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년제국-85화 (8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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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창녀 세리스

어두운 방안. 십여명의 여인들이 서로 얽혀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방은 그리 넓다고 말하기 힘들었고, 몇몇 여인들은 몸을 새우처럼 둥글게 만 채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방안을 비추는 것은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뿐. 어두운 방의 구석에서 창을 넘어 들어오는 달빛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 ........................... "

소녀였다. 나이는........................12살 정도나 되었을까. 달빛에 비치는 소녀의 얼굴은, 확실히 흐릿한 달빛 속에서도 눈에 띄일 정도의 미인이었다. 만일 그녀가 성장해서 소녀에서 여인이 된다면, 아마 그녀는 그 미모로써 한 나라를 뒤흔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 하아........................ "

그녀는 조용히 달빛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창 박에서는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여인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하룻밤의 쾌락과 그 대가를 기대하며 웃음과 몸을 파는 여인들.

' 이 세상엔........................ 희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거기에 얼굴을 묻었다. 부드러운 달빛이, 그녀를 감싸 않았다.

' 희망은 없어. '

지금은 울더라도 내일이 되면 다시 웃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몸을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장사밑천. 그녀는 창녀였으니까.

" 세리스! 지명이다! "

한참 거울을 바라보며 화장을 하고있던 소녀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집의 마담이었다. 소녀, 세리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마담은 그녀가 입고있는 드레스의 곳곳을 점검하고, 그녀의 화장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아 어디론가로 이끌고 갔다.

" 오늘은 백합실에서 손님의 지명이 있었다. 알았지? "

" 예. "

백합실이라니, 오늘 찾아온 사람은 상당한 귀족인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삽시간에 장사를 끝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마담은 자주 지명되는, 이른바 특급의 여인들에게 단단히 교육을 시켜놓은 상태였다. 마담에게 끌려서 백합실에 오는 내내 허무한 미소를 짓고있던 세리스였지만, 백합실의 문 앞에 선 순간, 그녀의 얼굴엔 허무한 미소가 아닌, 아름답다고 말해야 할 미소가 나타났다. 마담은 그녀의 변화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은 후에 다시 한번 그녀의 복장을 점검한 다음. 손을 들어서 백합실의, 화려한 보석장식이 되어있는 문을 두들겼다.

" 들어오게. "

문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결코 젊은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마 50이상은 됬을법한 남자의 목소리. 세리스는 웃음의 가면 속에서 인상을 구겼다. 창녀는 결코 웃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녀들은 그 웃음을 파는 존재들이니까.

- 끼이이~~ 문이 열리고, 마담이 그녀의 등을 살짝 밀었다. 그녀는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백합실의 내부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저 북쪽의 유그드라실 왕국에서 직수입된 백곰의 모피였고, 침대의 이불보로 사용된 것은 저 해양제국에서 나온 최고급의 비단이 분명했다. 천장에는 보석으로 장식한 샹들리에가 빛을 발하고 있었고, 장식장에 장식되어 있는 것은 대륙의 곳곳에서 나오는 명주들이었다. 물론, 모두다 일반의 금액으로는 살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자랑하는 물건들이다.

" 오오! "

백합실의 중앙에 앉아있던 인영이 들어오는 세리스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예상대로, 60은 다되었을 법한 노인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 여인을 탐하여, 자신의 젊음을 되찾으려 하는 종류의 인간들. 그녀는 이런 인간들을 몇 명이나 상대하여 왔다.

" 세리스라고 합니다. "

가볍게 무릎을 구부리며 치맛자락을 잡아 살짝 들어올렸다. 밝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앞의 노인에게 이런 인사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용케 자신의 옷을 벗어 던지며 그녀를 끌어않았다. 거칠게 소녀의 여린 입술을 탐하며 손을 바삐 움직였다.

' 희망은........................ 없어. '

노인에 의해 자신의 옷이 벗겨지는 것을 느끼며 세리스는 중얼거렸다.

영운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이아크의 예언을 따라 자신의 느낌이 이끄는 대로, 자신의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길을 가다보니 도착한곳이 참으로 걸작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절대로 얼씬도 하지 않을 곳이기에 그 난감함은 더욱 심한 것이었다.

환락과 유흥의 도시 케이디언. 오로지 돈 많은 귀족들과 그에 따라붙는 평민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이며 밤을 잊어버린 도시이기도 하다. 영운은 눈앞에 보이는 도시를 난감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결국엔 말을 몰아 그곳으로 다가갔다. 확실히 저 도시에 다가갈수록, 그 동안 느껴지던, 막연하다고 밖에는 표현이 안되던 그 느낌이, 더욱 확실한 방향성을 가진 채 그를 부르고 있었다.

'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소냐. '

영운은 결연한 얼굴로 말을 몰아 도시로 다가갔다.

영운의 성문통과는 아무 절차 없이, 늘어져 있는 성문 수비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보통이라면 신분증을 검사하고 방문목적을 물어보는 것이 순리이나 이곳에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족이었고, 가끔씩 찾아오는, 눈앞의 사내처럼 남루한 의상을 입고 찾아오는 귀족들도 있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그들을 일일이 검문한다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있었다. 그들을 검문한다고 덤비다가 초상 치른 동료들도 여럿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결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영운의 입장에서야 귀찮은 일을 피한 것이지만...................

과연 유흥의 도시랄까. 눈에 비치는 것은 모두 술집이요 여관이었다. 성문에서 가까운 곳이라, 하급의 술집과 여관이 몰려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의 술집보다 배는 화려한 듯한 장식이 되어있었다. 걸려있는 간판에도 정성을 기울인 장식이 되어있었고, 개중에는 금박을 입혀 화려하게 장식해 놓은 것도 보였다. 영운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부르는 그것의 기운은,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그토록 자신을 부르더니 왜 이제 와서.................

' 할 수 없군. 몇 일 머물러 봐야......................... '

영운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여관을 찾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여관과 술집을 겸하고 있었기에 찾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영운은 간판들을 둘러보다 마음을 정한 듯, 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밤이 될 것이고, 이 도시는 밤에 그 생명을 얻는다.

유흥업소가 많은 케이디언에서도 세리스가 일하는 곳인 붉은 달빛은 수위에 꼽힐 정도의 큰 가게이고, 세리스는 그 가게에서도 특급의 창녀다. 그만큼 비싼 몸이기에 붉은 달빛의 마스터인 마담이나, 그녀의 밑에서 창녀들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건달들도 함부로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그들은 세리스의 곁에는 접근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차갑게 자신들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들이 평소에 가장 무섭게 생각하던 것들이 실제처럼 자신들을 덥친다나? 처음엔 대부분 무시했지만, 겁을 모르고 까불던 건달 몇이 그녀의 손에 미쳐서 실려간 뒤로는 그녀의 곁에 다가가는 불량배들은 없었다.

" 어딜 가십니까? "

붉은 달빛을 나서는 세리스를 본 건달들이 앞을 가로막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아마 그들은 평생에 쓸 용기를 이번 한번에 다 몰아 썼을 것이다.

" 잠시 외출하려 합니다. 비키세요. "

" 그, 그것이......................... "

건달들은 겁먹은 얼굴로 주춤거렸다. 보통의 창녀들이라면 벌써 힘을 썼을 테지만, 세리스는 그들과는 다른 특급의 창녀에 주요 귀족들의 총애를 받는 창녀다. 게다가 이미 그들에게선 공포의 대상이기에 제지하기에 힘든 존재였다.

" 마담에게 이미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비키세요. "

그들을 바라보는 세리스의 눈이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건달들은 갑자기 전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포에 놀라 황급히 자리에서 비키며 허리를 굽혔다.

"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

잠시 그들의 뒤통수를 차가운 눈초리로 바라본 세리스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서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한기에 건달들은 몸을 떨었지만, 결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보지 않았다. 붉게 변한 저 눈을 마주본 결과가 어떤지를,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미쳐 가지고 죽지도 살지도 못한 여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가게를 나선 세리스는 밤거리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케이디언의 밤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이라면 그 구성은 호객꾼, 아니면 그들이 물어야하는 손님이 각기 반을 차지한다.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여인. 약삭빠른 미소를 지으면서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어린 소년들. 몇 년간 줄곧 보아 익숙한 풍경들.

" 하아. "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갑갑한 마음을 잊어보고자 나왔기에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창녀로써 세리스의 이름은 유명했지만 그 얼굴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게 안에서 입던 화려한 드레스 대신에 수수한 드레스를 입고 나와 자신의 정체는 더더욱 들킬 일이 없었다. 세리스는 오랜만에 하는 이 산책을 즐겨보기로 했다.

창가에 서서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영운은 갑자기 자신의 전신을 울리는 느낌에 전율하곤 창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의 전신을 울리는 그 느낌은, 더욱 강렬해 지고 있었지만, 누군가. 누구란 말인가!

" 빌어먹을!! "

영운은 이를 갈며 창틀을 세게 내리쳤다.

케이디언 시가 속해있는 론니움 영지는, 백작이 다스리는 영지로써, 아리나스가 여왕에 오를 때, 비록 라인버거 공작파였지만, 살아남기 위해 잽싸게 노선을 바꿔타서 살아남은 귀족이다. 그 후에도 절대 주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영지에서 웅크려 지내면서 자신의 부만 부풀려온 사람이다. 냉철한 정치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에 붉은 달빛의 창녀, 세리스에게 푹 빠져서는 정무를 돌보지 않고 있었다. 이미 60에 가까운 나이였고, 명망 있는 귀족이, 이렇게 한 창녀에게 집착을 보인다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일이었지만, 늦은 사랑에 불타오르고 있는 그에게 무슨 말이 소용 있을까. 하지만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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