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장엄구마 (1)
Magnus Exorcismus (1)
①교구 직권자로부터 특별한 명시적 허가를 얻지 아니하는 한 아무도 마공을 익힌 자에게 합법적으로 구마식Exorcism을 행할 수 없다.
②둘째. 교구 직권자는 신심과 학식과 현명과 생활이 완벽하고 무공이 정순한 탁덕Priest에게만 이 허가를 주어야 한다.
-성산파Zion Clan 교회법전 4권 2편 1장 제1172조-
* * *
“이젠 아시겠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체신장관의 존엄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왓슨이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던 레스트레이드가 재빨리 복도 쪽으로 한 걸음 움직이며 문을 닫았다.
“말도 안 돼…….”
왓슨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아예 예상할 수 없던 상황은 아니었다.
런던에서도 유령권마는 한 차례 포셋 경의 목숨을 노리고 권풍 저격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홈즈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자신과 레스트레이드를 호법으로 붙인 건데, 설마 정말로 사달이 날 줄이야.
홈즈를 신뢰하고 있던 만큼 케임브리지에서 누군가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건만.
“설마…….”
불길한 예감이 왓슨의 심중을 헤집어 놓았다.
홈즈가 범인이 런던을 빠져나가도록 두었을 리 없다.
다만, 이 모든 전제는 홈즈가 살아있어야만 성립되는 것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왓슨은 자신의 동거인이자 친우가 어떤 사내인지 재차 상기해내려 했다.
그는 탁월한 경지를 이룬 무림인이자 동시에 범용한 이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뇌를 소유한 천재다.
어지간한 범죄자가 소천마 셜록 홈즈를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만에 하나, 유령권마가 정말로 인간에게 불가능한 속도로 경공을 펼치며 벽 너머의 상대를 격살하는 비현실적인 수준의 고수라면―
“정신 차리십쇼! 지척에 유령권마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레스트레이드가 왓슨의 어깨를 잡고 격하게 흔들었다.
“미안하네.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군.”
레스트레이드에게 대답하던 와중, 경감이 들고 있던 자그마한 가죽 주머니가 왓슨의 눈을 사로잡았다.
“음?”
왓슨의 시선이 자신의 손을 향한 걸 확인한 레스트레이드는 잽싸게 쥐고 있던 물건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잠깐. 그거, 홈즈에게 받은 건가?”
“제가 뭘 받았다는 겁니까.”
“가죽 주머니 말일세.”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레스트레이드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시치미를 떼었다.
“지금 그딴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내겐 중요한 일이야.”
“가죽 주머니라면 박사님이 들고 있지 않습니까.”
레스트레이드가 지적하고 나서야 왓슨은 자신이 계속 홈즈가 준 가죽 주머니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이 주머니의 내용물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홈즈가 준비한 안배일 터.
“그래. 홈즈가 쉽게 죽을 리 없지.”
진정작용을 지닌 진기를 니환궁에 소량 불어넣어 냉정함을 되찾은 왓슨은 주머니를 봉한 끈을 풀고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안에 들어있던 건 두 번 접은 종잇조각.
왓슨은 그것을 꺼내 펼쳤다.
<숙박 중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모든 소송 관계자를 호텔 1층 로비에 집합시킨 다음 프런트의 전화를 빌려 아래의 번호로 연락하도록.>
종이에 적혀 있던 것은 평소 자주 봐서 헷갈릴 수가 없는 수사 자문가의 필적이 분명했다.
“……뭘 하고 싶은 거지, 이 남자는.”
걱정해서 손해만 봤다.
그 외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왓슨은 이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 * *
왓슨과 레스트레이드는 홈즈의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호텔 로비에 포셋 경을 제외한 우체국 관계자, 법조계 종사자, 그리고 전화회사 임직원 전원이 모였다.
아까 굉음이 들렸을 때 겁을 집어먹고 호텔 복도로 뛰어나오는 일 없이 방에 틀어박혀 있던 이들도 포함해서, 모두.
문제는 그들 전원이 멀쩡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대체.”
레스트레이드에게 부축받으며 비틀대는 벨 전화회사의 임원 티모시 영은 측두부에서 대량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까 호텔 로비에서 그가 산 샴페인을 얻어먹은 왓슨으로선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 유령권마입니다. 옆방과 동시에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는데 갑자기 머리에 충격이…….”
왓슨은 티모시에게 다가가 그가 관자놀이에 대고 있던 손수건을 치웠다.
“맙소사.”
티모시의 측두부와 이마에 걸쳐 누군가의 거대한 주먹 자국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다만, 런던에서 죽은 피해자들과 달리 주먹이 남긴 흔적은 비교적 얕았다.
아무래도 천운이 도와 유령권마가 출수Strike할 때 발경에 실수가 있던 게 틀림없었다.
“제때 호신기Self Defense Essence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겁니다.”
그게 아니면 티모시의 실력이 상상보다 탁월하다는 뜻이겠지.
“혹시 유령권마의 모습을 직접 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놈에게 당해 기절해 있다 방금 깨어난지라.”
“그렇습니까…….”
어느 쪽이든 유령권마를 만나고도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 왓슨은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수상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티모시를 소파에 앉히고 온 레스트레이드가 동의를 표했다.
“저자가 유령권마의 고용주일 겁니다. 의심을 피하려고 자신을 공격하도록 지시했을 겁니다.”
“일리 있군. 아무래도 주먹의 크기가 자국과 다르니 유령권마 본인은 아닐 테지.”
“박사님도 그리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자네가 사전에 모든 방을 확인하고 복도를 지키고 있었지 않았나. 출입한 인원도 없었고.”
“그건…….”
“유령권마가 형체가 없는 귀신이어야만 포셋 경과 영 씨를 공격할 수 있었을 거란 소릴세.”
레스트레이드도 왓슨도 입을 다물었다.
둘의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기분 나쁜 사건을 파헤칠 단초를 찾아낼 수 없었다.
범인은 차례차례 불가능한 살인을 성공시켰지만 그 정체는커녕 어떤 초식을 사용한 건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이럴 때 홈즈 씨가 있어 줬다면…….”
왓슨이 입술을 짓씹는 레스트레이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세. 홈즈가 남긴 번호로 전화를 걸어야겠어.”
둘은 졸음과 당혹이 가득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던 프런트의 호텔리어에게 쪽지를 보여주었다.
호텔리어는 교환원에게 전화를 걸어 메모에 적힌 번호를 읊었고, 이내 통화가 시작되었다.
“……왓슨 박사님을 바꿔 달라고 하십니다.”
수화기를 가져가기 전 호텔리어와 대화 중이던 통화 상대가 먼저 왓슨을 지목했다.
“나 말인가?”
“예.”
왓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세인트 바솔로뮤 병원의 왓슨 박사입니다―”
그녀가 인사를 마치기도 전에 유쾌한 웃음소리가 귓구멍에 날아들었다.
<하하하. 우리 사이에 뭘 그리 딱딱하게 구는가.>
“홈즈……?!”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왓슨이 수화기를 쥔 채로 4인치가량 펄쩍 뛰었다.
“무사했군, 다행이야. 내가 얼마나 마음 졸이고 있었는지 알고는 있나.”
<당연하지, 전부 계획의 일부였으니까.>
“그게 대체 무슨―”
<설명은 나중에. 일단은 범인의 정체와 살인 수법을 밝힐 차례야. 관계자는 전부 모여 있겠지?>
“물론이네.”
<완벽하군. 미안하지만 수화기를 로비 쪽으로 돌려주겠나?>
“……수화기를?”
전화 음량이 작아서 사람들은 홈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거란 생각부터 들었지만 왓슨은 일단 홈즈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아름다운 밤이군요, 여러분.>
그리고 다음 순간,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던 홈즈의 목소리가 족히 몇십 배는 증폭되어 호텔 로비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이목이 호텔 프런트에 집중되었다.
<조금 갑작스러울 순 있겠지만 지금부터 삼청Trinity의 이름으로 구마 예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유령권마를 지옥으로 돌려보내야 하거든요.>
장난기가 가득한 홈즈의 헛소리에 전원이 바티칸의 성상처럼 제자리에서 굳었다.
“홈즈. 자네, 언제부터 성산파Zion Clan의 탁덕Priest이 된 건가…….”
혼란에 빠진 왓슨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댔지만 홈즈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이면 세존 또한 그 가운데 계시는 것처럼, 악마 역시 가까이에 숨어있는 법이니까요.>
종교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수사 자문가의 입에서 나온 거라곤 믿어지지 않는 문장.
하지만 유능한 조수는 그녀의 탐정이 말하려 하는 바를 곧바로 이해했고.
<네. 그렇습니다. 범인은 호텔 안에 숨어있습니다.>
홈즈의 경쾌한 목소리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달구기 시작했다.
* * *
“범인은 호텔 안에 숨어있습니다.”
나는 수화기를 향해 선언했다.
어둡고, 습기 찬 데에다, 먼지가 가득한 곳에 홀로 앉아서.
“런던에서 케임브리지까지 여러분을 따라온 유령권마가 출수할 기회를 노리다 마침내 꼬리를 드러냈습니다. 이젠 놈을 잡아 족치기만 하면 됩니다.”
저기 북쪽Upper에선 소송 관계자, 그리고 호법을 서고 있는 왓슨과 레스트레이드까지.
장장 열댓의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왓슨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는 건 모든 것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
이곳에 머무르며 전화를 기다린 지 어언 여섯 시간,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이 도래했다.
<잠깐. 이 목소리는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출발하기 전에 보았던 수사 자문가인가 하는 사내의 것이 아닌가.>
<자네 말대로야. 저자가 유령권마를 런던에 묶어두겠다고 큰소리쳤던 것 같은데.>
이 와중에도 침착하게 내 흠을 찾으려 드는 걸 보니 차분한 성격을 지닌 자가 두어 명 있는 모양이다.
그 냉정한 이성만큼은 높게 사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사건을 해결할 시간이다.
즉,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이들에겐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수화기를 어깨와 목으로 고정한 채 손목의 관절을 풀었다.
-뚜둑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성질이 변화한 진기가 전신의 세맥을 질주하는 게 느껴졌다.
굳이 내면을 관조할 필요도 없다.
하룻밤 사이 새로운 힘을 손에 넣은 나의 컨디션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으니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준비할 게 있으니 협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구시렁대는 이들의 불평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왓슨, 레스트레이드. 거기 있나.”
<듣고 있네. 홈즈.>
<이번엔 뭘 하면 됩니까.>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전에 마무리해야 하는 일은 많아봤자 두 가지 정도다.
“컨시어지를 시켜 호텔에서 일하는 이들을 건물 밖으로 물리게, 왓슨. 듣는 귀가 많아봤자 좋을 게 없는 이야기니까. 레스트레이드는 제자리에서 대기해주게.”
잠시 후, 잠이 덜 깬 사람들이 투덜대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잘 자고 있었는데 무슨 짓이냐고 항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욕먹는 건 내가 아니니까 상관없다.
지금이야 짜증이 나겠지만 일다경이 지난 후엔 호텔을 무사히 벗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될 테지.
“좋아.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레스트레이드.”
<뭡니까, 또.>
“문을 잠그고 소송 관계자를 감시하게.”
유령권마는 호텔, 정확히는 이곳에 묵은 소송 관계자들 사이에 숨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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