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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제국-83화 (8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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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이끌림 공간에 남아있던 토우들에게서 다시금 붉은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와같은 압도적 인 존재감이 공간에 차오르며, 의지의 목소리가 울렸다.

- 재미있군. 멸신의 후계자라................ 그들과 나의 인연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차원을 넘어 서 그토록 긴 시간이 지났건만. 그의 후계는 나를 찾아오는구나. 실로 무서울 뿐이다. 운명의 굴레 란 것이.

토우들로부터 솟아오르던 붉은 기운이 모여들면서 용의 형상을 이루며 나타난 이참나는 나직하게 중 얼거리며 한탄했다.

- 돌아갈 생각인가요? 인연의 끈을 따라?

붉은 기운이 가득한 공간이 크게 일렁이며 나른한 꽃향기와 빛으로 이루어진 나비무리와 함께 등장 한 것은 영운을 이 세계로 불러들인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였다. 눈앞의 붉은 용신 이참나를 바라보 던 아후라 마즈다는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이참나는 천천이 고개를 흔들어 그녀의 말을 부정했 다.

- 아직은, 아니다. 강한 아이지만, 나의 힘을 감당하기엔 모자름이 있어. 마지막 문을 열어 천지간 의 영력이 그의 몸에 통하지 않는 이상 나의 힘은 그에게 독이 될 뿐이다.

- 두렵군요. 이미 그가 가지고 있는 힘만으로도 대륙을 멸할 수 있는데. 더욱 강해진다니.

- 멸신의 숙명에 얽매인 자들의 운명이다. 하지만 그 운명은 스스로 인간이고 싶어 하는 그들을 괴롭히는 저주였다. 초대부터 내가 최후까지 함께 있었던 24대의 계승자까지. 자신의 힘을 저주하고 있었다.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을 죽여 달라 사정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과 얽매인, 그들의 수호용의 운명을 지닌 나에게 말이다.

이참나는 과거에 자신과 함께 했던 그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며 말했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강대 한 힘을 가진 자신을 저주하며,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음에 자신들을 저주하던 그들.

-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건가요?

- 글쎄................. 하지만 그 희망 또한 운명이 예비한 바겠지.

그 말을 끝으로 공간에 존재하던 이참나와 아후라 마즈다의 의지가 사라졌다. 그들의 의지가 사라진 공간은 적막에 잠겨버렸다.

예언을 듣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은 영운은 급히 붉은 도시를 떠나려고 했지만, 그의 마음을 읽은 듯이 기다리고 있던 렉투의 손에 붙잡혀서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파티장으로 끌려갈 수박에 없었다.

" 쿠하하하하! "

붉은 오크족의 파티가 가지는 주제는 늘상 하나였다. '먹고. 마시고. 죽어라' 파티장의 테이블 위에는 음식이 쌓여있고, 술은 통째로 끌고나와 원하는 자는 잔 만들고 가서 퍼먹으면 되었다.

- 우당탕탕!

" 쿠왁! 이 자식!"

" 쿠하하하하! 죽어라!"

물론 술에 취한채로 싸우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취중의 싸움은 붉은 오크에 있어서 좋은 안주거리 이상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잔을 치켜들며 싸우는 대상자들에게 내기를 걸면서 파티를 즐겼다.

' 즐겁군. '

영운은 잔을 들어 술을 마시면서 중얼거렸다. 눈앞에서 술잔들이 날아다니고, 욕설과 비방이 난무해도, 저들은 이 파티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그들도 즐겁고, 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자리에 앉아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도 즐겁다.

" 크하하! 인간! 내 이름은 로이니쿰 부족의 전사! 골고츄! 나와 한판 붙어보자!! "

온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전사하나가 그의 앞에 술잔을 내려놓고 탁자위에 팔을 올리며 외쳤다.

- 씨익 보통의 술보다 독한 붉은 오크의 술 탓일까. 갑자기 호기가 끓어오른 영운은 마찬가지로 팔을 테이블 위로 올려 골고츄의 손을 맞잡았다.

- 꽈악!

" 한판 해보자고. "

" 쿠워워~~~ "

골고츄가 커다란 고함을 지르며 맞잡은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붉은 오크들이 고개를 돌리며 그들의 승부를 바라보았다.

" 우어어어어어~~~ "

" 크하하~~~ 이겨라! "

골고츄가 괴성을 지르며 힘을 쓰기 시작했다. 렉투가 거느리는 붉은 오크의 전사들 중에서도 힘으로 치자면 렉투조차 어쩌지 못하는 전사. 그가 괴성을 지르면서 힘을 쓰자, 두꺼운 판자로 만든 테이블이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덜덜 떨리고 있었다.

" 크하하하! 골고츄, 조금 더 힘을 써라! "

" 네녀석이 그렇게 자랑하던 힘이 겨우 그 정도였냐!! "

" 닥쳐라 이 자식들!! 우오오오~~~~ "

분통을 터뜨리며 힘을 써보지만 맞잡은 영운의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들의 팔씨름에 파티에 참여한 모든 오크들이 몰려들어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 끙! "

- 콰쾅!

용을 쓰는 골고츄를 바라보던 영운은 한번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그의 팔을 넘겨버린 것에 그치지 않고 남는 여력으로 테이블을 부숴버렸다.

" .................. "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믿을 수 없는 눈 앞의 현실에 그들의 사고마저 마비되어 버린걸까. 조용 해진 파티장에 " 크윽! 인간! 내가졌다!! "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부여잡고 인상을 쓰던 골고츄가 외쳤다. 평소에 자랑하던 힘에서 밀린 것은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스스로가 긍지 높은 전사인 그는 패배를 인정하고 눈앞의 인간을 다시보기로 했다. 눈앞의 인간은 족장. 그들의 제일가는 전사에게 인정받을 만한 전사인 것이다.

" 크하하! 다음은 나다! "

" 무슨 소리! 나다! "

골고츄의 힘에서의 패배에 침묵하고 있던 붉은 오크들은 골고츄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는 크게 웃으면서 앞 다투어 영운의 앞으로 몰려들었다. 눈앞에 강자가 있는데 피가 끓지 않으면 어찌 전사라고 할 수 있을까. 영운은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그들을 보며 전의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 크윽................. "

영운은 얼얼한 오른팔을 주무르며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100명(?)에 가까운 오크들을 팔씨름으 로 꺾어버리는 것은 상식을 초월한 존재인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무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 크하하! 역시 내가 인정한 최고의 전사로다!! "

렉투는 술잔을 들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계속 내려치며 기뻐했다. 자신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눈앞의 인간이, 자신이 평생가도 찾을 수 없는 최강의 호적수임이 분명해 진 지금, 그의 마음 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영운이 그를 바라보며 불만에 가득찬 얼굴로, " 좀 말려주시지 않으시고요. "

" 크하하! 미안하군. 하지만 자네도 즐겁지 않았나! "

" 즐겁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

영운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즐거웠다. 하지만 아무리 즐겁더라도 이런 것은 사양 하고 싶었다. 그런 영운의 모습을 바라보다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은 렉투는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 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사실, 인간들과의 동맹을 부정어린 눈초리로 보는 전사들이 많아. 일부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 이네. 이해해주게. "

정신이 확 드는 한마디였다. 어느새 렉투의 얼굴은 냉철한 국왕의 얼굴이 되어 그를 바라보고 있었 다.

" 그런 거였습니까. "

" 하하. 다행히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으니, 오늘 그대와 만난 전사들은 각 부족에서 으뜸가는 전 사들이네. 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은 부족의 인정이나 마찬가지니 다행 아닌가. 자네를 보니, 내 일 떠날 계획인가. "

"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서둘러 움직여야겠지요. "

영운은 천천히 잔을 들어 안에 담긴 술을 마셨다. 인연의 끈을 찾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 서는 곤란하다. 영운의 말을 들은 렉투는 아쉬운 얼굴(오크의 아쉬운 얼굴이라니!!)로 고개를 저었 다.

" 오랜만에 한판하고 싶었는데 말이네. "

영운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붉은 오크의 호전성은 아까도 충분히 겪었고, 그들이 승부의 순 간에는 얼마나 집요해지는지 알았다. 게다가 한번 싸워본, 붉은 오크의 수장에 대헤서는 더욱 자세 하게 알고 있었다.

" 다음기회로 미루지요. 하하하. "

" 아쉽지만 그래야겠군. 정말 아쉬운 일이지만 말이야. "

연신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렉투의 모습에 영운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까까지의 국왕의 얼굴은 어디 론가 날아간 지 오래였다.

"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 들어가서 쉬게나. 잠시 후면 날이 밝을 테지만, 조금이라도 쉬 는 것이 낮지 않겠나? "

" 그래야 갰군요."

렉투의 말에 영운이 고개를 끄떡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방은 준비해 두었네, 저 녀석을 따라가면 될 것이네 "

렉투가 문가에서 대기하던 오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손짓에 그 오크가 다가왔다. 전사부족인 붉은 오크라지만 이런 잡일할 오크들도 없겠는가.

" 손님을 준비된 곳으로 안내하라. "

" 알겠습니다. "

렉투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인 오크가 자신에게 돌아서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

" 별 것 아닌 일을 가지고 호의라니, 강한 전사를 대접하는 것은 붉은 오크의 장인 나의 당연한 의 무일세. "

영운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감사했다. 오크 시종이 안내한 방은, 단순히 정체 모를 짐승의 털 가죽이 깔린, 제대로 된 가구라곤 하나도 없는 곳이었지만 영운은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한번 누우 면 파묻히다 시피 하는 왕성의 침대보다는, 이런 것을 더 좋아했다. 시종이 물러나고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놓은 영운은 털가죽 위에 누웠다. 하지만 결코 무기를 몸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지 않았 다.

" 후우. "

돌로 만들어진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그의 등을 차갑게 했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고 눈을 감았 다. 오히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을 방해하여, 만일의 경우에 언제든지 전투태세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방한가운데 깔린 털가죽 위에 누운 영운은 천천히 눈 을 감았다. 잠이 들어버린 그의 주변에 조용히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를 휘감 아 맴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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