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밤은 짧고 현장은 멀다 (2)
Night Is Short, Way Is Long (2)
나는 무엇인가? 거대한 파자 풀이Puzzle다.
-루이즈 A. 캐럴Louise A. Carrol(치안 판사의 허가로 개명 완료)-
* * *
“왓슨, 자네는 필적으로 인간의 됨됨이를 판별하는 연구에 관해 알고 있나?”
“풍문으로 들어본 적은 있네.”
“기본적인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아.”
“무엇이 말인가.”
나는 대답 대신 장갑 낀 손으로 두피가 그대로 붙어있는 뼛조각을 하나씩 집어 본래 형태대로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해부학이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공부했고 이쪽 세상의 나는 회귀 전보다 뛰어난 공간 지각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강호는 하나의 거대한 연판장Signature Collection이고, 초식을 펼치는 건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과도 같다네.”
테이블 위에서 피해자의 머리가 직소 퍼즐처럼 한 조각씩 짜 맞춰진다.
머리 전체를 복원할 필요는 없다.
피해자가 수화기를 들고 있던 방향인 우측 측두부만 만들어도 원하는 단초를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흔들린 글자를 보면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고 비대한 대문자에선 자만심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초식 역시 출수와 흔적을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법이지.”
성명절기Signature Move라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초식이 서명Signature이라면 거기엔 반드시 무림인의 필체가 묻어 나온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더라도 쌓아 올린 무武에선 그가 쌓은 힘과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다.
의도적으로 자신이 익힌 무공과 지닌 내공을 감추려 해도 전문적인 훈련을 쌓지 않는 이상은 한계가 있다.
당장 반박귀진을 이룬 화경의 고수인 빅토리아 폐하조차 후기지수인 척 연기하다 내게 들통이 나지 않았던가.
그리고, 내가 이번에 읽어낸 초식의 주인은 상당히 패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피해자가 어떤 초식에 당했는지 알 수 있다면 범인의 윤곽은 자연스레 드러나는 법.”
-달칵
뼛조각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을 때마다 그 위에 붙어있는 거무죽죽해진 피부가 비뚤비뚤한 국경선이 그려진 유럽의 지도처럼 이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시체안치소의 관리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그에게 적절한 대가를 치르면, 그는 내가 안치소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 용납해주는 이상적이고 사업적인 관계였다.
덕분에 나는 시체에 무공 초식이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연구할 수 있었고, 다양한 시체를 대상으로 초식이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실험해본 내가 이런 소중한 단초를 놓칠 리가 없다.
“숨을 끊는 데에 그치지 않고 머리를 잘게 부순 손속의 잔인함으로 미루어보아 범인의 성격은 패도적이며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다는 걸 알 수 있어.”
뇌수와 두개골이 확산된 범위의 면적과 형태가 두 현장 모두 거진 차이가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범인은 기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하나의 초식만을 반복적으로 수련한 자.
즉, 놈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유형.
정한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수행해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는 냉혈한Stone Cold Man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범인이 사용한 건 자네가 걱정했던 것처럼 탄지공은 아니야.”
범행에 사용된 흉초凶招는 탄지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엔필드 무관의 무공을 비롯해 모든 탄지공은 높은 관통력과 정확도를 지니고 있다.
탄지공 중에서도 패도적인 위력을 지닌 거로 알려진 산탄지조차 방 안에서 사용했다면 머리를 꿰뚫고 날아간 지공이 벽에 자국을 새겼을 터.
반면, 범인의 초식은 피해자의 머리를 산산조각 내고 실내에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는 사용된 초식이 대인저지력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제자일 검법은 더더욱 아니지.”
제자일 검법은 발경Impact의 순간 발생하는 격렬한 반동을 보법으로 견디지 못하면 검기를 정확하게 전방으로 쏘아낼 수 없다.
이 때문에 점창파의 저격검수는 특수한 신발을 즐겨 신었고 출수 시에 딛고 있던 바닥이 비스듬한 각도로 움푹 패기 일쑤여서 강호인들은 이를 두고 제자일 마크Jezail Mark라고 불렀다.
하지만 여태껏 조사한 현장에선 제자일 마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사용된 초식은 지공이나 검법과는 거리가 멀어.”
지척에서 날아온 공격에 일류의 경지에 달한 두 번째 피해자가 반응하지 못했던 걸 고려하면 가능성은 두 가지.
“범인은 무기를 휴대하지 않았거나, 상식적으로 무기라고 여겨지지 않는 암기를 사용했을 걸세.”
나는 계속해서 피해자의 우측 측두부를 조립했다.
관자놀이와 귓바퀴, 그리고 뺨과 아래턱까지.
흩어진 뼛조각 중 멀쩡하게 살점이 붙은 것을 찾아 조립하길 어언 일다경Tea Time.
살과 뼈로 이루어진 퍼즐은 마침내 손바닥 한 뼘 크기까지 완성되었다.
“이건―”
“자네의 눈에 이것은 무엇으로 보이는가, 왓슨.”
“……보조개치고는 조금 크군.”
이어 붙인 시체의 측두부에는 그의 목숨을 앗아간 초식의 흔적이 음각된 것처럼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말단비대증의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범인의 신장은 6.25 피트의 거구. 근육이 발달한 오른손잡이로 추측되네.”
거대한 주먹이 남긴, 깊게 팬 자국.
그것이 우리가 시체의 오른뺨에서 발견한 초식의 흔적이었다.
“엄청난 거한이로군…….”
왓슨은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의 체구를 상상한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무공을 익히기 적합한 육체를 지닌 건 물론 상당한 공부功夫를 쌓은 자겠지. 살인에 사용한 초식 하나만큼은 대성했을 걸세.”
측두부와 귀, 그리고 볼까지 뒤덮은 거무죽죽한 멍을 보니 피해자의 머리를 강타한 것이 얼마나 강렬한 일권Haymaker이었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두개골이 박살 났는데도 부러지는 일 없이 멀쩡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목과 거기 걸린 십자가 목걸이만 보아도 살수의 발경이 얼마나 깔끔했는지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독실한 성공회 신자여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마태복음경Matthew Sutra의 가르침을 지키는 건 어려웠던 모양이군.”
피해자에게 오른뺨을 때린 범인에게 왼뺨을 내어줄 여유 따윈 없었을 거다.
경전의 구절을 떠올리거나 살수의 존재를 눈치채 고개를 돌리기 전에 이미 뇌가 박살이 났을 테니.
“뭔가 알아내신 거라도 있는 겁니까.”
순찰을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와 우릴 지켜보던 야드의 경감이 시체의 옆얼굴이 복원된 걸 보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범인의 신체적 특징에 관한 단초를 확인했다네. 전서구를 보내 다른 현장에도 연락해 부서진 머리의 조각을 수집해두게.”
“알겠습니다, 대협.”
예전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매끄럽게 협조를 받을 수 없었을 텐데. 역시 내무장관의 후광이 좋긴 하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에 왕립무학회 정회원의 신분까지 더해진다면 더욱 수월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지.
“일단은 내일 야드에서 마저 머리통을 조립해보도록 하지.”
나는 왓슨과 함께 현장을 나섰다.
머릿속에선 검증을 기다리는 가설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 * *
하숙집으로 돌아간 우리는 쪽잠을 자고 일어났다.
허드슨 부인이 차려준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음 짧게 운기조식을 마친 즈음 레스트레이드가 찾아왔다.
“증거물은?”
“전부 모아두었습니다.”
“훌륭하군.”
우린 곧바로 마차를 타고 출발했다.
베이커가에서 남동쪽으로 메릴본을 빠져나가 세인트 제임스 방향으로 질주한 마차는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목적지 근처까지 도달했다.
트라팔가 광장 앞을 지나던 와중 마차의 유리창 너머로 말을 탄 헨리 1세 동상이 보였다.
평소엔 뒤에 있는 넬슨 제독의 석상이 훨씬 눈에 띄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처형장에서 도끼에 머리가 잘린 왕과 머리를 잃은 피해자의 시체가 겹쳐 보인 까닭이었다.
“도착했습니다.”
화이트홀 방향으로 빠져나간 마차는 금방 스코틀랜드 야드 앞에서 멈췄다.
우리는 붉은 벽돌과 포틀랜드산 석회암으로 지은 커다란 건물 앞에서 내렸다.
바로 앞에 보이는 건 스코틀랜드 야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녹색 정문.
내가 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이 대문 역시 수많은 범죄자와 증인, 그리고 질서의 수호자를 지켜봤을 것이다.
“묘하게 숙연해 보이는군, 홈즈. 스코틀랜드 야드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맡은 일을 똑바로 처리하지 못하는 무능한 경찰Peeler을 가벼이 여길지라도 여왕 폐하의 경찰이 지닌 권위를 무시한 적은 없다네.”
앞서가던 레스트레이드가 고개를 돌리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방금 레스트레이드가 눈으로 날 욕한 것 같네만.”
“기분 탓이겠지. 그나저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사가 악한 마음을 품기 시작하면 최고의 범죄자가 되는 것도 어렵지 않은 법이지. 의사는 대담하고 지식 또한 풍부하니까.”
“부탁이니까 그런 끔찍한 소리는 그만두게.”
“안심하게. 자네 얘길 한 건 아니었으니까.”
잡담을 나누며 진입한 경찰청 청사 안에선 경관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런던무림을 어지럽히는 범죄자에 비해 경찰의 머릿수가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쉴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특히나 이번 밀실 연쇄 살인은 다수의 경관이 동원되어야 하니 평소보다 업무가 배는 고단하리라.
“증거는 부검실에서 보관 중입니다.”
눈 밑에 진한 다크서클을 드리운 우람한 경관들에게 작은 연민의 정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나와 왓슨은 레스트레이드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복도 끝에 위치한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있으나 마나 한 부검의 한 명과 네 곳의 살인 현장을 맡아 조사를 진행하던 경감들이 네 구의 시신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셜록 홈즈일세.”
안으로 들어가 간결하게 자기소개를 마치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외부인이 야드 청사 안에서 멋대로 구는 게 영 아니꼬운 모양이었다.
“원래 이런 친구니까 양해해주게.”
왓슨이 점잖게 웃으며 경감들을 달랬다.
뭐, 나는 내 일만 잘하면 된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새벽에 조립한 시체의 머리는…… 잘 보관해 두었군.”
작업대에는 간밤에 끼워 맞췄던 두 번째 피해자의 측두부가 놓여 있었다.
그 곁에는 나머지 세 곳의 현장에서 찾아온 으깨진 머리의 파편이 제각기 거리를 두고 뭉쳐 있었다.
“유독 이런 방식으로 죽은 시체는 몇 번을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잃은 전우들이 떠오른다면 무리하지 않아도 되네.”
왓슨에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 같아 괜히 미안해질 따름이었지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달리 방법이 없다.
나는 간밤에 했던 것처럼 조각난 뼈와 살을 이어 붙이기 시작했고.
“내가 도와도 괜찮겠나, 홈즈.”
“……얼마든지.”
은퇴한 군의관이 손을 거들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터에서 망가진 무언가를 고치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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