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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내란.
무도회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본 행사인 대공 즉위식은 내일이지만, 대공이 사교계라는 피 안 튀기는 전장에 등장하는 건 이번 무도회가 처음인 것이다. 이미 제국과 삼국연합, 신성제국의 사신은 무도회장에 들어와 있었고 주요급의 귀족들에게 접근하면서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내려 애썼다.
- 아리나스 폰 임펠리아 여왕폐하와 영운 진 가이런 대공전하가 드십니다!!
외침과 함께 무도회장의 입구를 돌아본 귀족들이 놀라운 얼굴을 하곤, 그 다음으로 자신들이 취해야할 행동을 깨닫고는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이는 이 나라의 귀족이 아닌지라 선채로 허리만을 굽혀서 예를 표하고 있는 사신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놀랍게도 아리나스와 영운은 '팔짱'을 한패로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던 것이다.
사실 그들이 보아온 영운의 모습은 남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호위기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녀가 어디를 가든지 따라다녔으며, 그녀의 명을 거역한 적도 없었다. 한마디로 충실한 기사의 모습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이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주요인사들, 재상을 비롯한 맥스웰 경 같은 사람들은 갑자기 밀려드는 불안감에 얼굴을 찡그렸다. 어디까지나 왕은 아리나스다. 저 모습에서 실질적인 왕을 영운으로 착각하면 곤란했다. 실제로 개부분의 귀족들과 사신들은 영운이 멸실 상부한 국왕인거라고 마음속으로 단정 짓고 있었으니, 그리 틀린 짐작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착각과 재상의 걱정은 영운이 취한 다음 행동으로 사라져 버렸다, 왕좌가 위치한 계단까지 함께 걸어온 영운은 팔짱을 풀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아리나스에게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 분명 대공은 여왕의 남편이지만 공식 석상에선 여왕의 하인에 지나지 않는다. 영운은 이 점을 알고 있었다.
" 이 파티는 대공의 즉위식을 축하하기위해 모인 사신 분들을 환영하기 위한 파티요. 모두 기쁜 마음으로 즐기시기 바라오. "
웃는 얼굴로 아리나스가 파티의 시작을 알리자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악단이 악기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여왕이 계단에서 내려오자 자리에서 일어난 영운이 허리를 굽히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 고귀하신 분이여. 그대와 춤 한곡을 출 수 있는 영광을 내려주시겠는지요. "
" 물론이지요. 나의 기사님. "
그가 내민 손을 그녀가 부드럽게 붙잡자 영운은 그녀를 이끌어 무도회장 중앙으로 나아갔다. 무도회의 첫 춤은 개최자가 추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기 때문에 참석자중 그 누구도 춤을 추고 있지 않았다.
- 따라라라~~~ 음악이 시작되고, 그들의 춤은 시작됐다.
그동안 유모에게서 받은 특훈은 헛되지 않은 것이었다. 영운은 처음 추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리나스의 발을 단 한번도 밟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 잘 추는데? "
춤을 추는 와중에 아리나스가 영운의 가슴팍에서 고개를 들고 그에게 말했다. 영운은 그녀의 물음에 쓴웃음을 지으며
" 그렇게 까지 들볶였는데 못 추면 바보겠지. "
" 후, 그러네. "
아리나스는 미소와 함께 영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쁜 기분은 아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안겨 있다는 건. 누군가의 체온을 느낀다는 건 기분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아리나스와 영운의 춤이 끝나고 나서 각 귀족가의 영애들과 젊은 귀족청년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성급한 몇몇 커플은 벌써부터 춤을 추고 있었다. 아리나스와 영운은 자신들에게 인사하는 몇몇 귀족들과 환담을 나누다가, 제국사신, 헤르모니안 백작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걸. 깨닫고는 얼굴을 돌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여왕부부가 그와 맞닥트린 순간, 은밀히 여왕의 눈짓을 받은 재상을 비롯한 여왕의 측근들은 삼국연합을 비롯한 신성제국의 사신들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면 친한척하면서 들러붙었다는 이야기다.
" 헤르모니안 백작. 파티는 어떻소이까? "
" 성대한 파팁니다. 이런 파티를 열어주시다니. 감사한 따름입니다. "
" 호호. 다행이군요. 제국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백작의 눈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생각하고 있었소. "
" 무슨 그런 말씀을. "
아리나스 옆에 서있던 영운도 미소를 지으며.
" 그런데 말이오. 백작. 제국의 황제폐하는 잘 계시오? "
" 물론입니다. 전하. 이번 여왕폐하의 즉위를 진심으로 기뻐하시고 계십니다. "
백작이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자 영운의 얼굴이 장난기에 물들며,
" 황제께서 원하는 건 복속(服屬)이오? "
" ................... "
백작의 얼굴이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아리나스는 놀라운 얼굴로 백작을 바라보았다. 외교에 있어서 마음속 심정을 적에게 들킨다는 건 이미 한 수 굽히고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 외교에 있어서 백전노장인 저 백작이 저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 ...................천만에요. 황제께선 어디까지나 동맹국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하시는 것뿐입니다. "
" 그렇소? 알겠소이다. "
영운은 어이없어하는 아리나스를 이끌고 자리에서 떠났다. 영운은 근처를 지나가던 시종이 들고 있는 쟁반에서 와인 잔을 들어서 아리나스에게 건네며,
" 역시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야. 쉽사리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데? "
" ...................대충은 짐작하겠어. 방금한 이야기 설마?? "
" 그래 맞아. 제국이 흔들리고 있어. "
나중에 밝히겠지만 제국의 속사정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흔히 나오는 이야기처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황제와 그에게 딸린 수많은 후궁과 그 자식들을 둘러싼 후계자 암투가 발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에게 정실, 황비의 자식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제국의 세 공작가문이 각각 한 황자를 지지하고 있어서 제국의 정계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 사실 대공즉위식을 축하한답시고 찾아오기엔 너무 거물이라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형제국이라고는 하지만, 속국이나 다름없으니까. "
" 황제는 다 죽어가고 있고, 황자들의 왕위다툼으로 제국의 상층부는 흔들리고 있어. 이런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아. "
제국은 대륙에서 가장강력한 군사국가다. 일대일 능력에서는 저 북방의 왕국 유그드라실의 병사들을 따를 자가 없지만 다대다 전투능력은 제국군을 따를 부대가 없다. 동서남북으로 각기 20만의 상비군을 두고 중앙에 15만의 상비군, 비상시 국민 총동원령으로 모여지는 농민병을 합치면 800만이 넘는 부대가 편성된다. 삼국연합도, 신성제국도, 이런 제국과 물량전을 벌일만한 나라는 아니다.
" 설마 둘이 동맹이라도 맺은 건가....................... "
" 그런 확률도 있겠어. 유그드라실도 끼어들은 걸까? "
" 설마. 그들은 절대 중립이야. 130년 전의 대침공때는 유그드라실에서도 보기 드문 정복욕구가 뛰어난 왕이었어, 하지만 그들의 국민들은 하나하나가 전사들, 공격받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고, 침략 받지 않으면 침략하지도 않는, 신념으로 가득 찬 무리들이지. "
" 아무리 제국이라도 동서로 침략을 받으면 곤란하겠지. 거기다가 남쪽에서도 누군가가 쳐들어온다면 상당히 곤란해 할 거야. "
제국 주위엔 수많은 군소국가가 있지만, 10만이상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은. 임펠리아 왕국이외엔 없다. 다른 나라는 나라라고 보기에도 초라한 왕국들 뿐.
" 그래서 백작이 찾아온 건가? "
" 그럴 거야. 아무래도 제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나리인데다가 제국의 침공에 대해 그렇게까지 싸운 나라이니만큼 신경 쓴 거겠지. "
보통의 속국이라면 아무나 사신에 임명해 찾아가서 협박 비스무리한 말만 늘어놓고 그들에게 복속시키면 된다. 하지만 임펠리아에 그런 수를 썼다간 당장에 삼국연합과 신성제국에 들러붙을 위험이 있다. 그들의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못해도 10만 이상, 아무리 제국이라도 3방향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맞아서 싸우기엔 무리가 있었다.
" 어쩔 거야? "
영운은 재상을 비롯한 대신들과 격투를 벌이고 있는 신성제국과 연합의 사신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리나스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 어쩔 수 없어, 아직은.........................힘이 부족하니까. "
" 분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은 힘이 모자라다. 5년................5년만 참아라. "
" .............알았어. "
영운 자신이 입안하고 아리나스가 허가한 계획서는 5년의 시간을 요구했다. 아리나스는 자신이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떡였다. 30년간의 시간에 비하면 5년의 세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5년 후에..............
재상과 측근들의 온몸을 던진 희생은 그날 파티가 끝날 때까지 각국의 사신들이 아리나스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아리나스가 파티 장에서까지 머리 쓰기 싫어서 내린 명령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다만 그들의 희생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불쌍한 사람들.........
대공즉위식............에이 씨 결혼식이라고 하겠다. 결혼식 당일,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던 영운과 아리나스는 유모를 필두로한 일단의 시녀 특공대에 의해서 가슴 아픈 생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왕족의 옷 입기라는 건 한두 시간으로 결판나는 전쟁이 아니고, 게다가 결혼식이라는 행사를 목전에 두고, 모델도 훌륭하니, 그들을 치장시키는 시녀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시녀들의 비법을 총 동원하여 그들을 꾸미기 시작했다. 10분 만에 세벌의 옷을 갈아입혀보며 미추를 따지고, 수백 개의 장식들이 번개처럼 그들의 손에 오고갔다. 아리나스와 영운은 그들사이에 멍하니 서서 인형놀이를 당하고 있을 뿐..... 그들에게 거부권은 존재치 않았다.
백합궁을 나와 즉위식........결혼식이 치러지는 주신전까지는 수도의 주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들이 뿌리는 오색 꽃가루를 맞으며 나아가는 영운과 아리나스.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왕과 대공의 모습에 백성들은 더욱 환호하며 열광적으로 만세를 불러댔다. 사실 왕족들의 결혼식이 이렇게 거행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아니 완벽하게 파격적인 일이지만 언제 그들이 규칙지키는거 보았는가? 규칙은 깨지라고 있는 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뭐라 말하겠는가. 넘어가자.
주신전에선 결혼식의 집도를 맡기로 한 하이 프리스트가 하얀색의 법복을 입은 채로 근엄한 얼굴로 그의 앞에 무릎 꿇은 부부에게 성표를 들이대며 그들의 결혼을 축복했다.
" 주신의 이름아래 오늘 새로이 부부의 연을 맺게 된 이들을 축복하며...........중얼중얼...................쫑알쫑알.......................나불나불............................... "
정말 길었다. 늙은 하이 프리스트는 지치지도 않는지 길고긴 기도문의 외어댔고, 그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아리나스와 영운은 저려오는 다리의 통증을 입술을 깨물고 참아내고 있었다.
" 아리나스 폰 임펠리아. 여기 있는 이 남자를 부군으로 삼아 언제 어느 때고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
" 예 "
" 영운 진 가이런, 여기 있는 이 여인을 아내로 맞아 언제 어느 때고 함께할 것을 맹세 합니까? "
" .................나의 영혼과 나의 검을 걸고."
그의 말은 마치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와도 같았다. 그랬기에 이런 자리에서 나오긴 약간 이상한 말이긴 했지만 하이 프리스트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일을 진행시켰다.
" 주신의 이름아래 하나의 숭고한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여기 있는 두 사람이 주신의 이름아래 맺어진 부부임을 선포합니다. "
- 와아아아아아아!!!
그날, 수도 루레아드는 백성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으로 떠들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