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3화 (3/110)

003. 무너진 벽 그 너머

The Wall Is Broke

무는 99%의 수련과 1%의 깨달음으로 이루어진다.

-토머스 에디슨-

* * *

이쪽 세상의 바리츠는 불세출의 기인이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셀 수 없는 무예에서 장점만을 취해 만든 이질적인 무공이었다.

유럽의 무공이라는 말이 청에서 사는 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무는 본래 동양인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일대종사라 일컬음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는 자질을 갖추고 있던 나의 스승은 젊은 시절 동양의 무공을 익히다 의문에 부딪치게 되었다.

과연, 내공을 다룰 수 있던 건 아시아인뿐이었을까.

작은 의문에서 시작된 연구 끝에 스승은 과거 유럽에서 강맹한 무위를 뽐내던 이들이 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과 창으로 용을 죽인 성 게오르기우스.

누구도 비할 수 없는 무력에 더해 탁월한 전략까지 구사하던 마인魔人, 리처드 1세.

프랑스의 신녀라 일컫음을 받는 잔다르크까지.

그 외에도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영웅이 동양의 것과 체계는 다르더라도 무공의 힘으로 초인적인 무위를 떨쳐 왔다.

다행히도 몇몇 개파조사는 비밀리에 자신들의 깨달음을 기록해 두었고, 스승은 그들의 비급 중 일부를 손에 넣는 데에 성공했다.

개중, 스승이 바리츠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독문무공의 핵심으로 채택한 내공심법은 리처드 1세가 남긴 사자심법Lionheart Method이었다.

사자심왕 리처드 1세는 무를 숭상하고 단련을 멈춘 적 없는 최강의 무인.

그가 남긴 심법의 공능은 절대적이었지만 부작용 또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사람들은 리처드 1세의 상식의 범주를 넘어선 폭력성과 잔학성을 두려워했다.

그의 성품이 난폭했던 이유, 그것은 사자심법이 일반적인 무공심법과 정반대의 흐름으로 기를 주천周天하는 마공이었던 데에 있었다.

사자심법을 통해 쌓는 내력이 정파의 심법 이상으로 정순하다 한들 오랜 연공 중에 깃든 심마心魔를 완벽하게 다스리진 못한 것이다.

허나, 스승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구결을 개량했고 기어이 탁기와 심마를 통제하는 데에 성공했다.

결과, 리처드 1세의 비급은 적은 부작용으로 빠른 성취를 얻을 수 있는 데에다 높은 경지까지 내다볼 수 있는 궁극의 마공으로 다시 태어났다.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 지성과 예절을 두루 갖춘 영국 신사가 수련하기 알맞은 극상의 심법.

사자심법·개改가 완성된 것이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울컥!

가부좌Lotus Position를 튼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입에서 검붉은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분명 사자심법·개Renewal Lionheart Method는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승 마공 심법이지만 처음 경험하는 운기조식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젊은 몸과 두뇌를 지닌 이쪽 세상의 셜록 홈즈에게 있어 운기조식은 숨을 쉬듯 익숙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깃든 영혼은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나의 것.

아무래도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내력의 순환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해결하지 못하면 주화입마Bad Trip에 빠지는 건 명약관화Very Obvious…….’

내공을 순환시키는 소주천과 대주천은 무의식 아래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 권장되었다.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은 공력을 강한 의식하에 억지로 운용하려 드니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달리 방법이 없다. 지금의 내게 가능한 것만이라도 확실하게 해결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일부라도 좋으니 이쪽 세상의 내가 쌓아 온 성취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 기틀을 삼아야만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한 줌의 만용.

-화악

나는 다시 단전의 내력을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겁도 없이 정신을 무의식의 구렁텅이, 그 가장 깊은 곳으로 내던졌다.

* * *

청각과 시각, 그리고 후각이 사라지고 외부와의 완벽한 단절이 이루어졌다.

완성된 어둠. 나는 그 속에서 자신의 무의식과 마주했다.

-고오오

새까만 모래로 이루어진 망망대해 속에서 솟아오르는 웅장한 건물은 거대한 서가의 형태로 존재하는 지식과 경험의 창고.

기억의 궁전Mind Palace이라 불리는, 기억술이 만들어 낸 허구 속 공간의 핵심부였다.

몇 번을 설명해도 왓슨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원할 때면 언제든 이 안을 노닐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쌓아 왔다.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데에 사용되는 지식은 모두 책의 모습으로 보관되어 있었고 나는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그것을 꺼내 읽곤 했다.

‘많이도 쌓아놨군…….’

보아하니 이쪽 세상의 나 역시 다양한 지식을 보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화학과 범죄사 등의 지식을 쌓아둔 것처럼, 다양한 무리武理와 무학武學의 지식을 말이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어지럽혀져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왓슨이 보면 기겁하겠군.”

기억의 궁전魔腦宮 내부에선 책의 형태를 띤 단편화된 정보의 조각들이 어지럽게 허공을 떠돌아다니거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원래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마땅한데.

필시 내가 본래 살던 세상의 상식과 이쪽 세상의 지식이 뒤섞이며 발생한 혼란이 반영된 결과이리라.

무공이 존재하는 세상의 셜록 홈즈에게 그렇지 않은 세상에서 살다 온 셜록 홈즈의 영혼이 덧씌워진 존재. 그게 바로 나다.

머리와 몸이 오랫동안 무공을 익혀 왔다 해도 당장 나의 의지로 그 힘을 사용하기 위해선 마땅히 단계를 밟아야만 한다.

한마디로 이쪽 세상의 홈즈가 쌓아 온 힘을 나의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쉽지 않겠어.”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나는 어지럽게 허공을 날아다니는 수천수만 권의 책을 붙잡아 하나씩 책장에 꽂기 시작했다.

이쪽 세상의 홈즈가 익힌 무공을 내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귀찮게 여겨 마지않는 일.

“코카인이 간절해지는군.”

정리정돈이었다.

* * *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무의식이 만들어 낸 심상세계에서 계속해서 책을 옮겼다.

그것은 바리츠를 포함해 이쪽 세상의 내가 익혀온 무공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일일이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무공의 정보를 이미 확신하고 신봉하는 정보만 모아 둔 서가에 옮김으로써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당연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을 집을 때마다 이쪽 세상의 내가 무공을 익힐 때 느낀 고통과 스트레스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어디 그뿐인가.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다니던 책들은 내 손에 쥐어질 때마다 급격히 무게를 더했다.

마치 천근추1322.77 Pound Weight를 펼치기라도 한 것처럼.

심지어 책의 무게는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토납법Breathing Exercise 같은 기본적인 지식이 든 책은 가벼웠지만 상승 무공에 관한 정보가 기록된 책은 전신의 힘을 끌어 써도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다.

내가 무공을 사용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시험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책을 옮겼다.

저번 생에서 나를 괴롭혀 온 모르핀과 코카인의 금단증상을 몇 번씩이나 겪었지만 나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천마군림보…… 여기 있었나.”

몇 번씩 피를 토하며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의 책을 찾아 옮긴 나는 마지막 한 권을 집어 책장에 꽂아 넣었다.

-파아앗!

이번엔 여기까지가 한계였던 걸까, 기억의 궁전은 빛의 입자로 변해 흩어졌고 나의 의식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믿을 수 없군.”

운기조식을 마치고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경악과 좌절이었다.

“내 손으로 책을 정리하다니.”

열중한 나머지 평소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직접 무언가를 정리해본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딱히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건 아니다.

필요한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 그동안 무언가를 정리하지 않아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을 뿐.

하지만 나는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결과, 나의 정신은 무의식을 가두고 있던 괴리감과 상식이라는 벽을 부수고 런던무림으로 건너오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깨달음인가.”

육체와 정신의 간극이 좁혀지자 하단전에서 불꽃처럼 끓어오르는 웅혼한 힘이 느껴졌다.

처음 운기조식을 시작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맹하고 정순한 기운.

아직 이쪽 세상의 내가 수련으로 익힌 초식과 쌓아 올린 내공 전부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 건 아니다.

하지만 기억의 궁전을 정리하며 또 하나의 자신이 거쳐 간 깨달음을 답습한 덕에 단전에 축적된 공력의 5할 이상을 자유롭게 끌어 쓸 수 있게 되었다.

운기조식을 통해 얻은 수확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쪽 세상의 몸이 중독성 약물과는 연이 없어서 그런 걸까.

모르핀과 코카인에 절여져 있던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았고 몸을 지배하던 나른함과 무기력함 역시 말끔히 사라졌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뇌를 지배하고 있는 건 무학武學이라 불리는 새로운 분야의 지식이 가져다준 희열과 흥분뿐이었다.

당장 이 힘을 사용해 보고 싶다.

몸이 근질거려서 견딜 수 없을 정도다.

“어디 한 번…….”

주위를 두리번대던 와중 애용하는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겉보기엔 평범한 지팡이지만 저것은 스승이 물려준 기문병기Unique Weapon.

만년한철Cold Iron과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어 기관장치가 담긴 무기의 만성적인 내구성 부족을 보완한 소드 스틱, 천마장天魔杖이다.

나는 지팡이를 들어 안에 숨겨진 칼을 뽑거나 기믹을 건드리는 일 없이 평범하게 공력을 불어 넣었다.

-기이잉!

내공에 반응해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지팡이.

그 표면을 런던의 하늘을 닮은 잿빛의 기운이 뒤덮기 시작했다.

“호오.”

지팡이를 덮은 반투명한 기운은 순식간에 장검과 비슷한 길이까지 늘어났다.

일정한 경지를 이룬 무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내력의 칼날. 검기였다.

아니, 지팡이를 썼으니 장기杖氣라고 부르는 게 옳으려나.

“실로 흥미롭군.”

들뜬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두 번 휘둘렀다.

-휘릭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었는데.

-콰앙!

하숙집 2층 벽에 X자 모양의 구멍이 생겨났다.

“……앗.”

아직 공력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힘을 불어넣어 장기가 쓸데없이 길게 늘어난 탓에 일어난 사고였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3초도 지나지 않아 복수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쾅!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젖힌 건 하숙집의 주인인 허드슨 부인.

“홈즈 씨!!! 또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욧―”

부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그 시선은 벽에 난 구멍에서 천천히 내 허리춤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엔 빨간 머리에 군데군데 은발의 새치가 들어간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었는데―

“……음?”

허드슨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방문객은 콧수염을 달고 있었으나 가짜였고.

반사적으로 손으로 입을 가리는 등, 행동거지가 묘하게 여성스러웠다.

자세히 보니 신사용 셔츠 위에서도 희미하게 드러난 붕대의 실루엣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근거를 통해 내가 추측한 방문객의 정체는 아래와 같다.

역용술과 변장으로 남자인 척 행동하는 여자.

호기심을 금치 못한 나는 제자리에 굳어 버린 허드슨 부인을 무시하고 의뢰인으로 보이는 여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셜록 홈즈입니다.”

“조…… 존 왓슨입니다.”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실례지만 이름을 다시 한번…….”

“존 왓슨입니다.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하반신을 가려 주셨으면 합니다.”

자신을 존 왓슨이라고 소개한 여인은 내가 내민 손을 맞잡는 대신 엉뚱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채 대답했다.

“흐음…….”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 다음에야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첫째.

나는 몰아지경에 빠진 나머지 6일 밤낮 동안 운기조식에 몰두했던 모양이었다.

증거는, 바로 내 눈앞에 서 있는 존 왓슨을 자칭하는 숙녀분.

그리고 둘째.

조각난 섬유가 대량으로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운기조식 중 깨달음을 얻는 과정 중 전신의 기혈에서 공력이 뿜어져 나와 입고 있던 옷이 전부 찢어진 듯했다.

즉 나는 지금 천 쪼가리 하나 걸치고 있지 않은 상태다.

“…….”

야단났다.

어째서 왓슨이 여성으로 변한 건진 모르겠지만 어서 화제를 돌려 이 민망한 분위기를 벗어나야만 한다.

하나 다행인 건 내가 어떻게 해야 왓슨의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번 해본 일이다. 두 번 하는 게 어려울까.

마음의 준비를 마친 나는 최대한 신사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오셨나 봅니다.”

“…….”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벽에 휑하니 뚫린 구멍으로 냉기가 몰아치고 있을 뿐.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하실 듯하니 말씀드리자면―”

“아뇨, 괜찮습니다.”

“……간단한 추리입니다. 선생님께선―”

“됐다니까요.”

“…….”

단언컨대 왓슨과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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