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초대장 (1)
Welcome To The Ballroom (1)
런던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기에 생사를 같이하게 만드는가.
問倫敦, 情爲何物, 直敎生死相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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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사The Song of Anglo-Saxon-
* * *
-화륵!
호프의 몸을 베었던 백합검법보다 빠른 검격이 불꽃으로 허공을 수놓았다.
검기가 베고 지나간 자리는 벌레의 재생력으로 인해 순식간에 아물었지만, 시체 내부로 스며든 삼매진화는 고충蠱蟲을 모조리 태워 멸했다.
-키이이이익!!!
무너진 거리에 울려 퍼지는 사특한 존재의 단말마.
홀로 완전해질 수 없어 하나이자 모든 것이 되려 하던 생명체는 독과 불 앞에서 힘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벌레들의 비명은 어딘가 악귀를 방불케 하는 구석이 있었다.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영혼을 올려다보며 지옥의 자식들이 내지르는 분노에 겨운 외침.
-털썩
쓰러진 강시. 녹아내린 벌레가 걸쭉한 시독과 함께 시체의 모공을 통해 흘러나와 검은 웅덩이를 이루었다.
그 안에 칼끝을 담그자 삼매진화의 잔화殘火가 일어나 검은 액체를 한순간에 태워 증발시켰다.
하늘을 향해 솟은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가 강바람을 만나 서쪽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은 증오와 복수의 굴레에서 해방된 호프의 영혼이 해협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무량성모Hail Mary…….”
평온을 되찾은 망자의 혼을 부디 하늘이 굽어살피길.
그렇게 기도하며 수도호修道號를 외었다.
이는 먼 곳에서 온 복수자와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던 벌레들에게 건네는 작별의 인사이기도 했다.
“돌아가게, 본래 있던 곳으로.”
사냥꾼은 연인의 곁으로, 어둠에서 태어난 미물은 다시 허무 속으로.
모든 것이 순리를 따라 제자리를 찾았다.
고요하고 평온한 런던의 밤, 차가운 공기가 칼날의 열기를 서서히 앗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수많은 위험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지 않겠군.”
걱정이 드는 한편, 새로 얻은 힘이 내게 새로운 활력과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는 게 느껴졌다.
강호의 은원은 희고 검은 실타래를 닮아, 살인이라는 이름의 붉은 실이 그 안에 숨겨져 있다.
그 실을 풀어내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나의 일, 셜록 홈즈의 협이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있는 한, 런던의 밤은 예전만큼 어둡지 않을 것이다.
* * *
한편, 건물 지붕 위에서Meanwhile On The Rooftop.
왓슨은 몇 시간 동안 홀로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인가, 홈즈…….”
다리가 불편한 그녀는 밤을 지새우며 동거인을 기다렸지만 어찌 된 일인지 홈즈는 날이 밝았는데도 찾아올 기색이 없었다.
* * *
벌레를 제거한 건 한밤중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레스트레이드와 경관들이 호프의 시체를 옮긴 건 아침이 되고 나서였다.
딱히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찰관들이 게을렀던 건 아니다.
강시에서 평범한 시체로 돌아갔다곤 해도 그 몸뚱이와 주위에 여전히 강력한 시독이 남아 있어 쉽게 운반할 수 없었을 뿐.
다행히도, 미리 내게 부탁을 받은 언이 제때 베이커가로 건너와 독을 흡수해 주었다.
“흔치 않은 기회로군. 이런 양질의 독을 수급할 수 있다니.”
언의 입장에서도 딱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언과 공생관계에 있는 하얀 고는 늘 강력한 독을 갈구하고 있는 데에다 그의 직업은 장의사였다.
그는 경찰에게 보수를 받고 독을 처리하는 겸 호프의 시체에 생긴 손상을 복원하고 염을 마칠 예정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시체는 관에 들어가 미합중국으로 건너가겠지.
그토록 그리워하던 연인의 곁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이젠 호프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참. 듣자 하니 살아남은 스탠거슨 역시 미국으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게 될 거라 한다.
죄 없는 사내를 살해하고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납치했으니 평생 감옥에서 썩거나 사형당할 것이다.
죽은 호프가 만족할진 솔직히 말해서 당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사법 체계라는 건 언제나 불완전한 법이니까.
어찌 됐든 이로써 사건은 완벽하게 해결.
회귀하기 전과 비교해 단초든 살해 방식이든 이것저것 달라져 있던 덕에 좋은 두뇌 운동이 되어 주었다.
새삼스럽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수수께끼를 풀고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보상인 것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걸 이야기하는 거고.
물질적인 보상 역시 챙길 수 있을 때 챙겨두는 것이 옳다.
“내무장관님께서 다음에 한번 보자고 하시더군요.”
“귀찮은데.”
“예의상 드리는 말씀이 아니랍니다. 선물을 준비해두고 계신다고 하더군요.”
레스트레이드 왈, 높으신 분께서 내 공로를 치하하려 하신단다.
장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대체 뭘 줄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들러보긴 해야겠다.
* * *
11시를 넘어 느긋하게 일어난 나는 하숙집을 찾아온 레스트레이드에게 사건이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지 들었다.
허드슨 부인은 친절하게도 다과와 홍차를 갖다주었는데 차를 마시는 레스트레이드의 모습은 식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
분명 그는 나름대로 예절을 지키려 했지만 아무래도 경찰보단 녹림도Merry Men에 가까운 얼굴 탓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왓슨 씨는?”
나는 레스트레이드를 돌려보내고 다기를 치우던 부인이 묻고 나서야 집안 어디에도 왓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간밤에 정신없이 싸웠던 탓에 왓슨을 지붕 위에 올려 둔 걸 잊고 있었다.
“잠시 다녀와야겠군요.”
나는 가엾은 왓슨의 모습을 상상하며 서둘러 겉옷만 챙겨 1층 현관으로 내려갔다.
-덜컥
그리고, 때마침 문 앞에 서 있던 나이 든 우체부와 마주쳤다.
얼마 전 등평도수로 웅덩이 위를 달려가던 그 남자다.
“홈즈 씨 되십니까.”
“네. 접니다만.”
우체부는 무표정한 얼굴로 실링 왁스로 봉한 새까만 편지 봉투를 건넸다.
“흠.”
편지 뒷면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발신인의 이름이 없었지만 실링 왁스에 찍힌 도장의 모양은 눈에 익었다.
초대장.
그것도 매년 내가 불참하던 모임의 주최자가 보낸 것이었다.
“……올해는 얼굴을 비춰야겠어.”
혼자 지낼 땐 딱히 참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지만 왓슨을 동거인으로 맞이한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우체부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진 다음이었다.
“그나저나 런던의 우체부는 역시 수준이 높군.”
고수는 민간에 숨어있다高手在民間는 말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다.
“참. 이럴 때가 아닌데.”
나는 경공을 펼쳐 곧바로 가까운 건물 지붕 위로 올라갔다.
어젯밤의 전투로 베이커가의 주택과 상점 중 여럿이 무너지긴 게 유감이지만 건물주들이 보험에 들어 있길 기도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숙집이 무사해서 그나마 다행인가.”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던 고양이와 비둘기가 놀라 도망갔지만 개의치 않고 옥상에서 옥상으로 건너가길 다섯 번.
나는 3층 건물 지붕 위에서 바들바들 떠는 왓슨을 발견했다.
“왓슨! 이걸 보게나!”
나는 왓슨을 부르며 손에 쥔 편지 봉투를 흔들었다.
이걸 보면 그녀도 기뻐할 게 틀림없다.
이 초대장은 왓슨과 내게 놀라운 기회를 선사해 주는 것이니까.
“홈즈. 자네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뜻밖에도 왓슨은 영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내게 독한 시선을 보냈다.
“초대장이 왔는데, 같이 열어 보지 않겠나.”
“그거 말고.”
“허드슨 부인이 차를 준비해 두었네.”
“……하아.”
-콩콩
그런데, 내 예상과 다르게 왓슨은 대자로 누워 주먹으로 지붕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이를 꽉 악물고, 눈도 질끈 감은 채로.
“아니, 왓슨. 이걸 좀 보라니까?”
“자네 혼자 많이 읽게…….”
뭐지. 히스테리성 발작인가?
* * *
아늑한 보금자리인 221b 번지 2층으로 돌아온 왓슨은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는 거실로 나온 다음에도 계속 내 말을 무시하고 있다가 허드슨 부인이 가져온 주전부리를 난폭하게 입에 쑤셔 넣은 다음에야 말문을 열었다.
“……홈즈, 내가 간밤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가.”
“…….”
이상하다. 강시를 잡으려고 고생한 사람은 왓슨이 아니라 나였던 것 같은데.
“내가 저체온증으로 죽으면 자네, 책임은 질 수 있나?”
아. 지붕에 방치당한 걸 얘기하는 거였군.
“그건―”
평소의 사근사근하고 신사다운(물론 그녀의 성별은 여성이지만) 모습에선 상상할 수 없는 냉랭한 태도.
아마도 우리 둘 중 저체온증으로 죽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건 분명 왓슨이 아닌 나일 것이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왓슨의 불타는 듯한 적발 사이 드문드문 섞인 은빛 새치가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밟혔다.
“뭐라고 말 좀 해보게. 사람이 묻고 있지 않나.”
삿대질하는 모양새가 당장 내 머리에 대고 탄지공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나는 차마 곰방대도 물지 못하고 차게 식은 차를 홀짝이며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초대장의 화제를 꺼내도 발신인이 누군지 말하기도 전에 딴소릴 한다고 난리를 칠 게 뻔하다.
왓슨의 정신을 쏙 빼놓으려면 더욱 자극적이고 강렬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녀를 놀라게 할 만한 정보.
허를 찌르는 화두.
딱 하나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걸 입에 담기 직전―
“으윽…….”
참으로 시기적절하게도 사자심법·개의 부작용이 날 덮치기 시작했다.
비 오듯 쏟아지는 식은땀.
증기 보일러라도 달린 것처럼 떨리는 손.
몸이 나른해져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예고 없이 시작된 금단증상은 내가 제대로 입도 놀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홈즈……!”
소파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나의 몸을 왓슨이 재빨리 부축했다.
아무래도 이쪽 세상의 몸에 적응한 이후 처음으로 대량의 내공을 소모한 탓에 금단증상의 강도가 심해진 모양이었다.
“어, 어서 주사를…….”
어눌한 발음으로 어떻게든 구조를 요청했는데 다행히도 의사인 왓슨은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해 주었다.
“지금 가네!”
그녀는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주사기를 들고 와 내 팔뚝을 걷어붙였다.
“믿을 수 없군. 언제부터 상습적으로 약물을 투여하고 있던 거지.”
“그, 그런 게 아니야…….”
망설이는 그녀를 대신해 나는 떨리는 손으로 주사기를 낚아채 바늘을 팔뚝에 박아 넣었다.
-푸쉬익
“맙소사. 그만한 양의 코카인을 한 번에 투여하면―”
“……후우.”
금단증상은 3초도 지나지 않아 멎었다.
“……자네 괜찮은 건가, 홈즈?”
“대량의 코카인을 주사한다고?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지 않나.”
나는 주사기의 밀대를 눌러 안에 남아 있던 액체를 왓슨의 손에 소량 뿌렸다.
“이건…….”
왓슨은 손바닥을 코에 갖다 대고 열심히 액체의 냄새를 맡았다.
“백년하수오의 즙을 정제한 물건일세.”
“그런 귀한 물건을 어디서…….”
“아직 좀 있는데 자네도 한 대 어떤가.”
“주사로 투여하는 건 좀…… 아니, 그보다 어디서 났냐고 묻고 있지 않나.”
“상상에 맡기겠네.”
첼시영약원에서 받아온 약재가 왓슨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낫겠지.
“후우…… 같이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네가 죽는 줄 알았다네…….”
“절정의 무인은 쉽게 숨이 끊어지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게.”
왓슨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보게, 홈즈. 나는 이렇게 자네의 몸을 걱정해 마지않는데, 어떻게 자네는 나를 하룻밤 동안 바깥에 내버려 두고…….”
내가 멀쩡한 걸 확인한 그녀는 아까 하던 얘길 다시 이어가려는 중이었다.
나는 빠르게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책임질 수 없네.”
“……뭐라고?”
“책임질 수 없다고 했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생각지도 못한 문장에 의표를 찔린 왓슨이 내게 두 번이나 되물었다.
먹이에 완벽하게 낚였다는 증거.
이제부턴 먹잇감의 혼을 빼놓을 차례다.
“자네가 조금 전에 묻지 않았나. 밖에서 얼어 죽으면 책임질 거냐고. 그럴 수 없다고 말했네.”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그 얘긴 왜―”
“함부로 이성에게 자신을 책임질 수 있냐고 묻는 건 숙녀의 품격에 걸맞지 않은 경망스러운 언동일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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