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52화 (52/110)

052. 장엄구마 (2)

Magnus Exorcismus (2)

인류에겐 한 가지 참으로 효과적인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활……,

노포, 장창, 도, 검, 한손창, 방패, 배틀액스, 폴액스, 할버드, 채찍, 쇠막대, 괴, 몽둥이, 작살, 갈고리, 밧줄, 그리고 권각이다.

잘 생각해보니 하나가 아니긴 한데 이를 모두 통틀어 십팔반병기Eighteen Arms라 한다.

-마크 트웨인-

* * *

“이 호텔에는 처음부터 소송 관계자와 두 호법을 제외하면 투숙객이 없다네. 지금부터 자리를 이탈하려 하는 자는 무조건 범인으로 간주하고 체포해도 좋다는 뜻일세.”

<……그런 거였습니까. 좋습니다, 어울려 드리죠.>

레스트레이드의 대답에 섞여 전화선 너머에서 관계자들이 발하는 아우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에 더해 간간이 욕설까지 들리는 걸 보니 다들 어지간히 당황한 게 틀림없었다.

물론 충분히 이해는 간다.

로비에 모인 열댓 명의 인원 중 살인마가 숨어있다는 얘길 듣고 꺼림칙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셋 중 하나다.

자신이 범인이거나, 겁이 없거나, 실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거나.

그중 첫 번째에 해당한다면 지금쯤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있을 것이다.

나로선 지금 범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직접 눈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애석할 따름이었다.

“자, 지금쯤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르고 있을 겁니다.”

나는 최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건의 진상을 풀이해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포셋 경을 죽인 범인의 정체가 누구인지. 완벽한 밀실인 호텔 방에서 범인이 어떻게 누구에게도 목격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던 건지. 그게 아니면―”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지금은 가장 사건의 핵심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의문부터 차례대로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평범한 전화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어떻게 호텔 로비를 울릴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계실 겁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의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꽤 눈치 빠른 사람이 섞여 있던 모양이다.

“어쩌면 우체국 관계자분들은 짚이는 구석이 있겠군요. 생각하신 대로입니다. 지금 저는 배터리 대신 뇌정지기雷霆之氣를 사용해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우체국 관계자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뇌정지기Brain Stopper를 사용하면 전보를 멀리 보낼 수 있으니 전화 음량을 키우는 것도 가능하겠어.>

<지금 그게 중요한가?! 자네는! 장관 대인이 돌아가셨는데!!>

<그러니까 지금 범인이 누군지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런던에서 있던 일을 떠올렸다.

왓슨을 스코틀랜드 야드에 두고 체신장관을 만나러 간 나는 수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뇌정지기의 구결을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뇌정요결雷霆要訣만 듣고 뇌정지기를 연성練成하겠다고? 어디 해보게나. 곤륜 무학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오하다네.’

포셋 경은 아무 해석 없이 구결을 한 번 읊고 말았지만 내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 오성은 범재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그 잘난 사부마저 매번 가르침을 내리다 혐오스럽다는 얼굴을 하기 일쑤였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호법을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날 나는 체신장관을 호법으로 세워두는 호사를 누리며 일다경Tea Time만에 뇌정지기를 자유롭게 일으키게 되었다.

<…….>

당시의 일을 떠올리는 동안 잡음은 그쳤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뇌정지기는 곤륜대성당Kunlun Cathedral의 독문진기Heritage Essence입니다. 저는 순례자가 아니지만 인연이 닿아 한 자락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죠.”

뇌정지기를 다룰 수 있게 된 나는 직접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고, 결과 이번 사건의 진상을 완벽히 밝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범인이 사용한 수법은 실로 단순명쾌한 것으로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실은 뇌정지기야말로 이번 사건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홈즈? 뇌정지기와 살인이 어떻게 연관이 있다는 건가.>

말을 마치자마자 왓슨이 물었다.

예기치 못한 정보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듯 그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천천히 설명해주겠네. 일단은 자네도 레스트레이드와 도망치는 자가 없는지 지켜보고 있게나.”

<으음.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알겠네, 내 기다리지.>

왓슨을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빠르게 사건의 진상을 풀어내야겠다.

내가 지금 앉아있는 장소의 특성상 곰방대를 피울 수 없다는 게 한일 따름이었다.

“사건을 수사하며 가장 먼저 괴리감을 느낀 부분은 범인의 경공이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범인이 사용한 살초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서를 얻은 건 왓슨과 직접 중앙 우체국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었다.

강호 제일의 경공 고수인 포셋 경은 곤륜파 도달자의 명예를 걸고 말했다.

고작 일다경 동안 100마일을 주파하는 건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처음 사건 현장의 위치와 증언을 확인했을 땐 솔직히 말해서 경악스러웠습니다. 살인자가 네 명이 아니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거든요.”

물론, 당시 나는 포셋 경의 이야기가 틀렸을 가능성 역시 고려했다.

스승을 비롯해 강호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은거기인Hermit이 존재한다.

개중에는 공식적인 세계 기록을 보유한 포셋 경을 뛰어넘는 진정한 강호일절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내 네 건의 살인이 전부 단독범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니 골치가 아프더군요.”

당연한 얘기지만 소리의 절반이나 되는 속도로 런던 외곽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인간이 정말로 존재할 거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 초월적인 경공을 펼치는 자가 조금의 흔적도 남기는 일 없이 밀실 속 피해자의 머리통을 부수는 신묘한 초식까지 익히고 있다니.

그런 무림인이 실존한다면 무리법칙武理法則의 한계를 넘어선 기적 같은 사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신비로운 은둔고수가 기업과 정부의 송사에 은밀하게 개입하려는 이유가 있을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일은 없더군요.”

다만, 그 정도 경지를 이룬 자라면 남의 재판에 끼어들지 않아도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 방법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내가 알기로 백도White Chess Piece와 흑도Black Chess Piece를 통틀어 그 정도로 돈에 미쳐 있는 위인은 많지 않다.

끽해봤자 미국 무림의 황흑금마黃黑金魔 닐 깁슨 정도.

하지만 고작 깁슨 정도의 경지 갖고는 이런 불가해한 살인을 일으킬 수는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연쇄살인이, 실은 단순한 방법을 사용해 실행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떠올린 현실적인 가설은 다음과 같다.

“은둔고수가 벌인 짓이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입니다. 범인은 직접 사건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뜻이죠.”

말을 마치자마자 기대했던 그대로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허무맹랑한 말이로군! 범인이 직접 찾아가지 않고 무슨 수로 밀실에 있는 피해자를 때려죽였다는 말인가!>

<말세로군Apocalypse Now! 정파의 탐정이라는 작자가 좌도방문Left Wing의 술법을 논하다니!>

마녀사냥을 집행하는 성산파 이단심문관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은 잇따라 나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이보게, 홈즈. 자네 말대로 범인이 현장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복원한 시체의 관자놀이에 남은 주먹 자국은 어쩌다 생겨난 건가?>

왓슨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천마의 무맥Kung-Fu Lore을 이은 나로선 탄식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다.

강호인이라는 자들이 여전히 오래된 고정관념에 얽매이고 있다니.

이것이 학관에서 무를 익힌 이들의 한계다.

반면, 비록 사람을 죽였긴 했어도 유령권마의 발상만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마침 잘 물어보았네, 왓슨. 자네의 질문이야말로 이 사건을 관통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지.”

나는 그동안 여러 사건을 조사해왔지만 아직 자유롭게 벽을 통과하는 유령이 범죄를 저지르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리고 범인이 두 다리를 가진 인간이라면 마땅히 무학적인 수사를 통해 반드시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 법.

“잘 기억해보게. 네 곳의 살인 현장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곳에 남아있던 유령권마의 흔적을 떠올려 보게.”

<음……. 일단 모든 현장은 밀실이었어. 반무공 자물쇠로 창문과 문이 잠겨 있었는데 범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정말로 아무 흔적이 없던가?”

<피해자들의 머리에 남은 주먹 자국이 전부이지 않나.>

“그 자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겠나.”

왓슨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피해자들의 머리를 터뜨린 권격은 유령권마가 오른손으로 출수한 것이었네. 주먹은 기괴할 정도로 컸고 피해자는 각각 다른 방향에서 공격당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지.>

“그래. 잘 기억하고 있군. 추가로, 오른손잡이는 우측 안면을 가격당하고 왼손잡이는 좌측에 초식이 적중했던 거로 아는데. 내 말이 맞는가?”

스코틀랜드 야드에서 시체를 살펴볼 때 왓슨도 동행하고 있었으니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을 거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말한 대로야. 다시 생각해보니 묘하군. 왼손잡이Southpaw의 목숨을 노린다면 우측에서 암습을 시도하는 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텐데.>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가. 사건 현장에 어떤 공통점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떠올려 보게.”

벡슬리의 저택, 엔필드의 변호사 사무실, 그리고 힐링던과 크로이던의 건물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그렇다.

살인 현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바로―

<그래! 전화! 피해자들은 전화를 받다 습격당했어!>

“맞아. 이번 밀실 연쇄 살인 사건에 사용된 흉기는 바로 전화기일세. 피해자들은 전화를 받다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전화를 받았기에 죽은 거라네.”

<뭐라고?!>

왓슨이 발광할 기세로 되물었다.

<전화라니. 그게 대체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린가. 자네 입으로 말했지 않았나. 범인이 주먹으로 피해자들의 머리를 터뜨렸다고.>

“범인은 권풍을 뇌정지기와 함께 전화선에 흘려보낸 걸세.”

<권풍……?>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는 왓슨에게 나는 한 번 더 자세히 사건의 진상을 전했다.

“통화가 연결된 다음 수화기의 진동판이 뇌정지기에 의해 강렬하게 진동하며 전기 신호를 다시 권풍으로 바꿔 쏘아낸 거지. 내가 조금 전부터 통화 음량을 키운 것처럼 말이야.”

천 리 밖의 적수를 격살하는 초식에 담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묘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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