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년제국-71화 (7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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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끝을 향하여..

클루덴이 않아있는 곳은, 과연 백작가의 접견실이랄까. 화려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보석이나 온갖 장식물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천박한 화려함이 아니라 무언가 은연중에 멋이 풍기는, 그런 화려함이었다. 물론. 클루덴이 주위를 둘러보고 그걸 감상할만한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다. 그의 눈에는, 주위의 고풍스런 장식이나 눈앞의 탁자에 놓여있는 차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급한 마음에 파를 들이키다 혀를 덴 것이 몇 번일까. 드디어 그가 기다린 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발소리에 이어 문이 열리고, 그가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공자. "

클루덴의 급한 마음과는 달리, 백작은 침착했다. 과연 정보기관의 총수랄까. 이런 대담에 있어서는 절대로 자신의 속마음을 함부로 내비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정말 오랜 만이군요 백작. 건강해 보이시네요. "

" 감사합니다. 앉으시지요. "

백작이 자리를 권하자 잽싸게 앉는 클루덴. 백작은 시종일관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 달깍!

"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

기다렸던 물음이다. 클루덴은 얼굴을 최대한 백작에게 접근시키고 간신히 들릴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백작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

" 그렇습니까. 무슨 일이 길래 여기까지 오신 것인지....... "

" 말하기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백작도 잘 아시는 저의 형님께서 무도한 자들의 꾀임에 넘어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일에 가담하셨습니다. "

" 서,설마......... "

" 예. 백작이 상상하는 그대로 입니다. 정말 큰일이지요, 그래서 제가 황급히 백작을 찾아온 것입니다. "

백작은 긴장했다. 설마 동참을 권유하는 건 아닐 것이다. 정기적으로 왕궁에 드나들고, 수시로 여왕의 집무실에 출입하며, 여왕의 근위기사단의 단장을 딸로 두고 있는 자신에게...........

" .................... "

생각해보니 딱이다. 어쩌면 자신을 끌어들이러 왔을지도........... 자신은 만일 끌어들인다면 득이 되는 인물이지, 해가되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 늦게나마 형님은 이번일의 심각성을 깨달으시곤, 발을 빼려 하시지만, 쉽지 않은 일이어서. 방법을 찾아보다가 백작님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

과연, 백작은 고개를 끄떡였다. 형의 실수를 무마하겠다는 건가. 과연 어릴 적부터 수재소리를 들으며 자란 인물이었다. 상황의 불리함을 깨닫고는, 귀족들의 무모한 행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쉬운 일은 아니군요. 제가 알기로 이미 반역자들의 멤버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여왕폐하의 손에 넘어갔다 합니다. 명단을 본 폐하께서 진노 하셔가지곤, 수방사 사령관과, 제 딸아이를 불러서 모조리 체포하란 명령을 내리셨다합니다. 얼마 안 있어, 체포 작전이 시작될 듯 하던데........... "

클루덴은 그의 말에 전신의 피가 싸늘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왕에게 넘어간 명부 상단에 라인버거 공작가의 이름이 적혀있을 거란 이야기다. 다급해진 클루덴은 백작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 어려운 일인 줄은 압니다만,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

그냥 일어선다면 자신의 옷자락이라도 붙잡고 늘어질 기세다. 백작은 쓴웃음을 짓고는 손을 뻗어 울상이 되어버린 젊은 사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한때, 주인으로 섬겼던 자의 자손이니,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최선을 다해보지요. 잘 아시겠지만, 절대로 함부로 움직이면 안됩니다. "

" 물론입니다. "

클루덴은 훨씬 밝아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정말 감사합니다. 이로써 저희 일족도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

" 천만의 말씀을, 저야 해야 할일을 한 것뿐이니,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

자리에서 일어나 저택을 나가는 클루덴을 전송하기 위해 그와 동행한 할슈타인은 낮은 목소리로 절대로 함부로 움직이지 말 것을 계속 당부했다.

" 영특한 분이니.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안녕히 가십시오. "

" 예. 그럼 이만. "

- 짜악!

클루덴이 올라탄 것을 확인한 마부는 채찍을 휘둘러 마차를 출발시켰다. 천천히 출발하여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마차를 전송한 백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되면, 아리나스를 찾아가 보고를 해야 한다. 과연 아리나스가 그것을 허락해 줄것인지......... 걱정이 되는 백작이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서 레미엘이 있는 방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백작의 머릿속에선 온갖 정보가 왔다갔다 거리며 무수한 시나리오를 조합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찾아서, 여왕에게 말하면 된다. 아리나스가 그들의 씨를 말리생각이 아니라면, 그가 내놓은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것이다. 아니,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무래도 딸과 상의를 해봐야할 것 같아 백작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다행히 그가 레미엘과 이야기를 나누던 방은 접견실 바로 옆방이었다.

백작과 이야기를 나누던 방에서 차를 마시던 레미엘은 백작이 들어오자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약간 굳어있는 백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자신이 느끼는 솔직한 소감을 이야기 했다.

" 대단한 인물이군요. "

" 들었느냐? "

" 들을 의도는 없었습니다만............... 바로 옆방이었으니, 듣기 싫어도 들리던데요. "

레미엘의 말에 백작은 고개를 흔들었다. 레미엘은 자리에 앉는 백작을 바라보다. 신중한 말투로 말했다.

" 완벽을 기하기 위해............. 아직은 포위망이 완성되진 않았습니다. 확실히. 발을 빼고자 한다면. 지금뿐이죠. 설마, 알고 온 걸까요? "

" 그건 아닐 것이다. 클루덴 2공자는 현명하기로 이름난 사람이 아니더냐. 자신의 형이 동참한 일에 놀라서 그걸 무마하기위해 나를 찾았음이 분명하다. "

" 여왕폐하께서, 피는 되도록 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이 마음을 돌린다면, 여왕폐하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실 겁니다. "

" 정말이냐? "

" 예. 특별히 재게 명령하셨습니다. "

그렇다면 희망이 있다. 음모와 모략은 자신의 주특기가 아니던가. 그중에도 가장 자신 있는 일이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이었다.

" 밀고로 하면 되겠다. 라인버거 공작가에서 반란 음모를 파악하여 밀고 했다는 식으로 나가면 되겠지. "

레미엘은 고개를 끄떡였다. 확실히 무리 없고 가장 적절한 방법이기도 했다. 음모를 꾸미는데 동참했지만, 그걸 밀고하여 용서받은 일은. 찾아보자면 대륙 여기저기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 간만의 휴식인데................ 다시 입궁해야 겠구나. "

백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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