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년제국-108화 (108/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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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니기움 협곡 전투의 결말. 검은 오라를 사용하는...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기사들은 자리에 앉아 레오도르를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부하는 상관을 닮는다고 하지 않는가? 대부분의 기사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굽히기 싫어하는 전형적인 귀족의 모습이었다. 때문에 겉보기에 유약하고 가문도 별 볼일이 없는 레오도르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경멸이라는 감성이 담뿍 담겨져 있었다.

"부사령관! 어째서 출격을 금지시킨 것이오?"

레오도르가 자리에 착석을 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따지듯이 묻는 사람은 기사들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트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사였다. 타고난 체구가 건장하고 얼굴이 험악해 겁이 많은 성격의 레오도르에게 있어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에게 평생에 다 쓸 용기를 몰아 쓰라고 요구를 하고 있었다.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이곳을 향해 진격하는 임펠리아군의 병력이 저희들의 병력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저따위 쥐새끼 같은 임펠리아군에게 위대한 제국군이 패하리라 생각하는 것이오?"

이트만의 외침에 레오도르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에는 눈물이 송글송글 맺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오도르는 목을 넘어서 올라오려는 무언가를 억누르며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이곳으로 향하는 임펠리아군은 6만, 여러분들의 용맹함을 앞세워 적을 친다면 분명 어려움 없이 그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선봉일 뿐입니다. 그들의 뒤로는 다시 12만의 대군이 뒤따라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여러분들의 용맹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12만 대군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의 조리있는 설명에 이트만의 말에 동조하던 기사들이 하나, 둘 고개를 끄덕였다. 이트만도 그의 말에서 딱히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기에 우물쭈물 하더니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지금 이 요새에 남아 있는 병력을 가지고 저들에 맞서 싸우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황도로 사람을 보냈고 각지에서 주둔중인 병력들이 요새로 모여들고 있으니 요새를 철저히 수비하여 저들을 막아낸 이후에, 황도에서 응원군이 도착하면 저들에게 얼마든지 지금의 치욕을 되갚아 줄 수 있을 겁니다."

레오도르의 말에 이트만과 그를 따르는 기사들도 할 수 없이 그의 의견에 찬성했다. 물론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성밖으로 뛰어나가 임펠리아군을 도륙 내고 싶었지만...

하지만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이 취하려는 모든 방법의 대부분이 제국 땅을 달리고 있는 임펠리아군의 제 2군에 의해 하나 하나 봉쇄되고 있음을. 그들이 신이 아닌 이상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진군 속도를 올려 삼일을 달리고 나서야 제르만이 이끄는 임펠리아군은 보르세요새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말에서 내린 제르만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요새를 바라보았다. 과연 제국이 자랑할 만한 규모의 거대 요새였다. 아니 요새라기 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성과 같았다.

'보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심어 줄 요새라니....'

이때까지 기세등등하게 달려왔던 임펠리아군의 병사들이 기가 질린 듯 요새의 엄청난 위용에 기가 질려 멍청하게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병사들의 심경과는 반대로 제르만은 오히려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등산가에게 있어 높은 산일수록 정상을 정복하면 희열을 느끼는 것 같이 그는 한 명의 전략가로써 요새의 공략에 희열을 느꼈던 것이다.

가만히 요새를 눈여겨보는 제르만의 곁에 장교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압도적인입니다. 장군님!"

장교의 말에 제르만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의 말을 일부러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군. 과연 제국이 대륙에 자랑할 만한 요새야.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는 요새라니...."

제르만은 한동안 더 요새를 바라보고 있다가 말을 돌리며 그의 뒤를 따라오는 장교에게 명령했다.

"주둔지를 만들어라. 우선 병사들을 쉬게하고 요새에 대한 공격은 2파 병력이 도착하고 난 이후로 하겠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제르만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후, 속도를 올려 먼저 달려가는 장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보르세요새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번 그의 시선은 요새의 가장 높은 첨탑에 휘날리는 검은 히드라의 모양이 선명하게 자수되어 있는 커다란 깃발에 고정되었다.

머지않아 그 깃발은 포효하는 사자, 임펠리아의 상징 황금 사자로 바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손에 의해.... 분명 그것은 평생을 군인으로써 지휘관으로써 장수로써 살아온 자신에게조차 떨리고 흥분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이제..시작일 뿐이야. 이제....'

제르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되뇌이고 또 되뇌이었다.

돌아와 보니 주둔지를 만드는 임펠리아의 병사들은 눈앞의 요새의 위용에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누구 하나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의 그런 모습에 제르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병사들의 모습이야말로 그 병사들이 정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자신이 이끄는 병사들은 최고중의 최고였다. 요리사는 좋은 재료를 보면 요리를 만들고 싶어하고 검사는 좋은 검을 보면 그 검에 대한 소유욕으로 불타오른다고 했던가? 장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짜는 작전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병사들을 가진다면 역사에 남을 전투를 해 보고 싶어지는 것이 장수라는 생명체이다.

평생을 제국에 맞서며 살아온 노장인 만큼 제르만의 머리 속에는 평소에 그가 제국을 상대로 해 보고 싶었던 작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중 가장 적절한 작전을 찾아 눈앞에 있는 대륙 최강을 자랑하는 요새를 상대로 펼치고 싶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빈약한 군사력에 경제력까지, 병사를 키우고 훈련시킬 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해 볼만했다.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준비됐고 그는 평소에 생각해 왔던 작전만을 펼치면 되는 것이다.

누라의 조슈아 왕자 곁에 파견되어 있는 아라크네 소속의 요원 레이코는 자신의 방에서 뛰어 나와 빠른 걸음으로 왕자궁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한 것이다.

- 다다다다닥!

죠수아의 방문 앞을 지키던 기사들은 방을 향해 달려오는 시녀가 최근에 왕자의 방에 허가없이 출입을 하도록 허가받은 시녀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전신을 힐끔 한번 흩어보고는 아무런 말없이 방문을 열어주었다.

- 딸깍!

방문을 열어 들어가니 보이는 방의 중앙에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곳에는 조슈아가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몇 일 밤을 샜는지 시뻘개진 눈을 들어서 암울한 오라를 내뿜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보아오던 광경이지만 짐짓 레이코는 익숙해 질 수 없는 광경이었다.

"무슨 일인가?"

"기다리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레이코는 한장의 쪽지를 조슈아에게 공손하게 내밀었다. 레이코가 내미는 쪽지를 받아 읽어내려 가던 조슈아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다. 그만큼 종이에 적혀 있는 내용은 쉽사리 넘어가기 힘든 내용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진실인가?"

"모든 것은 왕자 전하께서 읽으신 그대로 이옵니다. 믿지 못하시겠으면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흐흠..믿지!"

잠시 고민을 하던 조슈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어차피 이런 정보로 사기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 국가와 국가 간의 밀약에 의한 정보였다. 조금만 노력하면 그 정보의 진위여부는 판가름할 수 있었다.

조슈아는 쪽지를 들고 문앞의 레이코를 지나 거의 달린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방을 가로질렀다. 조슈아가 방을 나서자 앞에 시립 해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조슈아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본궁으로 가겠다."

"옛!"

조슈아는 빠른 걸음으로 본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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