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10화 (10/110)

010. 귀로 (1)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1)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로마경Roman Sutra-

* * *

“아니, 탐정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도둑질을…….”

“수사 자문가일세. 자문 탐정이라고 불러도 좋네.”

“허어.”

“벌레가 그만큼 먹어 치웠는데 내가 몇 개 가져간다고 달라지겠나. 전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함이네. 영약원 사람들도 분명 이해해 줄 거야.”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법의 수호자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에  도전하는 것도 썩 나쁜 일은 아닌 모양이다.

“내가 어쩌다 이런 파렴치한 인간이랑 살게 된  거지…….”

왓슨은 어지러워졌는지 이마에 손을 얹고 중얼거렸다.

“미안하게 되었군. 자네가 고결한 대영제국 육군 군의관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네.”

“아무렴, 자네 같은 사람과는 다르지.”

“그건 아쉽게 되었군. 실수로 ‘양기’를 북돋아주는 금룡과金龍果를 몇 개 챙겨왔는데.”

나는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코트 주머니에서 노란 열매를 하나 꺼냈다.

“그, 금룡과?”

양기와 금룡과라는 단어에 왓슨이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도덕적 융통성을 발휘하는 건 나 혼자로 족한 모양이야.”

“……내 정정하지. 자네가 영약을 가져온 건 강시를 물리쳐 양민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니 엄연한 협행이라고 할 수 있네.”

“이크. 손이 미끄러졌군.”

우연히 내 손을 빠져나간 영약원의 기념품이 왓슨에게 날아갔다.

그녀는 윤리관과 체질 개선의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다 눈을 질끈 감고 열매를 베어 물었고,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젠 배합만 신경쓰면 되겠군.”

천남성 열매를 으깨서 낸 즙에 금룡과 과육을 섞고, 뇌공등을 비롯한 다른 약초를 잘게 다져 합쳤다.

“여기에 전분과 밀가루를 섞으면…….”

이어서 응고된 덩어리를 둥글게 빚은 다음 1층 주방에서 슬쩍해 온 오트밀 위에서 굴리자 맨손으로 만져도 위험하지 않은 단약이 완성되었다.

“누가 봐도 벽곡단Oatmeal Ball 그 자체로군. 무당수도회Wutang Order나 아미수녀회Emei Sisters에 납품해도 되겠어.”

군필자 왓슨은 고개를 저었지만 내가 보기엔 꽤 완성도가 높았다.

“그럼 어디…….”

벌레가 숨어 있는 호프의 머리통에 조심스럽게 갖다 대자 코가 작게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예상대로 이걸 먹음직스러운 환약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많던 영약을 하룻밤 사이 모조리 흡수한 걸 생각하면 내가 만든 단약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소화하겠지.

“승산은 있겠군.”

손님을 맞이할 준비는 얼추 끝났다.

-똑똑똑

특제 환약이 완성된 즈음, 1층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아니야.”

왓슨은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늦지 않고 제때 도착했군.”

1층으로 내려가 문을 열자 레스트레이드가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내무장관님께서 노발대발하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설득은 성공했나 보군.”

레스트레이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베이커가에는 마차를 끌고 온 경찰들을 제외하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허드슨 부인이 남긴 했지만 경찰이 내 지시대로 근처에 사는 시민들을 모두 대피시켰다는 증거였다.

레스트레이드는 날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지만 경찰관의 직업윤리는 충실히 지키는 사내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상사의 상사에게 욕을 얻어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올곧은 심성은 가히 경찰의 귀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믿겠네. 자네는 스코틀랜드 야드에서 가장 우수한 경감이 맞군. 그래서, 손님은?”

“데려왔습니다.”

레스트레이드가 손짓하자 그의 뒤에 보이던 호송 마차에서 경관들이 말끔한 차림의 사내를 끌어내렸다.

신사다운 차림새를 하고 있었지만 비열한 인상을 주는 얼굴.

그는 손에 수갑을 차고 있었는데, 이 역시 내가 레스트레이드에게 지시한 대로였다.

조셉 스탠거슨.

이녹 드레버의 친구이자 미합중국에서 제퍼슨 호프의 연인과 그 아버지를 살해한 남자다.

본래였다면 지금쯤 호프의 손에 죽었을 악인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걸 보니 기분이 묘할 따름이었다.

다만, 이 자가 정식으로 재판을 받기 전에 죽게 두는 건 수사 자문가로서 할 일이 아니겠지.

놈이 죽어도 되는 건 사형집행일이지 오늘이 아니다.

“안으로 들게.”

나는 레스트레이드와 사내를 데리고 2층으로 돌아갔다.

긴장한 얼굴의 스탠거슨을 소파에 앉힌 나는 천천히 그를 주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갑네. 나는 런던의 유일한 수사 자문가 셜록 홈즈라고 하네.”

“조셉 스탠거슨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로…….”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지라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기로 했다.

“진정하게. 그쪽을 부른 건 조사의 일원이니까. 알다시피 자네의 고용주이자 친구인 드레버가 살해당했네. 범인은 제퍼슨 호프. 익숙한 이름일 걸세.”

“모,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시치미를 떼는가.

나는 스탠거슨의 말에 반응하는 일 없이 하던 말을 마저 했다.

“그는 아직도 런던 시내를 배회하며 자네를 찾고 있어.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답한다면 계속해서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스탠거슨은 겁을 먹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다.

계속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던 그는 제퍼슨 호프가 시체로 발견된 걸 알지 못한다.

자신보다 무공이 뛰어난 친구가 독살당했으니 호프가 상승 독공을 익힌 살수를 데리고 찾아올까 두려운 거겠지.

“무엇이든 묻는 말엔 성실하게 답하겠습니다.”

“좋아. 만약 자네가 계속 거짓말을 할 생각이라면…….”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맺었다.

“곧바로 거리에 풀어 주겠네.”

“……네?”

“풀어 주겠다고 했네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껌뻑이는 스탠거슨.

나는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대신 주머니에서 금반지를 꺼냈다.

“이 반지를 알아보겠나.”

“처음 보는 물건입니다.”

스탠거슨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의 친구 드레버가 죽은 곳에 떨어져 있던 물건인데. 정말로 본 적이 없나?”

“예.”

“반지 안쪽에는 제퍼슨 호프의 연인인 루시 페리어와 이녹 드레버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어. 동의 없이 만든 결혼반지인 셈이지. 크기를 보니 드레버의 것은 아니고 여성이 착용하고 있던 물건이야.”

“그걸 왜 제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스탠거슨은 계속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다시 한번 이 자가 구제불능의 악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안심했다.

만에 하나 내 힘이 닿지 않아 스탠거슨이 강시의 손에 죽어도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쪽 입장은 잘 알겠네. 별개로, 내가 미합중국 클리블랜드에 연락해 알아낸 사실을 토대로 추리한 결과를 말해주지.”

나는 미합중국에서 벌어진 일을 최대한 짧게 요약하기로 했다.

“자네와 드레버는 미국에서 따로 약혼자가 있는 루시를 납치했고 그 아버지를 살해했어. 그리고는 여인을 두고 경쟁했지만 결국은 드레버가 강제로 결혼했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닥치게.”

내가 공력을 끌어올리자 스탠거슨이 몸을 움츠렸다.

아직도 날 바보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이 자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려 주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루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어. 결과, 그녀와 약혼했던 제퍼슨 호프는 복수행을 나섰지. 그가 죽은 루시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가져온 건 계속해서 자신의 증오를 되새기기 위해서였을 거야.”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왓슨과 레스트레이드가 감탄 섞인 목소리를 발했다.

“자네란 사람은…… 대체 언제 거기까지 조사한 건가.”

“홈즈 씨의 말대로 제퍼슨 호프가 관에서 반지를 빼낸 걸 목격한 자가 있다고 클리블랜드 경찰이 전보를 보낸 참입니다. 대체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내가 이 사건의 전말을 속속히 파악하고 있던 건 회귀 전 대동맥류로 죽어 가던 호프에게 모든 진실을 들어서였지, 추리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레스트레이드와 왓슨이 내게 존경 어린 시선을 보내 봤자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나는 호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연인이 원수의 아내로서 잠들게 두고 싶지 않았을 거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서라도, 사이한 존재에게 몸을 내주더라도, 반드시 복수를 마치고 싶던 거겠지.

“……근거 없는 억측입니다. 미합중국 시민의 신분으로 공사에게 연락하게 해주십쇼―”

-짜악

나는 여전히 세 치 혀를 놀리려 드는 스태거슨의 뺨을 후려친 다음 들고 있던 반지를 녀석의 손가락에 끼웠다.

-까득!

그리고는 관절을 반대로 꺾어 반지가 빠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했다.

“아아악!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뭐긴. 미끼를 설치한 거지. 제퍼슨 호프를 숙주로 삼은 벌레는 그 반지에 집착하거든.”

“벌레?”

레스트레이드와 스탠거슨이 고개를 갸우뚱거린 그때.

-쿵

창밖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들려왔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진동하는 바닥.

거리 곳곳에서 창틀의 화분이 떨어져 박살 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왔군.”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미 해는 서쪽으로 저물었다.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구유九幽의 존재들이 활동하는 시간이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

이내, 밖에서 들리던 소리가 잠잠해지고.

-똑

-똑

아래층에서 규칙적인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부둣가 술집에서 친해진 제이콥스인가 하는 사내에게 들은 이야기와 몹시 닮은 흐름.

굳이 아래층에 내려가지 않아도 나는 방문객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보게, 스탠거슨.”

“네?”

“자네는 최악의 거짓말쟁이지만 나는 아까 했던 약속을 지킬 생각이야.”

“그게 무슨…….”

나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부러진 손가락도 신경 쓰지 못 하는 악인의 멱살을 잡은 다음 창밖으로 있는 힘껏 던졌다.

“풀어줄 테니 어디 한번 도망쳐보게.”

“으아아아!!!”

베이커가에 울려 퍼지는 비명.

지팡이와 환단, 그리고 잘린 복수자의 머리통을 챙긴 나는 느긋하게 1층으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키이이익……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채 추락한 스탠거슨을 향해 몸을 돌린 목 없는 시체.

그것이 바로 문을 두드리던 손님의 정체였다.

복수를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불태운 가엾은 사내, 제퍼슨 호프.

그 혼백을 달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검을 쥐는 것 말곤 없었다.

“내 약조하겠네. 자네의 시체는 연인의 곁에 묻히게 될 걸세.”

안개를 닮은 흐릿한 잿빛의 검기가 지팡이에서 뽑은 칼날을 뒤덮었다.

“그러니까―”

베어야 하는 건 영혼 없는 껍데기와 그 안에 숨은 악의 결정.

몇 번이나 그렇게 되뇌이며 강시를 노려보았다.

“지금은 잠시, 내 검이 자네의 허물을 베어도 용서하게.”

별들마저 눈을 감은 비정한 런던 강호의 하늘.

차디찬 달빛이 지상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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