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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끝을 향하여..
바티스타는 성벽에서 들어오는 보고를 들으며 상당히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 아무 변화가 없다고? "
" 그렇습니다. 간간히 보초들의 모습만 확인될 뿐,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
" 그런가............... 알았다. 계속 수고하도록. "
" 알겠습니다. "
정규적인 보고는 계속 들어왔지만, 그동안 들어온 모든 보고들의 내용은 같았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라고,
" 후퇴할 생각이 없나? "
" 이 어둠 속에서 일반 병사들이 보는 것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신용도가 떨어집니다. 차라리 한번 찔러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 병사를 보내보자는 건가? "
" 기병위주의 병력을 내보내서 가볍게 건드려 보는 겁니다. "
바티스타는 고개를 끄떡였다.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으니, 직접 가서 보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병사들은 언제든 출동이 가능한 상태였다.
" 1000명의 기병이면 적당하겠지. "
" 그정도면 적당하리라 생각합니다. "
로너는 말을 하면서도 바티스타의 얼굴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사람의 영혼을 꿰뚫는 듯한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는,
'나는 당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걸 알고있다.'
라고, 씌여 있었다.
" 내가 직접 나가도록 하지. "
" 역시. "
로너는 예상하고 있던 말이 나오자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저 성질 급한 사람이 자신의 성격을 이렇게 다스리며 요새에 처박혀 있던 것도 어찌 보면 참 많이 참았다고 말해야 될 것이다.
" 말리지 말게. "
" 말릴 생각도 없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직접적인 교전은 삼가시고, 사령관님이 어느 위치에 서있는지를 기억해 주십시오. "
" 걱정말게. "
바티스타는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대검을 등 뒤로 둘러메었다. 어깨위로 비죽이 솟아나온 대검 자루를 확인한 바티스타는 의자에 걸려있는 망토를 움켜쥐고는 방을 나섰다.
바티스타를 따라나갈 경기병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중장갑을 걸치고 말에 올라타는 기사에게서 갑옷만 제거하면 경기병이 만들어진다. 기병의 대부분은 기사들이다. 그들은 두터운 갑옷을 입고 적진에 뛰어들어 무력한 보병을 도륙하는 것을 명예로 아는 존재들이다. 두터운 갑옷은 그들의 자존심. 그 자체였다. 전장에 나가는데 있어서 갑옷을 입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행위였다.
" ............... "
요새의 총사령관이 그들의 앞에 서있으니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그들의 눈앞에 서 있었다면 당장에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경장갑을 걸치고, 야용하는 무기를 손에 들은 그들은 사령관의 인솔에 따라 불만이 가득 찬 와중에도 천천히 성문으로 나아갔다.
" 성문을 열어라! "
바티스타가 이끄는 기병이 다가서자, 성문의 조정을 맡고 있던 백부장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두개의 도르래로 열리게 되어있는 요새의 문은, 그 규모만큼이나, 무게도 만만치 않아. 한번 성문을 여닫는 데는 도르레 하나당 장정 십여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움직일 정도였다.
-끼이이 천천히 육중한 성문이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말을 몰아 열리는 성문사이로 나아가며 바티스타는 나직한 어조로 그를 따르는 기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 적과의 교전은 최대한 자제하도록. 우리의 목적은 적진의 현재상황을 정찰하는 것이지, 적의 공격이 아니다. 비상시,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교전을 불허한다. 알겠나. 명령에 불복하는 놈이 눈에 띄면 내 손으로 베어버리겠다. "
" 넵. "
살기가 가득한 그의 명령에 기사들은 불만에 가득하던 정신을 바짝 차리고선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성문을 완전히 벗어났음을 확인한 바티스타는, 대검을 풀어 손에 든 채로 말을 박찼다.
" 가자. "
- 두두두두!
1000기의 기마가 질주하는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요새의 정면에서 제국군과 대치하고 있는 것은, 신성제국 원정군에서도 가장 정예병인 1, 2군단. 그들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말발굽소리에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동료들과 함께 진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라니움은 작전 중에 혹시라도 야습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병사들에게 세세한 지시를 이미 내려놓은 상태였다. 평소의 철저한 훈련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병사들은 라니움의 명령대로 충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야습에 동원된 기병은 보통 기병이 아니었다.
" 적진이다! 모두 말 등에 몸을 최대한 붙인 채로 속력을 올린다!! "
보통, 그러니까 백여Kg은 될 갑옷을 입고 탔다면 이정도의 속력은 나오지 않는다. 기사들은 평소에는 경험하지 못한 속력에 눈앞이 아찔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와중에도 충실히 속력을 올리렸다
"교전은 최대한 피하고! 적진의 상황을 눈에 담아라! "
말도 안 되는 명령은 내리며 바티스타 스스로도 몸을 숙이며 대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순식간에 적의 진영이 다가오며, 움직임이 무거운 중기병을 예상하고 그에 대응하던 신성제국군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무서운 속력으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교전을 삼가라곤 했지만 속력 자체가 무기였다. 중갑기병이 그 무게에서 오는 충격량을 무기로 삼는다면, 경기병은 그 속도에서 오는 충격량을 무기로 삼는다, 말에 타고 그를 제어하는 기사들도 경험하지 못한 속력에 쩔쩔매고 있는데, 감히 그 앞을 가로막으며 자신의 용기를 자랑하는 병사들은 없었다. 밤잠도 있고 막사 안에서 퇴각계획을 점검하던 라니움은, 갑자기 진영안이 소란스러워 지자, 크게 놀라서 막사에서 뛰어나왔다.
" 무슨 일이냐! "
마침 눈앞을 지나가는 병사를 붙잡아 자세한 사정을 물었다.
" 제국의 야습입니다! 기병들인데, 그 속력이 저희들로써는 잡을 수 없을정도라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진영 안을 휘젓고 있습니다! "
" 알았다. "
정확히말하자면 야습이 아니고 정찰이지만, 이걸 누가 정찰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라니움은 병사를 놓아주고 자신의 애검을 챙겨든 다음, 막사 옆에 묶여져 있는 애마에 올라타 라니움은, 말을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으로 몰았다.
무서울 정도의 속력이었다. 신성제국군이 대형을 취하기도전에 그들이 달려와 취하고 있는 대형의 중앙으로 뛰어들어 병사들을 흩어놓았다. 거기에 그 속도는, 슬쩍 치이기만 해도 사망감이다. 전장이었다면 옆의 동료를 의지하여 굳게 버텼을 병사들이었지만, 아직까지 대열이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옆에 의지할 동료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밀려오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들은 마치. 늑대무리속의 양떼와도 같았다.
' 이정도면 되겠지. '
전 속력으로 뛰어다니며 신성제국군의 진영을 유린하던 바티스타는, 차츰 조직적인 대항을 시작하는 신성제국군을 보곤, 슬슬 진영에서 빠져서 요새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지금까지는 경기병의 속력으로 병사들의 공격을 피했지만, 한참을 전속력으로 달린 말들이 서서히 지쳐가, 속력이 떨어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져 바티스타는 말고삐를 요새방향으로 돌렸다. 속력을 내어 진영을 빠져나가려 할 때, 그들의 진로를 누군가가 말을 몰아 가로막더니, 그들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1000명의 기병을 상대로 돌진하다니, 겁이 없는 녀석이라고 비웃던 바티스타는, 그가 휘두르는 검에선, 마나와는 또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엉기더니, 검 자체가 빛의 검으로 화하는 것을 보고는 놀라움에 그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 홀리소드! 템플 나이트! 라니움 아이게스! "
신성마법을 통달한 팔라딘들은, 신의 힘을 자신의 몸이 아닌 검에 강림시켜 스스로가 성검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신성제국에서 단 13명 존재하는, 13인의 템플 나이트. 그 중 하나인 라니움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부웅!
육중한 그의 대검이 공기를 가르며 휘둘러졌다. 그의 마나가 대검에 흘러서 엷은 검기를 씌웠다.
라니움은 기병들의 맨 앞에서 질주하던 사내가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고, 대검을 휘두르며, 그 대검에 검기가 맺히자 그의 정체를 짐작했다. 동로군정서 사령관 바티스타. 홀리소드를 보고도 자신의 재검에 검기를 만들더니, 전력으로 말을 박차 달려와 그의 대검을 풀스윙으로 휘둘러 자신을 공격했다. 과연, 그의 진정한 모습은 강자와 싸우는 것을 즐기는 호장임이 분명했다.
- 콰쾅!!
신성력과 마나. 절대로 융합할 수 없다는 두 힘이 충돌하자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라니움은 홀리소드를 발동시켜 몸의 능력이 대폭적으로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팔이 저려오자, 공격력만큼은 마스터에 필적한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긴장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티스타는 물론, 눈앞의 상대와 생사를 가르는 결전을 벌이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지만,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인지는 있지 않았다. 대검을 휘둘러서 라니움이 비켜나도록 만든 뒤에 말을 박차 요새로 향했다. 이미 그를 따라나온 기사들은 요새로 달려가고 있어, 그가 최후미였다.
" 하하하! 라니움 경! 다음엔 전장에서 실력을 겨뤄보지요! "
바티스타의 외침에 홀리소드에 걸려있는 신성력을 천천히 거두어들인 라니움은 쓴웃음을 지으며 나직하게 대꾸했다.
" 얼마든지. "
멀어져가는 기병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라니움은 말머리를 돌렸다. 야습이라고 하기엔 사망자가 너무 적다. 정찰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얼 보고 간 걸까. 그들이 무엇을 보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 서둘러야겠군. '
라니움은 서둘러 말을 몰았다.
바티스타는 기병들의 최후미에서 말을 몰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그들의 진영에서 본 그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산산 조각난 나무파편들. 그 옆에 놓여있는 것은 아직은 그 모양을 구분할 수 있는, 그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공성병기의 모습이었다. 충차(衝車). 성문을 부수는 용도로 쓰이는 공성병기. 그렇다면 아마 그 옆에 있는 파편들은 공성병기를 부수고 남은 파편들이리라.
" 후퇴인가? "
전면적인 후퇴. 공성병기는 가져오기 힘든 물건이지만, 다시 가져가기도 힘든 물건이다. 재활용이 힘든 물건이란 소리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남겨두면 제국이 사용할 우려가 있으니, 모조리 부숴 버리는 것이 차라리 이득이다.
- 끼이이.... 쿵!
성문이 완전히 닫히는 소리에 생각에서 깨어난 바티스타는, 그에게 다가오는 로너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세 좋게 외쳤다.
" 로너! 군단장들을 모두 소집하라!! "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없었다. 힘차게 발을 내딛는 그의 등 뒤로, 천천히 아침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