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유령권마 (1)
Phantom Fist (1)
진실된 사랑은 귀면살수Ghost Face Killer와 같아서 모두가 그것에 관해 말하지만 실제로 본 자는 없다.
-라 로슈푸코-
* * *
체신장관의 얼굴에선 어느샌가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거만한 놈이로군.”
“예……?”
“내 노파심에 충고 하나 하지.”
포셋 경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노여움을 발하려는 듯한 분위기.
그러나 다행히도 기감이 포착한 한 가지 신호가 포셋 경의 진의를 알려주었다.
“자네들은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게Keep Your Head Down―”
“좋습니다.”
나는 포셋 경이 문장을 맺기도 전에 나는 왓슨의 뒤통수를 붙잡고 아래로 짓눌렀다.
장관이 말한 대로 ‘머리를 숙인Kept My Head Down’ 것이다.
“홈즈……?!”
“가만히 있게.”
다음 순간,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과 함께 마차가 박살 났다.
-콰앙!
차체를 뚫고 나타난 것은 흐릿한 수영手影.
커다란 권풍이 사납게 웃는 포셋 경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권풍이 뒤통수에 직격하려던 찰나, 장관이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뒤돌아섰다.
-키이잉!!
날아오던 권풍은 장관의 손날과 충돌.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은 파공성을 발하며 사방으로 조각나 흩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홈즈…….”
“뭐긴, 범인이 백주대낮Lovely Afternoon부터 내각 각료 암살을 시도한 거지.”
마차가 부서지기 전부터 포셋 경의 손에는 강렬한 뇌정지기Brain Stopper가 깃들어 있었다.
우리에게 머리를 숙이라고 경고한 건 그가 가공할 만한 청력으로 미리 기습을 눈치챈 까닭이었다.
“갈Bloody Hell!”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포셋 경은 부서진 마차의 잔해를 넘어 권풍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돌진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일찍, 내가 장관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뭣 하는 짓인가!”
“잠시 실례―”
나는 포셋 경의 물음에 자세히 답하는 대신 천마장의 칼날을 5인치가량 뽑아 전방으로 내밀었다.
-팅!
권풍이 마차를 부수며 일으킨 자욱한 먼지를 뚫고 날아오던 암기가 검신에 부딪혀 힘을 잃었다.
“……허.”
포셋 경이 장갑 낀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암기를 주웠다.
그 정체는 내력을 담아 던진 장침이었다.
“괜찮으십니까?!”
근처에 있던 경관들이 달려와 호법을 섰다.
“호들갑 떨지 말게. 뭘 이 정도 갖고.”
체신장관은 경찰관들이 미덥지 않은지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대담무쌍한 놈이로군요How Dare.”
나는 계속해서 기감을 끌어올려 사주를 경계했다.
맹인인 포셋 경은 눈치채지 못했으나 장침의 표면엔 빛의 반사를 억제하는 검은 안료가 도포되어 있었다.
혹시 모를 호법의 존재를 고려한 대비책.
독을 바르지 않은 건 장관이 냄새를 맡고 암기가 날아오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일 터.
만일 내가 제때 막아내지 않았다면 포셋 경은 시간차 공격에 적중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도망치게 둘 순 없지.”
-따악!
포셋 경이 손가락을 튕기자 푸른 진기가 깃든 반투명한 음파가 부채꼴을 그리며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가 순식간에 돌아왔다.
극성까지 펼친 반향정위대법으로 순식간에 탐색을 마친 것이다.
“비겁한 놈. 그새를 못 참고 떠났나.”
장력을 발해 흙먼지를 치우고 범인이 출수한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기감을 펼쳐 경계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곤 해도 살기를 느낄 수 없는 거리에서 암습을 가하다니.
적은 상당한 실력을 지닌 고수가 틀림없었다.
“의도치 않게 신세를 지고 말았군.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될 정도야.”
“뭘 이 정도 갖고. 장관 대인께선 이미 마차를 태워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옷에 묻은 톱밥을 털어내고 왓슨이 일어날 수 있도록 부축했다.
“꽤나 미친 짓을 벌이는 자로군.”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아닌 포셋 경을 노린 걸 보니 마차를 보고 따라온 거겠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아까만 해도 멀쩡했던 마차는 체신장관의 소유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려는 것처럼 표면이 전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마차를 발견하고 멀리서부터 우릴 미행하던 범인은 스코틀랜드 야드 앞에서 마차가 멈춘 것을 확인한 다음 권풍과 암기로 암습을 시도했으리라.
“자네가 범인이 날 노릴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설마 스코틀랜드 야드 앞에서 일을 벌일 정도로 대담한 놈일 줄은 몰랐네.”
“그뿐일까요. 놈은 장관님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포셋 경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이 날린 권풍은 굉음으로 그의 청각을 마비시키고 부서진 마차의 파편에 소리가 난반사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장관이 자신을 잡으러 달려오는 것을 내다본 놈이 곧바로 던진 바늘이야말로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 준비한 암기였다.
바늘은 표면적은 작아 공기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날아간다.
즉, 반향정위대법Kung-Fu Echolocation을 봉인 당한 상황에선 포셋 경이 부서진 마차의 파편 사이를 가르고 날아오는 암기를 눈치채기 어렵다는 뜻이다.
“골치 아픈 상대를 만났군요. 대낮에 유령이라도 본 기분입니다.”
놈이 암기를 던지는 솜씨가 썩 좋지 않았던 덕에 제때 쳐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범인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은 고강한 무공을 지녔고, 머리가 굴러가는 데에다 간까지 크다.
그렇다면, 적을 상대하는 방법 역시 바꿔야겠지.
“장관 대인. 제가 아까 했던 말은 취소입니다.”
“음?”
“소송과 연관된 자들을 한곳에 모아 경호하는 것 말입니다.”
“나야 상관없네만, 다른 사람들은 어찌하려고?”
안전한 곳에 사람들을 모아 격리하는 것 갖곤 부족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욱 적극적인 대응.
그중에서도 극단적인 축에 드는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범인은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만.”
“그러니까, 모든 관계자를 사흘 동안 멀리 대피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비밀리에 말이죠.”
“……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는지 포셋 경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범인은 그동안 제가 책임지고 잡아 들이겠습니다.”
내가 사건을 맡은 이상, 더는 누구도 죽게 두지 않겠다.
* * *
체신장관이 새로 마차를 불러 스코틀랜드 야드를 떠난 다음, 나는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레스트레이드를 만났다.
“골치 아프게 되었습니다. 경관들이 모두 겁에 질려 현장에서 떠나려고 합니다.”
경감은 나를 보자마자 현 상황이 답답해 견딜 수 없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신분이 밝혀졌으니 범인을 잡을 단초가 늘어난 게 아닌가. 자네의 부하들은 왜 그 모양인가.”
사건이 곧 해결되려는 참인데 경관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저번에 강시를 상대하다 죽을 뻔한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잖습니까. 그에 더해 이번엔 ‘유령권마Phantom Fist’에 관한 소문이 야드 안팎에서 퍼지고 있다 보니…….”
“유령권마?”
혹시 이번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을 가리키는 이름인가.
그렇게 묻자 레스트레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환장할 노릇이군. 하다 하다 고작 넷 죽인 살인범에게까지 별호를 붙이다니.”
“안타깝지만 이미 상당수의 경관이 새로운 무림공적Public Enemy의 등장이랍시고 소란을 피우고 있어서 말이죠.”
새삼스럽지만 스코틀랜드 야드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도망치려던 부하를 금나수로 잡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런던의 종북North End과 종남South End, 종동East End, 종서West End를 고작 일다경Tea Time 내에 주파하며 밀실 살인을 일으키는 존재를 인간이라 불러선 안 된다.
죽은 무림인의 영혼이 복수를 위해 구천을 떠돌아다니며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는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주먹 자국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레스트레이드가 그렇게 덧붙였다.
“허……”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을 보고 직접 조우한 적 없는 범죄자가 초월적 존재일 거라 지레짐작해 적전 도주Run Away를 결심하다니.
여왕 폐하의 경찰이라는 자들이 이리도 심약해서야.
“뭐, 실은 저도 꺼림칙해서 미칠 것만 같습니다. 솔직히 홈즈 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내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잘 생각해 보십쇼. 무슨 수를 썼는진 모르겠지만 범인은 유령처럼 벽을 통과하며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만 웃고 말았다.
“레스트레이드, 자네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그게 아니라면 제갈세가의 반무공 자물쇠를 건드리지도 않고 밀실 살인을 네 번이나 저지른 건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상세히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범인이 어떻게 피해자들을 살해한 건지 말로 알려주는 것보단 알기 쉬운 형태로 보여주는 쪽이 훨씬 빠르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자네와 부하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군. 이번 사건의 범인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처럼 피와 살을 지닌 인간일세.”
“그랬으면 좋겠군요. 놈에게 형태가 있다면 붙잡을 수 있을 테니.”
“바로 그거야. 두들겨 패는 건 나와 포셋 경이 맡을 테니 체포는 자네에게 일임하겠네.”
레스트레이드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고는 우락부락한 팔뚝으로 팔짱을 꼈다.
“매번 뭘 믿고 그리 자신 있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 근육질의 머리 갖고는 이해하기 힘들겠군.”
경감의 눈썹이 짜증으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이쯤 해둬야겠다. 계속 놀려먹었다간 레스트레이드가 폭발할 테니.
“그보다, 방금 일어난 일에 관해 자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군. 안 그런가, 왓슨?”
“나도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 묻고 싶었던 참이었네. 아까 홈즈에게 얘길 들어보니 이번 사건이 우체국과 전화 회사 사이에서 일어난 소송과 연관된 모양이던데.”
왓슨이 재빨리 내 의중을 파악하고 답했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겁니까. 제 얘기 따윈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양반Gentry이.”
레스트레이드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자네의 의견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물어보고 있지 않나.”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시죠.”
“통계에 따르면 자네는 정답을 맞히는 법이 없어. 그러니까 자네의 의견을 듣기만 해도 잘못된 선택지 하나를 거를 수 있단 뜻이지.”
“아악! 당신이란 사람은 진짜!”
잠시 히스테릭한 고함을 질러댔지만 레스트레이드는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자신의 소견을 밝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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