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33화 (33/110)

033. 무공 밀실 살인 사건 (1)

Serial Kung-Fu-Cide In Locked Room (1)

갑작스럽고 대담한, 그리고 예상 밖의 출수는 살수를 여러 차례 놀라게 해 정체를 드러내게 만든다.

-프랜시스 베이컨-

* * *

베이커가 221b 2층의 하숙집의 침실.

“우음…….”

반쯤 눈을 뜬 여인이 비스듬한 각도에서 스며드는 오후의 햇빛을 받으며 기지개를 켰다.

평소와 달리 늦은 시간에 기상한 그녀는 셜록 홈즈의 동거인이자 세인트 바솔로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제인 왓슨.

모처럼 비번인 날이었기에 왓슨은 동이 트기 전까지 홈즈와 떠들다 잠에 들었고 이제야 일어난 참이었다.

“정신없이 마셨네…….”

침대 밑에는 빈 위스키병이 쓰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지난밤 홈즈와 같이 마시다가 그대로 침실로 가져온 듯했다.

새로 온 메이드의 요리를 안주 삼아 홀짝이다 보니 주량의 두 배는 넘게 퍼마시고 말았는데 숙취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홈즈가 침실에 들어갔다 나온 즈음부터 안주 맛이 이상해진 것 같긴 했으나 그 정도는 사소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는 저만큼 마셨다면 중간에 술에 꼴아서 퍼졌겠지만, 오늘 아침 단추 하나 잘못 채우는 일 없이 멀쩡히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들었다.

전부 절맥증이 호전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후.”

침대를 벗어나 거울 앞에 선 왓슨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창백했던 혈색이 정상에 가까워졌고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날 때마다 자신을 괴롭히던 다리의 통증 역시 평소보다 가벼웠다.

홈즈의 치료를 받은 이래로 그녀의 건강은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혈도를 틀어막고 있던 아홉 개의 대못 중 고작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약했던 맥박이 정상화된 건 물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육체만이 아닌 그녀의 정신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

왓슨은 거울에 비춘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요즘 들어 부쩍 웃는 일이 많아졌다. 그게 딱히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왓슨은 무공과 의술을 익힌 덕에 자잘한 통증이나 기타 증상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언제 요절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만큼은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구음절맥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지금, 그녀는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평온해졌다.

“의사의 병을 고치고 있는 게 탐정이라니.”

병원 동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내칠 테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다양한 극양지물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체질을 완벽하게 개선할 수 있을 터.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군.”

이 모든 게 새로운 동거인인 홈즈 덕이다.

그와 만난 건 필시 신불God And Saints께서 예비하신 인연이리라.

완치된 환자들이 자신에게 보이던 감사의 마음이 어느샌가 스스로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의사가 고칠 수 없다며 포기한 절맥증을 앓는 이상, 평생 느낄 수 없는 감정일 거라 생각했는데.

언제가 됐든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 것이다.

아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친 홈즈를 치료하고 조수의 역할을 다하는 것 정도밖에 없긴 하지만, 계속 실력을 쌓는다면 기회가 있으리라.

왓슨은 그렇게 다짐하며 가짜 수염을 붙이려 했다.

“백보신권.”

침실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둔 거실에서 들려온 굉음이 소소하게 남아있던 졸음을 날려버린 건 바로 그때였다.

* * *

-콰앙

“홈즈!! 이번엔 또 뭘 저지른 건가!!”

왓슨이 힘차게 자기 침실 문을 열어젖히며 거실로 뛰쳐나왔다.

“미안하게 되었군. 자네가 자고 있던 걸 깜빡하고 있었지 뭔가.”

“아니, 사과는 됐으니 이번엔 뭘 부숴 먹었는지 말해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떤 참상이 벌어졌는지 확인하던 왓슨은 말을 잃었다.

이번에도 벽이든 뭐든 무너졌을 거라 생각하고 나왔는데 거실에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아 당황한 모양이었다.

“분명 소리가 났는데…….”

“아, 이것 말인가.”

나는 당황한 왓슨 대신 천천히 계단과 이어진 하숙집의 출입문을 열었다.

-털썩

문을 열자 무릎 꿇은 흑의인Man In Black 하나가 안쪽으로 쓰러졌다.

“이건……!”

“뭐긴. 나를 노리고 온 살수지. 벌써 두 명째군.”

놈의 얼굴은 피투성이, 흔히 말하는 칠공분혈Technical Knock-Out 상태.

“잠행술 외엔 형편없었다네. 고작 일권에 쓰러질 줄이야.”

그리고 그 뒤에는.

“에구머니 맙소사.”

2층에서 들린 굉음을 듣고 올라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허드슨 부인이 있었다.

“오오.”

왓슨은 무언가 깨달은 듯 정중하게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손바닥으로 주먹을 감쌌다.

“부인께서 이렇게나 심후한 무공을 감추고 계실 줄이야. 이 왓아무개는 탄복했습니다.”

내가 했다고. 이 사람아.

* * *

허드슨 부인이 경찰을 부르러 간 사이 나는 살수의 점혈을 마치고 그를 포박했다.

만일 놈이 아무 상관 없는 부인에게 해를 끼쳤다면 곧바로 참斬했을 테지만 그나마 흑도 중에선 상도덕은 지키는 놈 같아 살려두었다.

물론 주된 이유는 배후가 누구인지 증언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지만.

야드의 경찰은 범죄 수사 능력이 떨어지긴 해도 붙잡은 범죄자를 심문해 정보를 토해내게 하는 데엔 능하다.

하루에 스무 시간씩 트레드밀을 밟아 분근착골Maximum Pain 당하면 싫어도 입이 멋대로 움직이는 법이니까.

“나도 많이 얕보였군. 일류 중에서도 완숙에 달하지 못하면 내 피륙에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할 텐데.”

그보다 화가 나는 건 암살자의 고용주가 내 경지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자는 잠행술에 능하긴 해도 무력은 이류 초입 수준.

레스트레이드 선에서 충분히 정리가 된다.

“기묘하군. 어째서 살수가 새벽이 아닌 오후에 찾아온 걸까.”

“평소 이 시간대엔 우리가 차를 마신 다음 운기조식을 하는 걸 알고 왔겠지.”

“그렇군. 하긴, 운기 중은 자고 있을 때보다 더욱 습격에 취약하니까.”

거기까지 말한 왓슨이 무언가 깨달은 듯 말을 이었다.

“잠깐, 자네 설마 나랑 진탕 마시고 밤을 샌 건…….”

왓슨은 그제야 내가 동틀 때까지 술을 먹인 게 살수를 방심시키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생각한 대로야.”

살수는 왓슨이 잠든 걸 확인한 다음 계단에 골목 방향으로 난 창문을 통해 잠입했다.

2층 발코니로 들어오다가 목격자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함이리라.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눈치채고 놈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은 방금 본 것처럼 문에 시야를 가로막힌 놈에게 일권을 선사했고.

“언제부터 감시당하는 걸 눈치챘지?”

“용봉지회가 끝나고 돌아갈 때부터 미행당했거든. 변장은 매번 달랐지만 알아보기 쉬웠다네.”

“내게도 알려줬으면 어디 덧나는가.”

“감시당하는 걸 알려주면 자네가 티를 낼지도 모르지 않나.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하는 법이니까.”

왓슨은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결국은 분하다는 듯 볼을 부풀렸다.

“그래서, 살수의 배후에 관해 짐작은 가는가?”

“그야 드레이크 가문이 벌인 짓이겠지.”

이 정도는 알아챌 줄 알았는데 자다 깨서 그런지 머리가 안 돌아가는 모양이다. 단 걸 먹이던가 해야 하나.

“확실히 그들이라면 자네에게 원한을 품을 만도 하네. 다만, 확신하기엔 근거가 부족하지 않은가.”

“조금만 머리를 쓰면 알 수 있는 일이라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왓슨은 다재다능한 조수였지만 추리에는 영 재능이 없다.

“생각해 보게, 왓슨.”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펼치고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목숨을 노릴 동기를 지닌 개인 혹은 집단은 모두 셋.

첫째가 기껏 풀어놓은 고와 강시를 잃은 모던파 출신 수도사 프랑켄슈타인.

둘째가 교인인 스탠거슨이 체포당해 이것저것 자백해버린 탓에 북미대륙의 무림공적Public Enemy으로 취급당할 위기에 처한 몰몬교도들.

마지막으로 하룻밤 사이에 장남이 죽고 차남이 경찰에 끌려간 드레이크 가문이다.

이중 프랑켄슈타인은 구체적으로 누가 강시를 처리했는지 알지 못하니 나를 목표로 삼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몰몬교의 지도자는 내가 기억하기로 꽤나 부유한 자였으니 방금 제압한 놈보다 훨씬 실력이 좋은 살수를 고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로, 남은 가능성은 하나.

이 암살자는 드레이크 가문이 내게 원한을 품고 보낸 놈이다.

살수의 실력이 일천한 것도 구성원이 대역죄를 범한 드레이크 가문의 가산이 모조리 국고에 환수당했다는 신문 기사를 고려하면 납득이 간다.

“후안무치한 자들이군. 가문이 박살 난 걸 자네 탓으로 돌리다니.”

“본디 타고나길 짐승의 성정을 지닌 해적의 핏줄이니 그러한 것이겠지. 나로선 대영제국 해군의 자랑스러운 전통에 저들이 오명을 남기는 것이 걱정될 뿐이야.”

군에 복무했던 왓슨은 이에 공감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왓슨의 입장에선 군인이 천륜을 거스르는 등 일탈을 범하는 건 꼴도 보기 싫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왓슨은 칠공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져 포박당한 암살자를 유심히 살피며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홈즈, 자네 조금 전에 살수를 쓰러뜨린 초식이 백보신권이라 하지 않았나?”

“그렇네만.”

“저번에 용봉지회에선 백보신권이 권풍을 쏘아내는 초식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분명 그렇게 말했네.”

“그렇다면, 어째서 문은 멀쩡하고 그 너머에 있던 살수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군.”

“아. 그건 말이지.”

마침내 왓슨이 이걸 물어봐 주었다.

나 역시 왓슨을 치료하며 얻은 깨달음을 통해 초식의 본래 힘을 끌어낸 참이다.

기회가 생기면 설명하려던 참이었으니 마침 잘 됐다.

“권풍을 날리는 건 어디까지나 백보신권의 묘리를 모르는 이들이나 갓 초식을 익히는 자들을 위한 설명일세. 백보신권의 진정한 묘리는―”

거기까지 설명한 순간 1층 출입구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2층으로 올라온 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허드슨 부인과 신고를 받고 출동 레스트레이드 경감이었다.

“강시 다음엔 살수입니까. 그러게 원한 좀 작작 사고 다니시지.”

그렇게 말하는 레스트레이드의 얼굴엔 걱정하는 기색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아쉽다는 듯 입꼬리가 내려가 있는 걸 보니 내가 호되게 당하지 않은 게 어지간히 아쉬운 모양이었다.

“제압해두었으니 나머진 알아서 하게.”

“짐작 가는 배후는 있으십니까?”

“드레이크.”

“허어……, 대역죄에 더해 몇 가지 죄목이 추가되겠군요. 뭐,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처리하시겠죠.”

레스트레이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흑의인의 손목과 발목에 수갑을 채웠다.

살수는 저항하려 했지만 이미 점혈이 끝나있는 데에다 백보신권에 당해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나머진 부탁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했지만 레스트레이드는 침입자를 연행하는 대신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직 볼일이 남아있는 건가?”

“하커트 경께서 찾고 계십니다.”

“아하.”

하커트 경이라면 스코틀랜드 야드를 움직이는 경찰청장 헨더슨 경의 상관. 즉, 내무장관이 아닌가.

저번에 강시 사건을 해결했을 때 선물을 주겠다더니 이제야 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선물을 준비하셨다는데 마다할 수 없지. 앞장서게, 레스트레이드.”

“아쉽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홈즈 씨.”

“저번에 들은 것과 이야기가 다른데.”

“장관대인이 선물을 준비하신 건 사실이지만 그전에 도와주실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말해보게. 무슨 일이길래.”

경감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대꾸했다.

“네 명이 살해당했습니다. 밀실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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