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운기티타임 (2)
Tea For Two (2)
시정잡배의 시간은 시계로 잴 수 있지만 일대종사의 시간은 시계로 잴 수 없다.
-윌리엄 블레이크, <선계와 지옥의 종신대사>-
* * *
구음절맥Nine Yin-Qi Nails의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는 섬세한 내력 제어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우린 영약이 내포한 힘을 올바른 방법으로 길들여 무인 자신의 힘, 즉 진기로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것이 음기든 아니면 양기든, 통제되지 않은 힘은 반드시 몸을 망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체내의 기운을 올바른 순서로 움직여 수련자의 신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양생술인 진기도인.
그리고 바리츠를 창시한 나의 스승은 진기도인법에 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자였다.
“지금부터 자네의 진기를 내가 대신 움직일 거야. 긴장을 풀고 간섭을 받아들이게.”
“……안 그래도 지금 노력하는 중이네.”
나는 왓슨의 등에 댄 손을 통해 소량의 공력을 체내로 흘려보냈다.
그 내력은 영약의 기운 중 미세한 양을 길들여 진기로 바꾼 것으로, 왓슨의 체내에 머문 기운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낚싯바늘이나 자석 같은 역할을 맡아 줄 예정이다.
근육을 이완시키고 혈도를 가능한 한 최대로 열어젖힌 지금이라면, 내단의 난폭한 기운이 그녀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이끌 수 있다.
-우웅!
왓슨의 몸에 흘려보낸 기운이 나의 단전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극양지기는 내 의념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더니 아직 왓슨이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내단의 기운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이로써 나와 왓슨의 기운을 한 번에 묶어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첫 단계인 공명Resonance이 완료되었다.
‘여기까진 훌륭하군.’
다음으로 나는 시험 삼아 단전에 모인 내단의 기운을 신궐혈로 잠시 끌어올렸다.
이내, 왓슨의 체내에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동일한 움직임이 일어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약의 기운을 완전히 자신의 진기로 흡수하는 방법은 여럿 있었지만 독각화망의 내단의 경우는 천천히 소주천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다고 쉽다는 말은 아니지만.
‘집중해야겠군.’
일반적으로 타인이 섭취한 영약의 기운에 간섭하는 행위는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한다.
특히나 간섭하는 이가 똑같이 영약을 섭취해 흡수하는 중이라면 더더욱이나.
두 명의 기운을 동시에 움직이는 일이 오른손과 왼손을 동시에 움직여 정밀한 초상화를 그리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먼저 내단의 힘을 전부 열양진기로 전환한 다음 천천히 왓슨이 흡수한 기운을 움직이는 게 옳겠지만.
무식하게 영약의 기운을 흡수하는 데 특화된 사자심법을 익힌 나는 그런 제약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고고고고고……!
진기도인을 시작하자 내단의 뜨거운 기운이 천천히 나의 기맥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평소 행하던 운기조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순환 중인 진기와 내단의 양기의 표면에 고유의 파형이 돌기처럼 솟아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바로 다른 문파의 심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바리츠만의 비술, ‘치륜대법Cogwheel Method’이었다.
치륜대법齒輪大法은 체내를 순환하는 기운을 톱니바퀴의 형태로 가공해 타인의 기운에 간섭하는 절세의 무학.
대성하면 상대의 몸을 잠시 건드리기만 해도 진기를 역류시켜 내상을 입히거나 초식의 흐름을 끊을 수 있다.
다만, 내가 왓슨을 해할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가각!
나의 체내를 순환하는 내력만이 아니라, 왓슨의 기운에도 똑같이 톱니가 생겨났다.
그것을 바퀴라고 부르기엔 혈도의 모양이 타원에 가까워 무리가 있었지만.
앞서 왓슨의 단전에 파고든 열양진기는 그녀의 기운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마중물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철컥
다음 순간, 나의 손바닥과 왓슨의 등을 비집고 나온 내력의 톱니가 완벽하게 맞물렸다.
감합嵌合 완료.
-끼리릭
이윽고 톱니는 제각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륜대법은 상대를 공격하는 외의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 높은 도인법이다.
그리고 내가 익힌 사자심법·개는 정파의 심법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내공을 순환시키는 마공.
그 말은 즉, 내가 평소처럼 역방향으로 내단의 양기를 운기하기만 해도 왓슨의 양기가 저절로 정방향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크흑…….”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탓에 왓슨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톱니가 달린 양기가 혈도를 순환하고 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치륜대법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나조차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 내고 있을 정도니까.
사실 나는 왓슨의 양기에 톱니를 만들지 않아도 그녀의 기운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방법을 택한 이유는 왓슨의 체질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까다롭군. 사부가 함부로 구음절맥의 치료를 시도하지 말라 한 것도 이해가 가.’
구음절맥을 앓고 있는 왓슨의 혈맥에는 아홉 개의 음기로 이루어진 대못이 박혀 있다.
기경팔맥이 못에 막혀 비좁아지니 십이경맥만을 활용하게 되고, 결과 진기의 운용 효율이 떨어지고 운기조식 역시 어려워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몸은 오랫동안 음기에 지배되어왔다.
길들이지 않은 내단의 양기에 오랫동안 혈맥이 노출되었다간 심한 내상을 입게 될 것이다.
왓슨의 몸에 불어넣은 나의 내공으로 치륜대법을 사용한 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시간 끌지 말고 단번에 끝내야만 해.’
치륜대법을 응용해 타인에게 진기도인을 행할 경우 두 사람의 몸에 모두 톱니바퀴를 만드는 쪽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기운을 움직일 수 있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음기의 못으로 인해 혈도가 좁아져 있더라도 속도를 늦추는 일 없이 강제로 양기를 십이주천시켜 소주천을 완성할 수 있다.
고통스러워도 속도를 내는 것이야말로 왓슨의 몸을 위하는 길이다.
‘자네가 원망하더라도 이해하겠네.’
움찔대는 왓슨의 작은 등을 외면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나의 친구는 여전히 내공의 톱니가 만들어 낸 고통을 견디며 신음을 참고 있었지만 아까보단 익숙해진 듯 서서히 호흡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조금만 더…….’
왓슨의 등을 지나 위로 솟은 양기가 정수리의 백회혈에 도달했다.
정석대로 왓슨은 양기가 다음 관문으로 넘어가는 일 없이 모이도록 머릿속에 붙들어 매는 중이었다.
등에 댄 손바닥을 통해 빠르게 상승하던 그녀의 체온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서서히, 머릿속에 들어찬 양기가 왓슨의 의념과 어우러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난폭하게 날뛰던 내단의 양기가 천천히 왓슨의 진기에 녹아들기 시작하고 있다는 증거.
‘지금이다……!’
내가 손바닥으로 등을 눌러 신호를 보내자 왓슨이 미간의 인당혈을 열었다.
동시에 온양이 끝난 양기가 폭포수처럼 임맥으로 쏟아져 내리며 왓슨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오오!!!
내단의 기운은 떨어져 내리는 기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방금 지나온 혈맥을 열한 번 더 순환했다.
“아앗……!”
소주천이 끝나자마자 왓슨이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었다.
극단적으로 음의 방향으로 치우쳐있던 진기가 양의 방향으로 기울며 지금쯤 체내를 지배하던 음양의 균형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을 터.
나 역시 왓슨과 거의 동시에 흡수한 양기를 전부 진기로 바꾸어 하단전에 가두었다.
‘기대 이상이다!’
사용할 수 있는 진기가 대폭 늘어난 것이 느껴졌다.
아마 이 상태로 기억의 궁전魔腦宮에 진입한다면 회귀의 영향으로 금제 되어있던 무공을 더욱 해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내게 없다.
지금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건 절맥증의 치료를 마치는 것이니까.
“이제……, 끝난 건가……, 홈즈.”
“아니.”
아직 우린 목표를 절반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내단의 양기를 왓슨이 온전히 진기로 받아들인 데까진 성공했지만 왓슨의 혈맥에 박힌 음기의 못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걸 녹이지 못하면 내단을 섭취한 의미가 없어진다.
왓슨이 더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혈도가 활성화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제부터가 진짜일세. 기절하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매게.”
“이보게, 홈즈.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됐으니까 어서 입을 벌리게.”
“우으읍!!”
나는 대답 대신 왓슨이 혀를 깨물지 않도록 손수건을 꼬아 입에 물렸다.
고통을 견디는 데엔 코르크 덩어리나 나뭇조각이 더 낫겠지만 그랬다간 토납법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
“자네라면 버틸 수 있을 거야.”
“으읍! 으으읍!!”
나는 다시 한번 치륜대법을 사용해 왓슨의 단전에서 끓고 있는 열양진기를 첫 번째 못이 박힌 척추의 독맥으로 끌어올렸다.
-화악!
태양을 닮은 포근한 진기가 왓슨의 혈도에 박힌 굵은 음기의 대못을 감쌌다.
-사각
-카드득
나는 내단의 기운을 움직일 때보다 더한 집중력을 발휘해 음기의 못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대못의 형태로 침전된 음기를 조금씩 조금씩 갈아내는 과정은 막대한 정신력을 요구할뿐더러 왓슨에게 잔혹하리만치의 통증을 안겨주고 있었다.
“으읏……!!”
왓슨이 참지 못하고 신음을 토해냈지만 뭐라 위로해 줄 여유가 없었다.
그저, 열양진기를 숫돌 삼아 마부작침磨斧作針의 마음가짐으로 계속해서 음기의 못을 갈아낼 뿐.
하지만.
‘……부족해. 이대로 두면 왓슨이 기절하고 말 거야.’
대못이 닳는 속도는 내 생각보다 훨씬 느렸다.
갈려 나간 못의 파편, 즉 차가운 속성을 지닌 한음진기가 열양진기와 섞여 중화되고 있던 까닭이었다.
열양진기를 뭉쳐 더욱 뜨거운 극양지기로 바꾼다면 못을 빠르게 녹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왓슨의 경맥이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1분이라도 빨리 못을 없애야 왓슨을 고통에서 구해낼 수 있는데, 이대로는 외통수에 몰리고 만다.
‘이 방법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달리 방법이 없다.
스승은 어지간해선 사용하지 말라고 했지만 해보는 수밖에.
‘한 번에 성공시키지 못하면 나도 왓슨도 위험해진다.’
한계까지 치솟는 집중력.
시야가 어두워지며 감각이 둔해졌다.
준비는 끝났다.
나는 금지된 구결口訣을 속으로 되뇌며 니환궁泥丸宮에 내공을 끌어모았다.
-일사견세계 一沙見世界
-일화규천당 一花窺天堂
-수심악무한 手心握無限
-수유납영항 須臾納永恒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며.
한 송이 들꽃으로 천국을 엿본다.
그대 손으로 무한을 쥐면.
순간 속에서 영원하리라.
최초로 상단전을 개방한 유럽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기록한 구결, 순수의 전조天眞豫兆. 그 첫 4행을 머릿속에서 읊은 순간.
-토옥
짓씹은 입술에서 떨어지던 핏방울이 서서히 속도를 늦추다 그대로 허공에서 정지했다.
열린 동공이 포착한 세계가 소리와 움직임을 잃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죽을 힘을 다해 붙잡으면 된다.
이곳은 대뇌피질에 내공을 집중해 기능을 끌어올리는 동動의 극한을 통해 도달한 정靜의 세계.
그러니까―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시간이 멈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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