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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내란.
제국의 뒤를 쫒듯이 삼국연합의 사신이 다음날 도착했기에 아리나스는 쉴 틈 없이 드레스를 입고 손님을 맞이했다. 최대한의 접대용미소를 지었지만, 심사가 얼굴에 표현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임펠리아에 사신으로 파견된 이들이 누군가. 외교관으로써 이름이 높다는 것은 눈치가 빠르다는 것을 말하는것이다.아리나스의 얼굴에 미묘하게 잡힌 주름살을 눈치 채지 못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 삼국연합, 마커스의 햅번 오드리가 아리나스 폰 임펠리아 여왕폐하를 뵙습니다. "
" 삼국연합, 소니아의 에마르크 레르가스가 아리나스 폰 임펠리아 여왕폐하께 인사드립니다. "
" 삼국연합 누라의 스텔론 크로아네가 아리나스 폰 임펠리아 여왕폐하께 인사드립니다. "
" 이 거참, 어제 오늘에 걸쳐서 내 눈이 호강하는 날이구려. 대륙에서 이름 높은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만나다니 말이오. "
' 어제' 아리나스가 만난 '대륙에서 유명한 사람'이 누군지 그들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제국의 헤르모니안 필그림 백작. 자신들도 몇 번 만난 적이 있던, 그리고 패배의 쓴맛을 맛보였던 외교관이기도 했다.
" 헤르모니안 백작이 벌써 도착하였습니까? "
" 어제 도착하였습니다. 참, 윗사람을 보러온 것인데 소개를 안 할 수야 없지요. 영운. "
어제와 마찬가지로 예복을 걸친 채로 아리나스의 옆에 시립해있던 영운은 한발 앞으로 나서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영운 진 가이런이오. "
" 처음 뵙겠습니다. 대공전하. "
' 나를 느낀 건가.'
여기서 특이하게 주목해야 할 점은 소니아의 사신을 제외한 마커스와 누라의 사신이 영운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자 무언가에 짓눌리듯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 것이다. 아마 저들은 자신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 것이리라, 아마 자신들도 이해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영운은 한층 더 주의하여 자신의 기운을 숨긴 다음, 미소를 지으며 두 사신을 바라보았다. 영운의 시선에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두 사신이 황급히 허리를 굽히며,
" 무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
" 아니오, 무례랄 것까진 없지 않겠소. "
영운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고, 사신들은 감사하다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아리나스는 그들을 바라보며,
" 먼 길을 와서 피곤한 사람들을 오래 붙잡아 둘 수는 없지요. 숙소를 마련하여 두었으니 들어가 쉬도록 하세요. "
"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
이런 곳에서 까지 연합국들의 사이가 나쁜걸 과시할 필요는 없기에 그들은 동시에 인사를 한 후에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나고, 아리나스는 피곤한 표정으로 일어나서 자리에 모인 귀족들에게 해산을 명령했다.
" 힘들군.......... "
" 보고에 따르면 신성제국의 사신은 몇 일후에나 도착한다니까.................. "
왕족의 옷차림은 한두 시간 내에 승부가 나는 간단한 게 아니다. 사신들이 도착하는 당일은 아침부터 시녀들에게 둘러 싸여서 세네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인형놀이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귀찮은걸 싫어하는 아리나스나 영운은 이틀에 걸친 인형놀이에 심신이 지쳐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 어마어마한 양이군. "
" 제길.................. "
지금의 아리나스에게선 여왕의 품위를 찾아볼 수 없었다. 뒷골목의 건달이면 건달이지................. 아아 이 나라의 운명이.......................
" 건설 교통부의 보고서로구먼, 재킬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더니 쌓인 게 많았나봐. "
" 으아아아아아............... "
소개가 늦었지만 재킬은 귀족이 아닌, 평민이다. 하지만 임펠리아의 목수들이나 건축업자들 사이에서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인물, 성의 설계에 참여해본 것이 3번이고 귀족의 저택건축경험이 8회, 다리를 비롯한 기타 잡 건물 건설경험을 샐 수도 없이 많아서 아라크네의 인재목록 68위에 올라있는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고, 시킨 일은 아무 반론 없이 끝내는 사람이었기에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이었지만 아리나스와 영운, 재상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가 한번 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아마 재상도 지금쯤 핏발선 눈으로 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있으리라.
" 하지만 할 일은 제대로 했구먼. 도로건설도 작업을 시작했고............. 오오, 전투요새의 건설도 시작했나? 재무대신이 기분이 좋은가보군. "
영운의 말 대로였다. 재무대신은 남부지방에 있는 은광의 존재 때문인 듯, 매사에 허허거리면서 돈을 써야한다는 보고서에도 아무 말 없이 결제해주고 있었다. 그의 변화는 그가 맡고 있는 재무부 뿐만 아니라, 그에게 돈을 타내야 하는 각부서의 대신들에겐 놀랍다기 보단 꺼림 찍한 변화로 다가왔다.
" 어휴............... 시작하자고. "
아리나스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않아서 서류를 들었다. 영운역시 소파에 않아서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그들이 읽는 서류는 정확히 분담되어 있었는데, 군대를 비롯한 군에 관련된 보고서는 영운이 읽고 있었고, 내정에 관련된 보고서는 아리나스가 읽고 있었다. 짜고 하는 일인가?
여기서 우리는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려보자. 그건 바로 비텐마이어를 비롯한 귀족파들. 한층 단단해져만 가는 아리나스의 왕권에 대항해서 반란이라는 극약을 택하기로한 귀족들이지만, 그 준비는 지지부진하기 그지없었다. 병력을 모으려 했지만, 자신들에게 해준 것 하나 없는 귀족들의 말을 들으려는 평민이 없었다. 옛날 같으면 두들겨 패서 강제로 군대에 집어넣겠지만, 아리나스가 각왼지에 파견한 법관들이 그걸 저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편으로 회유하려 했지만 파견된 법관의 대부분은 귀족이라면 이를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귀족들이 뇌물을 주면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신나게 치도곤을 날렸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노예를 병력으로 쓰려니. 하루하루 줄어만 가는 자신들의 노예를 이런데다 낭비할 수많은 없었다. 거기다가 아리나스가 실시한 노예해방으로 자신들 밑에 있는 노예들마저 야반도주를 시도하고 있기에 만일 그들을 데리고 전장에 나갔다간 아리나스의 한마디에 군이 우르르 무너질 것이다. 그들이 고심 끝에 선택한건 용병을 고용하는 게 어떨까? 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용병들이 아무리 머리가 나쁘다 고해도 대세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귀족군에 유리한 점은 없었고, 돈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고 해도 그들에게 중요한건 결국 자신들의 목숨이다. 패할게 뻔한 도박에 패를 던지는 건 5살짜리 어린아이도 하지 않는 짓이다. 많은 돈에 혹해서 몰려든 건 저급의 용병들뿐, 머릿수에선 도움이 되도 전력으론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반란준비는 부산스럽기 짝이 없었다.
반면에 여왕군의 준비는 튼실했다. 이미 기동대기중인 철각궁기병대와 노예군단은 제외한다 치더라도, 흑색창기병대는 출동대기 상태였고, 근위사단 소속 기병대역시 대기 중이었다. 거기다가 여왕 측에 참전의사를 밝힌 라이오네측의 가병 6000또한 여왕의 군이 움직이는 즉시 자신 주위의 귀족파를 들이치기로 되어있었다. 이미 준비는 완벽하지만 아리나스가 가만히 있는 이유는 그들을 좀더 끌어들여서 뿌리째 뽑아버리기 위해서였다. 아리나스의 의도대로 그들은 필사적으로 병력을 끌어 모으고 있었고, 그들은 끝까지 아리나스의 손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대공즉위식이 열리기 몇 일전, 느릿느릿 다가오던 신성제국의 사신들이 도착했다. 아리나스는 투덜거리면서도 예복으로 갈아입고 그들을 맞이했다. 영운도 마찬가지.
" 마그누스의 조지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준 추기경의 자리에 올라있습니다. "
" 주신의 지팡이를 뵙게 되다니 영광이오. 아리나스 폰 임펠리아라고 하오. "
조지가 두 손을 합장하며 허리를 굽히자 아리나스도 합장을 하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주신의 사제들이 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법이기에 아리나스도 인사를 한 것이다. 아리나스의 인사가 끝나자 영운이 앞으로 나서서 아리나스가 한 행동을 따라했다.
" 대공, 영운 진 가이런 입니다. "
" 조지라고 합니다. "
그들 둘의 상견례가 끝나자 아리나스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 먼 길을 오셨으니 피곤할 것이오, 숙소를 마련하였으니 가서 쉬도록 하시고, 내일저녁에 사신들을 환영하는 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꼭 참석해 주시길 바라오. "
"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겠나이다. 폐하. "
조지가 예를 표하고 물러가자 아리나스는 피곤한 표정으로 중신들에게 해산을 명했다. 젠장, 똥개 훈련도 아니고..................
초청된 자들 중에선 올 사람들은 다 온 상태였다. 소소한 공국의 사신 따위는 신경 쓰지 말도록 하자. 굵직굵직한 사신들은 이미 다 도착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예정했던 날짜에 일을 진행시킨다고 해도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무도회 준비가 성대하게 이루어지고, 시종장과 시녀장 크레아는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대공이란 직위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의미를 알고 있는 이들이기에 결혼한 국왕부처가 사용할 침실을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 남편?? "
그걸 발견한건 거의 우연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 세계에 대한 기본지식을 채우기 위해 영운은 약간의 시간이라도 생긴다면 도서관으로 달려가 그곳의 서적을 탐독하는 것에 열중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말이다. 그 와중에 발견할 수 있었던 서적에서 나온 내용에 영운은 기겁을 하고 놀랐다.
- 대공이란 것은 국왕의 일촌이내의 자매, 혹은 그의 자식인 공주의 남편에게 제수되는 직위이다.
영운은 책의 내용을 읽다가 말고, 미친 듯이 도서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재상인 브라이언이 일하는 집무실은 아리나스가 일하는 집무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아리나스에게 올라가는 보고서의 대부분을 재상도 봐야하고, 또한 아리나스의 상담역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아리나스의 집무실과 가까운 곳에 배치된 것이다. 그곳을 사용하는 주인의 특성상, 집무실의 분위기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영운이 뛰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 재상. 내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
" 이런, 대공전하. 무엇을 물어보고 싶으신 것이기에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
웃으면서 그를 반기는 재상의 앞에 자신이 가지고온 책을 내려놓으면서 자신이 읽다가 기겁을 한 부분을 집으며 재상을 바라보자, 영운의 손가락이 짚은 구절을 살펴본 재상은
" 그렇습니다. 대공위란건 본디, 왕족, 그것도 여성의 남편을 나타내는 작위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
" 아니네, 아무것도. "
영운은 그의 긍정에 약간은 새파래진 얼굴로 재상에게 인사를 한 후, 집무실에서 빠져나갔다. 재상은 그의 뒷모습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황급히 일어나 어디 론가로 향했다.
영운은 혼란해 하고 있었다. 그는 외톨이였다. 그에게 가족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단 한명, 사부뿐. 그는 정이란 걸 모르는 인간이었다. 이 세계에 와서 아리나스를 만나고, 그녀에게 끌리는 자신을 알아차리면서, 그는 더더욱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니, 사랑이라 부를 수 없을지도 몰랐다. 단순히 '지켜주고싶다'는 마음에서 그녀의 곁에 남기로 하였던 거니까. 하지만 지금 그를 움직이는 감정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를, 그녀의 곁에서 검을 휘두르면서, 사람의 피를 뿌리며, 그를 움직이게 하는 건가.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인가.
멍하니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던 영운은 문득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곤 크게 놀란 얼굴이 되었다. 흩날리는 꽃잎, 자욱한 꽃향기l. 자신이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보았던 곳.
- 오랜만이군요. 강한 영혼의 소유자여.
꽃밭을 지배하는 존재감, 그의 감각에 잡히지 않는 존재. 영운은 피식하고 헛웃음을 터트리더니 자리에 주저앉아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 또 당신인가? "
- 불쾌하신가요?
" 아니, 아무것도 아냐. "
않아있는 그의 옆에 누군가가 다가와 않았다. 하지만 영운은 하늘을 향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간의 침묵 속에서, 영운이 불쑥 입을 열었다.
- 혼란스러우신 것 같군요.
" 뭐야, 그거 프라이버시 침해란 거 아닌가?"
- 후후 죄송합니다.
" 뭐, 상관없겠지. 이봐, "
- 왜요?
" 신이라면 말해봐. 내가 가장 원하는 게 뭘까?"
- 후후후......... 답을 알고 있지만 대답하기 싫군요. 대답을 원하십니까?
" 찾은 것 같기도 하고 못 찾은 것 같기도 해. 정말 아리송하군. 이 기분. "
영운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멀리보이는 숲을 향해 걸어갔다.
아후라 마즈다. 위대한 빛의 의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 모든 것은 당신의 의지대로 행해질 것입니다. 강한 영혼의 소유자여.
그리고 꽃밭을 지배하던 존재감이 사라지고, 차츰차츰 꽃잎을 흩뿌리며 광활히 펼쳐져 있던 꽃밭이 차츰차츰 사라져가고 있었다.
= 뮤헤헤. 이것이 연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