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년제국-63화 (6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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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끝을 향하여..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무시하면서 달려가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검은 갑옷, 검은 망토, 그렇다. 그들은 제국의 황도에서 출발한 황제의 비밀기사단 이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억수같이 내리는 비였지만, 비에 흠뻑 젖은 망토가 그들의 갑옷에 달라붙어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했지만, 그들은 그런 것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들의 최선두에서 달리던 기사가 한손을 들자, 그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정지했다. 선두의 기사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 '그걸' 마신다. "

억수같이 내리는 비 소리에 묻혀버릴 만큼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들 중에 그말을 못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백팩에 손을 집어넣어 한 개의 약병을 꺼내들었다. 붉은 색의 액체가 들어있는, 단단하게 밀봉되어있는 병이었지만, 한번의 손 휘두름으로 봉인 째로 잘려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망설임없이 그걸 들이켰다.

" 후욱! "

" 으음................. "

몇몇 기사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거렸다. 투구 사이의 어둠으로 보이는 눈이 천천히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걸' 마시도록 명령한 최선두의 기사는 잠시 눈을 감고 몸 안을 휘도는 약 기운을 다스린 다음, 붉은 안광을 빛내면서 말했다.

" 이동한다. "

그들은 이때까지 뛰어온 이상의 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빠른 속력으로 향하고 있는 라클코니움 요새는, 한창 전투중이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제국군의 지휘관, 라기스트는 그에 상관하지 않고,병사들을 지휘하여 거세게 라클코니움 요새를 공격했다. 그 제국군의 사령관 라기스트는 공성전이 벌어지는 요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있었다. 무서운 얼굴로 전장을 노려보면서 전황을 살피고 있는 사령관의 옆으로 방금 전장에서 빠져나온 듯한 장교하나가 다가갔다.

" 사령관님!! "

" 뭐냐!! "

"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습니다!! 병사를 물리시는 것이,,,,,,,,,,,,,,,,, "

" 닥쳐라!! 이 기회를 놓친다면 두 번째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공격해라!! 공격하고 또 공격해서 밀어붙여 버려라!! "

라기스트는 거칠게 그 장교에게 소리치곤, 대기하고 있던 장교를 바라보며 대기 중인 예비대를 투입하도록 지시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호기 대신에 뿔나팔을 이용했다.

- 뿌우우우~~~ 나팔소리가 울려퍼지고, 대기중이던 병사들이, 죽음을 향하여 진군했다, 여러번 말하고 또다시 되풀이 하는 거지만, 공성전에서의 마법병단의 힘은 거의 무적을 자랑한다. 평원에서의 야전의 경우, 적과 아군이 뒤석인 난전에서는 함부로 마법을 난사할 수 없다. 상식아닌가? 아군의 마법이 아군을 날려버린다? 삼류 코미디만도 못한 이야기다. 마법병단의 존재의의는 강력한 범위마법으로 인한 화력지원과 그 이펙트로 인한 사기진작효과와 적군의 사기감소 효과를 노리는 것이지, 아군 사기 깍아먹으라고 그들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다만 공성전이라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공성전은 적군이 성벽위로 올라오지 않는 이상은 절대적으로 적과 아군이 뒤섞일 염려가 없으며, 그 말은 맘놓고 마법을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소리다. 다만, 지금처럼 특수한 상황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일반적으로 마법을 살펴본다면, 확실한 위력을 가지고, 다수를 살상할수 있는 마법의 대부분은 80%이상이 화염계 마법이다. 물론, 다른 계열의 마법이라고 위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위력있는 마법은 대부분 고써클에 집중되어 있다. 평소 같았으면 밀집대형으로 뛰어오는 제국군을 향해서 파이어 볼을 난사했을 태지만, 지금은 비가 오고 있었다. 그것도 억수같이.

빗물에 흠뻑젖은 제국군은, 본의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화염마법에 대한 내성이 생긴거나 다름없었다. 파이어 볼이 날아와도, 질퍽하게 젖은 땅에서 폭발해 보았자. 제대로 된 살상력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고작해야 후폭풍으로 몇 명 날아가는 정도. 직격해야 몇사람 죽는 정도니, 밀려드는 사람의 물결 앞에선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살상력을 자랑하는 마법은 전격계의 마법일 것이다. 소금물처럼 전기를 전도시키지는 않지만 물은 금속을 제외한 최고의 전도매체인 것이다.

" 라이트닝 볼트!! "

- 우아아아아아악!

하지만 화염마법 이상가는 이펙트와 함께 떨어진 벼락은 한명의 병사와 주위에 있던 두세명의 병사를 감전사 시킨 것 이외에는 그다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류라는 것의 특성상. 멀리 퍼지면 그만큼 약해지는 것이다. 건장한 병사라면 약간 움찔할 정도박에 되지 않는다. 적병은 수십만인데, 1000여명의 마법사들이 라이트닝 볼트를 일일이 날려서 때려맞출라면, 몇 달은 걸릴것리다. 마나 소모의 문제도 있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활약하는건 마커스의 기사들이었다. 양으로 따지자면 제국에 이기지 못한다지마는, 그 질로 따지자면 제국을 능가한다는 유일한 국가. 그리고 그들의 정점에 서있다는 랜디오르 기사단은 성벽을 누비면서 검기가 맺힌 검을 휘둘러서 인정사정없이 제국군을 베어버렸다. 제국이라도 이렇게 많이 검기를 사용할수 있는 기사를 확보하고 있지는 않다. 과연 기사의 나라라고나 할까. 간간이 제국의 기사들이 그들에게 검을 휘두르며 대적했지만, 숫자상에서 밀리는 건 어쩔수가 없었다.

" 비겁한!! "

몇몇 제국기사들이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지만 마커스이 기사들은 어디서 개가 짖느냐~~~~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그들을 베어버렸다. 기사에겐 기사도라는 지켜야할 법률이 있다. 전장에도 마찬가지로 지켜야할 법률이 있다.

그렇다. '다구리'는 전쟁의 법칙이자 생존의 룰이었다. 그 법칙을 어긴 자는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요새는 폭풍앞의 갈대처럼 흔들거리면서도 낙성되지 않았다. 라기스트는 이를 갈면서 요새를 바라보았다. 전황은 대등. 하지만 저쪽은 요새라는 방어물을 갖추고 있어서 정확히 말하자면 이쪽이 불리하다가 정답니다. 게다가 내리는 비는 병사들의 체력을 자꾸 빼앗아가고 있다. 라기스트의 머릿속은 일순간에 떠오르는 수십 가지의 생각들로 굉장히 복잡했다.

" 젠장!! 후퇴시켜!! "

" 예? "

" 못들었나! 후퇴시키라고!! "

" 알겠습니다!! "

거칠게 외치고 가는 라기스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교가 옆에 있던 나팔수를 재촉했다. 시야를 가릴정도의 비속에서 나팔수는 잇는힘껏 숨을 들이킨 다음,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나팔을 불었다.

- 뿌우우우우우~~~~~~ 나팔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전장에 울려퍼졌다. 제국군은 주위의 부상자를 수습하면서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몇 안되는 장교들의 빛나는 성과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그 후퇴는 질서정연했다. 간간히 날아다니는 화살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의 소리도, 전투도 없었다.

- 우와아아아아아!!

어느순간 들려온 고함소리, 후퇴하던 제국군중 돌아본 몇몇 제국군 병사들은 성벽위에서 함성을 지르면서 날뛰고 있는 삼국연합군의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힘겹게 고개를 돌린 병사들은 옆에서 부상을 입은 채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동료를 부축하며 나아갔다. 내리는 빗물이 그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요새에서 벌어진 전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존재가 있었다. 그는 눈에 들이대고 있던 길쭉한 수정막대를 떼곤 손에 들은 가죽주머니에 조심스레 챙겨넣으며 환성이 아련하게 들려오고 있는 요새를 바라보았다.

" 대단하군, 거의 10시간 이상 공격했는데도 그걸 막아냈단 말인가? "

사내는 질린 얼굴로 요새를 바라보았다. 전장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지만 삼국연합의 병사들이 보여준 악착스러움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 삶에 대한 갈망이라 해도 되겠군. 뭐, 일단 1차 요새탈환 전투는 제국군의 패배인가. "

사내는 품에서 끄집어낸 필기도구로 쪽지에다 무언가를 재빠르게 써 내려갔다. 쪽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해본 그 남자는, 바위틈 사이에 잘 숨겨놓았던 전서용 매가 들어있는 새장을 꺼냈다. 매의 다리에 매달린 통에 편지를 집어넣은 사내는, 허리춤의 가죽주머니에서 육포를 꺼내 한 조각 매에게 건네준 다음, 육포를 먹고있는 매를 쓰다듬었다.

" 너도 힘들겠지만, 한번만 더 움직여 다오. "

- 삐이익!!

새장에서 꺼내져 하늘로 던져진 매는 커다란 포효와 함께 날아 올랐다. 매가 향하는 방향을 확인한 사내는 새장을 챙기며, " 자, 나도 몸을 숨겨야 겠지? "

히죽 웃은 사내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아리키아 요새. 누라의 자랑인 전투요새였으나, 누라의 국기 대신에 임펠리아의 사자기가 휘날리는 요새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성문 사이로 걸어나오는 건 칠흑같은 빛을 자랑하는 흑마와 그위에 않은 영운, 휘하의 주요 군 간부들과 일단의 병력이 천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리키아 요새를 수비하기로한 5군단을 제외하고 아리키아 요새의 성곽을 따라 늘어서 있는 8만 임펠리아의 군대. 그 군대를 이루고 있는 병사 하나하나가 긴장한 눈초리로 흑마위에 않아있는, 임펠리아의 무신을 바라보았다.

" 출발!! "

영운의 함성과 함께, 아리키아 요새를 수비할 2만의 병사를 제외한 8만의 임펠리아 군은 발소리도 기세좋게 요새를 출발했다. 본디대로라면, 아리키아 요새에서 진군을 멈추고, 누라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보려 했지만, 은밀영으로부터 들어온 첩보는 영운이 생각을 바꾸어 진군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 사신이라.................. '

사신이 오길 기대하고 있는 편이었으므로 그들이 온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사신의 중심부. 사신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자의 존재.

' 조슈아 필립이라. '

누라의 왕세자. 아라크네의 정보에 따르면 각 나라에서도 유의해야할 사람중에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 그가 아직 20살을 갓 넘은 나이인 것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아라크네의 인물평은 짜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협상을 할 꺼라면,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에서 하는 것이 정석이다. 궂이 진군시킬 필요가 없는 병사를 진군시키는 이유는, 사신들에게 압박을 주어 약간의 이득이라도 취해보려는 생각이다.

' 얼마나 뛰어난 인재인지, 내눈으로 확인해 보도록 하지. '

영운은 말위에서 미소를 지었다.

말위에서 근엄한 표정을 지은채로 길을 가던 영운이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며 히죽히죽 거리며 웃기 시작하자, 주위에서 행군하던 병사들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거나 저 멀리 보이는 먼 산의 풍경에 감탄하기도 했고, 옆에 있는 동료에게 있지도 않은 딸네미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근엄한 얼굴로 길을 가던 사람이 갑자기 하늘을 보며 웃기 시작하면 누구든 그 사람을 손가락질 하면서 '저거 XX거 아냐?'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XX사람의 존재가 그들에게 너무도 컸다. 영운은 영웅이었다. 임펠리아를 수호하는 무신이고 임펠리아를 승리로 이끄는 군신이었다. 그런 사람을 XX했다고 생각하느니 차라리 현실에서 도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누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 영운이기에 주위의 병사들이 너무 멀리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산의 모습에 감탄을 하건. 하늘의 청명함에 노래를 부르건. 있지도 않은 딸네미 자랑하느라 오히려 XX사람 취급을 당하건, 신경쓰지 않았다.

그 임펠리아군의 본진으로부터 하루 걸어 떨어진 곳에 진군중인 레이네의 철갑기마대와 철각궁기병대는, 그들을 가로막아 긴장감을 조성하는 누라의 군대도 만나지 않고, 누라의 귀족들이 거느리는 사병조차 만나지 않는, 아~~~~~~~~~~~~~~주 여유로운 진군을 하고 있었다. 긴장감 빳빳하게 들린 상태로 요새에서 출발했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긴장이 풀어져서는 아주 소풍나온 사람들 같은 분위기였다.

" 으이구........... "

" 하하. 왜 그러는가. "

" 아닙니다. 앞서나간 정찰병들에게선 무언가 연락이 왔나요? "

" 돌아온 시간이 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얼마 안있으면 오겠지. "

" 그렇군요. 전쟁중이라곤 하지만. 이토록 긴장감 없는 분위기라니.......... 차라리, 내전때가 긴장감이 넘치던 것 같습니다. "

전장에서 긴장감이 풀리는 건 죽음과도 직결되는 문제지만 그들같이 이미 전쟁을 경험한, 그 긴장감이 넘치는 세계를 경험한 자들은 지금의 분위기가 힘겨울 뿐이다. 전쟁에 증독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중요하다던가? 내전때부터 대공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강조하던 말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 차라리 저렇게 떠드는 것이 훨씬 좋을지도 모르겠군, '

레이네는 그렇게 생각하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몇기의 기마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갈색의 하드레더로 무장한 철각궁기병대의 병사들. 아마 그들이 가져오는 건. 레이네가 기다린 소식일 것이다.

" 이봐요! 대장니임~~~~~ "

아아. 저들역시 군기가 빠진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세바스찬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지는 걸 바라보면서. 아마도 전쟁이 끝난 이후에 대공에게 넘어갈 기사들의 숫자를 마음속으로 세어보는 레이네였다.

" ........................ "

전쟁이 끝난 뒤에 벌어진 처참한 광경이 상상된 레이네는 잠시간 몸을 떨었다. 그들에게 애도를 보내자. 그들에게 일어날 일은 비밀로 해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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