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년제국-74화 (74/138)

=+=+=+=+=+=+=+=+=+=+=+=+=+=+=+=+=+=+=+=+=+=+NovelExtra([email protected])=+=

전쟁의 끝을 향하여..

" 출진이다! "

군단장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의 문을 기세 좋게 차고 들어간 바티스타는 밤새도록 말을 달린 피로도 느끼지 않는지, 힘찬 발걸음으로 걸어가 회의실의 가장 상석에 않았다.

" 출진이라니, 진심이십니까? "

" 그래. 로너. 만일 우리가 요새에서 나간다면 저들은 어떤 식으로 나올까? "

" 저들은 23만의 병력이고, 저희들은 14만. 하지만 저희들은 수성을 위하여 그 병력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만일, 요새에서 나가 단독으로 전투를 한다면 저들은 아마 전군을 동원한 각개격파로 나올꺼라고 생각합니다. "

" 역시.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은 나가서 저들을 공격해야 한다. "

" 사령관님의 말씀대로,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더 이상 시간을 끈다면, 저들은 퇴각을 시작할 것이고, 저들을 공격할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 입니다. "

바티스타와 로너사이에 오가는 말에, 군단장들은 심각한 얼굴이 되어 그들을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세한 내용도 이야기 하지 않고 서로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 답답함을 참지 못한 군단장중 하나가 손을 들어 그들의 대화를 끊은 뒤에, 질문했다.

" 잠시............. 사령관님이 보고 오신게 무엇이 길래 저들의 퇴각을 확신하십니까? "

" 그렇군.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지 않았어. 간단하게 말하면, 가져온 공성병기를 유기(遺棄)하고 있었다. 이미 상당한 숫자의 공성병기들을 파괴한 것 같았다. "

그렇다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후퇴다. 군단장들의 머릿속에 일제히 울린 말이었다.

" 당장 추격해야 합니다. "

" 그렇습니다. 이런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습니다. "

군단장들은 흥분한 얼굴로 바티스타를 바라보았다. 바티스타역시, 군을 내어 저들을 추격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흥분해서 뛰쳐나가려는 그를 붙잡는 건, 지휘관으로써의 냉철함이었다.

" 로너? "

" 하지만.................. 말했다시피 이렇게 병력이 나누어진 상태에서 성을 나섰다간 각개격파의 대상이 되기 딱 좋습니다. 무언가........... "

- 쾅!

로너와 군단장. 바티스타는 문이 부서지도록 세차게 열며 달려 들어온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병사는 헐떡이는 와중에도 지휘관들이 전부 심상찮은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자, 겁먹은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방안에 있던 지휘관들이 일제히 자신을 노려보자, 그 병사는 숨도 못 쉬며 얼어붙었다.

" 무슨일이냐? "

병사를 얼어붙게 만드는 시선중에 가장 싸늘한 시선을 병사에게 내리꽂던 로너는, 마찬가지로 사람의 심신을 얼어붙게 만들듯한 싸늘한 목소리로 병사에게 물었다.

" 아, 그, 그것이............. 시, 신성제국군이............... 일제히 물러나고 있습니다! "

" .............. "

정적. 그 소리를 들은 회의실안의 장교들은 일제히 얼이 빠진 얼굴로 병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냉철무쌍한 성격과 그에 따른 감정표현이 극히 적어 병사들 사이에서는 '포커 페이스'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로너조차, 지금 이 순간, 얼굴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 ..............다시 한번 말해봐라. "

" 네? "

"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

" 시, 신성제국군이 막사와 기치조차 챙기지 않고 후퇴하기 시작했다고............. "

" ! "

회의실안에 있던 장교들은 병사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문을 막고 있는 병사를 밀어제치며 회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회의실에서 성벽까지는 상당한 거리였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고 그 거리를 단숨에 달려서 주파했다. 그들이 올라간 성벽위에서는, 무기를 움켜쥔 병사들이 한곳을 바라보며 멍청한 표정들이 되어있었다.

" ............... "

이미 상당한 거리였다. 날이 밝자마자 퇴각을 시작한 모양이다. 바티스타는 아차 싶었다. 사실을 확인한 즉시 병사를 휘몰아 저들을 공격했어야 한다. 약간의 여유가 저들에겐 천금과도 같은 기회를 주었다.

" 추격한다! 전원 성문 앞으로 집결하라! "

바티스타는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군단장들과, 병사들은 황급히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로너는 분노로 달아올라 있는 상관을 걱정스레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냉정하십시오. 흥분된 마음으로 적을 쫒아봤자, 패배만을 부를 뿐입니다. "

" 알고있다. 지금 나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다. "

몸은 분노하지만 머리는 냉정하다. 바티스타란 장수의 또 다른 장점이었다. 그런 상관을 바라보던 로너는 걱정을 접고서는, 자신도 출진준비를 갖추기 위해 성벽아래로 내려갔다. 그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실력을 가진 기사. 적과 싸우러 가는데 그 혼자 요새에 남을 생각은 없었다. 잠시 멀어져가는 신성제국군을 바라보던 바티스타도 성벽 아래로 뛰었다. 한 놈도, 한 놈도 살려두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바티스타는 이를 악물었다.

전격적인 급속퇴각을 결정한 라니움도, 병력의 피해를 요구하는, 자신이 생각한 최후의 방식을 처음부터 사용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본디대로였다면, 6, 10, 11군단을 퇴각시킨 것처럼 차근차근 병력을 물려 안전한 퇴각을 노렸을 것이다. 하지만 제국의 경기병들의 강행정찰로 인하여 후퇴를 시작한게 들켰다고 판단이 된 이상.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정예의 1, 2군단을 최후미에 배치하고, 라니움 자신이 병사의 후방을 달리며 병사들을 보호했다. 하지만 희생을 피할 수는 없다. 라니움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뿐이다.

" 사령관님! "

라니움과 함께 최후미에서 말을 달리던, 글로비는 뒤를 돌아보다 레가르탄 요새의 성문이 열리며 제국군이 나오기 시작하자, 옆에서 말을 달리는 상관의 어깨를 두들겨 제국군의 출격을 알렸다.

" 후우........... 서둘러야 겠군. "

" '그곳'까지는 두시간정도의 거리입니다. 공격이 없어야 할텐데요........... "

" 가호를 빌어보자구. 지금이야 말로 그가 힘을 발휘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

라니움은 냉소적인 어투로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는 글로비에게 말했다.

후퇴란 것은 어려운 일이다. 피해가 전무한 후퇴라는 것은 힘든 일임에 분명하고, 만일 그것을 해낸다면 대륙역사에 이름을 남길 명장으로써 칭송받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지금상황과 그다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두개의 요새로 나누어져 있던 병력과 합류, 서서히 자신들의 등 뒤를 쫒기 시작한 제국군을 끌고, 신성제국군은 어디론가 열심히 뛰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그냥은 후퇴가 불가능하다. 라니움은 그렇게 생각하고 제국군을 미리 보아둔 결전장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라니움이 결전장으로 삼은 곳은 완만한 구릉이 띠 모양으로 연달아 자리 잡은 구릉지로써, 완만한 비탈이 넓은 초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대군이 포진하기에 좋은 곳이었지만, 이곳은 기병이 진형을 짜고 돌격하기엔 최적의 지형이었다. 기마병력. 특히 중장갑으로 몸을감싼 기마병력이 제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신성제국이 기마병력이 신성제국에 비해 우수한 제국을 상대로 이곳에서 어떻게 싸우려는 것일까.

결전장에 도착한 라니움은 비탈을 따라 길게 펼쳐진 숲을 배후로 두고 띠 모양으로 대열을 펼쳤다. 성철쇄 기사단을 좌익에 두고, 신성제국이 자랑하는 중장보병의 밀집대형을 우익에 두었다. 양익과 중앙에 궁수들이 총동원되어 자리를 지켰다. 중앙의 궁수들을 원정군의 궁수들 중에서도 명사수라 손꼽히는 궁수 1000명. 좌익과 우익에는 각각 2000의 궁수가 배치되어 있었다. 제국군이 쫒아오고, 그들 역시 대형을 꾸미기 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 뒤에 보이는 숲으로 들어가면, 나무가 벌목되어 있을 것이다. 그 나무를 끌어다가 궁병대의 앞에 놓아 장애물을 만들도록. "

병사들이 그의 말에 의아해 하며 숲으로 들어가자, 과연 그의 말대로 수십그루의 나무가 벌목되어 바닥에 쌓여있었다. 이것은 미리 퇴각을 지시한 6, 10, 11군단에게 지시한 일로써, 라니움이 생각하고 있던 최후의 방법. 제국과의 결전을 대비하기위한 준비물로 준비된 것이었다. 병사들은 통나무를 끌어다가 궁병대 앞에 쌓기 시작했다. 적당한 높이만 되어도 무거운 중기병으론 뛰어넘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 하지만 말입니다! 보병앞에는 방해물을 쌓지 말라니요! "

격렬히 그에게 항의하는 것은 중장보병만으로 이루어진 군단인 2군단을 이끌고 있는 2군단장 필리프. 라니움은 시뻘게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진정하라는 의미로 손을 흔들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 어쩔수 없네. 내 이런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네와 2군단을 믿고 하는 일이니 참아주

게나. "

라니움의 간곡한 말에 필리프는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않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부하들 중에서도 일부로 사령관님이 죽을 곳으로 보내는 거라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쩝. 죄송합니다. "

필리프의 솔직한 사과에 라니움은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 걱정말게. 작전대로 된다면 그대들에게 제국군 중기병의 공격이 다가올 일은 없을테니 걱정하지 말게. "

" 예? "

필리프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라니움을 바라보았다.

신성제국군을 쫒아온 제국군의 수장. 바티스타는 신성제국군이 포진해 있는 지형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기병이 전개 되는데는 최고의 지형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

거기에 궁병이 전진 배치되고, 그들 뒤쪽의 숲에서 벌목된 통나무가 쏟아져 나오더니, 전진 배치된 궁병의 앞에 쌓여 간이 성벽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고, 바티스타는 라니움의 속셈을 헤아리기 힘들었다.

" 보병의 앞을 막지 않는군. 보병을 먹이로 던져주고 궁병으로 우릴 공격하겠다는 속셈인가? "

신성제국의 중장보병이 대륙최강임을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예 중기병의 돌격 앞에선 소용없는 것이다. 라니움이 그 정도 사실도 모를 리가 없다. 바티스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에 빠졌다.

" 사령관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

줄곧 요새에만 있던 터라, 공로를 세울 기회가 없던 중기병대의 대장이 그에게 다가와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동로군정서의 5천 중기병과, 지원받은 병력에 포함되어있던 6천의 중기병이 중장갑을 뽐내면서 적들을 노려보고 대열을 취하고 있었다. 대륙의 어느 나라도 중장기병을 이렇게 많이 운용하는 나라는 없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임펠리아의 철갑기마대가 있겠지만, 그들은 아직 대륙에 이름을 날리지 않았다. 아리키아 요새의 공략전때 나선 것이 처녀출전이었고, 정리 작업을 위해 투입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아는 자는 거의 없었다.

" 돌격을 허가한다. 저들에게 이 나라의 힘을, 제국이 왜 대륙 최강이라 불리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해 주도록. "

" 알겠습니다. "

대장은 그의 명령에 환한 얼굴이 되어서는 자신의 부하들 쪽으로 달려갔다. 아직 열리지도 않은 병 속의 내용물을 두려워하여 뚜껑을 열지 못하는 건 바보짓이다. 일단은 부딪혀 보는 거다. 바티스타는 천천히 나아가는 중장기병의 모습을 팔짱을 끼곤 바라보았다.

커다란 나팔소리와 함께 돌격을 개시한 제국군을 바라보던 라니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명령에 따라 일제발사 후에 자유사격을 허가한다! "

중앙의 궁수들은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의 명령은 좌익과 우익에 위치한 궁수대에도 동일하게 전달되어 궁수들은 등에 메고 있던 화살통을 땅에 내려놓고, 무릎에 기대어 세워놓았다. 언덕을 달려올라오던 중기병들이, 자세를 낮추며 무기를 치켜들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궁병들은 화살을 하나들어 시위에 먹이고 대기했다.

" 준비!! "

- 빠아아아아~ 시위를 있는 힘껏 당겨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직사로는 중장기병의 갑옷을 뚫지 못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궁병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겨누고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최전선에서 중장기병을 직접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2군단 병사들은 주신의 이름을 부르며 무기를 움켜쥐었다. 라니움은 기준점으로 삼아 꽂아놓은 표식을, 제국군 중장기병이 넘어서는 것을 확인한 순간,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 쏴라!! "

- 피피핑!

시위가 울고, 화살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좌,우익에서도 화살이 하늘로 치솟았다. 롱보우의 경우, 숙련된 사수가 다루면 1분에 십여대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다. 최대한으로 시위를 당겨 고각으로 쏘아 보낸 화살들은, 최고지점 4~50m 지점에서 상승하는 힘을 상실하고, 방향을 바꿔 낙하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특히 화살촉 부분이 커다랗고 무거운 대 기병전용의 화살인지라 내려오면서 무서운 속력이 붙었고, 종국에는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중장기병들을 습격했다. 화살에 모인 힘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두터운 플레이트 메일로 몸을 감쌌지만, 날아오는 화살들 앞에서는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 크아악!! "

- 히히힝~~

운좋게 사람이 맞지 않으면, 말이 맞았다. 화살을 맞고 쓰러진 말은, 뒤를 따라오는 중장기병의 발목을 붙잡았다. 화살은 무수하게 쏟아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쓰러지는 중장기병은 늘어만 가고 있었다.

본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바티스타는, 이를 갈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장기병은 화살비를 속을 헤치고 묵묵히 전진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어느정도 까지였다. 완만하게 이어진 언덕의 길이는 상당한 길이였고,, 공격을 당하며 속도가 줄어버린 기병은 궁병의 밥 이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기병에게서 속도를 빼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말 탄 중장보병이나 마찬가지.

" 사령관님! "

" 여기서 후퇴할 수는 없다! 로너! 너는 보병대를 이끌고 적의 중장보병이 있는 곳으로 향해라! 나는 중장기병들을 수습하여 성철쇄 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공격의 방향을 돌릴테니! "

" 위험합니다! "

" 위험에 처한 부하들의 앞으로 나서는 것이 사령관의 역할이다! "

바티스타는 그의 애마를 잡아타고는 화살비가 쏟아지는 전장으로 향했다. 로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고는 군대를 전진시키기 위해 전령병을 찾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