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년제국-127화 (12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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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전쟁 5년 후, 그리고 누라에서의 초대.

축하 사절단의 구성은 재빨리 진행되었다.

그 규모는 약 500명 정도, 영운을 중심으로 몇 몇 귀족들과 근위 기사단 소속의 기사 100여명과 특별하게 엄선해 뽑은 병사들 300명, 기타 여러 가지 잡무를 볼 인원이 100여명으로 구성됐다.

사절단이 구성되자 시간이 없는 관계로 즉시 누라를 향해 출발했고 군대의 기동성을 살리듯 사절단은 빠른 속도로 누라를 향해 이동했다.

"누라도 제법 넣은 나라군."

제국의 남부 지방을 통째로 삼킨 임펠리아에 비교하자면 그 면적은 확실하게 1/5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다. 마커스와 소니아를 병합한 넓이라고 해도 절반 정도의 규모의 국가이다. 다만 마법과 군사력, 그리고 금력까지 고루 갖춘 누라의 힘은 임펠리아도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국경을 넘어 말로 달려 열흘 이상을 가야 수도가 나옵니다."

영운의 곁에 있던 한 젊은 귀족이 살짝 귀뜸을 하듯 말했다.

"도로의 정비도 잘 돼있고 상당한 저력을 가진 나라야."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아는 법이다.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영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던 것은 바로 잘 정비된 도로였다. 도로는 모든 경제적인 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간 시설이다. 여러 지방 특산품이나 농수산물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잘 닦인 도로가 필연적이다.

특히 도로의 발전은 상업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누라는 대단히 상업이 발전된 국가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게 된다.

"누라는 마법이 발전한 국가일 뿐만이 아니라 소니아의 영향력을 받아 예로부터 상업이 번성한 곳입니다."

"그렇군. 그런데 이제 얼마나 남았나? 누라의 수도까지...."

"지금의 이동 속도라면 삼일 후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대관식이 일주일 후니까 넉넉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행사의 주인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돼지."

현재 영운들이 지나가고 있는 곳은 누라의 수도로부터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에실론 영지라는 곳이다.

영지의 80%가 산악이기에 평지를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곳이다. 과거에는 이런 울창한 살림에 기대어 다수의 몬스터들이 서식했지만 전쟁 직후 누라 중앙정부의 대대적인 토벌로 안전지대가 됐다.

다만 번식력이 강한 몬스터들이 다수 있기에 지금도 안전한 길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곳을 지나는 상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아직까지는 안전한 길로 인식이 되어 있다. 또한 500명이 넘는 대규모 행렬을 공격할 만큼 몬스터들 역시 어리석지 않다.

"더글라스."

젊은 귀족의 이름은 더글라스이다.

더글라스는 외교 부분의 책무를 맡고 있는 관리로써 이번 영운을 보좌하여 여러 가지 외교적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외부대신이 특별하게 딸려보낸 문관이었다. 그 만큼 상당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젊은 고급관료라는 이야기다.

영운의 부름에 더글라스는 정중하게 답했다.

"옛 전하!"

"조금 이동속도를 높여야겠어."

점점 울창해 지는 숲을 바라보며 영운이 말했다. 거의 대부분이 마차로 이동을 하고 있기에 속도를 더 올려 이동을 해도 될 여유는 있었다.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에 더글라스는 영운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숲이다. 대단히 깊은 숲이다.

태양이 중천에 뜬 한 낮에도 빛의 그림자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다. 엘프들이 무리 지어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의 울창한 숲이었다. 수 백년은 되어 보임직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는 흔적이 역력한 곳이다.

다만 널찍하게 뚫린 도로와 그 도로 주변에 기척을 감추고 있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흑의인들만 없다면 태고의 숨결을 간직한 아무런 문제없는 숲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구우우우..구우우..구우, 구우, 구우 산비둘기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가 고요한 숲 안을 가득 메웠다. 약간 인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둘기 울음소리였다.

"온다."

비둘기 울음소리를 들은 흑의인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목소리에 쇳소리 가득한 것이 인간의 음성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기괴한 음성이었다.

-스르르릉!

날카로운 쇳덩어리의 마찰 소리와 함께 검은 로브를 입은 흑의인 한 명이 로브 안에 감춰져 있던 날이 잔득 벼러진 검을 꺼내 들었다. 동시에 다른 흑의인들 역시 검을 꺼내 들었다.

"지금부터 계획대로 행한다. 우리들의 목표는 표적에 대한 완전말살! 다만 우리들의 예상치를 벗어난 경우 후퇴를 용납한다. 모두 경거망동하여 일을 그릇치지 않도록 하라."

"...."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의 당부에 대답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 담긴 결의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흑의인들은 서서히 어둠과 동화되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지!"

베르나드로 멕켈은 손을 들어 행렬을 정지시켰다. 제 3근위 기사단 시절부터 영운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이고 레이네가 기사단장으로써의 임무 때문에 영운을 수행하지 못하기에 기사단의 2인자인 멕켈이 영운을 수행해 이번 사신행렬의 경비책임을 맡았다.

멕켈은 말을 이동시켜 영운이 타고 있는 마차 곁으로 다가갔다. 마차가 멈추자 영운은 마차 문을 열고 멕켈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인가?"

"옛 전하! 숲이 깊어 끝나려면 한참 걸릴 듯 싶습니다. 하여 이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날까 하옵니다."

"식사?"

영운은 마차 창문을 통해 숲을 살펴보았다. 울창한 숲 풀 사이에 조그마한 공터(500명이 넘는 인원들이 쉴 면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넓직한 것이 휴식을 취하기에는 적당한 듯 보이는 공터다.)가 있는데 아마도 멕켈은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갈 생각인 듯 싶었다.

"앞으로 계속 숲이 이어질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저 정도 넓이의 공터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기에 저곳에서 잠시 쉬었다 출발할 생각이옵니다."

"그렇군. 그렇게 하도록...."

영운의 허락이 떨어지자 멕켈은 즉시 기사들과 병사들을 움직여 사주 경계에 들어가고 하고 수행인들로 하여금 식사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원래 이만한 대 인원이 이동을 할 때는 아침, 저녁만을 만들어 먹고 점심은 건량이나 아침에 준비한 도시락으로 때우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오늘은 아쉽게도 건량이나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관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대신 주변에 대한 철저한 경계로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상사에 단단히 대비하도록 했다.

"자! 뭣 들 하느냐? 중앙에 전하의 자리를 마련하고 식사 준비를 하거라. 빨리 움직여라."

500인분에 대한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여간 시간이 들고 성가신 일이다.

거기에 영운의 식사는 황궁의 예법에 따라 야숙(野宿)시에도 제법 거창하게 나온다. 음식을 그렇게 가리지 않는 영운이었지만 황실 예법 운운하며 시끄러울 귀족들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주는 대로 받아먹는 영운이었다.

다만 그 때문에 행렬의 출발은 조금 늦어지겠지만 모두들 익숙한 일이었기에 불만은 없었다.

-사르륵, 휘이이이 시원한 산바람이 한바탕 공터를 휩쓸고 지나갔다. 공터에 자리를 잡은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기에 일부는 이미 식사를 끝내고 3선을 경비하는 동료 기사나 병사들과 임무를 교대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

막 식사를 시작하던 영운은 갑자기 얼굴이 굳어지며 포크를 손에서 놓았다. 같이 식사하던 더글라스와 멕켈은 그런 영운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는지 영운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전하 무슨 문제라도?"

넵킨으로 입술을 닦으며 더글라스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지금까지 몇 일 동안 영운과 같이 여행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 항상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가 끊이지 않았고 별다른 짜증도 부리지 않았다.

외부에서 하는 식사이기는 했지만 따라온 요리사가 정성껏 만들었기에 먹을 만 했고 영운 또한 만족감을 표현했으면 했지 음식 가지고 투정은 부리지 않았다.

영운은 의아해 하는 더글라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곁에 놓여 있던 애검 라이온 하트로 손을 가져갔다.

"매복이다."

"...."

"?"

영운의 말에 더글라스와 멕켈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매복이라니요? 전하! 저는 아무런...."

멕켈은 레이네와 동기이며 초기부터 영운을 따랐던 제 3근위 기사단의 얼마 남지 않는 생존자중 한 명이다. 그만큼 출중한 검술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다. 레이네와 마찬가지로 소드마스터 초급을 넘어 이제는 중급에 거의 근접한 실력을 가진 인물이다.

임펠리아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이다. 지난 5년 동안 임펠리아는 많은 숫자의 소드마스터를 배출했다.

공식적으로는 불과 두 사람에 불과했던 소드마스터의 숫자는 제국 전쟁이 끝난 이후 소드마스터의 인증을 받은 멕도웰과 세바스챤을 비롯해 영운에게 검술 수업을 받은 제 3 근위 기사단을 중심으로 10여명의 마스터를 양산(?)하게 된다.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멕켈이다. 그런 소드마스터의 실력을 넘어선 멕켈이 느끼지 못한다는 말은....

"쉿! 서쪽이다. 바람결에 쇠 냄새가 실려 오고 있다. 분명 다수의 매복이 있음이 확실해!"

영운은 단정을 짓듯 잘라 말했다. 멕켈은 '씁! 니 코는 개 코냐?' 라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상대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버린 인물이다. 다름 사람이 말한다면 소드마스터도 느끼지 못한 기척을 느꼈다고 농담으로 치부해 버리겠지만 그랜드 마스터의 주장이라면 말이 틀려진다.

멕켈은 굳은 얼굴로 자신의 검을 챙겼다. 심각한 일이다.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영운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드마스터를 넘은 검술 실력을 가진 실력자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기척을 잘 지운 적이라는 이야기다.

대충 자신에 비교해 조금 모자라는 실력, 혹은 대등한 실력을 가진 자들이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영운이 다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분명 그것은 둘 이상의 숫자, 소드마스터나 되는 실력자들을 다수 동원할 수 있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한 일일 것이다.

'제국? 누라? 아니면 신성제국?'

확실히 소드마스터를 둘 이상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이들 나라뿐이다. 작은 공국이나 왕국따위는 한 명의 소드마스터도 보유하기 힘들다. 분명 그들 중 한 나라가 틀림없다.

"저..전하! 혹시 몇이나 되는지 파악하실 수 있습니까?"

"5..6....9..10. 최소한 열 명 이상이다."

'열 명?'

영운의 말에 멕켈은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열 명이라니.... 공식적으로 그렇게 많은 숫자의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임펠리아의 경우만 해도 비공식적으로는 13~4명의 소드마스터가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4명만이 존재할 뿐이다.

제국 역시 5년 사이에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5명을 넘지 않는다. 신성 제국 역시 마찬가지이며 마도 제국 역시 제국이나 임펠리아보다는 숫자가 적다. 그런데 10여명이상이라니....

"맙소사."

멕켈의 입에서는 절망이 뒤섞인 신음성이 튀어 나왔다. 10여명의 마스터는 자신들의 힘만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막강한 전력이었다. 멕켈의 시선은 영운에게로 쏠렸다. 이렇게 된 이상 그랜드 마스터를 넘어선 영운만이 그들에게 있어 최후의 희망이었다.

"온다!"

영운의 차가운 음성이 멕켈의 귓전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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