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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끝을 향하여..
영운이 돌아간 진채는 대소동이었다. 전 병사들이 밥먹는 건 뒤로하고, 자신이 있던 방향을 향해 무기를 움켜쥐고 전투준비 자세를 취한 채로 노려보고 있었다.
" 전하! 무사하십니까. "
진채의 입구에서 초조하게 우왕좌왕하던 군단장들이 다가오는 영운의 모습에 얼굴을 반색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쳐나왔다.
" 어라. 식사들 하지 않고 뭐하는 건가? "
" 각하! 이 상처는 어떻게 된 겁니까!! "
군단장들의 물음에 영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회피했다. 설마,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렇게 됬다고 하면. 믿어줄까?
" 아무것도 아니오. 병사들이 배고플 텐데. 어서 서둘러서 배급하도록 하시오. 전장에 나와서는 항상 든든하게 먹어야지. "
" 아, 알겠습니다. 정말 아무 일 없으신 겁니까? "
" 무슨 일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걱정 말고, 경계태세를 풀게. "
뭔가 납득하지 못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군단장들을 바라보던 영운은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막사로 향했다.
" 좀 자자................ "
지친 그의 발걸음 위로, 알테미스가 부드러운 빛을 뿌려주었다.
새벽은 알테미스와 아폴론. 절대로 맺어질 수 없는 두 연인이 만날 수 있는 짧은 시간이다. 아침해가 떠오르자 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철갑기마대와 철각궁기병대의 대원들은 차가운 수통의 물을 얼굴에 부려 잠을 쫒아내면서 머리맡에 놓여있는 자신들의 무기를 붙잡고 여느때보다 더욱 정성을 다해 손질하기 시작했다. 기동성을 중시한 기병들이 일일이 취사병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따뜻한 밥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일. 대륙 어느 나라고 마찬가지이겠지만. 기병들은 전쟁 시 본대와 같이 이동하지 않고 단독으로 속도전을 행할 때는 대부분을 건량과 물로 해결한다. 그건 보급에 있어서 사치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임펠리아군도 마찬가지. 기마병들의 대부분은 건량을 씹으면서 무구를 손질하고 있었다. 지휘관인 레이네도 마찬가지. 다만 레이네는 건량을 다 먹고, 기마병들에게 특별히 지급된 말린 과일을 먹고 있다는 것 정도가 다른 점이랄까.
" 정말 지극정성이군. "
갑자기 들린 목소리지만 레이네는 놀라지 않았다. 그가 누군가. 마스터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자다. 뒤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 쯤은,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 '동료'니까요. "
누라의 왕자. 조슈아는 레이네의 대답에 이상하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 동료?? "
" 전장에서 자신을 맡길수 있는, 자신을 지켜주는 존재를 동료라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이 녀석을 동료라 부를 겁니다. 전장에서 이 녀석은 저의 검에 생명을 맡기고 저는 이 녀석의 다리에 생명을 맡기니까요. "
레이네는 마갑을 들어서 애마에 올렸다. 그의 귓가에 애마를 처음 받을때, 대공, 영운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너희들이 검을 고를 때는 어떻게 고르지? 언제, 어디서 부서질지 모르는 그런 검을 고르지는 않을 거다. 될 수 있다면 보다, 확실하게 너희들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명검을 고르겠지. 이 녀석들도 마찬가지다. 타다가 죽어버리면 그만인게 아니야. 검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걸고 너희들과 함께 전장을 누빌 말들이다. 너희들의 눈으로 직접. 너희들의 생명을 맡길 동료를 찾아봐라. '
그래서 선택한 게 이 녀석이다. 이 녀석이라면 자신의 목숨을 맡기는데 주저가 없다.
" 멋진 신뢰관계군. "
말을 마치고 조슈아는 발걸음을 돌렸다.
" 감사합니다. "
조슈아의 발걸음이 멀어지자 레이네는 마갑의 가죽 끈을 조이면서 이를 갈았다.
" 이 자식들. 경계를 어떻게 했기에 적이 함부로 들어와? 죽었다고 복창해라. "
그날따라 경계를 서던 병사들은 쌀쌀함을 느꼈다고 한다.
조슈아는 임펠리아군의 진영을 벗어났다. 물론 4서클의 인비저빌리티를 건 상태로. 확실히 투명 마법이라면 보초에게 걸릴 이유가 없었다. 조슈아는 웃고 있었다. 가지고 싶다! 멋지지 않은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매혹 시킬줄은 몰랐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감탄사를 정리하며 걸아가던 조슈아는 자신을 흔드는 누군가의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 왕자님!! "
" 아아, 칼스. 어지럽다고, 너무 흔들지 말게. "
" 전하. 저곳엔 가시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 아아 그랬지. 미안하네. "
" 미안하다고 될 문젭니까! 몇 번이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왕자님은 저들에게 있어서 인질로 잠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요!! "
칼스는 자신의 영혼을 담아서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자신의 주군의 영특함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충절 또한 의심할만한 것이 아닌데. 저 빌어먹을 주군은 자신을 가지고 놀고있었다.
" 룰루루~~ "
왕자가 부르는 콧노래를 들은 칼스는 끓어오르는 살기를 억제하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 왕자만 아니면!! '
살기를 억누른 칼스는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물론. 속으로 ' 왕자만 아니면!! '
잠에서 깨어난 임펠리아군의 본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부별로 자신이 머물렀던 천막을 정리하고,한창 연기를 피우고 있는 배식소로 이동하여 배급을 받았다. 군당장들도 배식소에서 배식 받아먹는 것은 마찬가지. 최고 지휘관이 배급받아서 땅바닥에 주저 않은 채로 밥 먹고 있는데 따로 밥 먹을 깡을 가지고 있는 군단장은 없었다.
" 대공전하. 잘 주무셨는지요. "
" 그럭저럭. 자네도 잘 잤나? "
" 넵. "
배식판을 들고 그의 옆에 주저 않은 건 대공직속의 정보기관 은밀영의 총수 게덴이었다. 영운은 열심히 식기를 놀리고 있는 게덴을 보다가 넌지시, " 본국에 도착했나? "
" 연락이 왔습니다. 명령대로 잠복에 들어간답니다. "
흑색창기병대. 영운은 아리키아 요새 공략전을 시작하기 직전에 종군한 흑색창기병을 비밀리에 귀환시켰다. 물론, 최전선에서 싸울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불평이 대단했지만, 영운의 한마디에 군소리 없이 돌아갔다.
" 까라면 까. "
군대의 신성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내리는 절대적인 명령에 저항할수 있는 하급자는 없었다. 저항해 봐라. 명령 불복종 죄로 단숨에 사형이다. 보통이라면 투옥이지만. 지금은 전시니까.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영운은 진지한 얼굴로 게덴을 바라보았다. 게덴에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간신히 들릴정도로 작았다.
" 그거, 진짠가? "
" 넵. 아라크네. 할슈타인 백작각하가 보내온 S급입니다. 살아남은 구 귀족들이 반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
임펠리아에서 아리나스에게 반항하는 세력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벌이는 마지막 발악이라고나 할까. 아리나스가 실시한 수많은 정책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가는 귀족들이, 최후의 힘을 모아 아리나스를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아리나스를 잡을 것인가. 2차 내란 이후에 아리나스는 내란을 빌미로 영주들이 가지고 있던 사병 육성권을 박탈해 버리고 여왕직속의 정규군을 각 영지에 주둔시켰다. 치안권을 빼앗은데 이어서 무력마저 빼앗겨 버린 영주들의 힘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실패확률 100%랄까?
" 저번에도 그랬지만. 용병길드를 그냥 두니 여러모로 문제가 생기는 군. 통제할까? "
" 길드는 전 대륙적으로 퍼져있는 곳이고, 한 곳에 모인다면 한 나라의 힘과도 필적하니, 적으로 돌리기 보다는 다독이시는 게 낳을 겁니다. "
" 이번에 참가한 용병들은 생각이 있는 녀석들인지................ "
" 고용에 돈을 아끼진 않았답니다. 그리고 실력이 있으되 이름이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대거 몰렸구요. 성공하면 이름을 확실히 날릴수 있는 기회 아닙니까. "
영운은 한 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었다. 한 참을 무언가 고민하던 영운은, 식어버린 수프를 훌훌 들이키고 빵을 손에들고 게덴에게 지시했다.
" 수방사 사령관과 근위기사단장에게 급전. 수도에 들어오기 전에 끝내도록. "
" 넵. "
" 아, 근위기사단장에겐 한 가지 더 전해 근위기사단장에겐 전 근위 1,2기사단 소속의 기사들을 유심히 살펴보라고 전해. 아직도 기사도에 불타오르고 있을 멍청이가 있을수도 있다. "
" 넵. "
" 용병 길드의 마스터에게 전해. 오래 살고 싶으면 나랏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봐주는 것도 정도껏 이니까. "
" 알겠습니다. "
" 좋아. 명령은 여기까지. 실행하도록. "
" ..................밥은 먹어야죠. "
" ....................빨리 먹어라. "
그렇다. 먹는덴 개도 안건드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