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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끝을 향하여..
신성제국군의 부상병의 재활용률이 대륙최고인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전시에 동원하는 종군사제의 수는 타 왕국, 제국이 동원하는 사제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한다. 심각한 정도의 중상이 아니면, 완치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그들의 힘은, 신성제국이 자랑하는 중장보병과 함께, 또다른 힘이다.
분명 라니움이 입은 상처는 바티스타에 비한다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중상이었다. 하지만 라니움은, 신성제국의 종군사제단에서도 수위의 능력을 자랑하는 사제들의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나서 눈을 뜰 수 있었다.
" 하하........... 내가 살아있나 보군............... "
" 사령관님! "
글로비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라니움의 모습에,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격한 얼굴로 라니움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눈물방울까지 매달려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그것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하하..........글로비. 현재 전황은 어떻지? "
라니움의 질문에 글로비는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떨구어 내곤 자리에서 일어나 진지한 얼굴로 보고를 시작했다.
" 현재 양군은 대치상황 입니다. 제국의 사령관 바티스타의 부상으로 공격하던 제국군은 완전히 퇴각했습니다. 하지만 확인된 바로는, 전군이 공격의 태세를 풀지 않고 전투대형을 유지한 채로 저 희들을 노려보고 있어, 언제 다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
" 전투는 없다. "
" 네?? "
" 전투는 없다. 글로비.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군단을 선두에 세워 후퇴를 개시하라. 1군단은 최후미에 남도록 조치하고, "
" 알...............겠습니다. "
의문이 치솟아 올랐지만 글로비는 자신의 의문은 접어두기로 했다. 라니움의 명령을 되뇌이면서 그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막사 밖으로 뛰어나갔다.
" 우욱! "
라니움이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자. 막사안에서 그를 보살피던 종군사제가 다가왔다.
" 쉬십시오. 아직 상처가 완치된 것은 아닙니다. "
라니움은 그의 말에 따라 천천히 눈을 감았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아직은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일선에서 급한 보고를 사지고 달려온 전령병은, 갑자기 그의 어깨를 붙들고 소리치는 상관의 모습 에 얼이 빠져있었다.
' 이 사람이 원래 이런 인간이었나? '
아니다. 눈앞의 이 사람은, 병사들 사이에서도 아이스 고렘이라는 별명이 있을정도의 냉철한 인간 이었다.
' 내가 가져온 소식이 그렇게 큰 소식인가? '
하지만 그걸 판단한 머리는 그에게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상하며 전략을 짜느라 머리를 굴리던 로너에게 전령병이 들고 온 소식은 사막에서 오아시스 만난 격이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똑같은 이야기였다.
" 퇴각한다고? "
" 그렇습니다. 진형을 유지하고 이쪽을 경계하는 것을 늦투지 않으며 퇴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군 단장님의 말씀이, 추격명령을 내려달라고............. "
" 아니, 추격은 절대 금한다. "
" 네? "
" 못들었나? 추격은 금한다. 가서 그렇게 전하도록. 불복한다 그러면 군령이라고 전해. "
" 알겠습니다. "
이상하다는 표정의 전령병이었지만, 일단 명령은 내려졌기에 바삐 발을 놀렸다. 전령병의 뒷모습 을 바라보던 로너는, 자신을 지켜보는 남들의 시선만 아니었으면 환호성을 지르며 날뛰고 싶을 정 도로 기뻤다.
' 퇴각해주니 고맙군. '
더 이상 싸우기는 무리라고 생각하던 참에 저쪽이 먼저 물러나 주니 어찌 아니 좋을 쏘냐.
" 로너님? "
" 아아. 추격을 삼가고 전군에 알려 돌아갈 준비를 하도록. "
몇몇 장교들이 지시에 불만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로너의 지휘에 따라 제국군이 레 가르탄 요새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그들의 발소리. 그 소리는 길고긴 전쟁의 끝을 알리 는 발소리였다.
봄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전쟁은 제국의 승리로 끝났다. 제국과 삼국연합. 신성제국. 대륙의 패권 을 다투던 세 나라가 뒤엉키고, 그들을 따르던 수많은 소국들의 이해득실이 얽힌 전쟁이었다. 삼국 연합은 이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였다. 마커스의 마스터중 하나가 전사했고, 누라의 마법병단 1군단이 전멸했다. 원정비의 대부분을 부담한 소니아는 나라가 휘청일 정도의 타격을 입 었다. 삼국연합의 수뇌부는 서둘러서 휴전을 요구하는 사신을 제국에 파견했다. 제국의 귀족들이 나, 군 관계자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사신의 목을 베어버리고 군을 휘몰아 공격해야 한다며 주장했 지만, 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세 후작들은 앞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그들의 요청따위, 깔끔하게 무시해 버리고는 그들의 휴전협상을 받아들였다. 물론, 막대한 양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듣는 사람이 잠시간 굳어있을 정도의 엄청난 양이었지만, 삼국연합은 피 눈물을 흘리면 서도 그것을 받아들였고 말이다. 당장 제국이 침공한다면, 막아낼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겐 없었 다. 이번 전쟁으로 입은 피해는, 10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복구에만 전념해야 할 정도의 피 해였다. 제국이 무엇을 요구하건, 들어줘야만 했다.
신성제국의 사신도 제국에 찾아왔다. 다만, 신성제국의 사신은 삼국연합과는 달리 시종일관 당당함 을 잊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성제국의 국경에는 라니움이 이끄는, 제국에서 퇴각한 20여만 의 원정군이 그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주둔 중이었다. 수틀리면 재침공이고, 제국이 공격해도 그들로 방어하면 그만이니, 그만큼 당당할 수밖에 없었다. 후작들로써도 신성제국의 사신들이 취하 는 태도엔 분통이 터졌지만, 그들도 신성제국이 당당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배알이 꼴리는 일이 지만 참아야만 했다. 신성제국의 사신은 삼국연합에 비하면 터무니없다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배상 금을 물어 주는 걸로 끝날 수 있게 되었다. 대륙의 누가 보더라도 이번 전쟁의 최고 수혜자는, 신 성제국이었다. 그리고 삼국연합과 제국, 신성제국이 각각 조약서에 서명하자, 대륙을 휘감았던 전 쟁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영운이 이끄는 임펠리아군은 임펠리아로 회군하고 있었다. 의도했던 것을 모두 달성한 이상. 머물 러야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에 종전되지 않았는가. 전쟁이 끝났으니, 임펠리아군이 전쟁을 해야 할 명분도, 이유도 없어진 것이다.
" 날씨가 참 좋군. "
전방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졸립다는 이유로 근처의 마차에 뛰어들은 영운은 막상 잠은 자지 않고 건들거리면서 마차에 타고 있는 병사들만 고생시키고 있었다. 아무리 병사들을 허물없이 대하는 대 공이라지만 신분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이 세계에서 왕과 동급, 또는 약간 아래로 치는 대공이 그들 의 마차에 있는데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지 않은 이상은 긴장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 에 그들의 대부분은 노예출신이었다.
" 대공전하. 병사들을 생각하십시오. "
보다 못한 레이네가 나서서 영운에게 말했다. 몰락귀족이긴 하지만 그도 귀족이었고, 그래서 병사 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예들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볼 때가 많았지만, 그동안의 전투에 서 그들이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들의 순박함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아 그 들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 음? 아아....... 이것 보라고. 편히 있으라니까. "
편히 있으란다고 그들이 편히 있겠는가. 그들은 간절한 얼굴로 레이네를 바라보면서 차라리 박에 서 걷고 말겠다고 외쳤다. 그들의 무언의 외침은 레이네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저 철없는 상 관을 끌어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라, 숨을 크게 들이키며 잔소리를 퍼부을 찰라.
" 대공전하! "
게덴이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정보를 다루는 사람은 결코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 고 있는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코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는 인물 이었다. 그런 그가 저토 록 서두르고 있다는 것은 매우, 매우 매우 중대한 정보라는 것. 레이네는 다급히 그에게 물었다.
" 무슨일인가! 게덴 경. "
" 그, 그것이............ "
게덴이 주저하는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영운을 쳐다보았다. 몸을 일으킨 영운이 한숨을 내 쉬며 게덴에게 물었다.
" 무슨일인데 그러오. "
" 숙청이 시작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