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46화 (46/110)

046. 유령권마 (3)

Phantom Fist (3)

영원히 살아서 작용하는 자연지기Essence Of Nature가 팔진도Metaverse의 진법Civil Engineering으로 너희를 둘러싸리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학사신권Faust>-

* * *

“오늘만 벌써 사람을 둘이나 살렸군.”

왓슨은 경악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범인이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단 말인가?!”

아깐 스코틀랜드 야드 앞에서 체신장관을 암살하려 들더니 실패하자마자 제갈율리를 노릴 줄이야. 과연, 대담한 살인자다.

왓슨은 이번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 유령권마의 정신상태가 어떻게 되어 먹은 건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울리히의 목숨을 지켜내긴 했어도 그 홈즈가 범인을 눈앞에서 놓쳤다는 건 뜻밖이었다.

“…….”

홈즈는 범인에 관해 묻는 왓슨에게 답하는 대신 곰방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두 눈은 닫힌 창문 너머로 보이는 허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왓슨은 동거인이 담배를 피우는 건 그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신호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했음에도 홈즈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지 않은 데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이로써 놈이 어떤 수법으로 살인을 저질렀는지 확실해졌군.”

그런데, 홈즈는 이상한 소릴 지껄이고 있었다.

방금 범인이 다녀간 게 아니었나.

놈이 어떤 무공을 사용했는지 직접 보고 나서 ‘어떤 수법을 썼는지 확실해졌다’니.

아무래도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이상해진 게 틀림없었다.

“……좋아. 정했어.”

“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홈즈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나머진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아니, 대체 뭘 맡기겠단 소린가?!”

홈즈는 대답 대신 울리히의 소매를 잡아끌고 황급히 사무실을 나서려 했다.

“홈즈!!”

도저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왓슨이 고함을 지르고 나서야 홈즈는 제자리에 멈춰섰다.

“참. 이걸 갖고 있게.”

잠시 왓슨의 표정이 밝아지나 싶더니 이내 홈즈가 손에 쥐여준 물건을 확인하자마자 그녀의 얼굴이 물음표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자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이걸 열어보게.”

홈즈가 왓슨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건 자그마한 가죽 주머니였다. 그것도 꽤 지저분한.

“저커버그 씨는 내가 데려가도록 하지. 이번 사건도 드디어 끝이 가까워지는군. 새벽에 다시 보세.”

그게 마지막이었다.

홈즈는 울리히를 데리고 종종걸음으로 3층 사무실을 떠났다.

“…….”

휑한 사무실에 경비원과 함께 남은 왓슨은 말을 잃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둘이 아녔다.

우체국과 전화 회사의 소송과 관계없는 제갈율리가 습격당한 건 어째서일까.

홈즈는 대체 무엇을 꾸미고 있는 걸까.

그리고, 홈즈가 남기고 간 주머니의 내용물은 과연―

“으음.”

홈즈는 이 주머니를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만일 그리 말했더라면 틀림없이 주둥이를 벌려 안을 확인했을 텐데.

주머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떨쳐낸 왓슨의 눈이 다시 난장판이 된 사무실 바닥을 향했다.

그곳엔 왠지 모르게 눈에 익은 도식이 그려진 종이가 한 장 떨어져 있었다.

“이건…….”

아프가니스탄에서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다.

공병대장이 저것보다 훨씬 커다란 종이를 펼치고 병사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던가.

<木氣引雷陣>

그때 본 것보다 도식이 훨씬 간결한 데에다 옆에 적힌 중원Midfield의 글자를 해석할 순 없었지만 그림의 정체는 설계도가 틀림없었다.

그것은 내공과 자연지기를 양분 삼아 작동하는 신비로운 영역이자, 범위 안의 무리법칙武理法則을 교묘하게 비트는.

“……진법Civil Engineering?”

제갈세가의 비기였다.

* * *

다음 날 새벽 2시 10분.

밤의 어둠을 틈타 스코틀랜드 야드에서 일제히 출발한 흑성모마차Black Maria 열다섯 대가 관계자들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예고된 일정보다 족히 3시간은 이른 시간이었다.

“왓슨 씨, 댁에 계십니까!”

동일同日 오전 2시 반.

창밖에서 들려온 경찰관의 목소리에 놀란 왓슨이 부스스해진 눈두덩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니, 분명 5시 반에 온다고 들었는데…….”

괜히 홈즈가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찰관들을 자주 욕하는 게 아니었다.

왓슨은 경감들의 일 처리가 실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불평하며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었다.

상체에 붕대를 둘둘 감고 역용술을 마친 다음에야 하숙집을 나와 마차에 탑승.

스코틀랜드 야드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포셋 경과 중앙 우체국장, 체신부 소속 법률학자, 전화 회사 관계자, 그리고 이번 소송과 연관된 변호사와 판사까지 모두 열다섯 명.

“전원 도착한 모양이군요.”

평소보다 기합이 바짝 들어간 레스트레이드를 필두로 경감들이 경찰청 1층에 집결했다.

전원, 마차 열다섯 대에 나눠 타 관계자들을 데리고 이곳까지 동승한 참이었다.

“너무하는군 진짜…….”

“약속한 시각과 다르지 않은가.”

판사를 비롯해 상당수의 인원이 하인까지 데리고 왔는데 그들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썩어들어 갈 것처럼 보였다.

경찰이 예정보다 족히 세 시간은 일찍 그들을 데리러 온 게 그렇게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다만 소송 관계자가 아닌 왓슨의 귀엔 저들의 불평이 지독할 정도로 위기의식이 결여된 것으로 들렸다.

왓슨이 새벽에 깨어나 활동하기 위해 일찍 잠들 수 있던 건 자신이 유령권마의 표적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들은 벽을 통과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살인마에게 머리통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았는데도 집에서 정신없이 자다 이곳에 왔다.

일신의 힘을 과신하는 걸까, 아니면 남의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걸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만일 경고한 게 체신장관이 아니었다면 경찰이 데리러 오든 말든 계속 침대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으리라.

“미행은?”

“기감을 최대한 펼쳐 경계했지만 수상한 놈은 보이지 않았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대는 유령권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East Coast To The West Coast 신출귀몰한 놈이니까 방심할 수가 있어야지.”

한편, 레스트레이드는 동료 경감들에게 이동 중 수상한 낌새가 없었는지 묻고 있었다.

관계자들이 전원 무사히 스코틀랜드 야드에 도착하긴 했으나 혹여나 유령권마가 따라와 근처를 배회하진 않을까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유령권마는 어제도 포셋 경이 펼치고 있던 반향정위대법의 탐지 범위 밖에서 권풍으로 암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니 걱정될 만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라고 했나. 하나만 묻지.”

“예, 포셋 경.”

체신장관이 말을 걸자 레스트레이드는 경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놈은 교활한 자일세. 정말로 우리가 이곳으로 향하는 걸 모르고 있을까?”

포셋 경 역시 같은 의문이 든 모양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범인은 절대 저희를 따라오지 못할 겁니다.”

왓슨의 예상과 달리 레스트레이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자신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무슨 생각인지 먼저 말해주지 않겠나.”

“설명은 나중에. 이쪽으로 오시죠.”

고개를 갸웃대던 왓슨도 홈즈에게 기가 눌려 있을 때와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는 레스트레이드의 말에 기묘한 신뢰감을 느끼고 그 뒤를 따랐다.

레스트레이드와 다른 경감들이 일행을 데려간 곳은 스코틀랜드 야드 1층 구석진 곳에 있는 커다란 문이었다.

일곱 개의 자물쇠로 단단히 잠긴 금속제 출입문은 광역경찰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녹색 문과 같은 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1번부터 7번까지 모든 열쇠를 확인.”

“통로를 개방한다.”

“셋, 둘, 하나, 지금.”

-철컥

경감들이 각자 지니고 있던 열쇠를 꽂아 잠금을 해제. 문을 열자, 지하로 이어진 계단이 나타났다.

“스코틀랜드 야드에 지하 공간이 있다는 이야긴 처음 듣는걸.”

“예전부터 중요 증인 등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밖으로 빼낼 때 사용해온 통로입니다.”

예상치 못한 경찰청의 비밀에 왓슨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규정상 내부를 여러분께 보여드릴 순 없으니 이걸 착용해주시길 바랍니다.”

경감들은 주머니에서 안대를 꺼내 사람들의 눈에 씌우기 시작했다.

“포셋 경께는 귀마개를 드리겠습니다.”

왓슨 역시 체신장관이 귀마개를 착용하는 걸 보고는 군말 없이 안대를 썼다.

호기심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될 바엔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하기로 마음먹은 까닭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한 명씩 천천히…….”

곧이어 눈 뜬 소경 열넷과 진짜 맹인 하나가 경찰이 내민 새끼줄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홈즈처럼 반향정위대법을 익혔다면 넘어지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지팡이를 가져왔지만 표면이 미끄러운 계단을 내려가는 건 고역이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습한 공기엔 곰팡내가 섞여 있다.

안대의 틈새로 희미한 불빛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걸 보니 선두에 선 경관이 랜턴이라도 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먼저 끝까지 계단을 내려간 경관들은 사람들을 이끌고 지하를 걸었다.

지상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즈음, 머리 위에서 묵직한 소음과 진동이 전해져 왔다.

왓슨은 스코틀랜드 야드의 지하 통로가 지하철 노선보다 아래에 있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라면서도 계속해서 걸었다.

사실, 이곳에는 습기나 지하철이 발하는 진동 이상으로 그녀의 예민한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몸은 보리수로 되어있다

-身是菩提樹

-I am the tree of my bohdi

.

.

.

멀리서 누군가가 기묘한 노래를 흥얼대고 있었다.

음의 높낮이가 없다시피 했지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 웅후한 목소리엔 듣는 이의 단전을 뒤흔드는 힘이 서려 있었다.

“저건…….”

“쉿.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십시오. 누군가가 노래에 답한 거라고 그분들이 오해할 수 있으니.”

왓슨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레스트레이드가 초조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기괴한 경고가 무엇을 뜻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아 왓슨은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나중에 홈즈에게 물어봐야겠어.’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아는 가장 똑똑한 남자에게 묻는 수밖에.

일단은 넘어지지 않는 데에 집중하기로 결심한 왓슨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이럴 바엔 잠시 따로 움직이자는 홈즈의 말을 무시하고 같이 다닐 걸 그랬다고, 뒤늦은 후회를 곱씹으면서.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축축한 통로를 이동하던 일행이 마침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아.”

묵직한 석판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새벽 공기가 왓슨의 얼굴을 때렸다.

지상으로 올라와 안대와 귀마개에서 해방된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건 작은 정원이었다.

“여기는?”

“리젠트 스퀘어 가든. 엎어지면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 코가 닿는 곳이죠.”

왓슨은 이제야 스코틀랜드 야드가 유령권마의 표적들을 어떻게 무사히 다른 도시로 피신시킬 생각인지 이해했다.

경감들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네 명씩 관계자를 태우고 열차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역사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제때 도착했군.”

곰방대를 물고 있는 런던의 유일한 자문 탐정.

셜록 홈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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