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쫓는 자 쫓기는 자 (6)
"내가 바라는 건... 바로 너다."
".............!!"
제롬은 자신의 손목에 입술을 댄 남자의 얼굴을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장난이라고 해도 소름끼치는 짓은 서슴없이 하다니...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며 다렌에게서 손을 잡아뺐다.
"농담도 상대방을 봐가면서 해야하는 거다. 그런 어투로 말을 하니까... 놀
랐잖아. 그리고... 난 얀 님의 명령으로 너를 돌보게 되었으니 그런 말이
없어도..."
다렌의 요구를 주군에 대한 충성의 명령으로 대체시켜 이해해 버리고만
제롬은 조용히 타이르는 어투로 말을 했다.
키득거리는 낮은 음성이 제롬의 귓전에 들려왔다. 의아한 눈초리로 돌아
보자 허리를 부여잡은 다렌이 몸을 떨며 웃고 있었다.
"아, 이래서 내가 제롬을 좋아한다니까...재미있어."
한참 웃어버린 그는 한숨을 쉬며 허리를 폈다.
"미안하군. 너를 이해시키려면 그것으론 부족했었나?"
".........?"
"내가 한 말이 농담으로 들렸나 보군... 직설적으로 말하기엔 너무 냉혹하
게 들릴 것 같아 돌려 말을 했지만 이 대로라면 엉뚱한 결과가 나오겠는
데... 그럼 네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하지."
단어의 선택 때문에 고민하던 다렌은 마땅한 낱말을 찾았는지 슬며시 입
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네 몸을 내게 달라는 거다."
".............??"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던 제롬은 고개를 돌려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방패막이?! 그건 안돼. 난 이미 얀 님을 모시기로 했으니까." (이 녀석도
바보다;;)
"음...이런... 이것도 실패인가...? 그래 이렇게 풀어 설명한다면 너에게도
와 닿겠지."
문득 그의 입가에 시니컬(냉소적)한 미소가 떠올랐다. 제롬을 조용히 바라보
던 눈동자의 검은 동공과 홍채를 가로막고 있던 황금빛의 고리가, 그 폭이
좁아지며 홍채의 어둠에 침식되어 진다.
태연한 여유를 가진 그는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위험한 매혹적인 미남자의
얼굴이 있다.
"난 너의 피와 살과 뼈, 신경... 피부... 머리카락 한 올의 세세한 부분까지
너에 관한 모든 것을 갖길 원한다."
염원이 담겨 있는 목소리가 마음을 두드린다. 기분 좋은 울림이 있는 목
소리에 취한 제롬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몽롱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는 정열적인 밀어(蜜語)같지만, 부드러움 속에
위험한 울림이 있는 어조와 낮은 목소리는 제롬의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그..런데 ...왜... 나를 필요로...하는 거지...?"
제정신으로 돌아온 제롬은 말을 더듬으며 그의 대답을 유도했다. 자신의
의도를 깨달았다고 생각했음인지 다렌은 태연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답
했다.
"그전에 앞서 나에 관한 설명을 해줘야겠군."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청년을 향해 있던 다렌의 검
은 눈동자가 순간, 깊게 가라앉았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순간부터 아버지와 생명의 계약으로 맺어졌고,
그의 운명에 관한 모든 것을 공존한다. 그로 인해 태어났고 그가 육체를
버리는 순간, 나 또한 목숨이 다하게 되지."
놀라운 것을 들은 듯 제롬은 서서히 얼굴을 굳혔다. 그의 모습을 보고
냉소(冷笑)한 다렌은 조용하게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그러니까, 난 아버지에게 귀속되어 있는 영생수라는 존재이다. 신성동물이며,
자신을 태어나게 해 준 사람과 운명을 같이 하지..."
흘깃 시선을 들어 자신의 말에 열중인 제롬을 확인한 그는 차분하게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문제는 아버지의 경우엔 어처구니없게도 완전한 힘의 자각을 이루지
못했다는 거다...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틀을 벗어
나질 못하는데. 그 말은 즉, 아버지는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남
아있는거고, 언제든지 죽음의 위협을 받을 수 있어, 덕분에 난 부수적으로
영생수에서는 예외적인, 소멸이 아닌 죽음을 누릴 수 있는 운명을 부여받게
되었다는 거다."
어이없다는 듯 곤혹스런 미소를 내비친 그는 불평의 어조로 중얼거렸다.
"신급의 존재로 태어났으면서 어느 순간 죽어 버린다니.. 믿겨지나? 소멸
을 명받지 않은 이상 영생을 살아갈 존재인 내가 말이야."
조용히 반응을 살피던 그는 어두운 기운이 출렁이는 눈동자로 제롬을 지긋
이 바라보았다.
"그런데...말이야. 단하나, 그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냉혹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흐른다. 놀란 눈빛의 제롬을 지긋이 바라본
그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래, 아주 지독하고 극악한 방법이라, 오직 마신의 경우만이 취할 수 있
는 길이기도 하지..."
제롬은 다렌의 낮은 톤의 울림을 지닌 목소리를 듣고 이상한 예감이 드
는지 몸을 흠칫 떨었다. 날카로운 시선과 압도적인 존재감을 몸에 지닌
미청년은 그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며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태어나는 순간, 생명의 계약이 불안정할 때...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어버
이의 힘을 남김없이 흡수하는 거다."
"...흡수하다니..."
아연한 제롬의 표정을 보며 조용한 미소를 짓고 있던 다렌은 시선을 마
주하며 숨김없이 말한다. 그의 아름다운 일식안에 냉혹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말 그대로다. 아버지의 피를 마시고, 뼈를 취하며 살을 씹고... 아버지의
몸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거다. 힘이라는 것은 몸에 각인 되듯 분포해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이 아니면 취할 수 가 없지. 그럼으로 해서 자신의
몸에 어버이의 힘을 동화시켜서 영생을 살게 되는 거야."
"잠깐, 그러니까 넌 얀님을..."
"그래, 먹으려 했다는 거지."
별 감흥없은 긍정의 목소리.
스스럼없이 제롬의 말에서 모자란 부분을 메워주며 그의 상상력에 도움
을 준다. 경악하여 말을 잊고 있는 제롬을 바라보던 다렌은 피식 웃으며
그를 진정시키려 한다.
"아, 아. 어차피 때가 지났으니 걱정할 필요까진 없어. 지금은 아버지가
죽는다면 같이 죽게 될 판이니까. 뭐 별로 맛도 없게 생겼고..."
진정시키기보다 아무래도 도발하는 것 같다.
제롬의 눈에 쌍심지가 켜지며 다렌을 노려본다. 분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게 아버지에게 할 소리냐?!"
훗,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상대를 바라본 다렌은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열낼 것 까진 없잖아. 물론 내 힘이, 나의 그림자 녀석보다 크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걸... 녀석은 선신(善神)인 이상 자신이
죽더라도 아버지를 지키고 싶어하니까. 그리고 지금 아버지에게 해를 가
해봤자,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꼴밖에 되지 않아."
"그렇다면 나를 갖게 다고 한 것은 단순히 네 유희라는 건가?"
"이런... 아직 이해를 못했군. 진심이 담긴 말이 와 닿지 않던가?"
곤란한 듯 애매하게 웃고만 다렌은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난 네가 필요하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야."
"그게 무슨...?"
다렌의 눈동자가 차갑게 웃고 있었다.
"아직 깨닫지 못한 거냐? 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네 몸을 필요로 하는 거다.
네 육체를!"
"........!!"
놀란 듯 제롬의 몸이 휘청했다. 다행히 그의 뒤에 있던 침대가 그를 받쳐
주었지만, 균형을 잃은 그의 몸을 어느 순간에 검은 그림자가 덮고 있
었다. 오싹한 기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갔다. 고개를 들자 몸을 가까이
붙인 다렌의 얼굴이 보였다.
다렌은, 놀라 반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제롬의 몸을 억누르며 그의
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래, 난 너를 먹고 싶은 거다. 물론... 아버지가 살아있을 동안은 눈치가
보이니 참기로 하지."
"농담이라면 때려치워!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 내가 너에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거냐?!"
입김이 닿은 귀를 한쪽 손으로 누르며,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친다.
"소용? 소용이라면 많지. 너는 아버지에게 귀여움을 받는 몇 안 되는... 그
것도 아버지의 힘을 나눠받은 인간이니까!"
다렌의 표정에 서늘한 빛이 감돌았다. 질투하듯 더욱 검게 변한 눈동자는
난폭한 기운을 담고 제롬을 쏘아보았다.
몸을 경직시킨 채 멍하니 다렌의 모습을 바라보던 제롬은 이해가지 않는
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힘을 받았다...? 네가 말한대로 라면 대단할 힘일텐데... 나는 조금도
느껴본 적이 없어."
"나에게 주었다면 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만한 힘을, 아버지는... 힘을
받았다는 자각도 못하는 너에게 20%나 넘겨주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다
른 신들도 생각해내지 못한 방법을 이용해서 말이야."
경직되어져 있는 제롬의 턱을 잡아올린 다렌은 그의 눈에 시선을 맞추
며 신랄하게 그의 마음을 헤집어 갔다.
"너에겐 쓸모 없는 힘이다. 아버지의 행적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녀석이
받을 만한 것이 아니야. 내가 받았어야 할 힘인거다. 물론 지금 강제로
뺐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네가 사라지면... 아버지와 내 그림자 녀석이
싫어할 테니... 참아야지 어쩌겠나. 아버지를 돕겠다는 조건으로 아버지의
사후, 넘겨받는 게 좋을 것 같군. 어때? 이만한 협력자를 찾기 힘들걸."
"그렇지만...얀님..에게 부탁한다면...아무런 조건없이...힘을"
깃털같은 부드러운 온기를 지닌 손가락이 제롬의 입술에 닿았다. 그의 입을
봉한 다렌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읊조렸다.
"아쉽게도... 아버진 자신이 한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자각 못하는 눈치거든.
그러니까 가장 쉬운 방법은 너에게서 빼앗는 거지."
매혹적인 이클립스 아이즈가 위험스런 울림을 담고 유혹하듯 그를 바라
본다. 혼란스런 눈빛으로 마주 바라보던 제롬은 이내 포기한 듯 기분을
가라 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겐 소용이 없으니... 그것도 괜찮겠지. 나를 대신해서 너의 전폭적
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밑지는 게 아닐 테니까. 약속한 거지? 얀님을
돕겠다는 것을...?"
제롬은 쓸쓸히 미소지으며 올려다본다. 만족스런 미소가 떠오른 상대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제롬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물론. 아버지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대신 너도 아버지가 죽는 즉시
죽어야할 목숨이니... 좋은 추억을 만들어 놓는 게 좋을 거야."
원하는 바를 성취하여 기분 좋은 듯 제롬의 얼굴을 쓰다듬던 다렌은 손
을 내밀어 제롬의 손목을 잡고 소매를 겉어 붙였다. 햇빛에 보기 좋게 그
을린 건강한 팔이 눈에 들어온다. 손을 뻗어 손톱으로 팔 안쪽을 내리긋
자 붉은 혈선이 그어지며 실같은 붉은 아지랑이가 그의 팔을 수놓았다.
"읏"
약한 신음성을 내는 상대를 거들떠보지 않고, 거추장스러운 듯 미끄러져
내리는 검은머리를 쓸어 올린 채, 떨어지려하는 핏방울들에 붉은 입술을
가져다댄 다렌은 혀를 내밀어 조심스럽게 할짝였다. 이내 만족스러운 미
소가 피어오른다.
침대가에 걸터앉아, 자신의 팔을 핥고(?)있는 상대를 조용히 내려다보던
제롬은 씁쓸히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됐어. 나는 그 분과 같은 시간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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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_ㅜ). %(_ _). %(@ @). 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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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부작용이 생길수 있으니 알아서 피해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12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