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년제국-60화 (6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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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륙 대전!!

제국의 양대 전선에서는 기묘한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로 군정서의 라기스트는, 라클코니움을 차지한 삼국연합군을 상대로 열심히 공성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삼국연합군은 그 반대였다. 자국의 요새를 상대로 공성전을 벌여야 하는 라기스트는 황당함만 있을 뿐이지만,

" 막상 공성전을 치러야 하는 입장이 되니, 저 요새가 얼마만큼 대단한 것인지를 알수 있군. "

라기스트는 한숨을 내쉬며 눈앞의 요새를 바라보았다. 요새에 관해서라면 자신 뿐만이 아니라 부하들까지 잘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 지식은 그들의 절망감만 더할 뿐이다. 방법이 없다..................란 절망감.

" 하지만 저희들은 저 요새를 탈환 해야만 합니다. "

" 그렇지. 탈환 해야지. 하지만 어떻게? "

라기스트는 알고 있는 사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부하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다시 요새를 심각한 얼굴로 쏘아보았다. 저쪽은 8만. 이쪽은 15만. 밀어붙일까? 저들이 보여준 것처럼. 머릿수에 이기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저곳엔 마법병단이 있다.

영운의 아리키아 요새 공략전에서는 제대로 그 위력을 내보일 기회는 없었지만, 마법병단은 수비전에서 그 진정한 진가를 발휘한다. 높은 성벽위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대비하여 실드마법을 펼친채로 난사하는 수백개의 범위마법은, 마법에 대한 방어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일반병사들에겐 공포, 그 자체다. 거기다가 그들이 지키는 라클코니움 요새의 방어력은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 막막하군 막막해.................. "

라기스트는 투덜거리면서 요새에서 시선을 돌렸다. 위에서는 어서 요새를 탈환하라고 성화다. 황제의 의지는 아닐 것이다. 제국의 신하들 중에서 황제의 핏줄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은 이미 아무도 없다. 자신의 입지가 약해질 것을 경계한 '그분'의 독촉일 것이다.

'그분'의 입지 약화는 자신의 입지약화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라기스트 본인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 마법병단의 마법만 봉쇄된다면............... '

그렇다면 승산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그들을 봉쇄할 것인가. 끊이지 않는 고민 속에 밤은 깊어만 갔다.

한편 제국의 동부전선, 신성제국군과 대치중인 레가르탄 요새의 제국군 동로군정서 병사들도 눈앞에 늘어선 20여만의 신선제국군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눈에 닿는 곳에서 닿는 곳까지 전부 신성제국군이었다. 본격적인 전투는 한번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가중되는 긴장감에 지친 병사들은 차라리 전투가 일어나길 원했다. 신성제국군의 사령. 라니움은 이런 대치상태를 원한 것이 아니었으나, 의외로 레가르탄 요새의 방어준비가 철저하여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건 레가르탄 요새 안에서 늘어선 신성제국군을 바라보며 이를 갈고 있는 바타스타도 마찬가지. 지금 당장이라도 군을 휘몰아 바깥의 적을 치고 싶지만 절대적인 병력 차는 어쩔 도리가 없는 방법이다. 그저 요새의 물자들을 세세히 점거하면서 방어준비에 만전을 기할 뿐. 요새 성벽에 고정 배치되어 있는 투석기를 하나하나 세세하게 둘러보며, 화살을 비롯한 소모성 무기가 모여 있는 창고의 경비를 직접 감독하고, 지도를 살펴보며 적들의 공격방향을 세세하게 검토했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잘 해봤자, 적들이 쳐들어오지 않는 것을. 성은 오지 않는 적들에게 달려가서 그들을 공격하는 재주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대치상황이 무의미 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전장에 선 것이다.

대륙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는 도시, 영광의 홀의 제국의 황성 회의실엔 제국을 지탱하는 세 후작가문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한 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지금, 정말로 중대한 선택의 고비에 빠져있었다.

" 그 방법밖에는 없소? "

가장 처음 입을 연 것은 재국 재상의 위치에 있는 노팅어 후작. 제국이 무능한 황제를 가지고도 아무 잡음 없이 굴러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사람이 정치판 한 가운데 버티고 서있기 때문이다.

" 소집령을 내렸으니 버티면 되지 않겠소? "

" 하지만 백성들을 소집하여 명령체계를 갖추고 기본적인 무장을 지급하는데 소요되는 시간만 해도 어마어마한 시간이오. 거기다가 지금은 봄이오, 민병을 소집하는 것은 좋으나, 여러 작물의 파종시기를 놓쳐버리면 가뜩이나 몇 년간 이어진 흉년으로 힘겨워 하는 제국에 결정타를 가져올 수 있소. "

담담한 목소리로 노팅어 후작의 의견에 반론을 펼친 건 나이에 맞지 않는 건장한 체구를 가진 실베스트 후작. 제국 기사들의 영웅이자, 제국의 군권을 거의 틀어쥐고 있는 인간. 제국에 있는 세명의 마스터중 한명이기도 한 인물.

" 하지만 그 방법은................ "

" 어쩔 수 없소. 노팅어 후작. 우리도 그다지 내키는 일은 아니오. 하지만 이것이 최선임을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소이까. "

끝까지 반대하려는 노팅어를 제지하며 나선 것은 마법사의 로브를 입은 로텐베르그 후작. 제국의 황실 마도사로써. 사라져 버린 7써클의 대마도사 데미온을 제외하면 대륙에서 마법의 써클로는 가장 높은 사람일 것이다. 물론 마도왕국의 누라의 왕실마도사가 6써클이지만 그는 간신히 6써클의 초입에 들었을 뿐, 익스퍼트와 마스터의 차이는 검사들과 다를 바가 아니었다.

" 이제 와서 저 황제의 힘을 의지해야 한단 말이오! 빌어먹을!! "

황실모독으로 목이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적어도 이 황성의 주인은 겉으로 보기에만 황제일 뿐이다. 황성의 진정한 주인은 그들이었다. 황성에서 황제의 명령이 들어먹는 곳은 그가 하루 종일 박혀있는 후궁의 궁전뿐이다. 제국을 이끈 것은 황제가 아니라 그들이다. 황제는 더 이상 그들에게 있어서 존경해야 할 자가 아닌 밥버러지일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발버둥을 쳐도 그가 황제인 이유를, 그들은 알고 있다. 제국의 중추라 불리는 후작의 가문에선, 황제가 숨기고 있는 힘이 무었인지, 아주 자세히 알고 있었다.

" 빌어먹을!! "

담담함을 유지하던 실베스트 후작이 거세게 탁자를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 제국에서도 단 3명뿐인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물인 만큼, 탁자는 우당탕하는 소리를 내며 두 조각으로 갈라져 버렸다. 노팅어는 그의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갑시다. "

그의 목소리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물들어 있었다. 그런 감정은 나머지 두 후작들도 다를 바가 아니어서, 그들의 얼굴은 인간의 것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제국의 황성에는 본래는 없었지만, 수십 개는 넘을 여인네들의 궁전이 있다. 이 빌어먹을 황제는 어디서 어느 고문서를 보았는지, 고대의 어느 제국의 황제만이 가질 수 있었다던 하렘이란 것을 황성 안에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만 가는 후궁들의 궁전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재정에서 나가는 것이라 재상인 노팅어의 심정을 알만했다.

세 후작이 향하는 곳은 최근에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제 19후궁의 궁전이다. 황제가 자주 들락거린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녀의 궁전엔 황제의 직속 근위대가 물샐틈없는 경비를 서고 있었다.

" 폐하는 안에 계신가. "

궁전의 정문을 수비하고 있던 병사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병사는 그들의 정체을 한눈에 알아보고는 황급히 그 자리에 부복하며,

" 아, 안에 계십니다. "

" 들어가도 되겠는가. "

" 넵! "

감히 그들을 누가 막으랴 그들은 암중에서 이 나라를 지배하는 황제들이었다.

" 으음...................... "

" ...................... "

" 빌어먹을...................... "

궁전에 들어선 순간, 세 후작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에서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시녀, 그녀는 전신이 다비치는 얇은 나의만을 걸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속옷조차도.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한 치의 부끄럼도 보이지 않았다.

"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

나긋나긋한 시녀의 목소리는 어린 동안에 맞지 않는 색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녀를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노팅어 후작은 한발 앞으로 나서며,

" 황제 폐하가 계신 곳으로 안내하거라. "

" 알겠습니다. 따라오세요. "

시녀의 뒤를 따라가 별궁의 복도를 걷던 세 후작 중 가장 뛰어난 무력을 가지고 있던 실베스트 후작이 갑자기 코와 입을 막으며 주춤거렸다.

" 빌어먹을! 두 분 모두 코와 입을 막으시오. 로텐베르그 후작! 정화마법을! 어서요! "

마스터의 외침에, 로텐베르그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곤 캐스팅에 들어갔고, 노팅어 후작은 그의 경고대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 위대한 마나여! 너의 이름으로 내가 긍정치 않는 모든 것들을 정화하라! 프리피케이션!! "

6써클의 마스터 마법사답게 2서클의 정화마법을 순식간에 펼치는 로텐베르그, 그의 마나가 둥근 반원형으로 펼쳐지며 공기 중의 무언가를 정화시키기 시작했다.

" 무, 무슨일이오? 실베스트 후작. "

" 젠장................마약이오. 이 궁전 전체에 마약을 태운 향이 떠돌고 있소. "

세 후작들은 굳은 얼굴로 눈앞의 시녀를 제치고 달려갔다. 황제가 있는 곳을 제대로 짐작한 모양인지, 이제는 공기 중에 분홍색의 연기가 떠다니는 것까지 보였다. 눈앞에 황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방문을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열고 들어갔다.

- 콰앙!

정정한다. 부수고 들어갔다. 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로텐베르그의 매직 미사일 마법과, 실베스트의 마나가 담긴 주먹이 작렬한 문은, 문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나 버렸다. 방안으로 뛰어든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얼어붙어 버렸다.

" ................. "

장관이었다. 넓은 방안 곳곳에는 분홍색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향로가 놓여있었고, 마약에 취한 여인들이 알몸으로 방안에서 뒹굴며 서로를 애무하고 있었다. 그들이 찾는 황제도 다를 바가 없어서, 발가벗고 있는 수십 명의 여인들 속에서 겨우 그를 찾을 수 있었다.

" 황제 폐하!! "

" 응? 이게 누군가. 재상 아니요? 이곳까지 무슨 일이오? "

간신히 고개를 들어 노팅어를 바라본 황제의 눈은 약 기운에 취해서 완전히 풀려있었다. 노팅어의 얼굴을 알아봤다는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 황제폐하, 소신들이 긴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

" 무슨 일이오? 재상의 손에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었단 말이오? "

피식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황제의 말에 노팅어는 엎드린 상태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치밀어 오른 분노에 말문이 막힌 노팅어를 대신하여 실베스트가 나섰다.

" 소신들의 능력이 부족하여 제국의 국토가 저 간악한 신성제국과 쥐새끼같은 삼국연합의 군대에 더럽혀졌나이다. 소신들의 능력부족을 통감하며 황제폐하 앞에 엎드려서 죄를 청하나이다. "

후작의 말은 황제라 하여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 이었다. 황제는 나녀들 사이에서 굳은 듯이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 크큭, 크하하하하하하!! "

몽환적인 분위기의 궁전에 갑작스레 광기어린 웃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후작들은 황제의 웃음소리에 주먹을 세게 움켜쥐며 올라오는 울분을 참았다. 황제의 웃음은 세 후작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자신의 앞에 무릎꿇은 후작들을 기분 좋은 얼굴로 바라보던 황제는 미소를 지으며,

" '그들'을 부르기 원하는 것이요? "

" 송구스럽습니다. "

옆의 나녀가 건네주는 술잔을 받아들어 안의 술을 단숨에 들이킨 황제는 빈 술잔을 눈앞에서 돌려보며,

" 제국은 나의 나라. 나는 이 제국의 주인이니 응당 내가 해야할 일. 좋소이다. '그들'을 부르도록 하겠소. "

황제가 제국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부분에서 세 후작들의 어깨에 무의식중에 힘이 들어가는 걸 황제는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 내일 저녁, 근위기사단의 연무장에 그들이 있을 것이오. 그들을 이끌고 이 제국의 힘을, 나의 힘을 이 대륙에 다시 한 번 각인 시키시오. "

" 알...........겠 습니다. "

후작들은 이를 갈면서도 황제에게 감사의 말을 올렸다. 그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숴진 문을 통해 방을 빠져나가 버렸다. 그들의 입장에선 더 이상 이런 곳에 있고 싶진 않을 것이다. 분홍빛의 연기 사이로 사라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황제는 옆에서 그의 몸을 만지작거리던 나녀들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하며 광기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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