극할 준비됐어?"
"뭐, 언제든지..."
얀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따라 앞으로 나섰다.
"부인의 미모는 언제 보아도 변치 않는 군요."
"어머,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세요?"
얀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클라우드의 말에 기뻐하는 듯한 표정
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그들
뒤에는 석화되어 가는 인간들이 있었다.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세
스에게로 담담한 시선을 돌린 제롬은 메마른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저것도 (연극)계획에 있던 것입니까?"
"아니, 저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저게 아무리 연기라도 할지라도... 너무 한걸..."
키리아는 창가에 턱을 받친 채 질투심 섞인 감정으로 투덜거렸다.
말의 고삐를 쥐고 걷고 있는 클라우드의 곁에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얀이 있었다.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누가 처음 보았다
면 연인사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죽이 잘 맞았다.
"질투심 느끼지 않아?"
"글쎄요. 저보다는 약혼자이신 클로아 양이 더할 것 같은데..."
"어차피 내논 약혼자라구.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걸."
"으... 난 충분히 화난다구."
부어있는 얼굴의 키리아는 그들 대화에 끼어들어 자신의 심정을 피력했
다. 제롬은 말문이 막힌 채 얀의 기행을 바라보았고 제롬 곁에서 말을 몰
고 있던 쥬아렌은 흥미로운 인간군상을 셋(세스, 제롬, 클로아)을 발견하
곤 그들의 대화를 유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마중 온 클라우드에게 먼저 다가선 것은 다름 아닌 얀이었다. 별장에 도
착한 후에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겼기에 때를 보아서 이
야기하기 위해 접근 한 것이었다. 지금 자신의 꼴이 우습다고 생각되어졌
지만,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클라우드에게는 예전 모습을
보인 적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번의 초대도 그것과 연관이 있을 지도 몰랐다.
멋대로의 오해였지만 그것 때문에 얀은 하기도 싫은 내숭까지 떨며, 그것
을 참아가며 열심히 클라우드의 이야기에 호응하고 있었다.
그들의 거리는 점차 클라우드를 호위하고 있던 기사들과 얀의 일행들로부
터 멀어지고 있었다. 뒤를 흘끔 돌아본 얀은 자신들의 대화가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안정거리에 접어들었다고 생각되어지자, 고개를 들어 뚜렷이
클라우드를 바라보았다. 긴장으로 침이 말라왔다.
클라우드는 뭔가 다급한 표정의 얀을 보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조용히
미소지은 그는 일행의 시선을 등으로 막아내며 얀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잠시 그를 바라보던 얀은 망설이다 입을 떼었다.
"저... 클라우드 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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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올리려구 했더니 뭔가 문제가 있는지 10분이 지나도 업이 안되잖아요.
그런데 오늘은 잘만 올라가네... 얄미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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