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밤은 짧고 현장은 멀다 (4)
Night Is Short, Way Is Long (4)
천둥과 검명은 그럴싸하고 인상적이지만 적을 베는 건 뇌정지기가 담긴 칼끝이다.
-마크 트웨인-
* * *
“청익복 헨리 포셋 장관대인을 뵙습니다.”
청익복靑翼蝠의 별호는 집배권사들과 같은 색으로 맞춘 그의 복장과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유래된 호칭인 듯했다.
추가로, 나는 그가 별호에도 반영될 정도로 푸른색의 옷을 즐겨 입는 이유를 추리해냈다.
“포셋 경께선 체신장관의 업무에 더해 직접 우편물 집배 업무도 맡고 계신 모양이군요.”
“오. 마침 버킹엄百禁城에서 집배한 편지를 직접 송달하고 온 참이었다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가.”
“간단합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조금 전 계단을 오를 때 장관님의 구두를 확인했습니다. 구두코와 뒷굽에 묻은 진흙의 색깔이 다양하더군요. 각각 위그모어 가와 나인 엘름스 부두, 그리고 런던탑과 화이트채플白敎會 근방에서 볼 수 있는 색의 진흙이었습니다.”
“…….”
포셋 경은 잠시 얼굴을 굳혔다가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정말이지 인상적인 관찰력이야. 빈말이 아닐세. 나는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거든. 자네들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지는군.”
“소개가 늦었군요. 수사 자문가로 활동 중인 셜록 홈즈입니다. 스승에게서 소천마라는 과분한 외호를 받았습니다.”
“소천마인가. 어딘가 정겨운 별호Call Sign로군. 그럼 그쪽 친구는?”
“존 왓슨이 강호의 선배이자 체신장관을 맡은 포셋 각하를 뵙습니다. 친구에게는 군필여……군필의생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왓슨이 별호를 소개할 때 말을 조금 더듬긴 했지만 우린 깍듯하게 포권례를 취해 마땅히 내각 각료에게 보여야 할 예우를 갖췄다.
굳이 군필의생을 자칭한 걸 보니 용봉지회 당시 내가 지어준 별호인 군필의희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 좋지 못한 일로 만나게 되었지만 반갑네. 하커트 경의 지시로 살인 사건을 조사중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나는 본론을 꺼내기 전에 사건 기록부터 내밀었다.
포셋 경은 옷소매가 스치는 소리를 듣고 내 움직임을 파악한 듯 기록이 든 봉투를 받아 겉면을 손끝으로 훑었다.
“내무장관의 인장이 틀림없군.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는가.”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체신장관의 큼지막한 손을 본 이후로 이 자에 대한 의심을 거둔 적은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포셋 경의 반응을 살필 필요가 있었다.
“이번 사건을 두고 하커트 경께서는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계십니다. 워낙에 기이한 살인 사건인지라…….”
나는 몇 가지 구체적인 정보를 꺼내지 않는 선에서 이번 밀실 연쇄 살인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빠르고 자연스러운 어조를 유지했으며, 살인이 일어난 구역의 이름이나 사건 현장에 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다르게 말하거나 감추었다.
포셋 경이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밝히지 않은 올바른 정보를 입에 담는다면 그는 분명 살해에 관여했을 것이다.
만일 유도신문에 걸리지 않아도 내 입에서 나온 잘못된 정보를 듣고 반응을 보인다면 즉각 알아챌 수 있을 터.
“그렇군……. 끔찍한 일이 벌어졌군…….”
말을 주고받는 내내 전 신경을 곤두세워 포셋 경을 관찰했지만 그에게선 어떠한 거짓의 징후도 포착할 수 없었다.
호흡, 안색, 발한, 미세한 안면 근육의 움직임은 모두 정상.
그 외에도 거짓을 말하거나 진실을 감추는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입을 가리거나 입술 가까이에 손을 두는 등의 동작 역시 확인할 수 없었다.
물론 이런 건 보조적인 확인 수단이고 능숙한 범죄자는 자기 육체마저 속일 수 있는 자들이니 포셋 경이 범인이 아니라고 단정하긴 이르다만.
“……원시천부Oh My God.”
내가 여전히 포셋 경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동안 그는 세 손가락으로 성호를 긋는 중이었다.
산티아고에 위치한 곤륜대성당은 수도가修道家 문파에 속한다.
끔찍한 사건의 소식을 듣고 절로 삼청Trinity의 이름을 외는 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살수와 죽은 이들 사이에 어떤 은원 관계가 있는진 알 순 없지만 이 사건에 관한 소식이 돌았다간 민심이 뒤숭숭해질 건 확실하겠어.”
“크롬웰 경 시절도 아니고 하룻밤 사이 목 없는 시체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조간 1면에 실리면 런던 시민들은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겠죠.”
“그 정도 이유로 하커트 경이 야드 밖의 사람을 불러 해결을 맡겼을 것 같진 않은데. 무엇보다 자네가 우체국에 찾아올 이유가 없겠지.”
“정확히 보셨습니다.”
“……설마 우체국과 관련이 있는 건가.”
이 부분에서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건 장거리 경공 세계 기록 보유자이신 포셋 경께 질문을 마친 다음 말씀드리겠습니다. 체신장관의 직위로 내각을 지탱하고 계신 포셋 경께 드릴 말씀은 따로 준비해둔지라.”
“사건을 조사하는 데에 필요한 질문인가?”
“예.”
“무인 대 무인으로 묻겠다, 이 말이군.”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렇습니다.”
“알겠네.”
내가 답하자 포셋 경은 한층 편안해진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청익복 헨리 포셋, 부족하나마 소천마 셜록 홈즈의 질문에 성심과 성의를 다해 답하도록 하지.”
체신장관은 그렇게 말하며 목에 걸고 있던 금줄을 풀었다.
“그건―”
포셋 경이 줄을 당겨 셔츠 안쪽에서 꺼낸 목걸이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커다란 조개껍데기에 유리 덮개를 씌워 가공한 목걸이.
안에는 말라비틀어진 누군가의 새끼손가락 끝마디뼈가 들어 있었다.
“성 야고보의 조개…….”
“오. 알고 있었나.”
“풍문으로 들어는 봤습니다.”
성 야고보의 조개, 또 다른 이름은 아각패雅各貝.
상아와 뿔로 만든 신분증인 아각패牙角牌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저건 곤륜의 순례자,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에게만 소지가 허락된 귀물貴物이었다.
“그럼 내가 이걸 꺼냈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알겠군.”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개는 12세기부터 세례와 순례의 상징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렇기에, 곤륜의 무공을 전수받은 순례자Pilgrim는 누구든 커다란 조개를 하나씩 몸에 지니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우편물을 분류하거나 분주히 뛰어다니는 사무권사와 집배권사들도 하나씩 조개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고.
하지만 그들이 지닌 것과 방금 포셋 경이 꺼낸 게 같은 조개인지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었다.
순례자의 신분을 증명하는 조개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어 어느 순례길을 선택했는지, 그 길에서 얼마나 멀리 걸었는지를 알려준다.
곤륜의 순례자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자리 잡은 각 마을의 사범들이 내린 시련을 통과해 상승무공을 익혔고, 그 성취가 높을수록 조개에 새겨지는 자국이 늘어난다.
‘아각패雅各貝는 유독 격이 다르지.’
세 갈래의 순례길을 정복해 산티아고 곤륜파의 총본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세 번 다다른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호칭, 도달자道達者.
곤륜의 수많은 순례자 중에서도 오직 도달자Alcanzador에게만, 성당에 보관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성 야고보雅各의 유해 조각을 담은 조개貝 목걸이가 주어진다.
그리고 이걸 꺼냈다는 건―
“곤륜대성당의 명예를 걸고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맹세하시는 거군요.”
유럽 전역을 통틀어 가장 빠르다 일컬음을 받는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대한 사안인데 괜히 나를 의심하느라 자네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싶지 않네. 만일 내 말이 거짓이라면 우리 주와 곤륜의 동도들이 나의 모든 것을 거둬간다 할지라도 한 줌의 억울함도 없을 걸세.”
“대인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각패를 꺼낸 시점에서 이 자가 범인일 가능성은 사라졌다.
아직 내가 무엇을 물을지 알지도 못하는데 맹세를 마쳤을 정도다.
만일 나와 왓슨이 포셋 경의 말이 거짓임을 밝혀낸다면 곤륜은 정말로 사람을 보내 그의 사지를 자르고 단전을 폐할 것이다.
단언컨대 이번 사건의 범인은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된 상황이 아닌데도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정도로 아둔한 놈이 아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나는 신중히 단어를 고르기 시작했다.
장거리 경공에 한해 화경을 이룬 내 스승이나 금상폐하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진 헨리 포셋 경.
그가 얼마나 대단한 기록을 세웠는지는 공공 기록 사무소에 자세히 적혀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강호제일경공대가Ultimate Speedster인 그라면 우리가 직면한 물음에 확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포셋 경께서는 100마일을 15분 이내로 주파할 수 있으신지요.”
체신장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후학은 대체 날 뭘로 보는 건가.”
“가능하다는 뜻입니까?”
내가 묻자 포센 경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리가. 무슨 수를 써도 무리라네. 15분에 100마일이라니, 그건 전성기의 나에게도 불가능한 기록이야.”
사실 예상하고 있던 답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인간이 음속의 절반이나 되는 속도로 100마일을 계속해서 달릴 수는 없는 법이니.
게다가 쉬지 않고 달리면서 벽 너머에 있는 네 명의 인간에게 정확히 초식을 명중시켜야 한다면 난이도는 훨씬 오른다.
“참고로 말해두지만, 내가 할 수 없다는 건 다른 강호인들에게도 불가능하다는 뜻일세. 이건 내가 오만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네.”
“……명심하겠습니다.”
“궁금한 게 해결된 것 같아 다행이야. 그래서, 이 사건이 우체국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겠나.”
포셋 경의 물음에 나는 머릿속으로 며칠 전에 읽은 신문 기사를 떠올렸다.
조간 3면에 실려있던 어떤 소송에 관한 기사는 내게 뜻밖의 단초를 주었다.
유럽 무림의 경공 최고수가 중앙우체국에 있다는 걸 알고 겸사겸사 확인해보려던 참이었으니 마침 잘 됐다. 이쪽도 알아보는 게 좋겠어.
“실은 이번 연쇄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중 한 가지 기이한 점을 발견해서 말입니다.”
“무엇인가.”
“범인에게 죽은 피해자는 모두 전화를 받던 와중에 숨졌습니다.”
“전화?”
“그렇습니다. 하필이면 살인에 엮인 탓에 정보가 퍼졌다간 여럿이 곤란해질 예정입니다. 이를테면 금상폐하라든지.”
나는 잊지 않고 버킹엄 궁전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공수례를 취하고 말을 이었다.
“혹은 전화 회사 관계자. 그것도 아니면―”
“……우체국도 예외는 아니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우체국은 전화 회사와 이권을 두고 소송을 벌이는 중이었으니까.
“어서 범인을 잡아 들이지 않으면 내게도 불똥이 튀겠군.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말해주게. 내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고 약조하겠네.”
“감사합니다. 다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사망자의 신원이 밝혀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겠죠. 이곳에 오기 전에 제가 부서진 머리통을 복원했으니 아마 야드의 경찰들이 곧―”
-쾅!
“피해자들의 신원을 알아냈습니다!”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레스트레이드가 집무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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