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쫓는 자 쫓기는 자 (5)-2
"그래...난 특이적인 존재이지..."
마른 웃음을 지은 남자는 앞으로 한발 나섰다. 그와 반대로 이해할 수 없
다는 표정이 된 제롬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의 허벅지에 침대가 와닿았
다.
"준신으로서 능력을 갖추고 있던 아버지가 다른 신들보다 잘났기 때문인
지... 아니면... 인간이 신의 힘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에 불안정했었는지...
나는 마신(魔神)과 선신(善神)의 두 가지 면모를 가지고 태어났다."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롬을 보며 엷게 웃은 그는 조용히 말했
다.
"참고로 지금은 마신의 모습이지..."
순간, 제롬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상을 써버렸다.
"...왜? 마신이라니까... 험악한 얼굴을 예상했었나?"
씁쓸히 웃고만 그는 약간은 불만인듯 어색한 미소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가 워낙 예쁜걸 좋아하는 지라..."
농담조로 말을 했지만, 제롬의 찌푸린 얼굴은 펴지지 않는다. 그는 이상해
하며 제롬을 돌아보았다.
"왜? 아버지한테서 태어난 것이 '나'라는 존재라서 실망한 건가?"
"아, 아니... 그것이 아니라..."
제롬은 두손으로 이마를 감싸쥐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니까... 네가... 그...라면... 너의 아버님이란 건...설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게 맞다. 네가 모셔야할 존재. 지금은 행적이 묘연
해져서, 허둥대게 만드는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버린고만 당사자이지."
"...얀 님이 ...신에 필적하는..능력을 지녔다고? 그럴리가...없어."
"지금 그런 걸로 고민할 시간이 있던가? 너에겐 더 큰 문제가 있을 텐
데..."
제롬이 놀라고 있는 건 알지만, 그보다 앞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남자
는 담담히 그것을 깨우쳐준다. 그의 말을 듣고 깨달았는지, 제롬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기대가 가득한 눈초리였다.
"너에게 능력이 있다면 얀님의 행적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겠지? 도와
줘."
"물론 찾아낼수야 있지. 나와 아버지는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하지
만... 그건..."
너 또한 그렇지 않던가...?
말을 하려던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기대에 찬 제롬의 초록빛 눈동자를
발견하곤 뒷말을 삼켜버렸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우며, 고개를 끄덕였
다.
"좋아. 지금 아버지의 기운이 약해졌으니... 어렵긴 하지만,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그의 확답을 듣고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제롬은 밝은 표정으로 그를 바
라보며 고마워했다.
"고마워. 너는 자신이 마신이라고 했지만... 지금의 행동을 보면 그 말이
믿어지지 않는군."
감사의 말을 듣고, 부드럽게 미소지은 남자는 제롬에게 다가서며 조용히
말했다.
"물론 난 마.신.이야. 파괴와 살육을 좋아하지. 하지만 넌 내게 중요한
존재니까...너에게만은 억누르고 있을 뿐이야."
순간, 이해가 가지 않은 말을 들은 듯 미간을 좁히던 제롬은, 남자의 얼굴에
떠오른 낯선 미소를 보고 이상한 예감을 드는지 얼굴을 굳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넌 분명 얀님에게서 태어난 존재라고 했는데... 얀님의
성격을 보면 도저히 그럴수가... 없을 텐데..."
긴장한 제롬의 얼굴을 보며 귀엽다는 듯 웃고있던 남자는 제롬의 볼에 손
을 대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진. 실. 이다. 난 분명 아버지의 기운에서 태어난 존재이지.
그리고 그 말이 시사하는 바는, 아버지에겐 마신을 만들 정도로 악한 기
운이 숨어있다는 거겠지."
남자의 말을 들은 제롬은 놀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직시하였다. 굳어진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던 제롬은 자신의 볼에 가볍게 대어진 그의 손을 밀
쳐냈다.
"그럴리가!"
강한 반박의 어조로 부정하는 사내를 바라보던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피
식 웃으며 말했다.
"악한 기운이 있다고 했을 뿐이지, 악한(惡漢:악당)이라고 하진 않았어. 모
든 인간들에겐 두가지 양면성이 있지. 아버진 인간답게 그런 면모를 지녔
을 뿐이야. 착하게 살아가려면 그만큼의 악한 면을 억누르고 살아가야 하
는 것 아닌가? 난 아버지의 이면에 숨어있던 그런 기운이 모여서 발현했
을 뿐이야."
빙긋이 놀리는 그의 어조에 제롬은 얼굴을 굳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네가 상기시켜 준 바대로 난 마신(魔神)이지. 마신은 대가
없이는 소원을 이뤄주지 않는다."
"....아..."
제롬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그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차갑게 웃으며 제롬
을 바라보았다.
"그래, 제르미스 파나인, 넌 계약을 하려 한 거다. '다레니우스 이오 카필
로아'라는 실질적인 이름을 받은 마신(魔神)인 나에게 말이지... 넌 무엇을
걸고 아버지의 몸을 대신하려 했던 거지?"
"...난...."
제롬의 눈동자가 상대를 빨아들일 것만 같은 다렌의 현혹적인 검은 눈동
자와 마주쳤다. 제롬은 결심한 듯 나지막한 어조로 물어보았다.
"...네가... 바라는 건 무엇이지...?"
"그래. 잘 생각했다. 비록 내가 아버지로 인해 태어났다고는 하나, 흔쾌히
도와줄 리가 만무하지."
제롬에게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간 남자는 제롬의 팔목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그의 손목에 입술을 가져갔다.
"내가 바라는 건... 바로 너다."
그의 하얀 이가 가볍게 손목에 박혔다. 미미한 아픔이 느껴졌다. 손목에서
붉은 피의 구슬이 솟아올랐고, 그것을 다렌의 붉은 혀가 핥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