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년제국-110화 (11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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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침공, 보르세요새 공방전 몇 일이 지났다. 제르만은 제 1군 2파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막사에서 뛰쳐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의 도착으로 보르세요새를 노리는 임펠리아군은 총병력 18만의 대군이 되어 정면으로 요새를 공격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대병이 되었다. 제르만은 이제 요새를 공격할 시기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즉시 각 지휘관들을 불러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장군님! 굳이 회의를 할 것도 없이 정면으로 공성전을 치룬다고 해도 저희들은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작전 회의에 참가한 알론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자 참석한 지휘관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론의 의견에 동의했다. 제르만은 그들을 잠시동안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물론 우리의 병력이라면 정면으로 요새를 공략한다고 해도 충분히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우리들이 이끄는 병사 하나 하나가 우리 왕국의 중요한 재산이니 함부로 그들을 잃어서야 돼겠소?"

제르만의 말에 지휘관들은 미약한 감탄사를 터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진지해진 회의장을 둘러 보여 제르만은 자신이 생각한 전략을 탁자 위에 깔린 지도의 곳곳을 짚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본격적인 작전은 영운 진 가이런 대공 전하께서 이곳에 도착을 하시어 시작될 것이요. 이 모든 작전의 승패는 그분과 그분이 이끄는 병사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오. 그럼 작전에 개요부터 제장들에게 설명해 주겠소."

작전 회의가 열리는 막사 안은 진지함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일사천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순조로웠다. 너무나 순조로웠기에 왠지 모를 막연한 불안감이 들 정도였다. 제 2군 1, 2, 3파는 병력을 나눠 제국의 남부 귀족들의 영지를 하나 하나 해방시켜 나갔다. 약간의 저항이 있었지만 그것은 저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수준의 발악일 뿐이었다.

"부탁한 보급은 어떻게 되었나?"

영운의 물음에 레이니는 즉각적으로 답했다.

"이미 수령을 완료했습니다. 양이 많아 수송하는데 애를 좀 먹었을 뿐입니다. 그리고..재무 대신 각하의 불평이 대단하십니다. 전쟁을 하더라도 좀 싸게 할 수 없냐고 하던데요?"

애초에 전쟁이라는 것은 총력전이다. 특히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은 국가 총력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된다. 전쟁을 하다가 쫄닥 망해 알거지가 된 나라들은 부지기 수였다.

물론 승리한다면 그에 따른 보상이 뒤따르지만.... 아무튼 돈을 들이지 말고 전쟁을 하지 말라는 것은 화살을 쏘지 말고 검을 휘두르지 말 말고 전쟁을 수행하라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영운은 레이니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전쟁을 하더라도 좀 싸게 할 수 없느냐고? 랑텐다운 말이로군. 차라리 전쟁에서 패하라고 굿을 하지."

"그런 걱정을 하실 수밖에 없지 않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저희들이 이해를 해야죠."

"어떻게 보면 내게 있어서 제일 무서운 존재는 전설에 나오는 드래곤도 아니고 제국의 맹장들도 아니고 여왕 폐하도 아니야. 재무대신 랑텐이 나에게는 제일 두려운 적인 것 같군."

짐짓 엄살을 피우는 영운을 향해 레이니는 고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모든 돈줄을 쥐고 있는 랑텐만큼 상대하기 곤란한 이도 없었다. 여왕을 제외한 임펠리아의 모든 이들이 그의 앞에서는 설설 길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예산이 지배한다.'

언젠가 읽은 책에 쓰여 진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하하! 설마요?"

"그건 그렇고 그 물건도 수령했으니 지금부터 출발한다면 보르세요새까지 얼마나 걸리겠나?"

영운의 질문에 레이니는 머릿속에서 잠시 계산을 굴려보았다. 현재 영운들이 있는 곳은 임펠리아와 제국의 국경지대이다. 마차를 이용해 이동을 하니 일반 보병들이 이동하는 속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동력이 있다. 더구나 제국의 남쪽 지방은 거의 평야지대, 도로망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제국군의 별다른 저항이 없다면 5~6일정도면 충분했다.

"대충 일주일 정도면 보르세요새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약간의 여유 시간까지 포함해 레이니는 말했다.

"5일 안에 도착하는 걸로 하지."

"5..일 말입니까? 시간이 촉박합니다."

확실히 촉박한 시간이다. 임펠리아군이 아무리 고기동성을 자랑한다고는 하지만 5일이라는 시간 안에 도착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보르세요새를 공격하는 제르만 장군의 능력은 믿을 만합니다. 굳이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서두르지 않으면 아무리 제르만 장군이라고 해도 낭패를 볼 수 있다."

"그 정도인가요? 설마 우리들이 전달해 줘야 할 그것 때문입니까?"

그것이라는 말에 영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전달해 줄 것이 아니지. 그 보급품들은 우리들을 위한 거야."

"....?"

레이니는 영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레이니가 수령한 물품은 정밀하게 밀봉된 검은 상자 500개이다. 전투에 필요한 중요한 보급품이라고 하여 수령만을 했을 뿐,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레이니 자신도 실상 모르고 있었다.

레이니는 조심스럽게 운을 띄었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습니까? 상자의 크기에 비해 가벼운 것이 무기나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영운의 특별한 명령에 수도 루레아드에서 실어 온 것이었기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었지만 레이니는 그 특유의 무덤덤함으로써 호기심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

"저에게만 좀 가르쳐 줄 수 없습니까? 대공!"

레이니의 말에 영운은 희미하게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일 때의 영운은 위험한 상태이다. 몇 번에 걸쳐 경험한 적이 있는 레이니였지만 요 근래 영운에게 구타당한 기억이 없는 관계로 간 덩어리가 부어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전시 상황이 아닌가? 설마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일단 맞고 시작하자.'라고 말하며 무지막지한 구타를 가하겠는가? 여기까지 머리 속에서 계산을 끝마치자 레이니는 완전히 겁 대가리를 상실했다.

"가르쳐 줘요! 네!"

마치 어린아이가 조르는 어투이다. 그런 레이니를 바라보며 영운은 단 두 마디만을 날려 레이니의 입을 막았다.

"알면 다쳐!"

"...."

"잔소리 그만하고 병사들을 진군시켜라."

"...."

"진군시키라고 했다. 일단 맞고 시작할까?"

역시나 저 성격 어디를 가지 못한다. 영운의 말에 레이니는 기겁을 하며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공격! 공격!"

"쏴랏! 놈들이 성벽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화살이 빗발쳤다. 돌덩어리들이 날아 다녔다. 임펠리아군의 병사들은 사력을 다해 성벽에 접근하려고 했고 수성전에 돌입한 제국군 병사들은 반대로 사력을 사해 막았다.

"음!"

제국 침공군 제 1군을 지휘하는 제르만 장군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생각보다 제국군의 저항은 격렬했다. 쉽게 보르세요새를 점령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고전을 하게 될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성을 지키는 제국군의 숫자는 많이 쳐주어도 4만을 조금 넘어가는 숫자이다. 이에 반해 임펠리아군은 16만의 대병이다.

4배에 달하는 숫자라면 쉽게 성을 함락시키리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역시 쉽지는 않다는 말인가? 거기에다가 좋은 지휘관을 둔 모양이로군."

제국군의 4대 요새가 왜 난공불락인지를 새삼 절감하게 하는 공방전이었다. 오늘의 공방전을 제외하더라도 제르만은 3회에 걸쳐 요새를 공략했다. 처음에는 아주 가벼운 마음에서 제국군의 임전 태세를 알아볼 작정으로 가벼운 공격을 걸어 봤지만 공략에 실패하여 군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공격은 아주 마음을 먹고 공격했었다.

투석기에 발리스타, 충차, 기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공성 병기를 동원하여 성을 총동원하여 공격했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6000명의 사상자를 내며 공략에 실패했다. 세 번째 공격은 엄폐물을 이용해 삼일 밤낮, 땅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 성벽 지지대를 파괴하여 성벽을 무너트리려고 했다. 하지만 탐지병에게 들켜 굴속으로 다량의 물이 유입되면서 굴을 파며 공격 대기 중이던 애꿋은 병사 800명만을 수장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에 네 번째 공격이었다.

"괴물이로군."

확실히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만 했다.

"결국 대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여 짜논 작전이었다. 가능한 대공이 이곳에 오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고 보르세요새에 황금 사자기를 꼽고 싶은 것이 그의 솔직한 바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젠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전령!"

"옛 장군님!"

"군을 뒤로 물린다. 나팔수에게 연락을 하도록."

"알겠습니다. 장군님!"

가능성이 없는 일은 빨리 포기해야 한다. 안 되는 일을 잡고 늘어져 봐야 피해만을 늘릴 뿐이다. 제르만은 아주 적절한 판단을 했다.

"끄응! 대공께서 빨리 도착하셔야 할텐데."

전령에게 명령을 내린 제르만은 자신의 자리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지휘관용 야전 의자이기에 귀족집 가정이나 황실에 비치 돼 있는 소파와 같이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피곤에 절은 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딱딱한 등받이의 느낌이 제법 불편했다. 아마도 그의 마음 또한 지금 등받이의 느낌처럼 무척이나 불편하리라.

- 부우우우우우~ 전령에게 내린 명령이 전해졌는지 저 멀리서 뿔피리 소리가 전장을 흩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성을 공략하던 임펠리아군이 서서히, 하지만 아주 조직적으로 후퇴를 개시했다. 제법 많은 숫자의 피해자를 남기고.... 그 모습에 제르만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오늘을 늦게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늦게나마 올립니다. 그럼 즐독하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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