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12화 (12/110)

012. 귀로 (3)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3)

아아, 협을 아는 약선이여. 그대의 독은 잘 듣는구나. 이렇게 접문하고, 나는 죽는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불구대천양가정반합Romeo And Juliet>-

* * *

내가 호프의 시체에 든 고蠱를 고깔해파리와 닮았다고 말한 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고깔해파리는 역할이 다른 개체 여럿이 군체가 되어 살아가는 생물로, 그 특이한 모양 탓에 ‘포르투갈 전함Portuguese Man o' War’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겉보기엔 영락없는 해파리지만 놈들의 생물학적 분류가 다른 건 그 특이한 생태 때문이었다.

요약하자면, 놈들은 단수가 아니었다.

바다 위를 항해하는 작은 전함을 구성하는 개체는 총 네 종류로 여러 마리의 개충個蟲은 각각 다른 형태와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

풍선 같은 모양을 취해 군체를 물에 띄우는 부레.

사냥과 호신을 맡은 촉수.

번식을 담당하는 생식기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촉수가 잡은 먹이를 소화해 영양가를 흡수하는 소화기관.

호프의 시체를 지배하는 고 역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내가 세운 가설이었다.

여러 개체로 이루어진 벌레 중 머리에 든 녀석이 먹이를 소화하는 역할을 맡았을 거라 생각한 근거는 간단했다.

영약을 섭취한 흔적이 이빨에 남아 있는데, 막상 영약이 식도를 타고 넘어간 흔적이 없던 까닭이었다.

강시 안에 복수의 야행성의 고蠱가 숨어 있는 건 트레버가 토막 낸 시체가 영약원까지 멀쩡히 이동한 다음 다시 흩어진 걸 보고 눈치챘다.

이어진 몸뚱이가 영약원에서 조각난 건 칼에 잘린 시체를 이어 붙이던 벌레들이 잠들었기 때문이다.

전신의 벌레들에게 영양과 내공을 공급하던 건 틀림없이 머릿속에 기생한 개체.

즉, 놈의 감각을 속여 독극물을 먹이면 다른 개체들까지 중독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키릭

독이 든 환약을 영약으로 착각하고 흡수한 강시는 아직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 알지 못하는 듯 다시 한번 힘을 끌어올렸다.

녀석은 아까보다 훨씬 맹렬한 기세로 공력을 흩뿌리고 있었다.

-파삭

-파사삭!

강시가 뿜어낸 시독이 섞인 강기가 주위의 모든 것을 부패시키고 있었다.

바스러져 검은 가루로 변하는 바닥의 돌.

근처에 세워져 있던 마차가 썩어 문드러지더니 우지끈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전혀 효과가 없지 않나, 홈즈! 놈에게 독을 먹인 게 아니었나?!”

“오해 말게, 왓슨. 나는 분명히 놈에게 잘 듣는 극독을 먹였으니까. 보게, 지금도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그럼 독을 먹은 놈이 왜 아까보다 쌩쌩해진 건가.”

왓슨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였고, 그 사이에도 강시는 나를 노리고 달려오는 중이었다.

“설명이 필요한 모양이군. 상황이 썩 여유롭진 않으니 알아듣기 힘들어도 이해해 주게.”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강기의 폭풍에서 도망치며 동시에 왓슨의 궁금증을 제때 해결하기 위해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지팡이 손잡이를 손목에 걸고 두 손으로 왓슨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엉?”

“잠시 실례.”

왓슨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나는 이미 그녀의 등과 다리를 두 팔로 지탱한 채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타타탓!!!

강시는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경공에 자신이 있었다. 스승이 신법부터 철저히 가르친 덕이었다.

“지, 지금 뭘 하는 겐가!!!”

“뭐긴. 가만히 있으면 죽으니 도망치고 있네만.”

“그럼 자네만 도망치면 되는데 어째서 날 안고……!”

“나보고 친구를 죽게 두라는 말인가? 놈이 나를 노리고 있다 해서 자네가 안전한 건 아니라네. 애초에 자네는 다리가 불편해 달릴 수 없지 않은가.”

“…….”

왓슨은 고개를 돌려 부서지는 베이커가를 보고는 말없이 빨개진 얼굴로 내 명치를 두드렸다.

원체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품에 안아도 딱히 움직이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자세일 필요가 있나?!”

“응급의학에서 말하는 1인 수평 나르기 자세일세. 무학적으로 다친 동료를 운반하기 가장 좋은 방식이지.”

“내가 아는 응급의학과는 거리가 있는 듯한데?!”

“같은 남자끼리 뭘 그리 부끄러워하나. 가만히 매달려 있게.”

강시는 아까와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는데 놈의 주위에 펼쳐진 강기의 반경 역시 족히 아까의 두 배는 되었다.

저런 끔찍한 괴물을 런던에 풀어놓다니, 프랑켄슈타인이 모던파에서 파문당한 것도 이해가 갔다.

-콰콰콰콰!!!

등 뒤에서 인상 나쁜 점주의 식료품점이 실시간으로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히끅…….”

겁을 집어먹은 왓슨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내려 달라고 말한 주제에 두 팔로 내 목덜미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한 번 고비를 넘긴 사람도 바싹 따라오는 부조리한 죽음 앞에선 담대해질 수 없는 모양이다.

“걱정 말게. 다 처리할 방법이 있으니.”

“정말로 저런 괴물에게 이길 수 있다는 건가?”

“나는 단 한 번도 놈을 이길 수 없다고 한 적이 없네.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나는 왓슨을 안고 근방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잠시 후.

“일다경Tea Time이 지났네. 슬슬 반응이 올 거야.”

-키륵!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강시의 움직임이 조금씩 둔해지기 시작했다.

놈이 두른 반구형의 강기 역시 약간이지만 크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보게. 내가 말했지 않나.”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겐가.”

“독이 제때 효력을 발휘했을 뿐이네.”

“놈은 성산파 고수를 죽일 정도로 강력한 시독을 품은 고蠱인데 어떻게 중독시켰단 거지.”

“간단하네. 내가 먹인 건 놈의 목숨에 지장이 가지 않는 독이었거든.”

“……?!”

나는 땅을 박차고 도약해 근처의 민가 지붕으로 올라가 왓슨을 내려놓았다.

아까보다 눈에 띄게 느려진 강시는 우릴 쫓아오는 대신 기괴한 자세로 몸을 비틀고 있었다.

내가 투여한 독이 시체에 기생하는 모든 벌레를 무력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화학 작용을 일으켜 목숨을 앗는 독이 아니니까 제때 알아채거나 중화시킬 수 없단 소리일세.”

그제야 약재의 특성을 떠올린 왓슨이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렇군, 천남성을 넣은 건―”

“맞아. 천남성의 즙에는 대량의 옥살산칼슘Calcium Oxalate이 포함되어 있지.”

옥살산칼슘. 수산칼슘이라고도 불리는 유독 성분의 일종.

식물은 옥살산칼슘의 형태로 칼슘을 보관하는데, 그 종류에 따라 결정의 형태가 달라진다.

그리고 천남성의 열매엔 옥살산칼슘이 침상결정, 즉 바늘 형태의 결정으로 저장되어있다.

그 열매에서 짜낸 즙은, 비유하자면 사람의 눈으로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암기를 모아 둔 것과 같아 가히 과즙계의 만천화우Rain of Petals라고 칭할 수 있었다.

“언의 집에서 호프의 머리를 갈랐을 때 벌레의 단면을 보았네. 순환계와 기맥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더군.”

벌레의 지능으로도 내공을 운용할 수 있도록 고독대선蠱毒大仙 프랑켄슈타인이 손을 본 건지 놈의 체내에선 체액과 혈액 그리고 내력이 함께 순환하고 있었다.

즉, 바늘 모양을 띤 옥살산칼슘 결정을 먹이면 저절로 벌레들의 체내가 난도질당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 고는 재생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침상결정에 손상을 입어도 금방 내상을 치유할 걸세.”

“환약에 든 독은 하나가 아니야.”

나는 영약원에서 가져온 뇌공등Thunder God Vine과 다른 약초를 배합해 또 하나의 독을 만들었다.

-키이이익!!!

벌레가 조종하는 강시는 전신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무의미하게 내력을 쏟아 내고 있었다.

강기의 형태로 정제된 공력이 아니다.

저것은 대량의 영약을 흡수함으로서 체내에 묶어 두었던 힘.

“신선폐라고 들어는 보았나.”

스승이 남긴 레시피대로 조합한 독의 이름은 신선폐神仙廢.

반신을 죽이는 독Hercules Killer이라고 알려진 끔찍한 물건이었다.

“산공독Qi Disperser의 일종인가……!”

“정확하네.”

신선폐는 내공을 운용하기 전까진 아무 해를 가하지 않지만 일단 공력을 끌어올리면 기맥과 경맥, 그리고 경혈을 강제로 확장시킨다.

결과, 체내를 순환하던 내력은 끊임없이 외부로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본래는 독이 흡수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만 바늘 모양의 결정이 벌레들의 체내를 난도질한 덕에 일찍 효과가 나타났다.

끊임없이 공력이 체외로 빠져나가니 상처를 재생하기 어려워지는데, 그 와중에도 바늘 모양의 결정이 계속해서 순환계에 구멍을 낸다.

강시가 지닌 내공이 유출되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 데엔 이러한 상승효과가 작용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네, 왓슨. 위대한 지성의 승리를 목격할 차례일세.”

나는 천마장을 쥐고 거리로 뛰어내렸다.

-키익…….

대량의 내공을 쏟아 낸 시체는 이쪽의 살기를 읽어 내고 뒷걸음질 쳤다.

충분한 수련을 쌓은 신사숙녀江湖人라면 스스로 경혈을 틀어막아 신선폐의 독성에 저항할 수 있겠지만 놈들에겐 그만한 지능이 없다.

강시의 체표면에 얇은 강기의 막을 유지하는 것이 벌레들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야. 벌레를 죽이면서 호프의 시체를 멀쩡하게 남기는 건.”

나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제퍼슨 호프는 살인자지만 나는 그를 존중했다.

연인을 잃은 그가 느꼈을 비통함 역시 이해하고 있었다.

악인의 꾐에 넘어가 좌도방문의 술수에 몸을 맡겼으나 그 시체만큼은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가 연인의 곁에 묻혀야만 한다.

비록 망자에게 한 약조더라도, 나는 그것을 지킬 생각이다.

-화륵

지팡이를 굳게 쥔 왼손에서 삼매진화가 피어올랐다.

사특한 존재를 불태우는 정순한 불꽃.

마공을 통해 적공한 것이라곤 해도 나의 진기는 정파의 심법으로 쌓은 내력보다 정순하다.

사이한 술법으로 만들어진 고를 태우는 데엔 이만한 것이 없을 터.

-고고고고고

삼매진화는 그 자체가 검집이자 하나의 기문병기인 천마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불꽃은 천천히 한철로 만들어진 검신에 스며들어 외도를 굴복시키는 파사破邪의 힘을 부여했다.

“잘도 망자를 모욕해 주었구나.”

나와 강시 사이의 간격은 6피트까지 줄어들었다.

팔을 뻗으면 검이 닿는 거리.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마魔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네놈들의 주인도 금방 찾아 불태워 주마.”

출중한 솜씨의 장인이 단련한 한철검은 강기조차 벨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태껏 강시에게 다가가지 못한 건 놈이 두른 호신강기가 너무나도 두터웠던 까닭이다.

하지만 고의 공력이 소진된 지금이라면.

이 검은, 반드시 닿는다.

“바리츠 쾌검, 천수관음Thousand Hands Mary―”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오른손이 지팡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천 개의 팔을 지닌 성모가 중생을 위해 전구轉求하는 형상.

이를 그려내는 건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쾌검.

간절하고 뜨거운 기도는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 하늘과 땅을 하나로 잇는다.

“소신공양Burnt Sacrifice”

남해 지브롤터암直布羅陀庵의 관음보검수觀音寶劍手를 토대로 만들어진 쾌검식이 내 손끝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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