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귀로 (2)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2)
영약을 주어라. 분란이 그치리라.
-영국 속담-
* * *
지면과 수평으로 팔을 뻗은 강시는 스탠거슨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영약원에서 본 토막 난 시체는 칼에 베인 절단면을 따라 옷이 잘려져 있을 뿐, 전신이 멀쩡히 재생되어 두 다리로 걷고 있었다.
“잘린 몸을 이어 붙인 건 고맙지만 그걸 멋대로 움직이다니. 사자를 모욕해도 유분수지.”
벌레가 조종하는 시체가 이족보행을 하는 꼬락서니는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흔히 모던파 수도사들이 만드는 관절을 굽히지 못하는 강시와는 차원이 다른 괴물.
“과연, 저걸 시민들이 보았다면 폭동이 일어났겠군요.”
그렇게 말하는 레스트레이드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내 지시대로 스코틀랜드 야드와 베이커가 사이의 모든 구역을 봉쇄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었다.
수상이 머무는 다우닝가 10번지부터 코벤트 가든 서부, 소호 동부, 그리고 메릴본에 이르기까지.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관들은 프랑켄슈타인의 새로운 강시가 목격되는 일이 없도록 거리를 봉쇄하고 사람들을 피난시켰다.
최근 템즈강에 독극물을 푸는 테러가 일어났던 참이라 구실을 만들어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터.
“그래. 평범한 강시도 아니고 저런 말도 안 되는 생물이 거리를 노니면 난리가 나겠지.”
“난리가 난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인가, 홈즈.”
“좌도방문의 말코수도사Leftwing Monk 나부랭이가 여왕 폐하의 치세에 훼방을 놓게 둘 순 없다는 뜻이야.”
나는 검을 쥐고 강시에게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시체가 살아나 생자를 해하는 건 하늘을 거스르는 일逆天. 하물며 평범한 강시가 아니라 생자를 모방해 움직이는 놈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지. 반역을 꿈꾸는 역도들은 이를 군주의 부덕이라 선동해 역성혁명을 시도할 걸세.”
허튼소리가 아니다.
50여년 전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 7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내무장관이 시민들의 반발을 예상하고도 구역 봉쇄를 허가한 건 이 때문이었다.
왕실과 국가에 충성을 맹세한 그로선 반역의 무리가 여왕 폐하를 끌어내리게 둘 수 없었을 테니까.
“오, 오지 마!! 히이익!!”
한편, 나름 칼밥 좀 먹어 본 스탠거슨은 호프의 시체가 다가오는 걸 보고 수갑 찬 손으로 돌을 집어 던지고 있었지만 단 하나도 명중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강시는 재빨리 몸을 비틀어 모든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키이이익
놈은 계속해서 민가를 등진 스탠거슨을 향해 걸어갔다.
반지와 스탠거슨, 어느 쪽에 반응해 움직이는 건진 모르겠지만 겉으로만 보기에 그 움직임은 살아 있는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놈을 관찰하던 와중, 제법 재밌는 가설이 떠올랐다.
“왓슨. 자네, 군에서 탄지공은 익혀 두었나.”
“실전에서 단련했으니 나름 쓸만한 실력이라고 생각하네.”
“스탠거슨이 벌레의 손에 죽지 않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었으면 하네.”
“잠깐, 나보고 대신 죽이라는 뜻인가?”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군. 군인에게 자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잠시 잊고 있었네.”
고개를 끄덕인 왓슨은 곧바로 검지를 뻗은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고 내력을 쏘아 냈다.
-타앙!
압축되어 발사된 기의 탄환. 노리는 건 스탠거슨이 아닌 강시였다.
누가 봐도 완벽한 육군 제식 탄지공Fingertips.
하지만 시체는 뒤통수에라도 눈이 달린 것처럼 고개를 기울여 그것을 피했다.
“……말도 안 돼.”
경악한 왓슨이 설명해 달라는 듯 이쪽을 보았다.
“과연 최악의 수도사가 만들어 낸 작품답군.”
인간조차 저렇게 능숙하게 탄지공을 피할 순 없다.
원리는 얼추 짐작이 갔다.
시체는 몸 안에 기생한 수십 마리의 고蠱가 근육에 신호를 보냄으로써 움직이고 있다.
죽은 몸뚱이가 저만한 운동능력을 발휘하는 건 흡수한 영약의 기운으로 근력을 강화하고 있는 덕이겠지.
탄지공을 피한 건 안에 숨은 벌레들이 살기를 감지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겠지.
몸에 기생한 고의 숫자가 많은데도 신체의 각 부위가 완벽한 운동 협응을 이룰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강시를 움직이는 고가 다수의 개체로 이루어진 다형성 군체 생물인 모양이군.”
하나는 전부, 전부는 하나.
몸에 기생한 고가 여러 마리가 뭉쳐 움직이는 고깔해파리 같은 놈이어서 가능한 조화이리라.
프랑켄슈타인, 범죄자이긴 하지만 실로 대단한 사내다.
호프의 복수심을 이용해 런던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물건을 풀어놓을 줄이야.
만일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런던 중심가에서 대규모 소요 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소문으로 접한 놈의 기벽을 생각하면 이 또한 실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대책을 준비한 이상 문제는 없다.
“도와줘!! 부탁이야!! 자백할 테니까 제발!!!”
“살고 싶으면 이쪽으로 오게.”
-파파팟!
스탠거슨은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경공을 펼쳤다.
두 팔이 묶여 있던 탓에 중간에 꼴사납게 넘어지긴 했지만 그는 어떻게든 강시를 피해 나와 왓슨의 뒤에 숨는 데 성공했다.
“그럼, 레스트레이드.”
“……네?”
“잠시 고생해 주게.”
“무슨 소립니까.”
“저 강시, 상대하기 까다로울 거야.”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시체가 우릴 향해 돌아섰다.
놈의 근육은 잔뜩 팽창했고 공력이 만들어 낸 아지랑이가 그 주위를 감도는 중이었다.
-콰아앙!
다음 순간, 대포가 발할 법한 굉음과 함께 강시의 신영이 이쪽을 향해 쇄도해 왔다.
바닥에 새겨지는 거미줄 같은 잔금.
목표는 당연히 스탠거슨이다.
“제기랄.”
레스트레이드는 침착하게 그 앞을 막아서더니 공력을 끌어올렸다.
“하압!”
-쩡!
맹렬한 속도로 돌진한 강시와 충돌한 경감의 몸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쿨럭……!”
“괜찮으십니까!”
레스트레이드는 달려온 부하들에게 손을 흔들어 안심시켰다.
경감은 내력으로 신체와 옷을 단단하게 만드는 철포삼Iron Vest을 펼쳐 시체의 몸통 박치기를 막아 내는 데에 성공했다.
“과연 소림少林의 기예를 이은 왕실 사냥터王林 숲지기의 무공. 단단하군.”
다만,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아직 금종조Golden Bell까지 익히진 못했나.”
“알고도…… 시킨 거잖습니까……!”
내상을 입은 레스트레이드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는 곧바로 움직임을 멈춘 강시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지만 놈은 재빨리 허공으로 도약했다.
“지금이네, 왓슨.”
놈이 발 디딜 곳이 없는 공중에 머문 틈을 타 왓슨이 다시 한번 탄지공을 쏘아 냈다.
그러나 강시는 이번에도 빠르게 몸을 활처럼 굽혔다 튕겨 반동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궁신탄영Waist Snap인가. 강시가 부릴 만한 재주가 아닌데.”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생물이…….”
보아하니 벌레는 호프가 살아생전 익힌 신법과 초식까지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근육의 기억Muscle Memory까지 재현하는 걸 보니 무림인Gentleman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는 쪽이 좋겠어.”
-키이이익!!
거리를 벌린 시체는 다시 이쪽을 향해 돌진해 왔다.
아까와는 달리 굳게 쥔 두 손에 검붉은 공력이 아른거리고 있다.
짐작은 했지만 내공까지 어느 정도 자유롭게 다루고 있는 모양이다.
거기다 이 냄새, 권기拳氣에 시독의 기운이 섞여 있는 게 분명하다.
“위험하군. 맨몸으로 저걸 막진 말게.”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막무가내로 미끼인 스탠거슨을 추격하는 강시의 앞을, 이번엔 곤봉 등으로 무장한 열여덟 명의 경관이 막아섰다.
“십팔순경진十八巡警陣을 펼쳐라!”
스코틀랜드 야드 치안총감의 권한으로 발동되는 백팔경감진을 소규모로 펼치는 진법.
순경 하나하나의 내력은 약할지 몰라도 그것이 숫자의 폭력으로 변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무공으로 죄인을 심판하는 것이다!!”
“받아라!!”
“타아압!!”
레스트레이드의 지휘를 따라 휘몰아치는 장봉과 곤봉.
사격에 능한 경관들은 의도적으로 열어 둔 진법의 틈을 노려 탄지공으로 저격을 시도했다.
사각 없는 포위망 안에서 펼쳐지는 합격술.
경관 개개인의 무력 수준이 보잘것없는 스코틀랜드 야드의 체포율을 지탱하는 천의무봉의 진법이 바로 경감진과 순경진이었다.
-키륵
문제는, 저 안에 숨은 벌레들이 첼시에서 온갖 값진 영약을 배불리 먹고 왔다는 사실이었다.
“경관들을 물리게! 레스트레이드!”
목 없는 시체는 허공으로 도약하더니 제자리에서 춤을 추듯 한 바퀴 회전했다. 사람이 아닌 한 마리의 짐승 같은 움직임이었다.
-부웅!
그리고 다음 순간, 시체의 주위를 반투명한 붉은 구체가 감쌌다.
-파스스!
회전력이 가해진 반구형의 영역.
그 기운에 닿은 경관들의 무기가 모조리 썩어 가루로 변했다.
“으아아악!!!!”
“무기에서 손을 떼! 당장!”
다행히도 내가 제때 지시를 내린 덕에 시독이 경관들의 손을 집어삼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잘못 본 건가? 강시가 호신강기를 사용한 것 같은데.”
“착각이 아니야, 왓슨. 분명 저건 강기였어. 그것도 시독이 섞인.”
이쯤 되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초절정에 들어서지 않으면 발할 수 없는 강기로 몸을 지키는 강시라니.
고작 하루 만에 얻게 된 것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고강한 내공.
벌레들은 여러 영약을 한 번에 복용했지만 부작용을 겪는 일 없이 기운만을 취해 자신의 내공으로 삼은 데에 성공했다.
실로 사람에겐 불가능한 조화라고 할 수 있었다.
“잘도 저런 괴물을 만들어 냈군.”
절정 초입인 내가 저걸 정공법으로 파훼하는 건 무리다.
검기로 강기를 가르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저 정도 강기라면 만년한철로 만든 내 검이 파고들 수 있다.
문제는 칼날의 길이보다 놈이 두른 강기가 두꺼워서 의미가 없다는 점이지만.
만에 하나 신체의 일부가 닿기라도 했다간 남은 일생을 불구로 살아야 할 거다. 최악의 경우엔 당연히 목숨을 잃게 될 것이고.
“가까이 가면 강기와 시독에 당하고, 칼을 박자니 닿지 않고, 방어를 뚫고 몸을 베어 봤자 재생하면 그만인가.”
“이대로는 방법이 없군요……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고.”
왓슨과 레스트레이드는 이미 반쯤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다.
둘은 차마 강시가 노리는 스탠거슨을 미끼로 삼고 도망치자는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스탠거슨이 죽은 다음엔 벌레가 폭주해 닥치는 대로 시민들을 학살할 테니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여기까진 얼추 예상했던 범위 내로군.”
그렇기에, 내가 꺼낸 한 마디는 두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걸 예상하고 있었다고?”
“아까 말했지 않나. 놈을 처리할 방법을 준비하겠다고.”
나는 왼손에 호프의 머리통을, 오른손에 납검한 지팡이를 쥐고 강시와 마주 보았다.
놈이 살초를 사용하려던 상대는 스탠거슨 뿐, 그 외의 적에겐 철저히 힘을 아끼고 수비적인 초식과 신법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효율을 고려해 힘을 아끼다 사냥감의 숨통을 끊는 순간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유형의 사냥꾼.
벌레치곤 과할 정도로 똑똑한 이 녀석을 무력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준비한 술수로 놈을 농락하기 위해선 놈의 시선을 스탠거슨이 아닌 내게로 돌릴 필요가 있다.
-키르르륵
몸을 낮추고 다시 한번 스탠거슨을 향해 도약하려 하는 강시.
나는 시체의 근육이 경직된 순간을 노려 전신의 공력을 두 눈에 집중시켰다.
-……!!
안와를 타고 올라오는 날카로운 고통.
전신전령을 끌어모아 발한 살기는 강시의 적개심을 내게 돌리고 움직임을 늦추기 충분한 것이었다.
“그래. 무시할 수 없겠지.”
내력을 절반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초식 또한 얼마 쓸 수 없다 해도 상관없다.
살기는 마음이 휘두르는 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적을 죽이겠다는 기세와 마음가짐만큼은 숙적과 동귀어진을 각오했던 나를 넘어설 자가 없을 터.
“미물도 천적은 알아보는가. 죽을 각오로 덤비게.”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놈은 확실히 이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갈무리되지 않은 거대한 내력의 아지랑이가 시체의 위로 피어오른다.
이쪽이 자신보다 약하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굳어 있는 상황.
내가 기다리고 있던 건, 바로 이 순간이었다.
-부웅
아무 예고도 없이, 나는 왼손에 들고 있던 호프의 머리통을 집어 던졌다.
-턱!
강시는 그것을 한 손으로 잡아챘다.
군체의 일부가 두개골 안에 숨어 있다는 사실은 진즉에 파악한 모양이었다.
“호프에게 약조하였네. 반드시 고향 땅에 있는 약혼자 곁에 묻어 주겠다고.”
놈은 경계하는 기색도 없이 잘린 머리를 목에 이어 붙였다.
낮에 보았던 것처럼 검은 점액이 절단면을 뒤덮더니, 이내 호프의 머리와 몸이 완벽하게 이어졌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만물의 영장으로서 하찮은 벌레에게 삼초三招를 양보하마.”
손을 까딱이며 도발하자 신기하게도 의도를 파악한 강시가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한층 강렬해진 기운.
머리를 이어 붙이자 안에 기생하던 개체가 흡수한 약의 성분이 전신을 순환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무슨 바보 같은 짓을!”
그걸 보고 기겁한 왓슨이 달려와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강시에게 힘을 북돋아 주다니! 제정신인가!!”
“자네의 눈엔 내가 벌레에게 도움을 준 것처럼 보이나, 왓슨. 다시 한번 살펴보게.”
“그게 무슨…….”
“놈은 이미 내 술수에 걸려들었다네.”
다시 한번 강시에게로 시선을 돌린 왓슨은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떴다.
“저건―”
턱관절을 강제로 열어 집어넣은 특제 환약은 강시의 입안에서 빠르게 흡수되는 중이었다.
“벌레를 잡는 데엔 약이 최고인 법. 기본 중의 기본이라네Elementary, My Dear.”
제아무리 강해 봤자 미물은 인간의 지혜를 이길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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