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 운기티타임 (1)
Tea For Two (1)
그래도 진기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 * *
입구의 점소이에게 용무를 말하기가 무섭게 가게 주인이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죄송하지만 프라이빗 수련동은 일반 고객에게 개방되어있지 않습니다.”
처음엔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던 주인은 내가 용봉지회의 초대장과 독각화망의 내단을 꺼내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했습니다. 결승 진출자셨군요. 지하로 모시겠습니다.”
역시 왕립무학회의 후광을 짊어지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닌 것 같다.
허드슨 부인의 말대로 정식 회원이 되는 걸 고려해볼까.
“가세, 왓슨.”
우린 주인의 뒤를 따라 지하로 이어진 승강기에 올라탔다.
다리가 불편한 왓슨이 계단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로 다행이다.
-우우웅!
승강기는 한참 동안 아래로 내려간 다음에야 수련동에 도착했다.
가게의 지하는 고객들이 차를 마시던 지상의 아늑한 공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바위를 파내 만든 복도에는 최신식 환풍 장치와 배관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넓은 통로의 좌우에는 닫힌 문이 몇 개 보였다.
문패에는 위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영국인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는 자들의 것이었다.
“대단하군. 소문으론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본래 지하에 존재하던 동굴을 개조한 곳일세. 런던에 아무리 티 룸이 많아도 이 정도 설비를 갖춘 곳은 찾아보기 힘들지.”
수련동에 존재하는 모든 방은 방음처리를 마친 프라이빗 파티 룸.
주인은 열쇠 꾸러미에서 은으로 만든 열쇠를 골라 복도 끝에 위치한 ‘뉴턴의 방’을 열었다.
“독각화망의 내단을 맡겨 주시면 빠르게 조리해 가져오겠습니다.”
“부탁하겠네.”
나는 내단이 든 유리 케이스를 건네고 왓슨과 프라이빗 룸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벽에 고가의 야명주가 박혀 있는 데에다 질 좋은 거울을 사용해 지상에서 빛을 끌어오고 있어 전혀 어둡지 않았다.
멋들어진 테이블, 의자, 소파를 비롯해 욕실과 화장실, 침대까지 있는 방은 가히 호텔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내부엔 일주일은 족히 먹을 수 있는 벽곡단과 식수도 비치되어 있어 비상사태에도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여기까지 와서 저걸 먹는 사람은 없겠지만.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애프터눈 티 세트 2인분 부탁하네.”
“블렌드는 잉글리시 운기 브렉퍼스트 티English Yun-Qi Breakfast Tea를 추천해 드립니다.”
잉글리시 운기 브렉퍼스트.
실론, 아삼, 케냐의 찻잎과 하수오 등의 영약을 섞은 블렌드. 가장 무난한 선택지다.
“그거로 주게.”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승강기로 향했다.
한편, 용봉지회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던 왓슨은 이러한 특혜가 주어진다는 사실이 신기하다는 듯 방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대단하군. 이런 곳을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니.”
앞으로 사흘 동안 우린 이 수련동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갈아입을 옷과 칫솔 등을 챙겨 온 것도 한동안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까닭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허드슨 부인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숙집엔 편지를 남겨 두었다.
우리가 용봉지회의 최고 답례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 테지.
“그야 뉴웬스는 용봉지회의 공식 협력 다루茶樓니까. 여기서 나갈 즈음엔 자네의 절맥증도 조금은 호전되어 있을 걸세.”
“아직도 믿기지 않아. 내가 이런 귀한 영약을 얻게 될 줄이야.”
“전부 잘난 친구를 둔 덕이 아니겠나.”
왓슨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홈즈. 오늘이라면 자네가 무슨 말을 하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그것 참 잘 됐군. 마침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거든.”
당사자인 왓슨도 허락했겠다, 이곳에서라면 부담 없이 질문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자네가 궁금하다는 건 대체 무엇인가. 내게 관한 건 뭐든 관찰을 통해 전부 알아내지 않았나. 아직도 물어보고 싶은 게 남아 있을 줄은 몰랐네.”
왓슨은 평소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빛내며 물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나는 누군가에게 캐물을 필요 없이 뭐든 알아내는 관찰의 달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내 지성이 뛰어나다 해도 처음 살아 보는 세상에서 만난 적 없는 사람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단번에 꿰뚫어 보는 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이쪽 세상의 ‘존 왓슨’에 관한 단초라든지.
“…….”
“……왜,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건가, 홈즈.”
제인 왓슨과 존 왓슨은 이란성 쌍둥이.
왓슨이 둘이라니.
왓슨 말곤 친구가 없는 내게 있어 이쪽 런던은 꿈만 같은 세상이 틀림없다.
물론, 집을 나간 쪽의 왓슨을 찾아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만.
하지만 내가 아는 존 왓슨이라면. 그 옳고 강직한 성품의 사내라면.
반드시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 자기 뜻을 펼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이보게 왓슨, 자네에겐 불편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입을 열었는데.
-똑똑
때마침 도착한 애프터눈 티 세트가 나의 질문을 가로막았다.
“들어오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점소이가 수련동 안으로 들어온 순간 향긋한 냄새가 방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호화로운 3단 트레이에 가득 쌓인 각종 티 푸드.
개중에서도 단연 존재감이 돋보이는 건 독각화망의 내단을 사용한 샌드위치였다.
“오오…….”
왓슨은 영약을 사용한 티 푸드를 처음 보는 듯 연신 감탄하는 중이었다.
두 개의 내단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공되어 빵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하나는 저민 내단을 거위 간과 섞어 페이스트로 만든 파테Pate.
나머지 하나는 내단을 잘라 미디움 레어로 구운 스테이크.
보기에 아름답고 향기 역시 뛰어나 조리 솜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포트메리온 스포드 블루 이탈리안 티포트에 담긴 홍차 역시 취향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곁에는 기호에 따라 사용할 수 있도록 레몬과 설탕, 그리고 공청석유Stone Milk가 준비되어 있었다.
“왓슨. 잠시 손을 내밀어 보게.”
“손목은 갑자기 왜.”
“자네의 단전이 영약의 기운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네. ”
“그럼 아랫배에 직접 손을 대 보는 게 낫지 않은가.”
“…….”
아무리 친구라지만 레이디를 상대로 그건 좀…….
무엇보다 무림인에게 있어 단전을 직접 만지는 건 목에 칼을 들이미는 것과 진배없는 수준의 위협이다.
“흠흠……. 역시 맥만 짚어 보는 게 낫겠군.”
왓슨은 빨갛게 물든 얼굴을 돌리고 연신 헛기침을 했다.
“그럼, 잠시 실례.”
나는 왓슨의 손목을 걷어붙인 다음 맥을 짚었다.
천천히 공력을 흘려보내자 왓슨의 내공이 내가 주입한 힘을 밀어내는 게 느껴졌다.
“흐읏.”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게.”
내가 시도한 건 자신의 내공을 일시적으로 타인에게 불어넣어 단전의 크기를 확인하는 수법으로 원리 자체는 격체전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격체전력이 실패하기 쉬운 이유가 바로 이걸세.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공력을 받아들이는 쪽의 내공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거든.”
“대단하군. 그걸 역으로 이용해 단전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니.”
“섬세하게 공력을 다루어야 하는 방식이라 쉽게 따라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
나는 단전이 발하는 반발력을 통해 왓슨이 지닌 내공의 크기를 얼추 파악했다.
이번에 구한 독각화망의 내단은 상등품. 그 사실을 고려하면―
“반 개. 그 이상은 먹지 말게.”
“아쉽게 되었군. 그럼 케이크는 내가 하나 더 먹어도 괜찮겠지?”
“당연한 소리를.”
왓슨의 단전이 버텨 낼 수 있는 건 내단 반 개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마음 같아선 한 번에 두 개를 다 먹이고 싶지만 그랬다간 단전이 터져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
문외한이 본다면 내단 두 개를 잘라 천천히 묵혀 두었다가 먹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묻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내단은 살아 있던 생명체가 품고 있던 물건으로 엄연히 신체의 일부다.
독각화망의 몸을 가르고 꺼낸 순간부터 내단은 산화되기 시작한다.
만일 이걸 반으로 잘라 보관했다간 안에 든 양기가 며칠 지나지 않아 흩어지고 말 것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이런 강력한 영약은 같은 종류를 여러 번 복용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예외가 있다면 스승이나 나처럼 사자심법을 익힌 사람인데, 이는 사자심법이 대량의 영약을 섭취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잘 먹겠습니다.”
우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푸아그라를 닮은 식감. 터져 나오는 육즙.
과연, 내단Seasoned Pill이라는 이름답게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염분과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맛을 음미하며 여유를 부리던 것도 잠시.
이내 내단에 담겨 있던 거친 극양지기가 천천히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화아악!
따뜻한 물에 전신을 담근 것만 같은 기분.
후끈한 열기가 기경팔맥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다.
“뱃속이 뜨겁네, 홈즈. 더워서 견디지 못할 지경이야.”
“좋은 징조야.”
내단의 기운은 아직 왓슨의 뱃속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음기로 이루어진 아홉 개의 대못이 그녀의 혈도에 박혀 기의 순환을 방해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이제부터 그 기운으로 자네의 막힌 혈도를 뚫을 거야.”
“부작용은 없나?”
“그럼. 대신 많이 아프겠지.”
“맙소사.”
이번 시도로 구음절맥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혈맥에 박힌 대못 중 하나 정도는 제거할 수 있을 테지.
“운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네. 그동안 내단의 기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심신을 편안하게 유지해 두게.”
“참. 아까 내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하지 않았나. 궁금해서 심신이 불편해지고 있네만.”
“아니. 이건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겠어.”
내가 고민 끝에 그녀의 쌍둥이 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건 내단의 기운을 흡수하는 데에 지장이 생길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다음에 천천히 물어보는 수밖에.
“슬슬 시작해도 되겠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두게, 왓슨.”
공청석유를 섞은 영약 홍차와 티 푸드를 모두 비운 우린 곧바로 가부좌Lotus Position를 틀었다.
“잡념을 버리고 극양지기에만 집중하게. 육군 제식 심법은 범용성이 높으니 내단의 양기를 무난히 갈무리할 수 있을 걸세.”
“명심하겠네.”
왓슨은 곧바로 눈을 감고 일주천Rotation을 시작했다.
용봉지수에 참가한 후기지수들과 비교하면 접근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의 종류가 적을지는 몰라도 군 장교 출신인 그녀는 누구보다 탄탄한 기초를 쌓아왔다.
적량을 맞춰 복용한 이상, 제아무리 강맹한 양기의 덩어리인 독각화망의 내단도 그녀의 기맥을 상하게 할 순 없다.
-고오오……
기계처럼 육군 제식 토납법을 시작한 왓슨의 숨소리.
내단에서 추출된 양의 기운은 지금쯤 단전으로 흘러가 똬리를 틀기 시작했으리라.
“크윽…….”
왓슨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체내에 대량의 음기를 품은 그녀의 몸은 음양의 균형이 무너진 채 평생을 살아왔다.
익숙하지 않은 기운인 양기가 대량으로 단전에 들어찼으니 본래 자리 잡고 있던 음기가 격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는 길목.
“부탁이니까 견뎌 주게, 왓슨.”
왓슨의 쌍둥이 동생인 그녀의 구음절맥을 고치지 못한다면 친구로서 면목이 없다.
무엇보다, 지금 곁에서 날 돕는 이가 죽게 두는 건 수사 자문가로서 실격 사유가 아닌가.
나는 왓슨을 연명시켜 그녀를 강인한 무인으로 키워 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친구 왓슨에게 보답하고, 동시에 등을 맡길 조수를 구하는 길이니까.
“시작하겠네.”
나는 왓슨의 등에 손을 얹었다.
의념을 따라 서서히, 그녀의 단전에 머무르던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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