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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포효가 대륙을 울리니 그 앞에 몸을 떨지 않는이
그날 저녁. 자작의 보고를 듣던 부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1~200가량 되는 부대였다고?"
막무가내로 물어오는 백작의 반말에 자작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어쩌겠는가? 서열로 따지자면 눈앞의 사람은 자작보다 한 단계는 확실하게 높았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활쏘기에 능하고 산을 타는데 익숙해서 저희들의 사병으로는 추적이 곤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자작의 보고에 백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소. 나가보시오."
"옛. 알겠습니다."
자작이 나간 뒤에도 자리에 앉아서 무언가를 고민하던 백작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를 나섰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렇다면 백작의 말은 우리를 이때껏 습격했던 임펠리아군이! 하찮은 평민들의 무리라는 것이요!"
백작은 예상했던 반응이 튀어나오자 역시 라는 의미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의 가장 상석에 위치한 공작도, 백작의 얼굴을 보며 분노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을 공격하는 것은 아마도 임펠리아의 평민들일 것입니다."
자리에 앉아있는 귀족들은 일제히 분통을 터뜨렸다. 그들이 이때가지 괴롭힘을 당하고, 참여한 귀족들의 하나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만큼 적이 강했던 것이라고 애써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밝혀진 사실에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미천한 평민 주제에 감히 제국의 귀족을 살해하고 우리를 공격했다는 말인가!"
자리에서 외친 한 귀족의 외침에 자리에 앉아있던 귀족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떡였다. 분노한 것은 그들뿐이 아니라 그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크리프트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분노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사태요. 이것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우리 제국귀족들의 위신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소이다. 나는 저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끝까지 추격하여 저들을 도륙할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하는 바이오."
음산하고 살기가 넘치는 공작의 말에 자리에 참석한 귀족들이 모두 일어나 그의 맹세에 동참했다.
솔직히 백작은 저들의 행동이 어이없기만 했다. 나라의 위기에 백성들이 들고일어나 무기를 잡아 적군을 공격한 것이 그렇게 화낼만한 일인가? 오히려 칭찬 받아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임펠리아의 평민들이 자신을 공격한 것은 조악한 비유지만 키우던 애완동물이 자신의 발을 문 것과도 같은 행위다. 도저히 용서 못할 건방진 행위였다. 대륙최강국의 귀족 그 귀족의 말석에 불과한 남작들도 모두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니 만큼 자존심이 무너졌을 때의 그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부시백작!!"
자신을 부르는 외침에 부시가 고개를 들어보니,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고 있는 크리프트 공작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백작은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그들이 향한 곳이 어디라고 하였소!!"
"……론니기움 협곡이라는 곳입니다."
백작의 대답에 공작은 고개를 끄떡이더니 위엄 있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진군하겠소! 론니기움 협곡으로!!"
"알겠습니다!!"
아마 제국역사 아니 현 황제가 집권한 이후로 제국귀족들의 의사가 이토록 잘 통일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백작은 그들을 쫓아가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를 제외한 모든 귀족들이 찬성한 일에 자신이 반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백작은 체념하고 흥분한 귀족들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리고 다음날. 10만의 제국군은 방향을 틀어 론니기움 협곡으로 방향을 잡았다.
"성공했나! 다행이네."
론니기움 협곡에서 제국군을 몰살시킬 함정을 준비하던 비덴은 노아스의 연락에 크게 기뻐했다.
-현재 제국군을 꽁무니에 매달고 그리로 향하는 중이네.
"조금만 더 수고해 주게. 이미 이곳의 준비는 끝났으니 말이네."
-알겠네. 그럼.
마력이 끊어져 화상이 사라진 수정구에서 고개를 돌린 비덴은 그의 앞에 앉아있는 사내를 향해 말했다.
"준비는 완벽하겠지요?"
"물론입니다. 비덴 백작님"
사내의 정중한 대답에 비덴은 열심히 손사래를 치며 그에게 말했다.
"백작이라니! 나는 그 직위에 전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오!"
"하지만 이미 여왕 폐하께선 당신께 백작의 직위를 내리셨습니다. 그걸 아는 저로서는 당신께 존대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사내의 말에서는 반박할 구석을 찾지 못한 비덴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돌렸다.
"후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전투가 일어날 모양이니 병사들에게 긴장을 풀지 말라 명해 주시오 바이스 경."
"이를 말입니까. 예비군 전체가 하나같이 긴장을 풀지 않고 있습니다. 적들이 쳐들어온다면 한 사람도 남기지 않을 겁니다."
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바이스의 말에 비덴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도망가는 게라트 워를 쫓아서 론니기움 협곡으로 향하고 있는 제국군을 지휘하는 부시백작은, 그들을 쫓아가면 갈수록 무성해지는 수풀과 사람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는 절벽을 보며 점점 불안해 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가는 길은 또 어떤가. 처음엔 넓었던 길이 점점 좁아지며 점점 군의 진형이 가늘어져 마치 그 형상이 뱀과 같이 변하고 있었다. 군을 이끄는 자들이라면 이런 형태의 진군을 가장 경계하는 법이다.
백작은 여러 차례 군을 물려 애초에 목표로 삼았던 곳을 향하여 진군할 것을 요청했지만 공작은 일언지하에 그것을 거절했다. 거기에 선봉에서 올라오는 보고, 자신들을 공격한 임펠리아군을 추격중이라는 그 보고, 자신이 알기에 게라트 워는 지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절대로 자신들의 행적을 노출시키지 않으며 제국군을 상대로 기습만을 반복하는 부대다.
그런데 자신들의 행적을 노출시킨다고? 그들도 정면으로 붙는다면 절대로 제국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함정이다.'
백작의 본능이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생각하니 군의 우측으로 펼쳐져 있는 숲에서도, 저 절벽에서도 임펠리아군이 매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려야한다.'
백작은 이를 악물고 공작이 있는 곳으로 말을 몰았다.
"모두들 수고가 많았다."
노아스는 자신을 중심으로 둥글게 앉아있는 전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같이 피골이 상접한 모습들이다. 제국군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그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강행군을 거듭한 결과다. 하지만 그들의 눈 깊숙한 곳에서 타오르는 빛은 꺼지지 않았다. 노아스는 그들과 시선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저 제국군을 론니기아 협곡으로 유인하면 우리의 역할은 끝난다."
-꿀꺽!
전사들은 그의 말에 마른침을 삼키며 노아스를 바라보았다. 이때까지는 그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숲 속의 길을 달려왔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제국군의 정면으로 나서야 한다는 소리였다.
-푸르륵!
갑작스레 말이 우는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일단의 사람들이 백여 마리의 말을 끌고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걸 본 전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노아스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요하지는 않는다.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대들을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노아스의 말에 전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서로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눈빛 속에 흐르는 말을 읽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저벅!
발걸음을 옮겨서 앞으로 나선 전사들은 노아스를 따르는 전사들의 전부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전사들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노아스는 치밀어 오르는 격정을 참지 못했다.
"가자!"
-우오오오!
노아스의 외침에 전사들이 크게 고함을 내지르며 말에 올라탔다. 노아스 역시, 자신의 할버드를 꼬나들고 말 위에 올랐다. 순식간에 200여기의 기병대로 변한 게라트 워는 천천히 길을 따라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