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년제국-69화 (69/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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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끝을 향하여..

하늘을 찌를 듯이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는 기치창검. 열과 오를 맞추어 심지어는 발소리마저 맞추면서 걸어가는 병사들. 들고 있는 무기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나아가는 발걸음에서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 부대 정렬!! "

임펠리아군의 본진이 다가오는 걸 바라보고 있던 레이네는, 최선두에서서 말을 몰고있는 영운의 모습을 확인하곤 고함을 질렀다. 그들의 대오는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흠잡을 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대형이었지만 그들은 좌우를 슬쩍 바라보며 다시 한번 줄을 맞췄다.

" 발검!! "

- 촤촤촹!!

일제히 검을 꺼내어 얼굴 앞에 곧추세웠다. 철각궁기병대원들은 빈 활을 가슴 앞 까지 들었다.

" 아! "

조슈아는 무의식중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멋지지 않은가. 수천의 기병들이, 늘어서서 자신들의 무기를 치켜들며 경의를 표하고 있다. 저들의 앞을 걷고싶다. 저들의 경의를 받으며, 저들의 충성을 받는, 진실로 황제가 되고 싶다. 칼스는 떨고 있는 왕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다. 저건 버릇을 넘은 천성에 가까운 거라, 고칠 수도 없다. 저 독점욕은.

- 쿵!

병사들이 발을 멈추며 일제히 자신들의 창을 들어 바닥에 내리 찍었다. 그 소리에 놀란 누라의 사신들은 천천히 말을 몰아 병사들의 앞으로 나오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흑마에 타고 있는, 한 손에는 은빛의 창을 들고 있는, 일단 보기에는 굉장히 젊은 사내.

" 훗, "

조슈아는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행동에 당황한 누라의 사신들은 머뭇거리기만 할뿐. 누구하나 그의 뒤를 따르지 못했다.

" 전하,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

" 그만, 칼스. "

자신의 말을 제지하는 주군을 바라본 칼스는 그의 얼굴 표정에 한숨을 내쉬며 물러났다. 자신감에 넘치는, 오만에 넘친 미소가 가득했다.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때의 그의 주군은, 절대 누군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칼스는 한숨을 쉬며 그의 뒤를 따랐다.

" 저자인가? "

영운은 자신의 옆에 서있는 레이네에게 말했다. 레이네는 왕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 넵. "

영운은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서 다가오는 젊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젊었다. 그리고 그 젊음에 걸맞은 오만함이 넘치고 있었다.

' ! '

영운은 그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인재. 동맹을 맺는 것은 좋으나, 과연 어느 정도의 이득을 보고 협상을 끝낼 수 있을 것인지............ 그게 걱정되는 영운이었다.

" 누라의 태자. 조슈아 필립 우로보로스 입니다. "

조슈아가 알기로 임펠리아군의 총대장은, 이번에 새로 즉위한 여왕의 남편, 즉 대공이었다. 그가 비록 왕자라 하나, 반말을 찍찍하며 막대할만한 존재는 아니란 소리다.

" 영운 진 가이런 폰 임펠리아요. 만나게 되어 반갑소. "

대공의 즉위식 당시 아리나스에게서 받은 진 가이런이란 이름. 거기에 아리나스와 결혼하게 되어 폰 임펠리아라는 왕실의 이름까지 얻은 영운의 풀 네임은 그 자신도 말하기를 싫어할 정도로 길었다.

" 하하, 협상을 하기에는 자리가 그다지 좋지 않군요. "

조슈아의 말에 영운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뒤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이십여명의 병사들이 잽싸게 움직여서 거대한 원탁과 그들이 않을 의자를 들고 영운에게 뛰어왔다.

그렇게 회의장이 만들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조슈아는 약간 놀란 얼굴로.

" 여기서..............하자구요? "

" 날씨도 맑고, 바람도 잔잔하니, 못할 것도 없지요. 자! 앉읍시다. "

말을 마친 영운이 앞서서 말에서 내려 의자하나를 차지하고 않았다. 그러자 여전히 황당한 얼굴의 조슈아는 물론이고, 멀리서 우물쭈물하던 사신단들도 겁먹은 얼굴로 다가와 각각 의자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임펠리아 측에서는 레이네와 세바스찬이 각각 의자를 차지했다.

" 병사들은 대기상태로 휴식을 취하도록. 특별한 용무가 아니면 자리를 떠나는건 용납지 않는다. "

" 알겠습니다. "

군단장중 한명이 영운의 명을 받아 병사들에게로 갔다. 영운은 고개를 돌려 누라의 사신들. 그들의 리더라 할 수 있는 조슈아를 보면서 말했다.

" 자. 협상을 시작해 볼까요? "

피안 튀기는 전장. 협상 테이블에서 최초로 이야기를 꺼낸 건 영운이었다. 선수필승이라고, 일단은 먼저 공격한 사람이 유리한건 불멸의 법칙이다.

" 말도 안 되는 조건이오! 침략한 것은 그대들이오!! "

막상 사신간의 리더인 조슈아는 인상 쓰고 앉아있는데 기가 살았는지, 사신단의 사람 중 한명이 기세 좋게 일어나 외쳤다. 영운은 웃었다. 그것은 아주, 냉소적인 웃음이었다.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경멸이 함께 들어있는,

" 뭔가 잊은게 있나본데..............이것은 조건이 아니라 요구요. 아시겠소? "

순간, 누라의 인물들 사이로 찬 바람이 돌았다. 그랬다. 칼자루를 쥔건 임펠리아지, 그들이 아니었다. 당장 저기서 주저 앉아있는 임펠리아군이 수도로 진군을 개시한다면, 수도의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 하지만 1서클에서 4서클까지 마법공식을 모두 넘긴다는 건 무리가 있소. "

조슈아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마도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방대한 마도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누라. 영운이 요구한 것은, 1서클부터 4서클까지의 마법공식과 주문이었다. 대륙의 여러 나라들에도 마법사가 존재하긴 했지만, 누라의 마법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법의 완성도나, 서클의 마법 가짓수나. 제국도 마도에 관한 지식만큼은 누라에 뒤졌다. 오로지 누라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것. 영운은 그걸 요구한 것이다.

" 태자. "

" 왜 그러십니까? "

" 잠시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만? "

조슈아는 갑자기 독대(獨對)를 요구하는 영운을 바라보았다. 영운의 표정에선 아무것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확실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저쪽이었다.

" 좋습니다. 모두들 물러가게 "

기겁을 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저으며 물러가라 명했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조슈아는 한숨을 내쉬곤 그림자처럼 자신의 등뒤에 시립해 있는 자신의 기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 칼스. "

" 넵 "

" 데려가라. "

" 알겠습니다. "

칼스는 아무 말 없이 얼이 빠져있는 문관들을 하나하나 기절시켜서 떠메어다가, 자신들이 타고온 마차가 있는 방향으로 날랐다. 대여섯 번을 그렇게 왕복하자, 기절한 문관들은 모두 처리가 됬다. 애초에 그에게 쏟아질, 잔소리들을 원천봉쇄하는, 멋진 방법이었다. 기절한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레이네와 세바스찬은 미리 언질 받은 것이 있기에 영운의 손짓에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자신들의 부하들 쪽으로 다가갔다. 주위의 방해꾼들이 완전히 처리된 것을 확인한 영운은, 눈앞의 조슈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합시다. 태자. 황제가 되고 싶지 않소? "

영운의 이야기에 조슈아는 크게 놀랐다. 영운은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 굳이 4서클까지의 마법공식을 요구하는 건 아니오. 원한다면. 아리키아 요새와 이때까지 우리가 점령했던 모든 지역에서 물러나겠소. "

조슈아는 놀랐다. 파격적이다. 아무리 기적적으로 병력의 피해가 적었다고 해도, 그냥 물러날 정도로 병력의 피해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조슈아가 의심을 품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 조건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요. "

" 당연한 말을. 임펠리아가 원하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오. 향후 10년간 누라와 임펠리아의 동맹이오. "

" ! "

조슈아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단 대륙에 알려져 있기로 임펠리아는 제국의 속국이고, 누라는 제국의 적국인 삼국연합의 일원. 동맹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조슈아의 얼굴 표정에서 그걸 읽은 영운은 미소를 지으며,

" 물론, 절대적으로 비밀인 동맹이오. 굳이 4서클까지의 마법공식을 요구한 것도, 어느 정도 구색은 맞추어야 하지 않겠소? "

맞는 말이다.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물러간다는 건 의심해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확실히 마도대국 누라에게 마도의 지식을 요구한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게 만드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제일 놀라지 않았는가.

" 놀랍군요. 동맹을 맺기 위해 침공한 것이란 말입니까? "

" 아, 그건 제국의 부탁이었소. 하지만 이 동맹은, 귀국과, 본국에 모두 이득이 되는 일이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시오. "

" .................. "

" 본국은, 언제까지 제국의 밑에 억눌려 있을 생각이 없소이다. 그건 백성들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같이 원하는 바이며 작게는 말단의 신하들. 크게는 본국의 지배자인 여왕폐하까지, 원하는 바이기도 하고. "

" 그렇다면 임펠리아는 단독으로 제국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이오? "

" 지금은 무리요. 하지만 5년 후라면, 가능하지. "

놀라운 자신감이다, 조슈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정도의 자신감이라니.

" 그 동맹으로 누라가 얻는 바는 무엇입니까. "

" 마커스와 소니아. 태자의 야망이, 누라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말이오. "

조슈아는 그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제국이라는 강력한 적을 앞에 두고 세 나라가 힘을 합친 것이 삼국연합이다. 그의 말을 신용하여. 제국이라는 적이 사라지면, 서로 물어뜯기 시작할거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조슈아는 잠시 달아오른 머리를 진정시켰다. 아니,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굳이 제국이 멸망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멸망시키지 못하더라도, 제국의 시선을 끌어줄 수는 있다. 임펠리아는 제국의 속국 중에서도 제일가는 강국이다. 10만, 아니 20만 이상의 병력동원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제국을 멸망시키진 못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사태까진 몰고 갈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눈앞의 임펠리아군은 대륙 어디에 내어놓아도 꿇리지 않을 강병들이다. 한참을 궁리하던 조슈아는, 신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 하지만 소니아라면 몰라도................... 마커스는 문제가 좀 있소. "

마커스와 소니아의 능력을 비유하자면 잘 정련된 창과 단단한 방패로 비유된다. 야전에서도 강력하지만 공성전에서는 더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누라의 마법병단. 야전, 특히 평원에서의 전면전투에서는 최강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마커스의 기사단. 일장일단. 애초에 비교할만한 대상이 아니다.

" 그렇다면 태자의 생각은? "

" 군사적, 특히 기사단 육성에 관해 전면적인 협력을 요구하지요. 아 그에 대한 대가라면 대공이 말한 4서클까지의 마법공식. 넘겨드리리다. "

" 군사적인 협력이라 하면............. "

" 내 보니까 임펠리아의 기사들은 대단했습니다. 본국의 기사들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말인데. 본국의 기사들을 귀국에 파견하여 훈련을 받게 하고 싶습니다만? "

" 기사들을? "

"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본국의 기사단 수준 이래봐야......... 소니아의 기사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지요.

당연한 요구. 마법병단에 치중되어 있는 누라의 군대는, 당나라 군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다. 그나마 수준이상의 능력을 자랑하는 건 보병병력이다. 하지만 그것도, 마법병단을 보호하기위해서일 뿐이다. 결코 출중한 능력을 자랑하지 않는다.

" 흐음.............. "

" 무리한 조건도 아닐 텐데요? "

확실히, 그의 말대로 4서클의 마법공식의 대가라면 결코 비싸지 않다. 영운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일어나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슈아도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 기사들은 언제? "

" 일단은 중신들과 자세한 사정을 의논해야 하니까........... 금방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단은 마법공식을 대가로 본국에서 물러난 것으로 해두도록 하지요. "

" 좋소. "

그들은 손을 잡고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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