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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內亂)
라인버거 공작을 놓친걸. 제외하면 영운의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대부분의 귀족세력은 제압되어서 아리나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막다른길에 몰린 그들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영운은 라인버거 공작과의 전쟁이 눈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후방에 대한 불안을 없애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세 장군을 국경으로 보내서 흔들릴지도 모르는 군대의 장악을 서둘렀고, 그림자 기사단을 움직여서 라인버거 공작에게 합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영지를 견제하고, 아리나스에게 충성을 맹세한 영주들의 사병을 통합해서 하나의 군대로 만들었다. 수도를 지키는 근위사단까지 합친다면 8만에 달하는 군세가 만들어지자, 영운은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가 있는 집무실의 문에서 노크소리가 나고, 영운이 들어오라고 하자. 문이 열리며 아리나스 직속하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 기사단장님 여왕폐하께서 부르십니다. "
영운은 시녀의 말에 두말하지 않고 일어나서 왕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엔 영운과 마찬가지로 서류에 묻혀있던 아리나스가 서류더미 사이로 빼 꼼이 고개를 내밀면서,
" 영운 온 거야? "
" 아아, 무슨 일이야? "
" 후.............. 드디어 라인버거가 움직였어. "
라고 말하며 아리나스가 건네주는 서류엔..............
- 라인버거 공작 거병! 병력 8만. 현재 그의 영지인 라한에 병력 집결중!!
" 이제 시작인가............ "
영운은 나직이 말하며 천장을 쳐다보았다. 아리나스도 어두운 얼굴로 영운을 바라보았다. 전쟁의 시작이다.
전쟁이라는 건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국왕이 폭군이라던가 아니면 무능해서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던가. 하지만 아리나스가 폭군인 것도 아니요 왕위에 오는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서 그 무능이 증명된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라인버거 공작이 일으킨 건 '반란'이었다. 반란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다. 하물며 임펠리아의 왕가는 백성에게 그다지 욕을 먹지 않는, 쓸만한 왕가였기에 라인버거의 반란은 더더욱 환영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인버거 공작의 통제력은 훌륭함을 넘어서 뛰어난 것이었다. 그의 휘하에 모여든 8만 병력의 대부분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그의 지휘에 따라서 그의 영지의 중심인 라한에 집결, 공작의 지휘 하에 하나가 되어서 수도인 코랄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이에 대항해 아리나스 여왕은 영운을 총 사령관으로 하여 수도를 방비할 3만의 군세를 뺀 5만의 군세를 발진시켰다. 많은 하급 장수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파격적인 조치였지만 아리나스는 그 반발을 영운에게 미스텔테인을 맡김으로써 깔아뭉개 버렸다.
- 국왕군 본진.
" 적이지만 이 진군은 칭찬할 수 밖에 없군요. "
" 으음...............확실히 흐트러짐 하나 없는 진군의 모범 같구려. "
영운은 아라크네에서 보내온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좌중을 향해 말했다. 좌중엔 맥스웰, 프레일, 발트펠트, 같은 쟁쟁한 장수들이 서류를 들여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 보고에 따르면 이대로 진군할 경우, 레너티아 평원에서 맞붙게 된다고 나와 있군요. "
" 그건 대략 좋지 않은 일입니다. 적들의 총 병력은 8만, 아군은 5만. 어디를 보나 아군의 열세임은 명명백백한 일. 평원이라면 어떤 전략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군대의 전면전으로 갈 확률이 높습니다. "
" 그건 프레일 경의 말이 맡습니다. 사령관. "
백전노장의 맥스웰 경이 프레일의 말을 찬동하고 나서자 작전회의에 참석한 장수들의 고개가 일제히 끄떡여졌다. 영운도 틀린 말이 아님을 알기에 그 말에 긍정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 확실히 장군들의 말엔 틀린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적이 레너티아 평원을 차지한다면 수도까진 발 빠른 기마병으로 하루, 보병병력은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저희로썬 이 곳을 결전장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 확실히, 사령관의 말씀대로군요. 그렇다면 사령관께서는 어떤 작전을.................. "
" 작전이랄 것까지야................일단, 세바스찬 경, 세바스찬 경의 철각궁기병대가 활약을 해 주셔야 갰습니다. "
" 영광입니다. 반드시 무훈을 세워 보이겠습니다. "
영운은 지도의 곳곳을 집으며 장군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전 설명을 듣던 장군들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8 만의 군사들이 진군하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위풍당당하기 그지없었다. 라인버거 공작의 선봉을 맡은 건 그의 사설 기사단인 푸른 매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인 리코 알렌. 힘에 있어서는 임펠리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의 용력을 자랑하는 검사다. 힘에 걸맞게 검술 또한 수준급에 이른, 상급의 기사다.
" 단장님!!! "
" 앙? 먼일이냐? "
선봉군의 맨 앞에서 진군을 재촉하던 리코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심드렁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서는 라인버거 공작의 깃발을 단 전령이 말을 달려 오고 있었다. 말을 달려오던 전령은 멋들어진 기마술로 그의 바로 옆에서 말을 세우곤 헐떡거리며 숨을 골랐다. 하지만 리코는 짜증난다는 얼굴로 전령을 바라보며,
" 무슨 일이냐? "
" 공작님의 전언입니다. 절대로 저들의 도발에 넘어가지 말고 목표지점까지 전진만 하라 십니다. "
" 쳇 공작님은 걱정도 참 많으시군. 그따위 계집의 수하들 따위, 한손에 쓸어버릴 수 있다니까 그러시네. "
" 단장님. 그럼 저는 이만 공작님의 말씀을 전했으니.............. "
" 아아 그래 가봐. "
니코는 파리 쫒듯 손을 휘둘렀고, 전령은 그 손을 피해 황급히 말을 출발시켰다. 리코는 말이 질주하고 남은 흙먼지를 손바람으로 날려 보내며.
" 에이 짜증나는군. 저 놈, 다음에 보면 반쯤 죽여야겠어. 미천한 놈 주제에 말이야. "
투덜거리면서 말을 몰아가는 리코였다.
" 에이! 귀는 왜이리. 간지러워!! "
굵직한 손가락을 들어 귀를 맹렬히 파는 리코였다. 하지만 귀의 간지러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고통이 더해지면 더해졌지.
영운은 놀라움에 빠져있는 장군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 라인버거 공작의 선봉을 맡고 있는건 리코 알렌. 그는 무력으로썬 일군의 장수를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수, 하지만 그는 일군을 통솔할만한 그릇이 아니오. 그의 진가는 냉정한 지휘관 밑에서 두터운 상대방의 전열을 뚫는데 사용해야 그 진가가 나타나는 법. "
영운은 제장들을 바라보며 강하게 말을 끊었다.
" 우리의 승기는 여기에 있습니다. "
라인버거 공작의 선진을 이끄는 리코는 공작의 명령을 충실히 지켜서 절대로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본진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정찰병을 자주 내보내 적의 기습에 대한 방비도 충실히 하며 진군하고 있었다. 본인은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주인의 간곡한 부탁인지라,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 그에 따르고 있었다.
" 오늘은 여기 야영이다!! "
리코가 뒤를 돌아보며 크게 소리치자, 질서정연하게 따라오던 병사들이 십인대 단위로 흩어지더니 자신들이 머물 막사를 치기 시작했다. 리코와 푸른 매 기사단은 그들의 종자들이 자기들이 머물 막사를 칠 때까지 적당한 데서 띵까띵까 놀고 있었다. 종자들이 와서 막사가 완성됐음을 알리고 나서야 느릿하게 걸어서 자신들의 막사로 다가갔다. 그 뿐 아니라 종자들은 가뜩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들의 갑옷시중이며 세면시중까지 들어야 했다. 병사들도 장시간 행군으로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들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몇몇 경비 병력을 제외하고 말이다
" 좋아. 모두 잠들었다. "
멀리 보이는, 공작군의 숙영지를 바라보며, 은신하고 있던 세바스찬은 조용히 좌우를 둘러보았다. 전신에 종이를 태운 재를 바른 채로 그와 함께 운신해 있던 철각궁기병대의 대원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영운의 명령에 따라서, 귀족군이 오기 반나절 전에 도착한 이들은 대군이 숙영할만한 곳을 찾아서 미리 그곳에 비트를 파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코도 바보는 아니라, 숙영지 주위를 정찰하도록 했으나, 아예 땅을 파고 속에 숨어있는 이들을 무슨 수로 살펴보겠는가.
" 모두 준비 되었나? "
" 물론입니다. "
대화는 어디까지나 조용하게, 필요한 말만 주고받으며 그들은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언덕위에서 숙영지까지는 간신히 화살의 사정거리에 들어갈 정도. 하지만, 철각궁기병대의 대원들은 하나하나 모두 활을 쏘는데 자신이 있는 인물들. 롱보우에 비반사 처리를 한 화살을 매어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 빠아아아아!!
활이 당겨질 대로 당겨지고, 둥글게 휘어진 활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제일 앞에서 활을 겨누고 있는 세바스찬은 날아갈 때 소리가 나도록 제작된 효시(嚆矢)를 겨누고 있었다. 그의 화살이 쏘아지면 철각궁기병대 1000명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할 것이다.
- 피슛!! 삐이이이이이이~~~~!! "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효시가 하늘높이 날았다. 어두운 하늘에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소리를 들은 대원들은 일제히 화살을 발사했다.
" 저, 적이다!! "
" 비, 비상!!!! "
당황에 빠진 공작군의 숙영지를 바라보면서 세바스찬은 목소리에 마나를 실어 외쳤다.
" 전원! 후퇴명령이 있을 때까지 자유사격!!! "
- 쉬시식!!!
철각궁기병대의 대원들은 미친 듯이 화살을 쏘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