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8화 (8/110)

008. 핏빛 실험체 (1)

A Subject In Scarlet (1)

무학은 체계화된 지식이고, 수련은 정돈된 삶이다.

-임마누엘 칸트-

* * *

“어으으, 언제 도착하신 검까, 나으리.”

“그새 자고 있었나. 언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겠지?”

“당연합죠. 소파에서 자면 약통에 빠뜨리신다길래 바닥에 가만히 누워 자겠다고 허락까지 맡았슴다.”

꾀죄죄한 셔츠에 서스펜더가 달린 바지를 입은 열댓 살 정도의 꼬마.

녀석은 어울리지 않는 넥타이를 매듭까지 하나 만들어 팔뚝에 감고 있었다.

“소개하지. 이쪽은 ‘베이커가 의화단Baker St. Irregulars’의 단주를 맡고 있는 위긴스Wiggins일세. 위긴스, 왓슨 박사님에게 인사드려라.”

“안녕하심까, 박사님. 홈즈 나으리 밑에서 일하고 있는 위긴슴다.”

위긴스는 능글맞게 웃으며 모자를 들어 왓슨에게 인사했다.

“어어, 그래…… 반갑다.”

반대로 왓슨의 인사는 몹시나 어색했다.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개방도가 등장해 놀란 모양이었다.

“참. 나으리가 시킨 대로 바늘과 쪽지, 언 나리께 전했슴다.”

“그래. 수고가 많았다.”

“야호!”

약속한 보수를 건네자 위긴스는 눈을 반짝이며 언의 집을 뛰쳐나갔다.

녀석은 개방Homeless Clan의 정식 제자 중 두 번째로 신분이 낮은 일결개Single Knot Beggar였는데 싸게 부려 먹을 수 있는 데에다 충실히 지시를 따르는 훌륭한 심부름꾼이었다.

“첼시로 출발하기 전에 저 아이를 미리 보내 둔 거로군.”

“맞아. 개방 꼬마들은 런던 어디든 갈 수 있는 데에다 무엇이든 보고 들을 수 있는 유능한 인재니까. 스코틀랜드 야드의 무능한 경관 한 다스보다 낫지.”

어리고 본신의 무공이 일천하긴 해도 위긴스와 다른 개방 소년들을 정보원으로 써먹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위긴스는 개방을 이끄는 용두방주Dragon Head 올리버 트위스트의 혼외자의 혼외자로 여기저기서 총애를 받고 있어 귀중한 정보를 자주 얻어 왔다.

게다가 조금 전에도 보았듯이 녀석에겐 기척을 감추고 숨는 데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방금만 해도 전쟁터에 있다 와서 어지간한 문파의 속가제자Gentry보다 기감이 예민한 왓슨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다.

“근데, 방금 바늘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아아. 어제 자네가 드레버의 시체에 꽂아 독을 검출한 은침 얘길세.”

“……분명 독을 채취하려고 따로 보관해 두었건만 대체 언제 슬쩍한 건가.”

“언제긴, 자네가 한눈 판 사이지.”

왓슨은 잠시 얼굴을 찌푸리다 무언가 떠올린 듯 내게 물었다.

“잠깐, 거기 묻은 독이 무엇인진 자네도 나도 모르지 않나. 위험한 독이면 어찌하려고…….”

“걱정 말게. 위긴스에게 들려 보낼 때 독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천에 둘둘 싸두었거든. 그리고, 나는 독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언을 찾아온 걸세.”

“장의사의 부업이 대체 뭐길래….”

“흠. ‘복용자 언’을 모르는 약제사와 의사는 거의 없을 텐데. 자네는 런던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본 적이 없나 보군.”

“복용자 언?”

왓슨은 영 못 미덥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지만 언이 홍차를 가져오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번에도 재밌는 걸 찾아냈더군. 홈즈.”

“자네 입맛에 맞을 것 같아서 가져왔지. 어때. 맘에 드는가?”

“그건 지금부터 맛을 봐야 알겠지.”

차를 잔에 따른 언은 품에서 기다란 바늘을 꺼내더니 그것으로 자신의 잔을 휘휘 저었다.

어제 죽은 드레버의 심장을 찔러 독을 검출할 때 사용했던 은침이었다.

“잠깐 그 바늘엔 독이―”

왓슨이 말리기도 전에 언이 찻잔의 내용물을 단번에 들이켰고, 3초도 지나지 않아 그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쿵

언의 몸이 힘없이 소파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부릅뜬 두 눈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문외한이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언이 독 묻은 바늘을 담갔던 차를 마시고 즉사했다는 걸.

“무슨 미친 짓거리를……!”

왓슨은 정신을 잃은 장의사의 볼을 두드린 다음 셔츠 단추를 풀고 심장에 귀를 가져다 대려 했다.

하지만.

“이건 대체……!”

언의 명치 언저리에 박힌 주먹만 한 크기의 하얀 살덩이를 목격한 왓슨이 창백해진 얼굴로 이쪽을 보았다.

-두근

언의 가슴팍에 몸을 고정한 채 계속해서 움찔대는 주먹만 한 생물은 통통한 애벌레와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고蠱를 보는 건 처음인가? 바솔로뮤 병원에서도 가끔 수술에 사용한다 들었는데.”

“그건 체내에 쌓인 독을 빨아들이는 소형종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개체는 듣도 보도 못했네!”

고Worm는 중원Midfield에서 건너온 기괴한 생태를 지닌 벌레들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었다.

듣자하니 몇몇 문파와 세가의 수도사나 무인이 고의 품종 개량에 힘쓰고 있다는데 아무래도 대부분의 의사는 이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 되는 크기의 벌레를 상시 달고 다니는 건 미친 짓이야!!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이런, 조금 오래 기절해 있었군.”

“끼야아아악!!!”

언이 웃으며 상체를 일으키자 왓슨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러 댔다.

“그쪽 친구는 내 부업에 관해 듣지 못한 모양인데. 아니면 자네가 일부러 말하지 않은 건가?”

“그럴 리가. 바빠서 깜빡했을 뿐이야.”

언이 쓸데없는 말을 한 탓에 날 보는 왓슨의 눈초리가 한결 매서워졌다.

아무래도 더 삐지기 전에 왓슨에게도 설명해 줘야겠다.

“언이 복용한 약물은 어떤 경우에도 그 효능을 완전히 발휘하지만 결코 그의 목숨을 앗아 가지 못한다네. 그래서 붙은 별호가 복용자Taker이지.”

“그런 게 상식적으로 가능할 리가…….”

“가능하니까 여태껏 살아 있는 게 아니겠나.”

왓슨은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언을 보고 있었지만 그는 아까보다 훨씬 팔팔해져 있었다.

“고맙네, 홈즈. 이렇게 강렬한 독을 맛보는 건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고蠱가 기뻐하고 있어.”

복용자 언Yan The Taker은 생글생글 웃으며 풀어진 셔츠 단추를 채우며 말했다.

“그래서, 방금 맛본 게 무슨 독인지는 알겠나.”

“틀림없어. 이 풍미는 시독屍毒이야.”

“역시 그랬군…….”

시독. 말 그대로 시체에서 생성되는 독.

나는 언의 대답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드레버의 몸에서 검출된 독이 시독이라는 건 내가 세운 가설이 옳다는 뜻이었으니까.

“저게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시독인지도 알아냈는가?”

“죽기 직전 인간의 뇌가 강렬한 감정을 느끼며 발하는 화학물질을 재료로 생성되는 물건이야. 특정한 조건이 갖춰져야 만들어지지만 시독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축에 속하지.”

“그 조건이라는 걸 알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다네. 출처로 의심되는 표본도 가져왔어. 한 번 확인해 보겠나?”

“좋아.”

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바로 왓슨에게 맡겨 두었던 자루를 열어 안에 든 제퍼슨 호프의 머리통을 꺼냈다.

“그럼 왓슨, 부탁하네.”

“…….”

왓슨은 싫은 티를 내면서도 하는 수 없이 바늘을 꺼내 내력을 불어넣었다.

-푸욱

호프의 정수리에 수직으로 박힌 장침.

잠시 후 왓슨이 그것을 잡아당기자 끝부분이 아까 언에게 준 바늘처럼 검게 변해 있는 게 보였다.

“맛을 볼 필요도 없어.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을 정도야. 같은 독이고 아까 먹은 것보다 더욱 진하군.”

“참고로 말해 두는데 이 머리는 사흘 전에 죽은 사내의 것일세.”

내가 거기까지 말하자 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사인死因은?”

“시체가 잘게 토막 나긴 했어도 그건 죽고 나서 며칠 지난 다음 벌어진 일이니, 아마도 독에 당한 거겠지.”

“자기 몸이 만들어 낸 독에 당해 죽었다, 라. 어찌 된 일인지 알겠군.”

“흠.”

내가 흥미를 보이자 언이 꺼림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머리를 갈라 봐. 재밌는 구경을 할 수 있을 거야. 궁금해하던 ‘조건’이 그 안에 들어있을 테니.”

언이 그렇게 말하길래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물러나 있게, 왓슨.”

테이블 채로 호프의 머리를 일도양단했다.

-서겅

물론, 안에 든 독이 주위에 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내 차탁까지 같이 베어도 된다곤 한 적은 없는데.”

쓰게 웃는 언과 절단된 머리의 내용물을 목격하고 경악하는 왓슨.

갈라진 두개골이 보호하고 있던 건 뇌가 아니었다.

-꿈틀

셀 수 없는 숫자의 다리를 지니고 있으며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는 칠흑색의 살덩이.

언의 가슴에 달린 것보다 훨씬 끔찍한 기운을 발하는 고蠱가 그곳에 있었다.

다만 우리에게 느긋하게 그것을 구경할 여유는 없었다.

-키이익!!

반으로 갈라져 있던 벌레가 기이한 울음소리를 발하더니 전신의 구멍에서 실 같이 생긴 점액을 쏘아 잘린 몸을 하나로 이어 붙였기 때문이다.

-쿠득

-쿠드득

그게 끝이 아니었다.

녀석은 한 번 더 똑같은 짓을 반복해 좌우로 갈라진 호프의 머리통을 붙잡아 원래대로 되돌렸다.

채 2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칼이 베고 지나간 자리가 흔적도 없이 아물었다.

놈은 자신의 연약한 몸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시체를 은신처로 삼고 있던 것이다.

“맙소사…….”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만 같은 놀라운 광경에 왓슨도, 나도 입을 다물었다.

전설 속 대종사들에게나 가능할 법한 일을 일개 미물이 해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한편, 벌레의 소행을 지켜보던 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모던파Modern Clan 수도사 프랑켄슈타인의 작품이야. 궁극의 야행성 독고. 포기한 줄 알았는데 기어코 연구를 완성했나보군.”

“프랑켄슈타인이라면, 그?”

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놈은 비밀리에 사악한 연구를 거듭하다 모던파 본산에서 수십 명의 사형제를 몰살시키고 종적을 감춘 대마두였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들었는데, 설마 런던에 자신의 끔찍한 창조물을 풀어놓을 심산일까.

“이 벌레에 관해 자세히 알려줄 수 있겠는가?”

“그래야지.”

언이 엄지를 뻗어 자신의 명치에서 꿈틀대는 고를 가리켰다.

“저 영물, 아니, 흉물은 우리 언가의 고를 훔쳐 여기저기 손본 물건이야. 저걸 몸에 박으면 누구든 나처럼 살아 있는 강시, 활시活屍로 변하게 되지.”

“……?!”

활시Living Dead라는 단어를 들은 왓슨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장의사가 의학계의 금기란 금기는 모조리 범한 끝에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눈치챈 까닭이었다.

“이제 알겠어. 대동맥류를 앓던 호프가 복수를 마무리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벌레를 몸에 심은 거로군.”

아무래도 호프는 프랑켄슈타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자신의 몸을 내어준 모양이었다.

“그렇겠지. 다만, 나처럼 애매하게 살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불행하게도 저 벌레는 남과 공생할 줄 모르는 놈이라서.”

“구체적으로 말해보게.”

언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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