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년제국-131화 (13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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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까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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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사생아 트리온, 그리고 멸신자와의 영원한 전쟁.

젊은 사내였다.

절대 30은 넘어 보이지 않는 젊은 사내였다. 백금발에 가까운 연한 금발이 허리춤까지 치렁치렁 내려왔고 선이 가늘기는 하지만 두텁게 각이 진 턱은 제법 남성스런 분위기를 풍겼다. 키는 180을 훌쩍 넘겼고 호리호리한 체격이었지만 군살이 없는 탄탄한 근육질로 무장하고 있는 남성이었다.

'누군가?'

영운은 아직도 공격태세를 풀지 않고 있는 검은 로브의 암살자들을 향해 힐끔 시선을 날려 견제를 하면서 갑작스럽게 모습을 들어 낸 남자를 바라보았다.

"물러들 서라."

남성의 음성은 낮고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지만 그 속에는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검은 로브를 입은 암살자들은 남자의 명령대로 서서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운을 향한 적의감과 경계심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대단해!"

"■■."

"저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다니. 그것도 둘이나 죽이다니."

사내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그의 시선은 마치 신기한 장난감을 만난 것 마냥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어느 정도 영운에 대한 호의도 있었다.

"셋이다."

"?"

"한 놈은 아직 자신이 죽은지도 모르고 있을 뿐이지."

"■■?"

-털썩! 푸아아아앗!

영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로브의 암살자 중 한 명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피보라와 함께 몸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자신이 언제 검을 맞았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사내는 진정으로 감탄에 가득 찬 신음성을 흘렸다.

"으으음! 과연■■. 검의 명인이 가공할 쾌검에 의해 잘리면 한동안 자신이 잘렸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 움직인다는 전설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일 줄은■■."

사내는 지금까지 상황을 모두 빼놓지 않고 모두 견식하고 있었다. 이전의 공터에서부터 지금까지■■. 하지만 언제 저렇게 당했는지는 사내 자신도 미처 볼 수 없었다.

"멸신무투 극쾌 공간참! 섬전과 같은 빠르기로 공간조차 가르는 검!"

-짝! 짝! 짝!

"브라보! 굉장해! 과연 신조차 베어버린다는 신기의 멸신자, 내 예상을 뛰어 넘는 극강의 무력을 소유하고 있군. 하지만 진짜 힘은 이 정도가 아니겠지?"

사내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마치 죽은 암살자들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들인양 그들의 죽음따위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영운의 신기와 같은 칼솜씨만 감탄하고 있었다.

"■■."

"아참! 그렇지. 아직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군. 난■■."

"저들의 우두머리겠지."

영운은 검은 로브인들을 힐끔 바라보며 적의가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내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 뒤로 넘기며 말했다.

"그렇지. 비공식적으로■■."

"공식적으로는?"

영운은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 분명 저 검은 로브의 암살자들은 저 사내의 부하들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에 표정에는 그들의 죽음을 애석해 하거나 아쉬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해도 자신의 수하가 죽음을 당한다면 결코 저런 모습을 보이지는 못한다. 아니 인간이 아닌 트리온 일족이라고 해도 부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옆에 도열하며 아직도 전투모드에 풀지 않고 있는 검은 로브의 암살자들 역시 그런 사내의 행동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황제다."

"■■."

사내의 말에 영운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대의 가장 큰 제일 적, 엘리온 폰트파르■레이티오 3세■제국의 황제이지. 뭐 중간에 수많은 이름이 붙어 있지만 모두 들으려면 자네가 늙어 죽을 것 같아 생략하도록 하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뿌리며 황제는 말했다.

■■레이티오 3세.

앞에 달려있는 화려한 수식어와 이름을 모두 들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에 일단 생략하기로 하자. 아무튼 이 레이티오 3세에 대한 제국 귀족들의 평가는 극단적이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황태자 시절의 레이티오는 대단히 총명한 인물이었다.

과거 현(賢)황제로 이름 높은 바쟐 8세의 현신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총명한 인물이었다. 많은 귀족들을 그가 황제가 되어 펼칠 선정을 기대했다. 그리고 그가 황제가 된 몇 년 동안은 대단히 뛰어난 정치를 했다.

귀족들을 아우르며 제국의 평민들을 다스렸다. 전쟁을 없앴고 계속된 선정에 귀족과 평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윤택한 삶을 즐겼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기간은 얼마가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였다. 말 그대로 하룻밤이 지날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황제는 갑자기 돌변했다.

그 총명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온후한 심성은 파괴적이고 패악적으로 돌변했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같은 모양의 껍질을 뒤집어 쓴 것처럼 바뀐 것이다. 그 날 이후 황제는 모든 정치에 관심을 끊었다.

술과 약에 취해 살았고 여자들과의 성적인 쾌락만을 쫓기 시작했다.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수동적인 행위만을 되풀이했다. 많은 충신들이 그런 황제의 행동을 안타까워하며 과거 총명한 황제로 돌아와 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오히려 황제는 그들의 목을 치고 그들의 가족들을 멸족시키는 잔악함을 보였다.

당연히 제국을 지탱하던 많은 충신들이 희생되었고 그 자리는 황제에게 아부하는 간신배로 채워졌다. 원리원칙은 사라지고 힘과 살육의 공포만을 이용한 공포정치의 시작이었다. 제국은 극도로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행복했던 평민들의 생활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귀족들의 행패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황제의 무능은 하늘을 찔렀고 어떻게 하면 이 거대한 제국이 확실하게 무너질 수 있을 것인가를 명확하게 증명해 보이며 멸망의 길을 착실히 걷기 시작했다. 다만 제국이라는 나라의 뿌리가 워낙 두텁고 깊었기에 당장은 붕괴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레이티오 3세 황제가 몇 년 더 나라를 다스리면 제국은 분열 될 것이라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고 그 예상은 상당부분 들어맞아 가기 시작하고 있다. 이렇듯 현(現)황제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명암을 가르고 있다.

"소문은■믿을 것이 못 되는군."

자신을 황제라고 밝힌 사내를 주의 깊게 바라보던 영운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소문은 믿을 것이 못된다. 지금 영운이 평가한 황제는 대단한 재원이었다. 한 눈에 보아도 철철 넘치는 카리스마는 영운을 압도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 아무리 막 나가는 트리온 일족이라고 해도 어정쩡한 능력을 가진 인물을 자신들의 표면적인 지도자로 선택했을 리는 없었다.

"고맙군."

"두 번째로군. 내가 재원이라고 생각한 인물로는■■."

"그 첫 번째가 임펠리아의 여황인가?"

"■■."

황제의 물음에 영운은 일단 대답을 회피했다. 마누라와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찌 됐건 일단 아리나스는 자신의 아내였기에 무응답으로써 대답을 회피한 것이다.

"언젠가 한 번 그녀를 본 적이 있다. 14살 때였던가? 내 기억에는 정말 당찬 아이였지. 인연이 닿았다면 제국의 안주인으로 손색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확실히 손색은 없겠지. 아리나스가 원했다면 가능했을 거야."

"그러나 그녀의 성격상 얻는 것보다는 빼앗는 것을 좋아하겠지."

"■■."

자꾸 이야기가 엇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이런 이야기나 나누려고 제국의 황제씩이나 되는 인간이 제국의 입장으로 본다면 이런 변방에 모습을 들어냈을 리는 없었다. 영운은 인상이 구겨졌다.

"아! 아! 그렇게 인상 구기지 말라고."

"그래.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 설마 이런 잡담이나 나누려고 여기까지 행차하신 것은 아닐테고."

"물론 이 먼길을 그딴 이야기나 하려고 온 것은 아니야. 전설로만 떠돌던 멸신자의 실체를 한번 구경하기 위해 온 것이지. 자네를 만나기 전부터 난 자네가 멸신자 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물원의 동물이 된 듯한 느낌이 드는군."

"그런가? 그렇다면 사과하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인가?"

"그리고 한 가지■■."

황제는 잠시 말을 끊고 검은 로브의 암살자들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을 날카롭게 노려보았지만 워낙 찰라지간의 일이었고 또 영운에게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기에 황제의 그런 눈초리를 본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황제는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에게 제안을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네."

"제안?"

영운으로써는 황제의 말이 당혹스러웠다. 사부의 제자가 되어 멸신자의 사명을 자각한 이후 제법 많은 차원계를 돌아다니며 트리온의 일족들과 싸워왔지만 '제안'이라는 행위를 한 트리온의 일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상대에 대한 적의감을 느끼고 극한의 대치만을 해온 영운에게 있어서 대단히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니■놈에 대한 적의가 일지 않는다?'

검은 로브의 암살자들과 처음 공터에서 만났을 때 영운은 강렬한 적의감에 이성을 상실할 뻔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많이 겪었었다. 트리온의 일족이나 카오스의 의지에 반하는 신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써 이성을 배제한 완전한 전투생명체가 되기 위한 준비단계였다.

이것은 영운도 피할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것이다.

황제는 트리온 일족의 일원이다. 그것도 표면적으로 트리온을 대표하는 지도자인 샘이다. 그러나 황제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제안인지 들어는 보지."

이질적인 상황에 적응은 되지 않았지만 황제의 제안에 구미가 동(動)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들어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결코 나쁜 제안은 아닐 거야."

"들어보고 내가 판단한다."

"■나와■손을 잡지 않겠나?"

황제의 갑작스런 제안에 영운의 동공은 더 이상 확대될 수 없을 정도로 한계치까지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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