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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끝을 향하여..
아리나스는 굳은 얼굴로 할슈타인 백작이 들고 온 서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이 정보의 출처가, 아라크네가 아니라면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서류에 써 있었다.
" 이것이............. 제국의 힘이었던 건가요? "
집무실에 않아있던 아리나스는 손을 떨면서 할슈타인 백작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힘. 범상치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이것은 그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 마스터? 1000명의?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마스터란 이름이, 이렇게 함부로 튀어나와도 될 정도로, 가벼운 것 이었던가요? "
" .............진정하십시오. "
아리나스는 얼굴을 손으로 덮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할슈타인 백작은 냉철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 확실히, 그 정도의 힘이 아니라면, 대륙의 제일가는 수수께끼. 그 참사에 대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습니다. "
백여년전에 있었던. 65만의 대군을 하룻밤 만에 몰살시킨 존재는.........아니, 존재들은 그들일 것이다. 1000명의 마스터. 인간의 한계에, 극에 다다른 자들.
" 크으윽............. 예상한 것 이상의 힘이에요. 이 힘을, 과연 당해낼 수 있을까요? "
"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절대 불가능이지요. "
마스터를 상대하는 건 마스터뿐이며, 그 이론에 따르면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1000명의 마스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마스터라는 이름이 아리나스가 말한 것처럼 이렇게 쉽게 거론될 이름인가?
답은 '아니다'다.
제국에 과거의 치욕을 되갚고, 대륙의 패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 아리나스와 임펠리아에게는 가장 강력한 적이었다. 어떻게 상대할 수도 없는, 너무나도 강력한 적.
" 크으........... 일단은. 이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세요. 작은 것이라도 좋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더라도 좋아요. 아시겠습니까? "
" 알겠습니다. "
" 서로의 삼국연합군이 작살난 이상, 신성제국군도 오래가진 않겠군요. "
" 라니움은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소극적인 태도로 전투에 임하고 있습니다. 신성제국의 본국에서는, 어서 공격하라고 난리치는 모양인데, 그는 그 정도 재촉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답니다. "
" 이런 사태를 예상이라도 한 것 같군요. 만일 그가 무사히 후퇴할 수 있다면, 신성제국은 전력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요 "
" 말씀대로 입니다. 제국과의 전투에서 있었던 피해를 제외한다면, 본국과 마찬가지로 이번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되겠지요. "
" 으음............. "
고민에 잠긴 아리나스. 애초의 계획대로라면, 세 나라는, 1,2년으로는 복구가 안 될 정도의 피해를 입고 지쳐서 쓰러져야 한다.
"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았지만............... "
" 신성제국은 본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신성제국과 임펠리아는 난공불락의 산맥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가 가로막고 있다. 천연의 방호벽. 확실히 에베레스트가 가로막고 있는 한 임펠리아와 신성제국이 싸울 일은 없었다. 아리나스는 할슈타인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제국의 상태는? "
" 한창 씨를 뿌려야 할 때, 비상소집이 이루어져서 대부분의 장정들이 군으로 빠져나가 제대로 파종(播種)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몇 년간의 흉년에 이어 이번 가을에는 제국에 최악의 식량난이 덮치리라 예상합니다. "
" 그렇군요. 하지만 남부지방은 대륙 최고의 곡창지대 입니다. "
"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지방에서는 귀족들의 수탈이 극에 이르러서, 대부분의 농민이 이탈하거나, 스스로 손에 무기를 들고 도적이 된다고 합니다. "
" 그 유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백성의 수는 나라의 힘입니다. 요원들을 파견하여 유민들을 우리나라 쪽으로 이끌도록 하세요. "
" 넵. 유능한 요원을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
여왕의 명령을 머리 깊숙이 담아놓은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 일거리가 떨어졌으니, 이제 다시 일하러 가봐야 한다. 가뜩이나 많은 일거리에 또다시 일이 더해진다. 이 소식을 들은 부하들의 절규가 귀에 들려오는 것 같아 백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는 집무실의 문을 나섰다.
" 밖에 레미엘 있죠? "
그녀의 부름을 들은 레미엘은 잽싸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 부르셨습니까. "
" 전의 그 이야기................어떻게 되었죠? "
" 이미 일당과 증거품들을 모두 확보하였습니다. 프레일 경과 합동으로 그들을 검거할 생각입니다. "
" 수고하세요. 일반 백성들에겐 피해가 가선 안됩니다. "
" 명심하고 있습니다. "
아리나스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다시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려던 레미엘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발을 멈췄다.
" 피를 보는 건........... 최대한 조금이었으면 합니다. "
" 알겠습니다. "
레미엘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굳은 얼굴로 방문을 나온 레미엘은 주위의 기사들에게,
" 그대들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곳을 수비하도록. "
" 알겠습니다. "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떡이는 부하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는, 입술을 깨물고 발을 바삐 놀렸다.
왕성에는 수많은 방이 있다. 귀족들이나 외국의 사신들이 머물기 위한 휘황찬란한 방도 있지만, 은밀한 대화를 위한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방도 다수 있다. 레미엘이 향한 곳은 그중 하나였다.
"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방에 들어선 레미엘은 허리를 구부려 안에 않아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 저도 온지 얼마 안 되었으니, 신경 쓰실 필요는 없소. 레미엘 경. 어서 않으시오. "
" 감사합니다. "
그녀가 않음과 동시에 작은 불꽃이 일어나 방안을 밝혔다. 작은 등잔불 아래서 레미엘과 마주 앉은 건 수도 방위 사령부의 사령관직에 있는, 프레일 레오톤 이었다. 레미엘은 그를 바라보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 아라크네로부터 명단은 전달 받으셨겠지요. "
" 물론이오. 이미 수도에 위치한 병력들을 움직여서 그들의 자택과 아지트 주위에 배치해 두었소. "
" 성안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
그녀가 맡고 있는 근위기사단에서도, 몇몇 기사들이 그들에게 동조해 있는 상태였다. 레미엘은 그들을 일부로 그들이 거사일로 잡은 당일에 성문의 경비를 서도록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 물론, 함정이다.
" 하지만............ 이들은 어쩌지? "
난감한 얼굴로 말하는 프레일의 말에, 레미엘의 얼굴도 난감함으로 물들었다. 일에 동조한 귀족들이야...... 체포당시에 반항한다면 즉결처분으로 죽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반란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그들은. 그들 수준에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 그들에 대한 건. 여왕폐하께서 결정하시겠지요. 저희들은 위협이 되는 존재들을 제거만 하면 됩니다. "
" 그렇군. 알겠소. "
프레일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들은 얼굴을 맞대고 자세한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임펠리아의 수도 루레아드의 내성에는 귀족들의 저택이 밀집해 있는곳이 있다. 수도에 저택을 가지고 있다는 건 권력과 부귀의 상징이고, 그 권력과 부귀의 정도에 따라 저택의 크기가 비례하여 커진다. 수도에서 제일 커다란 저택을 찾아보라면 역시 얼마 전까진 무상의 권력을 휘두르던 라인버거 공작 저택과 도이체 공작 저택일 것이다. 과거의 부귀영화를 상징하기라도 하듯이, 그들의 저택은 다른 저택에 비하여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하지만 지금은 몰락해가는 가문의 상징일 뿐이다.
라인버거 공작은 생전에 2남1녀를 자식으로 두었다. 본디대로라면 그들은 아비의 죄에 연좌되어 남자는 사형에 처해지고 여자는 노예로 팔려갔겠지만, 아리나스는 그들의 처분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현재 라인버거 가문의 가주는 큰아들인 세틴 라인버거다. 성격적으로도 무난하고, 아랫것들에게 인자하여, 윗사람으로써 흠잡을 것이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일장일단이랄까. 이 사람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 형님! 도데체가! "
" 미안하다. 아버님의 원수를 갚는거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울컥해서...... "
그의 동생인 라인버거의 차남. 클루덴은 형님을 한심스런 얼굴로 바라보았다. 흠잡을 것 없는, 형님이지만 저것이 문제였다. 유혹에 너무 잘 넘어갔다.
" 형님. 몇 번이고 말씀 드렸잖습니까. 이번일은 정말 위험합니다. "
" 후우............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버님의 원수를 갚는다는데. 너는 그분의 원수를 갚고 싶지 않은 것이냐? "
클루덴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 좋은 자신의 형님은 이런 쪽엔 서투른 인물이었다.
" 형님 자칫하다가는 아버님의 원수를 갚기 전에 살아남은 라인버거의 일족들이 죽습니다. "
" 그러니까 너에게 의논하는 것이 아니냐. 어찌하면 되겠느냐. "
클루덴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빠졌다. 여왕은 용의주도한 인물이다. 세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몸을 일으켜서 자신의 아버지와 도이체 공작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던가. 자신들의 이 행동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 마지막 기회인건가. '
발을 뺄 시간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둘러야 한다. 근위기사단과 수방사의 병력이 움직여서 포위망을 형성한 후에 발을 빼려한다 해도 소용없다.
' 제길!! '
형님을 유혹한 무리들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들은 시국을 볼줄 모른다는 말인가? 돈으로 끌어모은 어중이떠중이들로, 왕위를 도모하려 하는 건가? 클루덴은 신중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이 반란은 실패할 겁니다. 아니,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
" 그 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느냐? "
" 첫째로, 명분입니다. 나라간의 전쟁에서도 명분없는 전쟁은 필패합니다. 이 대륙의 지배자라는 저 제국에서도 명분 없는 전쟁은 하지 않습니다. 득보다는 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
" ................. "
" 아리나스 여왕은 선왕에게 선택된 아주 합법적인 왕위계승자입니다. 만일 그녀가, 실정(失政)을 거듭하여 나라꼴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명분이 됩니다. 하지만 형님이 보시기에 이 나라가 잘못되어가는 것 같습니까? "
" 아니지. 내 정치에는 무감각 하지만 영지의 사람들이 훨씬 살기 좋아졌다는 보고는 받아보았다. "
" 그렇습니다. 둘째로, 시기의 문제를 들 수 있겠습니다. 아버님의 내란은 둘째치고서라도, 적어도 비텐마이어 백작이 일으킨 2차 내란에 호응하여 일어났어야 합니다. 지금 와서 반란을 일으키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정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마 왕국 내에서 그들에게 반발하는 반란과 폭동이 연이어 일어날 겁니다. 특히, 이번에 노예였다가 평민이 된 사람들이 여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형님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
" 거의 신과 같이 떠받들고 있지 않느냐. "
" 그렇습니다. 여왕이 그들의 손에 의해 강제로 떠밀려난다면, 평민이 된 노예들이 얌전히 있을까요? 이미 그들은 자유를 맛봤습니다. 차라리 예전으로 돌아가느니, 반란을 일으켜서라도 그들을 없애려 할 겁니다. "
" 또 이유가 있느냐. "
" 셋째로 방법의 문제입니다. 돈으로 긁어모은 자들은 신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왕성을 수비하는 건 근위기사단장. 레미엘 할슈타인 입니다. 그녀는 이미 마스터의 검사이고, 여왕의 곁을 떠나는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마스터의 검사를 상대로 피라미가 몇 명을 달려 들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그녀의 보호를 뚫고 여왕을 어떻게 한다 해도, 그들은 병력이 없습니다. 거기에 얼마 있으면 대공이 이끄는 12만 병력이 귀한 합니다. 그 병력을 상대할 만한 병력을. 그들이 과연 확보할 수 있을까요? "
그의 동생이 하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옳은 이야기라, 세틴은 얼굴을 감싸 쥐며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클루덴은 그를 가많이 바라보다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 여왕은 용의주도한 사람입니다. 그녀가 공주였던 시절. 아버님과 도이체 공작이 지지하는 두 왕자가 왕이 될 거라 생각했지. 그녀가 왕이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그녀는 치밀한 준비로 그 불리함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미 이 반역의 정보는 그녀의 귀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
"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 "
" 아닙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일단은, 할슈타인 백작에게 접촉하는 겁니다. "
" 백작에게?? "
" 예. 그는 지금 여왕에게 신뢰받는 중신 중에 하나입니다. 과거 아버님과의 인연도 있으니, 부탁한다면, 거절하진 않을겁니다. "
" 후우................. "
힌숨을 내쉬는 자신의 형을, 클루덴은 초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세틴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그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 네 말대로 하자. 일단은 백작에게 사람을 보내야 하겠구나. "
" 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도록 하겠습니다. "
" .........미안하다. "
" 아닙니다. 형님. 저는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 그래. "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형을 뒤로하고, 클루덴은 걸음을 바삐놀려 방에서 벗어났다.
' 서둘러야 한다.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백작을 만나야 한다. '
" 집사! 마차를 준비하게! 서둘러서!! "
그의 외침이 커다란 저택을 울렸다.
현 임펠리아에서 개인적으로 만나기 힘든 사람을 꼽자면 할슈타인 백작은 분명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다. 한 때 아리나스 여왕을 거부하는 쪽에 있었던 사람인지라 본인이 몸을 사려 사람들을 만나는 걸 자제했고, 그가 맡고 있는 아라크네의 업무가 좀 바쁜 일이던가? 클루덴이 할슈타인 저택을 찾아갔을 때, 천운이랄지 필연이랄지, 할슈타인 백작은 저택에 와있는 참이었다. 클루덴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하인에게 자신의 방문을 백작에게 알리도록 전했다.
난감한 얼굴의 백작은 오랜만에 함께하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딸의 얼굴도 난감함으로 물들어 있는 건 마찬가지.
" 클루덴 라인버거 공자가 찾아왔다고? "
" 그렇습니다. 백작님. 거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뵙고 싶으니 꼭 만나달라고............... "
하인의 말에 백작은 고민에 빠졌다. 반란의 수괴의 자식과, 그 수괴의 제일가는 참모의 만남. 최악의 경우, 그들이 제차 반란을 꿈꾼다고 까지 와전되어 버릴 수 있는 문제다.
" 같이 가겠느냐. "
일단은 만나보기로 결정한 백작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딸을 바라보았다. 레미엘은 고개를 저었다.
" 아버님을 만나러 온 것인데, 제가 동행할 이유는 없겠지요. 다녀오십시오. "
" 알았다. "
백작은 딸에게서 고개를 돌려 대기하고 있는 하인에게 말했다.
" 접견실로 모시거라. "
" 알겠습니다. "
하인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는 방에서 나갔다. 레미엘은 걱정스런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