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무공 밀실 살인 사건 (5)
Serial Kung-Fu-Cide In Locked Room (5)
<중원Midfield의 여러 무림세가Kung-Fu Noblesse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지략을 지닌 무후의 후예 제갈세가.
언제나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 보던 그들은 청조의 치발령이 촉발한 무림대이동Kung-Fu Exodus이 새로운 기회임을 깨달았다.
청을 떠나 독일 모처의 산기슭에 정착한 제갈세가는 기관과 진법에 관한 지식을 보급하는 한편 다양한 도구를 발명하거나 개량해 기술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들의 이름이 결정적으로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사탕무.
1794년, 제갈세가 방계 태생 무학자 안드레아스 마그라프는 사탕무에서 설탕을 추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제갈세가는 자신들의 산에 대규모 설탕 제조 플랜트를 건설했고, 유럽인들은 영국의 설탕 교역 독점의 폐해에서 벗어나 비교적 싼 가격에 단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본가가 위치한 산은 주커베르크Zuckerberg라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설탕Zucker의 산Berg, 그리고 제갈Zhu-ge의 산Berg이라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는 이름이었다.
제갈세가의 독일식 성씨가 이를 따라 주커베르크나 저커버그라고 불리게 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후 설탕 판매를 통해 막대한 부를 이룬 제갈세가는 저커버그앤코Zuckerberg&Co를 설립, 유럽 각지에 지사와 매장을 개설하며 굴지의 유통 재벌로 거듭나게 되었다.
저커버그앤코의 간판 상품은 설삼과 하수오 등 다양한 맛이 나는 종합 영약맛 사탕Jelly Herb Bean과 반무공 보안 자물쇠Anti Kung-Fu Lock를 꼽을 수 있다.
위의 두 상품은 특별 할인 주간을 맞이해 저커버그앤코 5호점(18c, 앨버말 스트리트, 런던)에서 3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간 이브닝 스탠더드-
* * *
“일단, 하커트 경께서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평범한 사립 탐정을 기용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소생이 이곳을 찾은 목적을 말씀드리기 앞서 특별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자물쇠를 움직이지 않았다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그 정도는 굳이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지만 왓슨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차마 울리히의 말을 끊을 수 없었다.
“저희 저커버그앤코가 자랑하는 반무공 보안 자물쇠Anti Kung-Fu Lock는 평범한 자물쇠와 달리 2중 구조로 제작되어있습니다.”
울리히는 품에서 작고 예쁘장한 자물쇠 하나를 꺼낸 다음 설명을 시작했다.
“오오…….”
그걸 본 왓슨은 금붕어를 팔러 온 외판원의 이야기에 열중하는 아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 정도 설명, 나도 할 수 있는데.
“자물쇠 내부의 백련정강은 몹시나 단단해서 1갑자의 내공 정도로는 자물쇠를 변형시킬 수 없고 파괴하려 들면 기관장치가 굉음을 발해 범행이 탄로 납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게 설명인지 아니면 구매욕을 촉진하는 화술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무슨 원리인지 이미 알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그리고 자물쇠 표면을 덮은 것이 바로, 무려 대영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인증받은 전매특허가 적용된 다마스쿠스 강 커버입니다.”
“다마스쿠스 강 커버……?!”
“접쇠 기법으로 만든 물결무늬가 내공을 무작위 방향으로 흩어놓는, 오직 제갈세가만이 보유한 독문 가공 기술인 거죠!”
“과연! 그런 원리였나!!”
왓슨은 마침내 납득했다는 듯 크게 손뼉을 치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이 서재의 문과 창문에는 모두 방금 말씀드린 것과 같은 잠금장치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작은 물건을 허공섭물로 집을 수 있지는 않나? 허공섭물로 창문을 닫고 근처에 있던 책 같은 걸 들어 잠금 장치를 건드린다면…….”
“만일 그랬다면 창틀과 창살에도 같은 가공 기술이 적용되어 있으니 창문을 잠그는 순간 허공섭물이 가로막혔을 겁니다.”
“과연, 그렇다면 범인이 외부에서 피해자를 저격한 다음 흔적 없이 서재 문이나 창문을 닫는 건 무리적武理的으로 불가능했겠어.”
“바로 그걸세.”
나는 왓슨의 이해를 도울 겸 허공섭물로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을 뽑아 가져와 펼쳤다.
손을 대지 않고도 책장을 넘기자 왓슨과 울리히, 그리고 그렉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엔 같은 방식으로 이번엔 서재의 문과 창문에 손을 뻗어 내공으로 자물쇠를 움직이려 했지만 역시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방금 들은 대로 성능은 확실하네. 범인은 자물쇠를 건드리지 못했어. 아니, 건드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쪽이 옳으려나.”
“…….”
“…….”
“왜 그러나. 자네들. 못 볼 걸 본 것처럼.”
“아니, 그게…….”
왓슨은 한동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홈즈, 자네 언제 그런 재주를…….”
무슨 일인가 했더니 초절정 초입에 달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허공섭물이 내 손끝에서 펼쳐지는 걸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야. 장관님이 사용한 것과 다른 방식일 뿐, 같은 허공섭물일세.”
어디까지나 조금 더 효율적일 뿐이지.
사실 시도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에 왓슨을 치료하며 깨우친 진정한 백보신권의 묘리를 응용한 무공이라 매끄럽게 성공할 수 있었을 뿐, 실제로 내가 초절정의 경지에 달한 건 아니다.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유력한 결론은 하나일세. 범인은 밀실 안에서 피해자의 머리에 구멍을 낸 다음 사라진 거야. 마치 리버풀당가의 공장이 뿜어대는 독무Smog처럼 말일세.”
기감을 펼쳐봤지만 비밀통로의 존재는 어디에도 감지되지 않는다.
범인은 대체 피해자를 죽인 다음 어떻게 빠져나간 걸까.
“실로 기묘한 사건이 아닌가. 유쾌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야.”
사건을 수사하며 이 정도로 즐거워지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웃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탐정. 이번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저커버그앤코의 명예가―”
“나를 평범한 탐정과 동일선상에 두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네만.”
내가 한 번 더 말을 끊자 울리히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게 무슨 경우 없는 소립니까, 경찰 아니면 탐정이 뻔한데 평범하니 마니.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경우가 없는 건 그쪽이야. 자기 이름을 밝힌 다음엔 상대의 이름 역시 들어야 하는 것이 강호의 도리Etiquette가 아닌가.”
“그건……!”
“소개가 늦었군. 런던의 유일한 자문 탐정인 셜록 홈즈일세. 소천마라는 과분한 별호를 받아 사용하고 있지. 이쪽은 조수인 존 왓슨이고.”
“소천마? 설마 용봉지회에서 드레이크 가문의 차남을 추포했다는 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대협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군요.”
울리히가 한층 겸손하게 변한 태도로 포권을 취했다.
이럴 땐 신문에 이름이 실린 게 고마워질 따름이다.
굳이 길게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기가 이를 데 없다.
여왕 폐하께서 직접 나를 버킹엄 무도회에 초대하셨다는 부분까지 기사에 적혀있으니 제아무리 콧대 높은 제갈세가라 해도 날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거겠지.
“예의 차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중요한 건 따로 있을 텐데.”
듣고 있던 왓슨과 울리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말대로 이번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사실과는 상관없이 저커버그앤코의 자물쇠를 더는 믿지 못할 텐데.”
“…….”
“간판 상품의 실추는 기업의 인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테지. 그렇다고 기자에게 돈을 먹여 자물쇠에 문제가 없었다는 보도를 내자니 전화가 엮인 탓에 내무장관과 버킹엄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내 말이 틀렸나?”
“그건…….”
어째서 제갈세가의 일공자씩이나 되는 자가 하커트 경의 바짓가랑이를 잡아서라도 사건 현장에 출입하려 한 건지 대충 이해가 갔다.
현장을 확인해 자물쇠에 문제가 있으면 경찰을 회유해 사건을 은폐하고, 문제가 없다면 범인이 자물쇠를 망가뜨리지 못했다고 여론전을 펼칠 생각이었으리라.
문제는, 상대가 나빴다는 거였지만.
“여차하면 하커트 경이 보도 자료에서 전화기 이야기는 빼놓고 자물쇠를 탓하는 내용만 잔뜩 적어놓도록 지시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거로군.”
사건 기록에는 고작 두 시간 사이에 벌어진 네 건의 살인에 모두 전화기가 연관되어있다고 적혀있었다.
네 명의 피해자는 다 여기 쓰러진 시체처럼 전화를 받던 도중 공격당해 숨졌다는데, 만일 이 이야기가 보도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쉽게 상상이 갔다.
분명 아까 본 신흥 종교 집단으로 보이는 이들의 푯말에 적힌 <전화기는 천마의 발명이다> 같은 헛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겠지.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런던에 크나큰 혼란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대영제국 최초의 장거리 통화를 시도한 당사자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 폐하이시고 런던에 전화가 보급될 수 있던 것도 전부 폐하의 덕이었으니까.
“하커트 경이 그런 야비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분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번 일은 왕실의 명예에 관한 일이니까. 어찌 흘러갈지 쉽게 단언할 수 없겠군그래.”
“큭…….”
내 예상이 정확히 걱정하는 바와 부합했는지 울리히가 반듯한 미간을 찌푸렸다.
제갈세가의 식솔들은 기본적으로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알려져 있다.
일이 꼬였을 때 여왕 폐하의 정부가 누굴 희생양으로 삼을지는 진즉에 예상했을 터.
“대협의 말대로입니다. 이번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저커버그앤코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되겠죠.”
울리히가 체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지금부터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지 알아챘다.
예로부터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이들이 탐정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은 언제나 한 가지밖에 없는 까닭이다.
“가능하면 소생이 직접 처리하고 싶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은 뾰족한 수가 없군요.”
울리히는 품에서 반듯하게 편 수표를 한 장 꺼내 내게 건넸다.
“수사 자문 셜록 홈즈 씨에게 정식으로 의뢰를 드리고 싶습니다.”
“의뢰 내용은?”
“어떤 외압이 있더라도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 저커버그앤코의 명예를 지켜주십사 합니다.”
재수는 없지만 쓸데없는 부탁을 하지 않고 사건 해결과 진상 규명만을 바라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마음가짐은 올바른 사내.
이 정도면 급제점Passing Grade이다.
“반드시 해결해 보이도록 하지.”
나는 울리히가 내민 수표를 액수도 확인하지 않고 낚아챈 다음 곧바로 왓슨과 마주 보았다.
동시에, 나는 사건 기록에 적혀있던 또 다른 정보를 떠올렸다.
이 밀실 살인 사건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살인이 한 번이 아닌 짧은 시간 동안 네 번씩이나 각각 다른 장소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당연히 나머지 세 곳 역시 살펴보고 증거와 단초를 모아야만 한다.
이쯤 되면 정말로 동일범의 소행이 맞는지부터 고민해야 할 것 같지만, 딱히 공범이 늘어난다 해도 이런 불가능한 살인이 가능해지는 건 아니니까.
“진실을 완벽하게 밝혀내기 위해선 한동안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겠군. 앞장서게, 왓슨. 마차를 타러 가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