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35화 (35/110)

035. 무공 밀실 살인 사건 (3)

Serial Kung-Fu-Cide In Locked Room (3)

마음의 기관진법을 여는 열쇠는 안쪽에만 존재한다

-게오르크 헤겔-

* * *

“매우 흥미로워졌습니다.”

가뜩이나 경감이 밀실 살인이라고 알려줘서 머리가 달아오른 참이었다.

그에 더해 내무장관이 나를 직접 불러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 이번 사건은 아마도―

‘산해진미Banquet 그 자체.’

졸음이 날아가며 강렬한 욕구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굶주린 뇌가 먹이를 달라며 아우성을 치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말씀하신 게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나는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두뇌가 활성화되자마자 사자심법의 부작용이 덮쳐왔다.

몸에서 힘이 빠지며 영약을 섭취하고 싶다는 욕구가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차를 한 잔 마셔도 될까요. 가능하다면 영약이 들어간 거로.”

“유감이군. 내가 사람을 불러두고 차 한 잔 내지 않는 무례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다니.”

장관이 말하기 무섭게 집무실 문이 열리며 시종이 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조금 전까지 뒤에 있는 걸 봤는데 어느 틈에 나갔다가 돌아온 걸까.

오후에 찾아왔던 살수 따위보다 훨씬 기도를 감추는 데에 능하다.

과연, 내무장관 정도 되니까 이 정도로 유능한 사내를 부릴 수 있는 모양이다.

“포트넘 앤 메이슨의 블렌딩 허브티混合靈藥茶를 준비했습니다.”

수레의 바퀴를 고정한 시종은 티팟의 내용물을 찻잔에 따라 탁자 위에 올렸다.

들이켜기만 해도 정신이 맑아지는 청명한 향기. 마공의 부작용이 고개를 수그리는 게 느껴졌다.

“동자삼Mandragora과 닐기리Nilgiri 홍차의 블렌드에 말린 영부황령과Amalfi Lemon 슬라이스를 얹었습니다.”

“과연. 훌륭하군요.”

영약과 홍차를 우린 차. 둥둥 떠 있는 과일 역시 영약이다.

맛도, 향기도, 품고 있는 기운도 상상 이상.

옆에 있던 왓슨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표정이 환해졌다.

“맘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방문객이 적어 찻잎이 남아도는 참이니 돌아갈 때 두어 통 들고 가게. 클라크.”

“차질 없이 준비해두겠습니다.”

시종은 가벼운 다과가 담긴 케이크 스탠드를 수레에서 내려놓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런 고급 블렌딩 티를 챙겨주다니. 역시 장관은 장관인 모양이다.

“매번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 앞으론 사건을 일으켜서라도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자주 찾아와야겠습니다.”

“농담이라도 내 앞에서 그런 소리는 꺼내지 말게. 업무가 더 늘어났다간 내가 총리 각하에게 생사결을 청할지도 모르니까.”

“정적이 소천하셔서 적적하실 텐데 좋은 활력소가 되겠군요.”

나는 장관의 입가가 처음으로 미세하게 실룩이는 걸 놓치지 않았다.

분명 본래 업무 외에도 이것저것 글래드스턴 총리가 부려먹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럼, 이번 사건이 장관님의 골칫거리가 된 이유를 들어보도록 할까요.”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을 열고 밖을 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창가로 걸어갔다.

걸쇠를 풀고 창문을 열자 봄의 끝자락을 도려내는 듯한 쌀쌀한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저건.”

고개를 내밀자 기괴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궁전의 동쪽, 웨스트민스터 교Westminster Bridge 위에 검은 정장과 드레스를 입은 남녀가 푯말을 들고 줄지어 서 있었다.

아까는 베이커가에서 오느라 웨스트민스터 궁의 서쪽 출입구를 통해 들어온 탓에 보지 못했는데, 족히 머릿수가 세 자리는 되어 보인다.

그들은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웨스트민스터 궁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푯말에 적어두었다는 듯 미동도 없이 팔을 꼿꼿하게 치켜든 모습에선 기괴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눈에 공력을 집중시켜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확인한 나는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었다.

“허.”

푯말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전화기는 천마Diablo의 발명이다.>

<의회는 전화 사용을 금지하라.>

* * *

“구미가 당기는군요. 바로 가보겠습니다.”

다리 위에서 시위 중인 자들을 보고 이번 사건의 파급력이 얼마나 클지 예상한 나는 장관이 건넨 사건 기록을 들고 마차에 탔다.

좌석에 앉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하커트 경의 시종이 챙겨준 백련주석百鍊朱錫 캔이었다.

블렌드 티가 든 캔의 뚜껑을 열자 절제된 향기가 마차 안을 가득 채웠다.

“배합된 영약의 비율이 찻잎보다 두 배는 많아. 당분간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모처럼 맞닥뜨린 흥미로운 사건에 뇌가 활성화된 탓인지 사자심법의 부작용이 여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만일 장관의 시종이 차를 내오지 않았다면 집무실에서 담배를 태우는 결례를 저질러야만 했었을 것이다.

“어쩐지, 아까 마셨을 때 심상치 않다 싶었네. 설마, 모든 방문자에게 이런 걸 챙겨주는 건 아니겠지?”

“이 정도 기념품은 꼬박꼬박 챙겨주겠지. 여왕 폐하의 정부는 부유하니까.”

-똑똑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마부가 마부석과 연결된 작달막한 창문을 두드렸다.

“어디로 모실까요.”

“벡슬리Bexley로 가주게.”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마차는 곧바로 동쪽으로 달려 궁전에 인접한 웨스트민스터 교Bridge를 건너기 시작했다.

템즈강을 건너는 동안 창밖을 보자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의회는 전화 사용을 금지하라.>

<멀리 있는 두 사람이 곁에 있는 것처럼 대화하는 건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주님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시도다.>

그을음이 낀 마차 창문 너머로 검은 옷을 입은 무리와 그들이 든 푯말이 보였다.

신흥 종교 집단의 구성원으로 보이는 그들은 다리 난간에 서서 조용히 템즈강 강변에 우뚝 선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전화기는 천마Diablo의 발명이다.>

“천마? 분명 어디서 들어봤는데…….”

옆에 앉은 왓슨은 푯말의 내용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자네의 별호가 소천마가 아니었나.”

“잘 기억하고 있군.”

“그렇다면 설마―”

이 정도 눈치는 있어서 다행이다.

“맞아. 천마는 사부의 별호였다네.”

“자네의 스승이 농인지부聾人之父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대협이었을 줄이야!”

“헛소리 말게. 대체 어쩌다 그런 오해를 하게 된 건가.”

“아니, 자네가 방금 사부의 별호가 천마라고 하지 않았나.”

왓슨은 당황한 듯 내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천마가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푯말에 적혀있길래 그게 벨 대협을 부르는 다른 별호인 줄 알았다네.”

나의 친구 왓슨은 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방향으로 상상력을 사용하는 데에 능숙했고 쌍둥이 여동생 역시 이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 어디서부터 정정하면 좋을까.

“자네는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다네. 첫째, 전화기를 발명한 건 알렉산더 벨이 아닐세.”

“그게 사실인가……?!”

갓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온 탓에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할 거란 사실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건 좀 의외였다.

“여왕 폐하께서도 그의 전화를 사용해 대영제국 최초로 장거리 통화에 성공했던 거로 기억하네만.”

“지금 자네가 보이는 반응이야말로 사기꾼들이 원하는 것이지.”

명망 있는 강자에게서 권위를 빌려오는 건 범죄자들의 상투적인 수법Old Trick이다.

알렉산더 벨은 남의 업적을 가로챘을 뿐, 남을 속이는 데에 재능이 있는 장사치에 불과하다.

“그럼 전화를 발명한 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자네의 사부?”

“몇 명인가 후보가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확실한 건 사부가 전화와 아무 상관도 없다는 사실이지.”

“그럼 저기 있는 자들은 어째서…….”

왓슨이 손을 뻗어 서서히 멀어지는 이단의 무리를 가리켰다.

천마라는 단어가 어째서 저들의 푯말에 쓰여 있는지 아예 짚이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들어본 적이 있어. 독자적인 경전을 보유하는 몇몇 신흥 종교 집단이 악마보단 천마라는 명칭을 즐겨 사용한다고.”

“과연. 그렇다면 자네의 스승께서 전화기와 상관이 없어도 납득이 가는군.”

가톨릭, 성공회, 개신교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신흥 종교 집단이 교회의 이름을 내걸고 민중을 호도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경전에 나오는 명사나 구절을 다른 종교의 것으로 바꿔치기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건 일상다반사Routine.

푯말에 적힌 천마란 단어는 십중팔구 불교Buddhism 경전에 나오는 악마 제육천마왕Mara Papiyas를 가리키는 것일 테고 사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문제는 이번 사건이 전화와 연관이 있다는 걸세.”

“연쇄 살인 사건에 전화기가 엮여있다는 뜻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는 전음을 사용하는 일 없이 멀리 떨어진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신문물이다.

다만 그 연간 사용료가 만만치 않아 널리 보급되어있진 않았다.

전화가 설치된 장소는 소수의 귀족이나 부유층의 저택, 혹은 기업이나 전문직 종사자의 사무실, 아니면 고위 공직자의 집무실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관한 소문이 퍼졌다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런던을 덮치게 될 거란 사실 정도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이걸 보게.”

나는 사건 기록의 첫 페이지를 펼쳐 왓슨에게 건넸다.

“이게…… 무슨…….”

네 줄로 요약된 사건의 개요를 확인한 왓슨의 입에서 아찔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 수 있는 건가?”

“그 물음에 답하는 게 우리의 일이 아니겠나.”

사건에 대한 기대감으로 달궈진 두뇌가 열기를 머금는 게 느껴졌다.

앞으로 한 시간은 족히 마차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것처럼.

* * *

저녁 6시 20분, 태양이 희미한 빛을 흩뿌리며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시간대.

마차는 런던의 동쪽 끝 벡슬리에 도착했다.

“일어나게, 왓슨.”

“으음. 벌써 도착했는가.”

쿠션이 편안했던 덕인지 왓슨은 한 시간 내내 잠들어있었다.

하도 무방비한 모습으로 잠들어있던지라 떠들고 싶은 걸 꾹 참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하지만 거의 다 왔네. 잠시 그대로 있게. 얼굴에 먼지가 묻었어.”

나는 손수건을 꺼내 멍한 얼굴로 나를 보는 왓슨의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주었다.

자신이 하커트 경의 전용 마차 좌석에 침을 흘렸다는 걸 알게 되면 온종일 불안에 떨 것 같아 굳이 진실을 알리진 않았다.

-달그락

주택가로 들어선 마차가 잘 관리된 저택 앞에서 멈추어 섰다.

예상은 했지만 현장에는 우리보다 먼저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관들이 도착해 있었다.

“흠.”

나는 평소와 뚜렷한 차이점을 하나 느꼈다.

“왓슨. 저번과는 조금 변한 것 같지 않은가.”

“뭘 말하는 건가.”

“저들의 태도 말이야.”

“아…….”

비로소 내 말뜻을 이해한 왓슨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그녀 역시 이해한 것이다.

경관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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