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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의 공간 "라.서먼의 서(書)?"
"네! 사부님!"
세리스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하고 영운에게 물었다. 세리스의 물음에 영운은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라.서먼의 서라?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로군."
"사부님이 전해주신 지식에는 자세한 설명이 되어있지 않았어요."
멸신자의 지식은 가르친다거나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만나고 자신의 숙명을 인지하게 된 이후에 머리에서 머리로 전달되는 것이다. 아무런 노력도 필요 없다. 멸신자에서 멸신자에게로 전해지는 방대한 지식을 타고난 인성만으로 배우려고 한다면 일평생을 배움에 투자를 한다고 해도 모두 배울 수 없다.
영운의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함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육체적인 능력이 최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다. 현재 세리스의 무력은 소드마스터에 넘어 선지 오래되었다.
영운을 만난지 채 몇 년이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한다면 경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이다. 물론 영운이 보기에는 아직도 많이 미진한 제자일 뿐이지만......
"당연히 설명이 되어 있지 않지. 지금까지 수많은 멸신자들이 그것을 찾기 위해 차원을 떠돌았으니."
"사부님은 알고 계세요?"
"확실하게는 나도 잘 몰라."
어느 정도는 예상이 되었지만 영운에게서 직접적으로 대답을 듣자 세리스는 약간 실망의 빛을 띄었다. 멸신자들은 기억을 공유한다. 여기서 기억을 공유한다는 말은 이전의 멸신자가 다음대의 멸신자에게, 멸신자로써 필요한 지식을 가르칠 때 각각 독립된 객체로써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기억 전체를 전이시킨다는 말이다.
전설 속에 나오는 드래곤이 자신의 지식을 헤즐링에게 전의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여기엔 몇 가지 예외가 있다. 그 첫째가 전대 멸신자들의 개인적인 기억이다. 인간은 일생을 살아가며 결코 남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는 일들을 하나 둘 쯤은 짊어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멸신자들이라고 해서 보통의 인간들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어쩌면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그들의 경우 더욱 개인적인 사정이 많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이되는 기억 속에는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들 중 후대에 알리고 싶지 않는 기억은 배제된다.
다음은 두 번째이자 마지막 예외이다.
멸신자를 창조한 카오스의 의지에 의해 멸신자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는 몇 가지 진실이 바로 그것이다. 지식이란 알면 득이 되는 것도 있지만 알아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라.서먼의 서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라.서먼의 서와 같은 금기를 접한 멸신자들도 여럿 있지만 곧 기억 속에 봉인이 되어 후대의 멸신자들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서도 예외를 찾자면 직접적인 필요에 따라 기억의 봉인이 풀려 금기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금기의 봉인이 풀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것을 묻지?"
"아, 아니예요.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올라서......"
"그래?"
"예!"
"나 역시 전대 멸신자, 그러니까 스승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라.서먼의 서에는 결코 인간이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들었다. 인간으로써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것이라고 하셨다. 너도 그것을 발견한다면 즉시 폐기해야만 한다. 알겠느냐?"
이미 그런 경고 또한 지식의 이식으로 세리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세리스는 영운을 향해 공손하게 답했다.
"옛 스승님!"
"그건 그렇고 우리 오랜만에 비무라도 해 볼까?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확인도 할 겸."
"오늘은 만만치 않을 거예요."
"글세......"
영운과 세리스는 안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연무장으로 향했다.
에레스트 산맥.
대륙을 남과 북으로 나누는 거대한 산맥이다. 과거 스카이 게이트, 천문관이 개발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전혀 별개의 대륙으로 인식이 될 만큼 인간들의 접근을 불허했던 난공불락의 거대한 만리장성이었다.
그러던 것이 300년 전 제국의 위대한 정복자 파르페니안 대제에 의해 사람들의 발길을 허용하게 되었으니 바야흐르 대륙은 전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후 수많은 정복자들에 의해 남대륙은 정복되어 갔다.
스카이 게이트.
천문관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다. 에레스트 산맥은 평균 6300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는 장성이었다. 다소의 굴곡과 높낮음의 차이가 있었지만 인간, 특히 다수의 군대가 넘어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악명 높은 지형이다.
다만 스카이 게이트만큼은 고도 3200미터 정도의 높이와 완만한 지형을 가졌기에 길을 개척하고 도로를 건설하여 다수의 군대가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북 대륙과 남 대륙을 잊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전략적, 전술적으로 그 중요도가 돋보이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국은 이곳에 천문관 요새를 지어 이 요충지를 방어하도록 하였지만 임펠리아군의 공격으로 함락되어 이제는 임펠리아의 땅이 된 곳이기도 하다.
과거 제국군의 경우 평시에는 3개 기사단 900기와 약 35,000명, 전시의 경우에는 70,000의 수비병력을 주둔시켰다. 이제 임펠리아의 손아귀에 떨어진 천문관 요새에는 10개 기사단 3,000기와 65,000, 보급과 기타 잡무에 동원되는 병력까지 총 80,000이 넘는 병력이 주둔하는 임펠리아 최대의 방어 요새가 되었다.
"으다다다다!"
천문관 요새 북쪽 성문 경비대 소속, 100인장 호엘은 길게 기지개를 푸는 것으로 기긴 야간근무를 마치고 있었다. 동쪽 끝 산자락에서는 이제 아침을 준비하는 빛살이 서서히 세상을 밝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 하루 일과도 이것으로 끝인가?"
아직 교대 병력이 오지는 않았지만 날이 밝아 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제 곧 자신의 임무도 끝나리라. 남들은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하는 시간이지만 자신은 아침 식사를 마친 이후부터는 즐거운 꿈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피곤하군. 이제는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밤새껏 할 일 없이 북쪽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야간 근무의 특성상 매우 피곤했다. 호엘은 근무가 끝나면 몸을 식사를 마친 뒤에 몸을 씻고 마음껏 잠을 즐기기로 오늘 하루 일과를 결정했다. 물론 하급 부대에서 100인장이라면 간부 축에 낀다.
덕분에 다른 부하들은 마음껏 휴식을 취해도 그에게는 여러 가지 서류 상의 업무 처리가 남아 있지만 오늘만큼은 잔무를 뒤로 미루고 잠을 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장! 호엘 대장"
찌뿌등한 몸을 추스르고 있는 동안 자신을 부르는 음성이 들려 왔다.
"뭐냐? 마루엔!"
자신의 백인대에 소속되어 있는 마루엔이라는 꼬마였다. 올해 18살로 간신히 성인이 된 마루엔 녀석은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자원 입대한 신병 중 한 명이다.
"저기...사람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루엔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 북쪽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요새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호엘은 고개를 꺄웃거리며 요새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 무리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상인들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국과 임펠리아는 완전히 단절된 채로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릉거렸다. 아무래도 전쟁의 후유증으로 서로에 대한 증오심이 너무 컸었기 때문이리라. 단지 이젠 시간이 흘러 서로에 대한 증오심이 어느 정도 희석이 되었고 언제까지고 국경을 봉쇄한 채로 으르릉거릴 수 없었기에 상인이나 소수의 일반 여행자들의 통행은 허락하고 있었다.
"설마요? 이런 이른 시간에 저렇게 많은 숫자가 이동을 할까요?"
"많은 숫자?"
"예 이쪽에서 보기에는 기백은 되어 보이는데요?"
호엘은 고참답게 근무시간에도 편하게 근무를 섰다. 성문의 위에 지어져 있는 누각 사이, 의자에 앉아 근무를 서고 있었기에 누각의 기둥이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덕분에 접근하는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마루엔은 몸의 반쯤을 성벽 위로 노출시키고 있었기에 전방에 대한 시야 확보가 호엘 보다는 좋았다.
"기백이라고?"
호엘은 요새로 접근하는 치들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쪽에서 이쪽까지...한눈에 보아도 백 명은 넘어 보이지 않습니까?"
"확실히......"
호엘은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보통 상인이라면 이렇게 이른 새벽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 숫자야 에레스트 산맥을 넘는 동안 서로의 안전을 위해 뭉쳐 왔을 가능성이 있지만 밤에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야행성 맹수나 몬스터들 때문에 야간에 움직이는 것은 에레스트 산맥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있어 금기시 되어 오는 일이었다.
"흠!"
호엘은 망설이고 있었다.
"초조장(哨組長) 길틴 메리언 경에게 알려야 되지 않을까요?"
분명 이상 징후 발견 시 근무자는 상급자에게 그것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경미한 징후의 경우 현장 지휘관이 선(先)조치 후, 후(後)보고 할 수도 있음을 호엘은 머리 속에 떠올렸다.
"아니야. 일단 좀 더 두고 보자고."
기껏해야 상대의 숫자는 기백 명에 불과했다. 야간 근무를 위해 요새의 성벽에 배치된 임펠리아군의 숫자는 모두 2000, 제국 측의 국지적인 도발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숫자였다. 더구나 자신들은 성벽을 방패로 삼고 있었기에 더욱 유리했다.
"놈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