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만남.
지옥을 표현하라면. 지금 이 광경이 지옥일 것이다. 사내는 시체들에 기대어 몸을 쉬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몇 명을 벤 걸까. 셀 수도 없이 많은 인간들. 100명? 200명?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 훗 '
사내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지쳤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몸을 간신히 제어하여 죽은 시체들의 산에 등을 기대고, 흐르는 피의 강에 몸을 담구며 사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내의 몸만 지친 것이 아닌 모양이다. 흐트러진 사내의 머리카락 사이로 비치는 그의 눈은 지쳐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 깊숙한 곳에선. 무언가 확인하지 못할 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 잘자라~ 내아기~~ 갑자기 들려온 노랫소리. 사내는 그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걸까. 한 개의 오르골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사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금은. 쉬고 싶었다. 짙은 피비린내 속이지만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 노랫소리가. 어릴 적에 꿈에서나마 보았던 어머니의 목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꿈속은 지친 그의 영혼을 보듬어 안아줄 그의 유일한 안식처..............
- 쉬이잉!!
피비린내를 잔뜩 머금은 칼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휘날렸다.
사내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느낌에 놀라서 슬그머니 눈을 떴다. 달콤한 꽃향기, 부드러운 바람. 자신이 평소에 느끼는 날카로운 칼바람과, 거기에 실린 시체 썩는 냄새와 피비린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생소한 환경에 사내의 육신이 자동적으로 전투태세에 들어갔지만. 사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쉬고 싶다. 사내는 그 한 마디로 움직이려는 몸을 강제로 침묵시켰다.
- 맘에 드십니까?
" 누구지 "
극한의 끝에 다다를 정도로 수련하고, 전투태세에 들어가 더욱 예민해진 사내의 오감도, 자신의 옆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을 느끼지 못했다. 겉으로는 당황하지 않고 대꾸하는 그였으나, 그의 손은 슬그머니 망토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망토 안에 매달려있는, 자신의 애병을 움켜쥐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 그래? "
사내의 대답에선 불신의 냄새가 폴폴 풍겼다. 사내는 몸의 긴장을 풀지 않았다. 천천히. 몸의 힘을 응축시키며 한번에 폭발시킬 준비를 했다. 하지만 옆의 그 존재는 그가 무슨 행동을 하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 하고 있을 뿐.
" 후우. "
사내는 한 숨과 함께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보인 것은 자신이 있던 세계가 아니었다. 향기로운 꽃향기. 눈이 현란할 정도의 색깔과, 후각이 마비될 정도의 향기들이 난무하는, 피 냄새와 죽음에 절여진 그도,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잠시간 말을 잊었다.
- 마음에 드십니까?
" 아름답군. 정말이지.................. "
사내는 자신의 입에 담기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말리아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광경을 표현할 말을 달리 찾을 수가 없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이곳은. 자신을 언제나 따라다니던 피비린내도 없었고. 시야를 가득 채우던 시체의 산도 없었다. 사내는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존재'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 후 얼마간, 그들 사이에선 말이 없었다. 사내는 조용히 않아서 꽃향기와 따뜻한 봄바람을 즐기고 있었고, 존재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 여긴, 어디지? "
- 허무의 공간. 모든 것의 시작점이며 모든 것의 종착점이기도 한 곳.
사내는 천천히 존재를 돌아보았다. 눈부신 빛이. 그 존재를 가리고 있었지만. 사내의 눈은 한치 흔들림 없이 빛 속을 꿰뚫어 존재의 참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너는............누구인가. "
- 제 이름은 아후라 마즈다. 모든 것의 시작이며 만물의 창조주 입니다.
만물의 창조신. 사내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이 정말 있었단 말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한 자가. 실존하는 자였던가. 사내는 기뻤다. 저자라면. 눈앞의 저 여인이라면. 자신의 물음에 대답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 나는..................... "
- 그 질문에 대답하는 건 내가 아닙니다. 그 대답은 당신이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의 질문을 가로막았다. 사내는 약간은 허망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얼굴 표정을 보고 아름다운 얼굴에 가볍게 미소를 띄운 그녀는 손을 들어 넓게 펼쳐져 있는 꽃밭의 한쪽 끝을 가리켰다.
- 운명이 예비한 당신의 길을 가십시오. 영혼의 검의 주인이여.
사내의 얼굴은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아무 말 없이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 바스락 먼저 움직인 건 사내였다.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인 후에. 천천히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내의 모습은 꽃밭의 경계를 이루는 숲에 파묻혀 사라져 버렸다.
- 운명의 흐름은 당신을 어디로 인도할 것인지.................. 부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시기를............
아후라 마즈다. 위대한 빛의 의지이자 창조의 의지가 말을 마치고 사라지자. 빛과 함께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던 꽃밭이.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채색의 공간 뿐.
숲을 나와서 사내가 본 세상은 확실히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저 푸르른 숲도, 날아다니는 새들도, 자신의 세상에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물건들이었으니까. 아니 한 가지 있었다.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사람은 똑같았다. 저기에다 시체를 노리고 달려드는 놈들만 있다면 똑같을 텐..............
" 이게 아니잖아. "
사내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면서 황급히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아직은 살아있는 사람의 상처를 살펴본 사내는 그 심각함에 눈살을 찌푸리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소? "
사내의 물음에 쓰러져 있던 남자는 떨리는 손을 들어서 영운의 팔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열어 사내에게 말했다.
" 부..........탁이오! 고, 공주님을! 공주님을 구해주시오!! "
말을 마친 남자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절명해 버렸다, 사내는 그의 얼굴을 쓸어서 두 눈을 감겨준 다음 그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청명한 하늘에 어울리지 않는 격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잘 정돈된 길 한가운데 마차가 놓여있었다. 마차의 장식도 고급이고, 끄는 말도 흔하게 볼 수 없는 명마이니, 분명 귀한 분이 타고 다니는 마차이리라.
- 챙! 채앵!!
하지만 그 주위에서는 살벌하게 그 주위에선 검격이 교환되고 있었다, 마차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건 온 몸을 흑의로 둘러싼 흑의인들과, 은색 갑옷을 입은 몇 안되는 기사들과의 혈전.
" 이 녀석들!! 너희들이 노리는 사람이 어떤 분 인줄 알고 이러는거냐!! "
한참 검을 휘두르던 기사중 하나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에 대답하는 복면인은 한명도 없었지만 대답은 그들의 검으로 대신했다. 십여 명이 넘는 사람을 상대로 검을 교환하다보니 마차의 문을 향해 몸을 날리는 복면인을 막지 못한건 그들로써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이때까지 그들을 막은것만 하더라도 능력이상의 일을 요구한 것이었으니까.
" 아,안, 크아악!! "
격렬한 공방전 와중에 한눈을 판 대가는 참혹했다. 그 기사는 한눈을 판 순간, 자신을 노리고 날아든, 3자루의 검에 몸이 관통당한채로 고개를 떨궜다. 마차의 한 방향을 맡고 있던 그 기사가 죽자, 서로서로 협조해가면서 마차를 지키고 있던 기사들의 호위망에 구멍이 뚫리는 건 순식간. 저항을 계속하던 몇 안되는 기사들도 날아든 검에 목숨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방해꾼들이 모두 사라진 이상 거칠 것은 없었다. 좁은 실내에서 휘두르기 편한 단검을 손에 들고 마차의 문을 단숨에 열어젖히며 흑의인 하나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 크아악!! "
기세좋게 마차 안으로 침투한 흑의인이 큰 비명소리와 함께 굴러 나왔다. 그의 가슴에 난 상처로 보아 마차안의 누군가가 내지른 필살의 일격으로 일격에 절명해 버린 모양이다.
" 두 공작들도 대담한 수를 쓰는군. 누구의 수하냐? "
커다란 외침과 함께 등장한건 황금색의 머리칼을 가지고, 한손에는 레이피어를 움켜쥔 미인이었다. 마차에서 나오면서 그녀가 던진 물음에 답하는 대신. 흑의인 들은 일제히 그녀를 노리고, 검을 날렸다. 한 순간에 뿌리치기 힘들 정도로 그들의 합격은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레이피어를 휘두르며 방어하는 그녀의 실력 또한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 쳇!! "
자신을 노린 검날을 쾌속의 속력으로 검을 휘둘러 하나하나 퉁겨내고, 막아내지 못한 검은 잽싸게 몸을 날림으로써 피해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십여명이나 되는 흑의인들의 검을 모조리 뿌리칠 수는 없어서 몸 곳곳에 상처가 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가 그들은 용의주도한 인물들이었다. 마차를 중심으로 그녀를 공격하는 흑의인을 제외한 놈들은 마차에서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둥글게 둘러서서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녀를 확실하게 처리하겠단 의지가 담긴 진형이었다.
그들 중, 최외각의 포위진을 구성하고 있던 자가 뒤를 돌아보더니, 옆에 서있던 동료의 어깨를 툭 치며 뒤를 가리켰다. 그들이 바라본 곳에선 흑색의 망토를 걸친 사내가,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떡이더니, 포위망에서 빠져나와 그 사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인간이 단련할 수 있는 극한까지 단련된 사내의 몸은 멀리서 싸우고 있는 흑의인들의 모습과,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흑의인들의 모습도.
" 두 명뿐이야? "
그의 실력을 알고 있는 저쪽세계의 사람들이 안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가 있던 세계가 아니었고, 그의 실력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사내는 웃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저들에게 알려주면 된다, 자신의 실력을. 그리고 그 대가는................저들의 목숨. 사내는 자신을 노린 자 들의 목숨을 살려줄 정도로 인정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이번엔 운이 없었다.
사내의 손엔. 어느새 은빛의 창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흑의인들에게 창끝을 겨누고. 섬전과도 같은 일격을 찔러 넣었다.
" 크억! "
은색의 섬광에 격중 당한 흑의인은 옆구리에서 피를 뿜어내면서 나가 떨어졌다. 영운은 의외라는 듯이 무언가에 물어뜯긴 것처럼 상처가난 흑의인을 바라보았다. 제법이었다. 단순한 자들은 아닌 모양이다. 나름대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부상당한 동료의 앞을 가로막은 다른 흑의인이 검을 휘둘렀다. 나름대로 속도와 힘을 충실하게 겸비한 공격이었지만. 영운에겐 너무 느린 공격이었다.
커다랗게 원을 그리면서 창을 휘둘러 검을 부드럽게 흘려보낸 뒤에, 남는 여력으로 창을 휘둘러서 흑의인을 공격했다. 흑의인은 당황스러웠다. 이런 방식으로 창을 사용한다는 건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당황한 흑의인의 검놀림에 빈틈이 생기자. 사내는 주저하지 않고 그 빈틈을 공격했다.
- 퍼억!
둔중한 격타음과 함께 쓰러지는 흑의인을 뒤로 한 채. 사내는, 속속 검을 휘두르며 덤벼오는 외곽의 흑의인들에게 몸을 날렸다.
외곽의 혼란과는 상관없이 여인의 고군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미 몸의 곳곳은 상처투성이로, 곳곳에서 흘러내린 피에 흠씬 젖어있었다. 이미 한계에 달한 그녀의 몸은 그녀를 노리고 있는 검들을 막아내는 것조차 힘겨웠다.
" 아차!! "
자신의 가슴을 노린 검을 막아내느라 자신의 목을 노리고 뻗어오는 검을 신경쓰지 못했다. 맊기엔 너무 늦었고, 피하기에도 여의치 않은상황.
' 이런데서 죽는건가? '
검을 배운 이상, 언제 죽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죽음은 싫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위험은 피해갈 방법은 없었다. 여인이 죽음을 각오한 그 순간, 어디선가 은빛의 섬광이 날아와 그녀를 노린 흑의인을 꿰어버렸다.
" 크아악!! "
" 어,어라? "
순간적으로 벌어진 그 일에 몸 이굳어버린 흑의인들은, 당황해선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고개를 돌린곳엔 외각의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어야할 동료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 미안하군, 일대일의 상황이면 신경 쓰지 않겠는데 말이지, 이런 상황이래서야. "
흑색 망토의 사내는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흑의인들은 그를 노려보며 한창 공격하고 있던 그녀의 곁에서 슬금슬금 물러나서 진형을 재구축했다. 하지만 그들도, 사내를 싸우는게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눈치 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십여명의 동료들을 처리한 사내가, 자신들을 처리 못할리가 없지 않은가.
- 사삭!!
결국 그들이 택한 길은 도망이었다. 다행히 눈앞의 사내는, 자신들이 도망치는것을 방관하고만 있을 뿐,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게 마음에 걸렸지만. 저런 의외의 변수는 자신들도 어쩔수 없는 일이니까.
흑의인들이 물러가고, 사내는 자신의 검을 갈무리하곤, 상처부위를 움켜쥔채로 마차에 간신히 기대어 있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여인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 구원에.................. 감사합니다. "
" 감사할 것까지야............. 별것 아닌 일이었으니 신경쓰지 마시오. 그나저나 상처는 어떻소? "
" 심각한건 없네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 일단은 자리를 옮기도록 합시다. 가벼운 상처라도 일단은 치료를 해야 하니 말이오. "
사내의 말에 여인은 비틀거리면서 기대서고 있던 마차에서 등을 땠다. 비틀거리면서도 마차안에서 자신의 물건을 챙겨나오던 여인은 자신을 암습한 암습자들의 시신을 뒤적이고 있는 사내에게,
"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
사내는 여인의 물음에 잠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웃는 얼굴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진 영운이라고 하오. "
" 그러시군요. 아리나스라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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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헤 안녕하세요 방랑마도사입니다. 뻔뻔스런 놈입니다. 이렇게 돌아오다니 말이죠. 하지만 다시한번 여러분께 비평을 부탁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올려보았습니다. 뻔뻔스런 놈이라 욕하고 싶으시겠지만 한번만 참아주세요........ 그리고 이 글은 열심히 수정한 글이니 날카로운 비평을 부탁드립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