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36화 (36/110)

036. 무공 밀실 살인 사건 (4)

Serial Kung-Fu-Cide In Locked Room (4)

저커버그앤코의 만년판관필Fountain Judge Pen은 검보다 강합니다.

-제갈세가 가주 제갈막Markus Zuckerberg-

* * *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치된 경찰관 중 가장 먼저 우릴 반긴 건 그렉슨 경감이었다.

그와 휘하 순경들의 얼굴에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는 걸 보니 내가 야드가 아닌 내무장관의 의뢰를 받고 온 사실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용봉지회 살인 사건 이후로 나의 입지가 상승한 게 느껴졌다.

하커트 경이 마차를 빌려준 것도 야드의 경찰들에게서 원활하게 협조를 얻어내라는 배려일 터.

“레스트레이드는?”

“다른 현장에서 정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경감 여럿이 같이 다니다간 눈에 띄기 쉽다 보니.”

이번 일이 로이터Reuter나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먹잇감이 되어선 안 된다고 헨더슨 청장님께서 신신당부하셔서 말입니다.

그렉슨이 덧붙였다.

“확실히 헨더슨 경이 걱정할 만하군.”

같은 날에 레스트레이드와 그렉슨이 한 곳에 모여있는 건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뜻이고 어지간한 기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한 말은 딱히 이번 사건의 심각성에 관한 게 아니었다.

“기자들이 하커트 경의 마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도 자네들의 뒷모습은 구분할 수 있다지?”

그리고 야드의 경감들은 멀리서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특징적인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반박할 수가 없군요.”

그렉슨이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를 떨궜다.

위축된 표정 탓에 커다란 승모근이 평소보다 왜소해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법이지. 슬슬 살인이 일어난 방을 확인하고 싶네만.”

“알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그렉슨이 체념한 듯 쓰게 웃으며 우릴 저택 2층으로 안내했다.

“그러고 보니 야드의 경관들은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하군. 무언가 비결이라도 있는 걸까.”

정원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있었는데 왓슨이 물었다.

“애초에 그런 자들만 경찰이 될 수 있으니까.”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아무리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해도 그렉슨은 오감이 발달한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감이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그에게 뻔히 들릴 거리에서 저들의 비밀에 관해 떠들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내가 야드에 관해 이것저것 알고 있는 티를 냈다는 사실이 헨더슨 치안총감의 귀에 들어갔다간 또 귀찮게 불려 나갈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나.

‘근력과 지구력이 뛰어나고 단단한 몸을 만드는 것에 관해선 왕림王林의 무학이 제일이지.’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찰관은

왕실 사냥터Kingswood 숲지기들이 계승해온 무공을 익힌다.

비급의 이름은 역근경Bulk-Up&Cutting으로 이름이 나타내는 것과 같이 근육의 크기와 질, 그리고 형태를 바꾸는易筋 데에 특화되어 있었다.

외공의 극을 추구하는 역근경의 특징상 이를 수련한 경관들의 몸은 튼튼했고 회복이 빨랐다.

이 과정에서 근골이 눈에 띄게 변화하다 보니 잠복이나 잠입 등 범죄자의 눈을 피하거나 속이는 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기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물론 이로 인해 야드가 곤란해질 일은 딱히 없었다.

저들의 일은 범인을 끈질기게 추격해 무력화하는 것이지 잠행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다만 그 역시 나처럼 올바른 방식으로 머리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주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다.

즉, 스코틀랜드 야드는 조용히 움직이는 것도 어렵고 머리 쓰는 일에도 서투른 반쪽짜리 경찰 집단이라는 뜻이다.

“이쪽입니다.”

저택 2층, 그렉슨이 경관 둘이 지키고 있는 문 앞에서 멈춰섰다.

육중한 나무 문을 열자 융단이 깔린 아늑한 서재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봤던 내무장관의 검소한 집무실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호화로운 실내.

벽에 걸린 짐승의 가죽과 장식품은 남만Africa의 것이었고 도자기 역시 상등품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지구본과 그 옆에 쌓인 손때 탄 노트, 그리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모은 기념품이 이국적인 정취를 만들어내는 이 공간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이따금씩 여행의 추억을 되새기는 건 저택의 주인에게 있어 몹시나 즐거운 일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그 휴식을 방해할 법한 요소가 이 방에 존재한다면.

그건 아무래도 저기 융단 한가운데에 누운 시체와 핏자국이겠지.

“……이 자가 첫 번째 피해자인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왓슨이 나보다 먼저 사망한 남성에게 다가가 간단한 부검을 시작했다.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변한 자세. 탐정의 조수다운 얼굴이다.

“끔찍하군.”

다만 왓슨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전문가의 소견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법무학적 감정Kung-Fu Forensic을 진행하기엔 시체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시체는 머리가 없었다.

“하커트 경이 호들갑을 떨 만했군그래.”

피해자의 두부는 두개골과 뇌수 등의 구성요소로 잘게 나뉘어 부채꼴을 그리며 흩어져 있었다.

수분이 바싹 마른 게 고양이가 뱉어내고 오래 지난 토사물처럼 보였다.

“이건…….”

“무언가 짐작 가는 구석이라도 있나, 왓슨.”

“잠시 아프가니스탄에서 파슈툰인 저격검수Markswordsman의 제자일 검법에 당한 전우의 시체를 떠올렸을 뿐이야.”

“맞아. 제자일 검법이 머리에 직격하면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왓슨의 접근법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 눈에는 이 시체가 저격검수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이 방은 완전한 밀실이었어. 내 말이 맞나? 그렉슨.”

“예. 하인들과 함께 여행에서 돌아온 저택 주인이 침입자의 흔적을 확인해 신고했고, 제가 도착했을 땐 서재의 문과 창문은 모두 잠겨 있었습니다.”

그렉슨은 저택 사람들의 알리바이가 확인되었다고 덧붙였다.

살인이 일어났을 땐 저택엔 피해자와 범인 외엔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상하게도, 주인이 돌아오기 전 저택 근처에서 목격된 건 피해자 말곤 없었습니다. 저택 주인 역시 시체의 신원에 관해선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기이하군.”

그렉슨의 말을 들은 왓슨이 창문과 문에 다가가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둘 다 안에서만 열거나 잠글 수 있는 자물쇠인데. 범인이 이곳에서 사람을 죽였다면 대체 어떻게 밖으로 빠져나간 건가.”

“글쎄.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보네. 일단은 타살로 위장된 자살인지 확인해봐야겠어.”

나는 장갑을 끼고 시체의 손목을 쥐었다.

소량의 내공을 흘려보내 혈도를 탐색한 직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공을 익힌 적이 없는 몸이군.”

“자살이 아니라는 뜻인가.”

“바로 그걸세.”

무림인이 아닌 자가 도구 없이 자기 머리를 가격해 터뜨리는 건 불가능하다.

뇌수가 흩어진 방향과 범위를 근거로 추측하건대 피해자는 우측에서 공격당해 머리가 박살 났다.

“관건은 역시 전화기인가.”

사후경직으로 단단하게 굳은 시체의 손은 수화기를 쥐고 있었다.

피해자는 책상 앞에 서서 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다 죽은 게 틀림없다.

“사건 기록에 교환소 직원의 증언이 실려있더군. 전화를 건 건 피해자가 아니었다지?”

“예. 다른 누군가가 교환소에 이 저택으로 전화를 연결하도록 요청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피해자는 생판 모르는 사람의 집에 침입한 다음 전화를 받다 죽었다 이거군.”

이 시점에서 머릿속에 몇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하나는 더없이 황당한 가능성.

나머지 하나는 꽤나 현실적이었다.

“범인은 전화로 피해자를 유인한 다음 창밖에서 제자일 검법이나 지공으로 저격한 게 아닐까?”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왓슨이 입을 열었다.

“불가능합니다. 만일 그랬다면 창문에 구멍이 뚫려 있었겠죠.”

“그건…….”

그렉슨의 대답을 들은 왓슨은 잠시 신음을 발하며 고민하다 손뼉을 쳤다.

“허공섭물!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한 다음 허공섭물로 창문을 잠근 게 틀림없어!”

“그, 그런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왓슨이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자 듣고 있던 그렉슨도 덩달아 호들갑을 떨었다.

한편, 나는 차분하게 서재 문에 달린 자물쇠와 창문의 잠금장치를 살피고 있었다.

강철을 여러 겹 겹쳐서 꼬는 방식을 사용해 표면에 물결무늬를 만들어내는 패턴 웰디드 다마스쿠스 강.

금속으로 제작한 창틀과 창살의 표면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시.”

잠시 손을 대고 내공을 흘려보내자 왓슨의 추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허공섭물이라니. 생각도 못 했습니다. 과연 홈즈 씨의 조수. 대단하군요……!”

“별거 아닐세. 마침 하커트 경께서 허공섭물을 펼치는 걸 보았기에 떠올릴 수 있었다네―”

“불가능해.”

추리를 단칼에 부정당한 왓슨이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무엇이 불가능하다는 건가, 홈즈.”

“아쉽지만 허공섭물로는 이 자물쇠를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야.”

“허공섭물로 움직일 수 없는 자물쇠? 그런 게 정말로 존재한다고?”

“그건 소생이 설명해 드리도록 하죠.”

-또각또각

열린 문으로 처음 보는 안경을 쓰고 막대사탕을 문 미청년이 들어왔다.

“바로 저, 저커버그앤코Zuckerberg&Co의 잉글랜드 지사장―”

-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청객이 손에 든 접이식 백우선白羽扇을 접었다.

“제갈율리Ulrich Zuckerberg가 말입니다.”

울리히 저커버그諸葛率利.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접은 부채로 안경의 브릿지를 밀어 올렸다.

발언이 신경을 긁긴 하지만 저자가 제갈세가의 일원이라는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가 착용한 안경은 렌즈가 연훈파려Smoked Glass라 불리는 소재로 연기를 쬐어 가공한 색유리였다.

광택의 색깔로 미루어보아 그 비싸다는 묵향옥墨香玉을 증착시킨 게 틀림없다.

저런 걸 몸에 덕지덕지 바르고 다니는 건 귀족이나 무림세가의 직계 정도다.

다만, 아무리 무림세가의 일원이라 해도 사건 현장에 관계자도 아닌 자가 멋대로 들어오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그렉슨. 스코틀랜드 야드는 언제부터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는 자를 현장에 들이게 된 거지?”

경감이 대답하기 전에 울리히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내무장관의 인장이 찍힌 편지 봉투였다.

“하커트 경께서 직접 출입을 허가하셨습니다. 본 가문의 명예에 연관된 사건이라서 말이죠.”

장관이 허락했든 말든 이자의 존재가 귀찮다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적당히 필요한 정보만 듣고 돌려보내든가 해야지.

“저커버그앤코의 지사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굳이 살인 사건 현장을 찾아왔다는 건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이유를 말해주겠나.”

“하는 수 없군요. 다만, 그 전에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울리히는 다시 새초롬한 얼굴로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고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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