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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포효가 대륙을 울리니 그 앞에 몸을 떨지 않는이
"젠장. 이것은 틀림없는 함정이다."
주변을 자세하게 둘러본 부시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자신의 사병들을 지휘하며 신중하게 나가고 있는 그는 한쪽은 올라가기 힘든 급경사요 다른 쪽은 무성한 숲이니 만일 복병이 있어서 협곡의 양끝을 틀어막고 절벽 위에서 불화살을 날려 숲에 불을 지른다면 그들은 꼼짝없이 협곡에 갇혀서 타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자신이 거느린 10명 남짓한 기사단은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며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안 듣겠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백작은 자신이라도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자네들은 무기를 꺼내 놓고 언제든지 후퇴할 준비를 하도록 하게."
"후퇴요?"
백작의 말에 그들을 이끌던 한 기사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어 왔다. 하지만 백작은 긴말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재촉하여 비상시에 병사들을 움직일 수 있도록 그의 병사들 사이사이에 배치했다.
'공격은 어디부터냐……. 앞? 뒤?'
쉴새없이 머리를 굴려서 임펠리아군의 행동을 예측하려 노력하는 백작을 도와주려는 듯 전방에서 달리던 기사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이 죽어 가는 소리와 사람의 비명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 왔다.
"앞부턴가!"
백작은 고개를 돌려서 자신의 기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들려 오는 비명 소리에 백작이 왜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인지 눈치 챈 기사들은 당황한 병사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그들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쏴라!"
절벽 위에 엎드려서 은신하고 있던 궁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쪽에서 달리던 기사들을 향해 미친 듯이 화살을 쏘았다. 그들이 쏘는 것은 인마 살상용의 커다란 화살촉이 달린 화살이었고 높은 절벽 아래서 아래를 바라보며 화살을 쏘니 기사들의 대부분은 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의 비에 고슴도치가 되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협곡의 입구 제국군의 후방을 공격하는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푸른색의 임펠리아 군복을 제대로 차려입은 무리들이었다. 이번에 소집되어 다시 무기를 잡은 예비역들이었다. 말로 내려오기엔 무리지만 사람이 달려 내려오기엔 무리가 없는 절벽을 질주하며 내려와 제국군의 후군을 전력을 다해 파고들었다.
제국군의 최후방에 있는 것은 병사들이 먹을 식량 같은 보급 물자들이 쌓여 있는 마차들의 행렬. 임펠리아군은 저항할 능력이 없는 수송부대의 병사들을 도륙 하며 손에 들고 있는 횃불을 마차마다 던져 넣었다.
-화르륵!
수송부대의 마차가 타오르는 것을 확인한 예비군들은 만족스런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주위의 제국군을 공격해 나갔다. 간간이 저항하는 제국군이 있었으나 그들의 대부분은 영운을 따라 내전을 경험하여 전투 경험이 풍부한 병사들이다.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제국 귀족군 사병들의 공격에 당할 병사들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냐!"
전방에서 기사들이 살육 당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후방에서 불길이 치솟길래 전령을 보내 보니 임펠리아군의 습격이라는 소리에 공작은 이를 갈았다. 황급히 주위의 귀족들에게 각자의 사병들을 통솔하라 이르고 공작은 말을 몰아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부시 백작은 앞과 뒤에서 거의 동시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일제히 공격이 시작되자 내심 감탄하면서 주위의 기사들에게 명령하여 진군 방향을 돌렸다. 혼란한 모습을 보이는 주위의 병사들과는 달리 백작의 사병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그들이 들어왔던 협곡의 입구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백작!"
"……크리프트 공작님."
부시 백작이 병사들에게 전력으로 협곡의 입구를 막고 있는 임펠리아군을 뚫고 나가라는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제국군의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공작이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백작."
"말씀하십시오."
"내 잠시 자네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소. 그러니 군의 지휘를 다시 맡아 지금의 위기를 구해 주시길 바라오."
"……."
백작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공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백작은 눈앞의 공작의 얼굴을 꼼꼼하게 뜯어보았다. 급한 와중에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백작의 행동에 공작은 얼굴을 구기며 그를 바라보았다.
"백작. 무슨 짓이요? 이 급한 상황에."
"……실례했습니다."
백작은 솔직하게 공작에게 사과하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살피니 전위와 후위에서의 맹렬한 공격이 있었지만 워낙에 쪽수가 만은 제국군이었기에 혼란의 정도는 크지 않았다. 후위에서 임펠리아군의 맹공을 받고 있는 제국군을 희생양으로 삼아 전군을 휘몰아 입구로 빠져나가면 될 듯 했다.
"공작님. 어서 전군에 명령을 내리십시오. 모두 반전하여 퇴각하라고 말입니다."
백작의 말에 공작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힘을 모았다. 그것은 비전의 힘. 대륙을 지배하는 제국의 5대 공작가 중에서도 사용하는 그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적은, 인간을 뛰어넘는 힘.
'마나?'
공작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부시 백작은 그의 전신에서 일렁이는 기운이 새어나오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나가 유형화되어 보일 정도라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이다. 오대 명가의 가주가 마스터라는 소리는 오랜 세월 정치판에서 굴러먹은 백작도 알고 있지 못한 사실이었다.
"전군 입구를 향하여 후퇴하라!"
협곡을 울리는 공작의 목소리에 잠시간 제국군의 비명 소리가 끊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명령이 떨어진 병사들은 일제히 그들이 들어왔던 입구를 향하여 퇴각했다.
"불화살!"
하지만 절벽 위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비덴이 그들을 멀쩡히 보내 줄 리가 없었다. 미친 듯이 화살을 쏘던 궁수들은 그의 외침에 준비되어 있던 화살을 들어 활에 먹였다. 특이하게 화살에는 촉이 없었고, 촉이 있어야 할 부분에는 기름을 흠뻑 먹인 천이 매여져 있었다.
"당겨!"
비덴의 외침에 궁수들의 뒤에서 화살을 나르던 전사들이 궁수들의 곁으로 다가가 허리춤에서 부싯돌을 꺼내어 천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절벽위에 늘어서 있던 1000여명의 궁수들이 불화살을 겨누며 하늘로 치켜들어 비덴의 명령을 기다렸다. 기름이 타 들어가는 매케한 냄새가 그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쏴라!"
-쉬쉬쉭!
궁수들은 일제히 불화살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 화살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제국군이 물러나고 있는 길의 반대편에 있는 무성한 숲이다. 분명 적의 화공이 예상되는 숲 속으로 군사를 몰아 들어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는 행동이다. 다만 하나의 조건이 충족된다면 제국군은 전멸을 면치 못하리라.
"역시!"
백작은 지켜보고 있던 절벽 위에서 일제히 불화살이 날아오르자 무릎을 치며 화살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의 숲이라면 금방 타오르지는 않는다! 서둘러서 퇴각하라!"
백작은 외치며 후퇴하는 제국 병사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쉽게 숲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무성하여 절벽 위에서 쏘아 보낸 불화살로는 쉽사리 제국군을 위협할만 할 불은 단시간 내에 나지 않을 것이다. 백작은 안심하고 병사들을 재촉했다. 하지만 불화살이 숲에 떨어지자 백작의 안색이 변해 버렸다.
-화르르륵!
열풍이 그의 얼굴을 습격했다.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화끈하게 만드는 불길이 숲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백작은 비명처럼 외쳤다. 제어되지 않는 불이 인간, 아니 살아 있는 생명에게 주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공포의 감정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 질서 있게 후퇴하던 제국군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속력으로 번져 가는 불을 보며 공포에 젖었다. 나무에 기름을 흠벅 먹여 두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숲이 불구덩이로 변할 이유가 없었다. 재앙이었다. 그것은 제국군에 있어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우와와아!
완전한 함정이었다.
적은 처음부터 확실하게 자신들을 이곳 론니기움협곡으로 끌어들일 생각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자신들이 진입을 기다리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게라트 워의 유인 작전을 눈치 챘을 때 생각했어야 했다.
이성을 잃고 앞 다투어 달려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백작은 이를 악물고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공포에 질려 버린 병사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라면 얼굴을 올려 보지도 못할 존재들, 그러니까 호화찬란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나 귀족들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으면 자신들이 쥐고 있는 무기를 휘둘러 그들을 때려눕혔다.
평소에 자신들을 괴롭히던 '검'이라는 힘과 '권력'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자신들을 괴롭히던 자들이 이렇게 마치 땅을 기어다니는 벌레처럼 버르적거리는 모습을 본 몇몇 병사들은 다급한 와중에도 묵혀 두고 있었던 원한이 떠올랐다.
"죽어랏!"
"에이미의 원수!!"
갑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 져 있던 귀족이나 기사들에게는 청천벽려과 같은 일이었다. 기사들이란 것은 고귀하고 고결한 존재라 말 위에 올라 당당하게 적을 맞으며 검을 휘두르는 것에는 익숙하다 못해 능숙하다 할지라도 이렇게 땅바닥을 구르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들은 정말. '버러지'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크악!"
"사, 살려……!"
그토록 자신들을 괴롭히던 귀족들이, 기사들이 자신들의 창에 마치 채집되어 있는 곤충처럼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병사들의 눈에 광기가 맴돌았다.
===오늘도 두편 올렸습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