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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內亂)
잠자다가 벼락을 맞은 건 공작군이었다. 피곤에 지쳐 잠들었던 병사들은 황급히 막사바깥으로 뛰쳐나오다가 하늘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얻어맞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건 기사라고 다를 바 없었다. 갑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뛰어나온 기사들은 검 한 자루만 들고 놀라서 날뛰고 있는 자신의 말들을 잡아타고 화살의 범위바깥으로 내달렸다. 실력이 있는 자들은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라도 쳐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졌지만, 빛나지 않도록 비반사 처리까지 한 화살을 쳐내기는 무리였다.
" 단장님!! "
" 에에잇!! 모두 태세를 갖춰라! 당황하면 저 녀석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다!! "
사방을 돌아보며 호령하는 리코였지만, 이미 상황은 그의 통제를 벗어난 지경이었다.
" 이정도면 됐다. 물러나자!! "
세바스찬은 어느 정도 적에게 혼란을 주는 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자, 미련 없이 부하들에게 후퇴명령을 내렸다. 그의 부하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서 활을 갈무리하고 말을 놓아둔 언덕너머로 미친 듯이 달렸다. 미친 듯이 도망가는 철각궁기병대를 발견한 리코가 분노의 괴성을 터뜨리며 그들을 추격하려 했지만, 그들이 본건 말을 타고 흙먼지를 뿌리면서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철각궁기병대의 모습뿐이었다.
이후 철각궁기병대의 활약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들이 잠을 잘라고 숙영지만 만들 면은 어느 샌가 바람처럼 달려와서 화살을 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리코를 비롯한 공작군이 추적을 단념하고 돌아가려하면 다시 방향을 바꿔선 돌아가는 자들의 뒤통수에다 화살을 선물했다. 그들의 게릴라는 점점 가면 갈수록 심해져서 한낮에도 그들을 습격하니, 리코는 열이 뻗쳐서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하지만 궁기병대인 철각궁기병대가 굳이 근접전으로 들어가서 피해를 입을 필요가 없었다. 궁기병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기동성 있는 타격이지 근접전이 아니다. 세바스찬은 철저하다 할 정도로 그들을 괴롭히면서 종국에는 그들을 상대로 아직은 실전에 미숙한 신참 병력을 훈련까지 시키고 있었다. 무거운 갑옷을 걸친 중기병들은 그들의 속도를 따라가지도 못했고, 경기병들은 그들에겐 절호의 과녁이었다.
리코가 이끄는 선봉의 움직임은 날이 가면 갈수록 진군속도가 느려졌다. 그들이 쉴라고. 할 때마다 철각궁기병은 귀신처럼 나타나 그들을 습격했다. 피로라면 똑같이 쌓여있을 줄 알았던 리코의 선봉군은 더 이상의 습격이 없을 줄 생각하다가, 더욱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병사들이 입을 피로를 방지하기 위해 세바스찬은 병력을 반으로 갈라, 반은 휴식을 취하도록하고, 반을 이끌고 습격을 거듭했다. 무기에 마나를 부여하여 오러 블레이드를 만드는, 소드 마스터인 세바스찬에게 피로는 무의미한 것이라 보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는 병력을 인솔하여 습격을 계속했다.
습격을 시작한지 4일째, 리코의 선진은 공작군의 본진과 반나절 차이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속도가 늦어져 버렸다. 선진의 임무는 본진이 나아갈 길을 개척함과 동시에 거치적거리는 장애물들을 치우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본진에서 반나절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선진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보았자, 별다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리코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공작군의 본진에 합류했다.
" 됐다. 물러가자. "
세바스찬은 부하들에게서 선진이 본진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미련 없이 군을 돌려서 여왕군의 본진으로 향했다. 이미 여왕군의 본진은 평원에 진 을치고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바스찬의 궁기병대는 그들에게 하달된 임무를 정확하게 수행했다. '시간 끌기'라는................
레너치아 평원은 주위로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지형이다. 비가자주내리고, 땅이 비옥하여, 임펠리아 내에서도, 곡물의 소출량으로 따지자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곡창지대다. 아리나스는 되도록이면 이 지대에서의 전투를 피해달라고 했지만 세상일은 의도한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니까.
아직 익지 않아 파릇파릇한 밀밭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영운은 착잡한 얼굴로 그 밀밭을 바라보다 옆에 서있던 맥스웰 경에게 얼굴을 돌리며,
" 이곳은 싸움터로 하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
"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령관. 하지만 저들의 진격로중에 대규모 전투를 하기위해 가장 적합한 곳을 고르라면 이곳밖에는 없습니다. "
" 끄응..................세바스찬경은 합류했습니까? "
"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피곤했나 봅니다. "
" 그럴 만도 하지요. 4일 동안의 습격만으로 세바스찬경은 상상이상의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저들의 진군속도로 볼 때 아군과 맞닥트리는 건 몇 일후겠습니까? "
" 2일후 정도일까요. 8만이나 되는 대군이니 진격속도도 그리 빠르진 않을 것입니다. "
" 평원이니만큼 어떠한 작전을 써도 소용이 없겠지요. 평원의 전투는 전면전으로밖에 일어날 수 없으니까요. "
" 그나마 저렇게 공작을 벌일 시간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요. 이번전투는 우리가 승리할 겁니다. "
맥스웰이 바라보는 곳에선 일단의 병사들이 밀밭을 오가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다.
공작군 8만은 2틀째 되는 날 오후에 레너티아 평원에 도착하여 진을 내렸다. 라인버거 공작의 문장이외에 할슈타인 백작가의 문장뿐이 아니라, 공작가의 영지주위에 있는 군소귀족들의 문장이 펄럭이고 있었다.
" 진을 내리는 것도 절도가 있군요. 라인버거 공작의 무장으로써의 자질을 조금 우습게 본가 같군요. "
" 그렇습니다. 이거 상당한 고전이 예상되는데요. "
" 뭐, 전쟁이란 건 여러 가지 변수가 있는 법이니까. 일단 오늘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이니 일단 쉬도록 할까요. "
영운은 미련 없이 말을 돌려 진중으로 돌아갔다. 맥스웰도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