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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제국-84화 (8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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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이끌림 주위에 있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시선을 이리저리 옮겨서 바라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어둠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 화악!

그러다가, 갑자기 눈앞에 빛이 쏟아졌다. 영운은 눈이 부셔서 눈을 가렸지만, 그의 몸은 그가 생각 한데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니, 그의 몸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의 몸이 아니었다.

' 아이야. '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있었다. 시선을 돌려서 소리가 들린 곳 을 바라보니,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을 바람에 나부끼고있는 노인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아이야, 나와 함께 가겠느냐? '

그 말을 하는 노인의 얼굴은, 정말 슬퍼 보였다. 슬픔과 죄의식이 한번에 뒤섞여 버린 그런 미소 가 노인의 얼굴에 있었다.

' 힘을 줄 수 있나요? '

시야가 돌려지면서 들어온 주위의 광경은 처참했다. 사방에 쌓여있는 것이 사람의 시체요, 발 밑 에 흐르고 있는 것은 피가 흐르는 작은 시냇물이었다. 소년의 물음에 노인은 뭐라 말을 하지 못하 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천천히 몸이 움직여서 시체들 사이에 묻혀있는 여인의 손을 쓰다듬었다.

순간 그가 느낀 것은 마음을 불태우는 커다란 복수심이었다. 증오, 분노, 슬 픔........................ 다시 노인을 바라본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영운의 의식은 어 둠 속에 묻혀버렸다.

' 으아아아아아!!! '

절규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다. 주위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 하나있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 만족하는가?

거대한 붉은 용이 허공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절규를 멈추고 용을 바라보았다.

' 만족하냐고? 당연히 만족한다! 아니, 아쉽다! 이들에게 더 이상의 고통을 줄 수 없는 것이! 이들 을 더 이상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이! '

용은 절규하는 그를 바라보며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거체를 움직여 조용히 그에게로 다가왔다.

절규하던 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용의 두눈을 직시했다. 투명한 용의 두눈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 어 보는 것 같았다.

' 아니, 너는 슬퍼하고 있다. 저들의 죽음은........................ 너를 인간으로써 머물게 하던 마지막 끈이 끊어졌음을 말하기에 너는 그것을 슬퍼하고 있다. '

그는 갑자기 숨이 막힘을 느꼈다. 그 감정은 슬픔. 그때까지 그를 휘감고 있던 분노와 증오가 사라 졌다. 그는 울었다. 자리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울음을 들으며 그와 함께 하던 영운 의 의식은 어둠에 잠겼다.

" 헉! "

영운은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랍게도 수많은 전쟁터에서도 땀을 흘리지 않던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푹 젖어있었다. 꿈이었을까. 그 숨막힐 듯한 슬픔, 그 증오. 그것은 실제와도 같 았다. 대체............................... 무엇이었을까.

- 꽈악!

영운은 손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 이런..................... 폐를 끼쳤군.

이참나는 붉은 도시를 떠나고 있는 영운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그들의 후손을 만나서였을까. 제어하고 있던 약간의 힘이 새어나가 그에게 스며들었던 모양이다. 아마 그는 그의 힘에 간직된 기억의 일부를 보았을 것이다. 스스로 인간임을 바랬으나 인간일수 없었기에 슬펐던 그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의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 그들의 고통을 알기에, 그들의 슬픔을 알기에.............................

이참나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영운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그곳을 떠난 이후.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 지 몰라도, 그들은 고통의 세월을 이어왔을 것이다. 그것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의 세월을 홀로..................

- 이번엔 도망치지 않겠다.

결의를 다졌다. 그들의 슬픔을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하고 스스로 공간을 찢어 도망쳤다. 자신의 영 혼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는 그들의 슬픔을 외면하고 도망쳐 버렸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이 빌어먹을 운명이란 굴레를 벗어버리고 말겠다. 이참나는 조용히 그를 바 라보았다.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올 때와 마찬가지로 축지의 술을 이용하여 이동하자, 콜센마을에 도착하는 것은 한시간도 채 걸리 지 않았다. 여전히 남쪽의 출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을 피해 마을로 들어섰고 맡겨둔 말을 찾기 위해 '세계수의 그늘'로 향했다.

- 딸랑~~~~ " 어서오세요~~~~ "

언제 나처럼 카운터에 앉아서 손님을 맞이하던 레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영운의 모습에 눈을 동 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 일찍 오셨네요? "

" 그렇게 됐습니다. 하하....................... "

" 말을 찾아가시려고요? "

" 예. 지금 찾을 수 있습니까? "

" 물론이에요. 따라오세요. 마구간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

" 예. "

앞장선 레미의 뒤를 따라 마구간으로 향하면서, 영운은 그가 꾸었던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와중에도 몇번이나 그 꿈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무엇이었을까. 그 증오. 그 슬픔. 그것들은 도저히 거짓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슬픈 모습 이.................... 왜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 여기에요. "

레미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여관의 옆에 딸린 건물이었다. 그를 향해 가볍 게 웃어준 레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후에 그의 말을 끌고 나왔다.

- 푸르륵!

겨우 하루 쉰 것뿐이었지만, 레미의 관리가 좋았는지, 말의 상태는 최상이었다. 말의 목덜미를 쓰 다듬으며 상태를 확인한 영운은 미소를 지으며 말 옆에 서있는 레미에게 고개를 돌렸다.

" 감사합니다. "

" 별말씀을, 모두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신경 쓰실 필요는 없어요. "

레미의 말에 고개를 끄떡인 영운은 말을 끌고 대로로 나섰다. 한창 낮 시간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간간이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만 보였다.

"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

" 그럼. "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레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영업용의 미소가 아닌, 진심이 담겨있는 미소 였기에 영운도 기분이 좋아져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말을 끌고 출구로 향했다.

" 당신의 미래가. 나와, 이참나가 꿈꾸는 미래였으면 합니다. "

멀어져가는 영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레미가, 이때까지 짓고있던 미소와는 다른, 무언가 초월적 인 느낌이 드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 그래요. 나는 당신이 운명의 굴레를 부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천천히 몸을 돌리는 그녀의 모습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바람에 휘말려서 사라지는 것처 럼.....................

" 운명은 살아가려는 자들의 힘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믿기에.................. "

그리고 그녀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영운은 몰랐다. 콜센마을에는 '세계수의 그늘'이란 여 관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여관을 운영하는 여주인, 레미란 여인의 존재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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